1. 본인은 필드 렙업을 좋아해서 퀘스트를 깨거나.
2. 스토리를 읽기 위해서 퀘스트를 정독해서 깨거나.
3. 아무튼 그런 거 다 아니다.
4. 버스탈 돈이 없을 뿐이다. (미리 받은 돈은 이미 버스 다 탔음)
5. 돈돈 하는 것도 지겨우니 더 이상의 골드는 받지 않겠다! 


38렙이 되고.
스킬도 갱신할 겸.
콧바람도 쐴겸 스톰윈드에 도착했다.

캣타워는 잘 있나.


올라가서 검토해봄.
좋아.
이제 달인이 되었다.

캣타워 위에서 보니 멀리 보였고.
멀리 보이니, 그동안 소식이 궁금했던 일가족이 보였다.



운명처럼 찾아냈다.



칼리 채디스, 페이지 채디스,
그리고 길

망령처럼 스톰윈드를 배회하는 그들 가족을
다시 한번 따라간다.

사실 일전에도 그들이 다니는 루트에서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런지, 아니면 루트를 잘못 찾은 건지
그때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괜히 성인 여성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물론 그런 기능은 없겠지만.
섬뜩한 어떤 가능성 때문에 망자의 영혼이 대답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유치한 마음으로.



무슨 죄를 지어서.
혹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스톰윈드를 이렇게 떠도는가.

저들 셋을 봤을 때의 스산함은 비단 나만 느낀 게 아니어서,
외국 와우헤드 댓글을 봐도.
지나가다가 문득. 아이 혼자 말을 하고 있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게 이상해서 따라갔던 사람이 있었다.

와우는 디테일한 일상을 잘 표현한 게임이고.
A에게 의문형의 대사가 있으면
B는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하게 되어있다.
그 합이 맞지 않으면 우리는 어색함을 느끼는데.
어색함이 곧 의문의 씨앗을 개화시킨다.





처음에 멀리서 들었을 때는
납치범이 있나 했었다.



굉장히 오랜 시간 따라다녔는데.
저 대사가 나왔을때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직 멀었어요?
다리가 아파요.
쉬야가 마려워요.
마법사의 탑두 보고싶어요.

대략 이 대사만 반복하다가.
정말 딱 한 번만 "왜 계속 같은 길로 가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 순간 칼리 채디스는 제 자리에 멈추고.
잠시 머무르다가, 제자리에서 주춤 거리며 한바퀴 돌더니.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간다. 

온 스톰윈드를 걸어다니면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떠드는데
저 대사는 단 한 번이다.

왜 계속 같은 길로 가는 거예요? 

마치 스스로의 처지를 아는 것처럼.



모션을 보면.
셋 모두 제 자리에 멈췄다는 걸 알 수 있다.
걸음을 멈췄다는 얘기다.



그러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걷기 시작한다.



마법사 지구 골동품 가게에 도착했다.
유일한 이벤트는 이 안에서 펼쳐진다.
스톰윈드를 한바퀴 배회하고, 마무리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페이지 채디스는 꼭 저렇게 위험하게 떨어질 것처럼 들어간다. 



칼리는 가게 주인에게 물건들을 구해달라 부탁하고.
가게에는 삑삑이라는 토끼가 있다.
페이지가 엄마에게 삑삑이를 키워도 되냐고 묻자.
엄마가 처음으로 대답한다. 그래, 대신 잘 보살펴야 한다. 

두 모녀는 스톰윈드를 한바퀴 도는 동안 처음 말문을 연 것이다.
길이 끝없이 떠들때는 조용했던 그들이.



길이 삑삑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자기가 아는 얘기라서 신이나서 얘기를 한다.
투머치 토커 기질이 있는 건 둘째치고.

칼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칼리 채디스도, 페이지 채디스도 길이라는 소년을
마치 없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고 레이드를 갔었는데.
오늘 따라다니면서 마침내 의심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들에게,
길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저 대사를 마지막으로 칼리는 다시 입을 다문다.
스톰윈드를 한바퀴 돌아서 이곳에 올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페이지, 이리오렴. 사랑스러운 내 딸.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다. 

그들은 지금도 스톰윈드를 배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