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초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털어낸 뒤의 홀가분한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그들이 지난 수 년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느꼈을 먹먹함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한 해 동안 세계 각지에서 진행된 지역 리그를 통해 최정예 팀을 선발해 세계 최강을 가리는 WGL 무대. 한국 대표이자 아시아 서버 대표로 참전한 ARETE(이하 아레테)는 개막전 Kazna Kru(이하 카즈나 크루)와의 경기에서 5:1로 패배, 이어진 Hellraisers(이하 헬레이저)와의 경기에서 5:4로 석패한 끝에 8강 진출이 무산되었다.

성적만 놓고 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다. 하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헬레이저를 상대로 환호성이 절로 터져나오는 박빙의 명경기를 펼쳤던 것을 돌이켜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경기가 종료된 직후, 아직은 무거운 분위기가 가시지 않은 시각, 아레테의 팀장 송준협과 오더 송호성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Q. 아쉬운 경기였다. 경기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

송호성 :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우리는 최선을 다 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 이 경기를 지켜 본 유저였다 생각해도 '대체 아레테가 지금까지 준비한게 뭐지?' 라는 반응이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레테는 지난 1년동안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제법 좋은 성적을 보여줬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쉽지는 않다.

물론, 기분이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Q. 1라운드에서 비교적 약체인 팀에게 너무 쉽게 패배한 것이 아니었나?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는지.

송호성: 내부적인 문제는 없었다. 카즈나 크루가 약체 팀은 아니다. 4강까지는 가지 않을까 예상하는 팀이다. 내, 외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상대 팀보다 못 해서 진 것이다.

카즈나 크루와의 경기를 통해 느낀 것은, 대회를 위해 굉장히 치밀하게 준비를 잘 해놨다는 점이다. 홈 팀의 이점도 잘 살렸고. 우리 문제라기 보다는 카즈나 크루가 잘 한거다.

송준협: 아마추어로써의 한계를 느꼈다. 최선을 다 한것은 맞다. 세계의 벽을 느낀 셈이다.

송호성: 아레테가 대회에 출전하는 월드오브탱크 팀들 중 연령대가 가장 높을거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이외에는 프로팀도 많고, 프로 팀이 아니더라도 프로 팀과 스크림도 자주 하면서 준비를 해 왔다. 이런 부분도 영향을 미쳤을거라 생각한다.


Q. 오늘 경기 어떤 점이 가장 아쉬웠는지.

송호성: 전체 성적 말고는 특별히 아쉬웠던 것은 없다.

송준협: 조 추첨이 가장 아쉬웠다. 최악의 수가 걸린 것 아닌가.

송호성: 조 추첨 전에 최선의 수와 최악의 수를 꼽아 본 적이 있다. 결국에는 우리가 상정한 최악의 수가 걸렸다.


Q. 우승 후보 중 하나인 헬레이저를 상대로 비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는데, EU와 러시아를 상대로도 충분히 견줄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송호성: 그건 아니다. 아레테는 대회를 위해 스크림할 상대가 없다. 폴란드에 도착해서 유럽이나 러시아 팀과 몇 번 연습을 해 봤다. 우리가 다른 팀과 스크림을 하면 우리와의 대전을 통해 파악한 정보가 상대 팀들 사이에서 공유되더라. 때문에 연습 전투에서도 전략을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이미 이를 통해 노출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전략적 승부보다는 상대 분석을 통해서 약점을 찾아 일점돌파를 시도하는 입장을 취했다. 카즈나 크루는 첫 경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전략으로 승부를 건 전투였지만, 실력의 차이로 패한 것이고, 두 번째 헬레이저와의 경기는 약점을 노린 일점돌파를 시도한 것인데 아쉬운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아레테의 계획은?

송호성: 당장은 감정 섞인 답변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지금은 말을 아낄 때라고 생각한다. 아레테는 오랜 기간 동안, 매 번 같은 단계에서 멈춰섰다. 아시아에서는 1등을, 한국에서는 '적수가 없는' 수준을 유지해 왔다. 물론 중국 대회였던 WCA서는 우승까지 이뤄내기는 했지만 세계 무대인 WGL에서는 매번 첫 라운드를 통과하지 못 했다.

당장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군 입대 등의 개인 사정이 있는 멤버들이 많아 어떤 형태로든 리빌딩을 하기는 해야 하는 상황이다.


팀 구성에 대해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리빌딩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할 예정인가?

송호성: 선수 각각의 개인 기량이 좋지 않으면 좋은 전술을 짜도 안 된다.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 서버의 유저 풀이 굉장히 좁다는 점이다. 이 중에 대회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는 유저를 찾는 것은 더 어렵다. 여기서 다시 우리와 대회에 나갈 사람을 찾아야 한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 영입도 생각해본 적 있을 정도다. 나름 좋은 성적을 내다가 해체한 팀의 선수를 데려오는 것도 생각해 봤다.

송준협: 집안의 반대와 같은 개인적인 문제도 많이들 겪고 있다.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 있는 선수들도 많다. 앞서 말한 수많은 조건을 거쳐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서 온 것이지만 쉽지 않았다.


이번 WGL 우승팀은 누가 될 것이라 생각하나?

송호성: WGL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략을 많이, 탄탄하게 준비해야 한다. 헬레이저나 카즈나 크루도 4강권 팀인데, 직접 경기를 치러보면 이게 이 팀의 바닥이라는걸 느낄 수 있다. 상대가 이 수준을 넘으면 그 팀은 무너지는거다. Na'Vi(이하 나비)는 전혀 다르다. 벽을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는 팀이다.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비가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응원해 주신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송호성: 이렇게 꾸준하게 리그에 참가하고 일정 이상의 성적을 유지한다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하지만 계속 할 수 있는건 우리를 응원해 주는 분들이나 칭찬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다. 상금이나 명예라는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분들이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히익 팀에게는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 사랑하다고 전해주고 싶다.

송준협: 여러 커뮤니티를 둘러봤는데, 많이 상심해 있을 때 응원해준 글들을 보고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고 감명 받았다. 세계 무대라 그런가 국내 리그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더라. 지켜봐 주신 분들,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