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는 게임사의 뱃속에서 잉태되지 않았다. 맨 처음 e스포츠를 시작한 곳은 방송사였다. 당시 투니버스에서 근무하던 황현준 PD는 게임 중계에 대한 가능성을 느끼고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전신인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을 만들어 방송에 내보냈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고, 그렇게 게임 전문 방송사인 온게임넷(현 OGN)이 개국했다.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중계 분쟁과 승부조작 파문으로 긴 암흑기를 걸었고, 저작권 문제로 게임사에 종속되면서 발전 가능성에 뚜렷한 한계를 깨닫게 된다.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가 나오기까지 e스포츠의 앞날은 흑암 아래 놓인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지금은 더는 e스포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단 하나의 게임에 e스포츠의 흥망성쇠가 걸려있지 않다. 게임사뿐만 아니라 발렌시아, 파리 생제르망 같은 해외 스포츠 클럽, 호나우두, 샤킬 오닐 등 유명 스포츠 인사, ESPN과 같은 메이저 스포츠 언론까지 e스포츠에 관심을 두고 투자하고 있다. e스포츠를 시청하는 인원은 주류 스포츠 중계의 관전자 수와 대동소이하다.

'e스포츠는 마케팅을 넘어 문화가 됐다'

e스포츠를 자사 게임의 홍보 수단으로만 생각하던 게임사도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국산 글로벌 e스포츠 종목 크로스파이어 종목사 스마일게이트 여병호 팀장은 e스포츠는 이제 마케팅을 넘어 문화라고 말했다. 유저가 아닌, 방송사가 아닌, 게임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e스포츠는 어떤 의미일까? 여병호 팀장이 말하는 e스포츠의 미래를 들어보자.

아직도 봄기운은 멀게만 느껴지는 겨울, IT 산업의 메카라는 판교로 이동했다. 스마일게이트 측에서 좋은 소식이 있다는 이야기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국산 게임인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가 국제 e스포츠 대회인 IEM의 정식 종목이 되었다고.


"작년 ESL과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ESL 측에서 크로스파이어에 대한 IEM 종목 채택을 제안했습니다. IEM은 IEM 엑스포와 IEM 월드 챔피언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IEM 월드 챔피언십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카운터 스트라이크: GO, 스타크래프트2가 정식 종목이고, IEM 엑스포에는 저희 스마일게이트사의 크로스파이어와 블리자드사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여병호 팀장은 국산 e스포츠 게임이 IEM 대회의 정식 종목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ESL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1년 만에 정식 종목이 되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며 고무된 모습이었다.

"크로스파이어가 글로벌 게임이라고 하지만, 중국에 편향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IEM 대회를 통해 서구권에 문을 두드리고, IEM 엑스포로 참여하면서 유저분들께 크로스파이어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된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전 세계를 가리지 않는 메이저 게임사로 발전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IEM 정식 종목 채택은 저희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e스포츠 리그를 게임사의 홍보수단으로 보던 그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있기에, 그가 말한 이야기는 더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 ‘크로스파이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13시간’으로 유명한 척 호건

"e스포츠가 출범하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전까지 e스포츠는 게임사의 홍보수단 중의 하나, 순수한 마케팅 측면에서 다가갔습니다. 게임의 가장 큰 요소는 경쟁이고 유저들을 위해 행사를 하려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e스포츠였습니다.

지금은 e스포츠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됐습니다. IP의 대한 중요성이 강화되면서 포켓몬스터를 하고, 워크래프트와 처럼 영화를 만들고, 경기를 보는 등 게임 하나에서 파생되는 요소들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e스포츠의 약점으로 평가되는 종목의 유한성. 게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 남는 것이지요. 단순히 매출을 늘리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여병호 팀장은 e스포츠 종목이 게임사에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e스포츠 리그가 출범하면서 선수들의 입김이 세지고 프로시장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게임사도 더는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리그를 운영할 수 없게 변화됐다고 했다.

"e스포츠 종목에 대한 저작권은 분명 게임사에 있습니다. 하지만 e스포츠를 운영할 때는 게임사가 마음대로 그 권한을 행사할 순 없게 됐습니다.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입김이 세지고 프로시장의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아직은 e스포츠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제시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기존의 프로 스포츠 시장을 대체할 잠재력은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고 규모가 커지게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이 처음 나왔을 때, 모두가 걱정했습니다. 유저는 많은 데 수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료화 모델을 개발하자마자 크게 성장했습니다. e스포츠 역시 지금은 성장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유료화 모델을 발견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5~6년 안에 그렇게 될 듯합니다."


여병호 팀장이 생각하는 e스포츠의 미래는 어떤 방향성을 지녔을까? e스포츠는 현재 두 갈래 방향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 축구, 야구, 농구와 같은 정식 스포츠 종목의 특성도 지녔고, UFC와 같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두 가지 기조 중 어떤 방향이 가장 e스포츠에 적합할까?

"아직은 두 마리 토끼입니다. 기존에는 둘 다 아니었지만, 지금은 지켜보게 됩니다. e스포츠의 발전을 보면서 엔터테인먼트적 측면이 강하고, 프로 스포츠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선수들이 중심이 되었고,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병호팀장은 국산 e스포츠 종목의 글로벌화를 이끄는 크로스파이어의 종목사로서 좋은 게임으로 국내 팬들에게 인사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언젠가 스마일게이트가 국내서 e스포츠를 진행할 때, 그동안 배운 노하우로 완성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저희 스마일게이트가 중국에서만, 혹은 아시아권에서만 잘되다 보니 독자분들께서 안타까워하는 부분도 있었고, 중국게임이라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이제 서구 시장에서 우리를 좀 더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으며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신다면 국내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