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IPL5의 뜨거운 승부들을 지켜보셨던 많은 분들은 이 선수를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승자조에서 결승까지 올라갔다가 이동녕 선수에게 패한 후, 패자조 결승을 거쳐 그랜드파이널에서의 무려 8세트 풀접전 끝에 안타깝게 패했던 승자만큼 아름다웠던 패자, '아주부 바이올렛' 김동환 선수를 말입니다.

이번 2012 블리자드 올스타컵에도 IPL5 준우승자 자격으로 초청되어 참가했기에 많은 팬 분들께서도 이미 김동환 선수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김동환 선수는 사실 '워크래프트3' 때부터 프로게이머를 시작해 많은 팬 분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선수입니다.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한 후에는 해외 무대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국내에서 자주 만나볼 수는 없지만,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전 세계 많은 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더욱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2012 전세계 프로게이머 상금랭킹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엄청난 활약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작년엔 IEM, MLG를 석권한데다 IPL5, NASL 준우승 등 굴지의 메이저 대회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인벤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만나보기 어려웠던 김동환 선수가 귀국한 틈을 타 긴밀한 만남을 추진했습니다. 그와의 특별했던 만남,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실까요!



해외를 종횡무진! 아주부의 '김보라' 김동환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김동환 선수! 인벤 독자 여러분들께 인사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주부 소속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김동환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게 처음이에요. 반갑게 맞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외국의 높은 인기에 비해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적은 편이에요. 그만큼 해외활동이 많았던 탓인데, 이유가 있다면요?

제가 처음 프로게이머를 시작하게 된 게임이 '워크래프트3'인데요, 그 당시 한국에선 이미 리그가 종료되서 외국에서부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을 바꾸게 된 후, 곰티비에서 주최하는 GSL에 나가게 됐습니다.

그 때부터 팀 숙소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숙소 생활이 저와 잘 맞지가 않더라고요. 숙소가 문제였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제가 적응을 못했던 것 같아요. 연습도 제대로 못 해서 GSL도 떨어졌고요. 무엇보다 건강을 정말 많이 해쳐서, 본가인 제주도로 내려가 요양을 해야만 했어요. 그 때 외엔 국내 활동을 해본 적이 없으니, 아쉽게도 국내 리그에서 인사드릴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아주부 스타크래프트2 팀이 창단됐는데, 국내 활동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전 해외 활동을 위주로 해외에서 아주부를 널리 알리는 역할이에요. 아주부 SC2 팀은 한국 대회에 중점적으로 출전할 예정이라, 같은 팀이지만 저는 다소 방향이 다릅니다. 같이 생활하거나 그렇진 않을 거에요. 하지만 물론 같은 팀이기에 너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같이 출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주부 SC2 팀이 창단되서 너무 기쁩니다.


그렇다면 근시일 내에 한국에서 김동환 선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좀 힘들겠네요.

이제는 해외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져서요. 분위기라든지, 연습 환경이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이 환경에 익숙해진 지금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에만 전념할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분간은 이 곳에서의 활동에 전념하려고요.



'워크래프트3'에서 '스타크래프트2' 선수가 되기까지



오크에서 저그에 이르기까지! 뭔가 '남자'의 종족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요. 종족 선택에 이유가 있다면요?


사실 저그를 처음 선택했을 때로 돌아간다면 테란이나 프로토스를 했을 것 같아요(웃음). 왜 저그를 했는 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느 순간 드론을 뽑고 있더라고요! 이미 정신을 차리니 천 판을 넘게 게임을 했고요! GSL 예선도 코 앞이었고, 그렇게 하나 하나 대회를 치러나가다보니 전 저그 유저가 되어 있었네요(웃음).

뭐, 첨언하자면 그 당시 저그가 너무 안 좋았던 시기였어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붙잡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더라고요. 이 종족으로 빛을 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에요. 지금은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밸런스 패치 이후 더욱 손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워크래프트3'의 오크는 그냥 말이 필요없어요. 남자라면 오크! 스토리 때문에 택하게 됐지요. 오크는 정말 스토리가 멋져요. 남자의 종족이죠(웃음).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라고 믿어요.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에서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하시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제가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로 처음 시작을 했을 땐 이미 국내 리그는 사양길이었어요. 방송도 잘 하지 않는데다, 활성화된 리그는 해외 리그밖에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 상황에서 '게임을 계속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저를 괴롭혔고, 결국 WCG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리그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마침 때맞춰 스타크래프트2가 출시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어요. '스타크래프트1'이 한국에서 워낙 인기 있었던 게임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웠어요. 그 때가 시작이었죠. 그렇게 계속 즐기다보니, '워크래프트3'와는 또 다른 프로게이머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워크래프트3' 프로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좀 소개해주세요.

세 가지 있어요. 첫 번째로 기뻤던 순간은 온라인 세계대회에서 참가했을 때에 겪었던 일이에요.

아마추어 시절이었는데, 중국에서 랭킹 1, 2위인 'SKY'선수와 'FLY'선수를 이겼어요. 그래서 그 때, 부끄럽지만 대회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게 됐고 눈여겨봐주셨던 SK게이밍 측에 입단하게 됐죠. SK게이밍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그 당시 SK게이밍은 '신준' 박준 선수 등 엄청난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던 드림팀이었거든요. 그 선수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브콜을 받았을 때가 가장 기뻤어요.

두 번째는 WCS에 출전하기 위해 처음으로 해외를 가게 됐을 때에요. SK게이밍이 결승에 진출하면서, 소속 선수인 저도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었죠. 당시 중국은 '워크래프트3' 시장이 정말 컸거든요. 처음 가본 해외라 정말 설렜어요. 다른 나라의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요. 사실 저는 고향이 제주도라, 서울에 오는 것만으로도 해외 여행 오는 기분이긴 하지만요(웃음).

마지막 세 번째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기억나는' 일이에요. '워크래프트3' 덕택에 목숨을 건졌다고나 할까요. 워크래프트3은 세계 대회가 많아서, 늦은 밤이나 새벽에 경기가 진행되곤 했어요. 그래서 그 날도 평소처럼 새벽 3시 쯤에 '워크래프트3' 온라인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죠.

아버지께선 약주를 한 잔 하시고 나서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셨던 상황이었고, 저는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됐기에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갔죠. 그런데 집이 반 쯤 불타고 있는 거에요. 화재 때문에 정전이 됐던 거였죠. 그래서 급히 주무시던 아버지를 업고 밖으로 나와 119에 신고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워크래프트3이 제 목숨을 살렸던 사건입니다(웃음).


[ ▲ 지난 7월 발표됐던 갑작스런 아주부의 스폰 소식 ]

지금까지 꽤 많은 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다 해외 팀(워크래프트3 : SK게이밍, 스타크래프트2 : MvP- 엠파이어-아주부)이네요. 이유가 있다면요?

저는 그냥 해외 체질인 것 같아요. 환경 문제 이전에 대회 스타일이나, 연습 방법 등이 잘 맞지 않았어요. GSL에 참가했었을 때도 그랬어요. 오랜 시간 머물면서 준비도 해야되고, 체류하려면 숙소 문제도 있고요. 수 개월동안 대회가 진행되는데 호흡이 너무 길어서 지쳐요. 많은 외국 선수들도 그런 점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해야 하나, 접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차에 해외 팀에 갈 기회가 생겼던 거죠. 타이밍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해외 대회를 경험하고 나서, 이게 나한테 훨씬 더 적합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해외 대회는 대략 3일 정도밖에 안 걸려요. 단기간에 끝나서, 오랜 시간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편한 마음으로 일반적인 연습을 할 수 있어요.

제 연습 스타일이 또, 여러 선수들의 리플레이를 보면서 다각적으로 연구하는 스타일이라서 더 그랬어요. 대전 상대가 정해진 후, 장기간 한 선수의 스타일만 파악하면서 분석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지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해요. 사흘 간 수많은 선수들과 대결하는 게 좋아요. 오히려 해외 스타일에 적응 못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저는 이게 더 편하고 잘 맞아요.


사실 많은 팬 분들께서 엠파이어 입단 계기를 궁금해 하셨어요. 당시 엠파이어는 무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소 인지도가 약한 팀이었잖아요.

음, 이 얘기는 '워크래프트3' 때 입단했던 팀을 비유하면 이해가 빨리 되실 것 같아요. SK게이밍에서 나온 후 '시리온스 게이밍'이라는 팀을 갔었는데, 당시 '워크래프트3' 팀 중에는 인지도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어요. 그 팀 입단 후에, 저와 팀원들이 함께 성적을 내면서 '워크래프트3' 팀 중에는 거의 최상위 급으로 인지도를 쌓았었죠.

엠파이어에 입단할 때도 그런 기억이 났어요. 인지도도 별로 없고요. 사실 엠파이어 말고도, 제게 입단을 권유한 다른 팀들이 있었어요. 그 쪽 딜이 훨씬 좋았지만, 환경 자체가 엠파이어 쪽이 더 마음에 들어서 입단하게 됐습니다. 뭔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가는 게 전 마음에 들어요. 보람도 있고요.


아주부 입단 소식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셨잖아요. 어떤 인연으로 입단하게 되셨나요?

엠파이어를 나온 후, 매니저와 많이 이야기를 했어요.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한 후 첫 해외 팀이었기에, 팀리그도 많이 출전해야했고 제약이 좀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매니저가 팀 말고 개인 스폰서를 구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를 해 왔어요. 매니저 형 말론 몇 곳에서 개인 스폰 제의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한 해외 메이저 언론에 MLG 우승 후 인터뷰가 나갔었는데, 그게 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좀 영향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요.

그 중 한 곳과 접촉을 했었는데, 제가 3개월 동안 뛰는 것을 본 후에 결과에 따라 스폰 금액을 정하겠다고 말하는 거에요. 이를테면 무보수로 인턴 기간을 두겠다는 거였죠. 정말 말도 안 되는 조건이잖아요. 금액 이전에, 프로로서의 제 가치를 무시하는 거죠. 그래서 거절을 했었어요.

그 후 매니저 형이 연락해 아주부 측과 만났어요. 아주부 팀의 매니저 님과는 MLG에서 인사를 나눴던 적이 있었거든요. 감사하게도 제게 관심을 많이 보여주시더라고요. 팀 색깔과 제가 잘 맞기도 했고, 마음도 잘 통했고요. 그래서 입단하게 됐어요. 원래 아주부 팀에서는 스타크래프트 쪽으로는 팀을 만들 생각이 없었대요. 잘 풀려서 다행이었어요. 그렇게 아주부 바이올렛,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겁니다(웃음).



가장 특별한 순간들,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의 소회들

[ ▲ '우승의 순간은 정말 감격적이에요' MLG 아레나 우승 때의 김동환 선수 ]

해외대회를 나갔을 때 겪었던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면요?

음, 프로게이머에게 특별한 스토리란 사실 우승했을 때의 기억들이 아닐까요. 가장 보람찬 일을 꼽으라고 해도 그럴 거에요. 어느 직업이든 정상에 오르기가 쉽지 않잖아요. 제일 처음 우승했던 IEM(인텔 익스트림 마스터즈)이랑, MLG(메이저리그 게이밍) 스프링 아레나, IPL5 준우승까지 뭐 하나 버릴 게 없네요.

브라질에서 첫 우승을 했을 때, 그 때가 사실 좀 특별하긴 해요.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기도 했고요. 당시 경찰들이 파업을 했었어요. 국제 뉴스에도 엄청 나왔던 걸로 아는데, 제가 그 때 바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경기를 했었죠(웃음). 정말 덥고, 사람들도 굉장히 경계심이 많고, 무법지대라고 해도 될 만큼 뭔가 무서웠어요.

사실 그래서 경기 시작 전엔 브라질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았어요. 얼른 경기 끝내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임하는데, 이상하게 대회가 잘 풀리는 거에요. 그런데 그 때,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브라질 관객들이 제게 엄청난 응원을 보내줬어요. 힘이 정말 많이 났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그런 환호였거든요. 그렇게 우승까지 하게 되니, 브라질 팬들이 너무 열정적으로 환호해주고 기뻐해주더라고요. 지금도 그래서 브라질 하면 너무 이미지가 좋아요.

그거 말고는, 제가 처음으로 해외 대회 참가를 위해 갔던 도시가 기억에 많이 남네요. 애틀랜틱시티라는 곳이었는데, 그곳은 도박으로 유명한(웃음) 화려한 도시에요. 도박의 도시를 꼽을 때 라스베가스가 첫 번째로 손꼽힌다면, 애틀랜틱시티는 그 다음일 정도로요. 제 첫 해외대회는 그렇게 화려한 곳에서 치러졌죠. 영화에서 나오는 곳 같았어요. 대회장 밖은 해변이 펼쳐져있고 막…. 솔직히 대회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그런 곳에 가본 것만 해도 만족이에요(웃음).


우승했을 때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IEM에서 첫 우승을 했었죠?

당시 김영진 선수가 박수호 선수를 GSL에서 2:0으로 이기고, 바로 경기를 하러 왔었어요. 그래서 엄청 걱정이 됐었어요. 최고의 저그를 꺾고 왔으니까요. 정말 많이 긴장을 하면서 경기에 임했는데, 다행히 첫 세트 빌드가 엄청 잘 풀렸어요. 잠복 맹독충(버로우 베인링) 전략을 그 때 처음 사용해봤는데, 그게 대박이 났었죠.

첫 판을 그렇게 이기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어요. 그 다음 세트부터는 제가 생각했던 빌드를 하나하나 차분히 풀어갔더니 딱딱 맞아떨어지는거에요. 첫 세트를 이겨서 부담감도 없고, 빌드도 맞아떨어지는데다, 플레이에 자신감이 붙기까지 했으니 우승을 위한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셈이었죠.

IEM 시즌 6 글로벌챌린지 상파울루, 우승자 김동환! 하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브라질 팬 분들의 열정적인 환호가 아직까지 기억이 나요. 그 일 때문에 더 우승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더 많은 곳에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이런 환호를 또 다시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우승이 제게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더욱 힘내서 열심히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줬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MLG 스프링 아레나 우승 때는 어땠어요?

MLG는 사실 우승할 거라고 생각을 전혀 못했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잘 한다는 선수들만 모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다음 대회 시드만 받자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생각이 부담감을 줄여주고, 경기가 잘 풀리게 도와줬던 것 같아요.

맨 처음에 '알리시아' 양준식 선수를 이겼을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 다음이 '폴트' 최성훈 선수였는데, 이 선수가 당시 최전성기였던 '심볼' 강동현 선수를 이기고 올라왔어요. 이 선수가 박수호 선수도 이겼기에 바짝 긴장했죠. 그런데 MLG 오기 전에, 최성훈 선수의 VOD를 모조리 보고 스타일을 분석해서 빌드를 짜왔었어요. 그렇게 경기를 풀어나갔는데 너무 잘 들어맞는 거에요.

그렇게 플레이하다보니 브라질 때 생각이 났어요. 최고의 저그 선수 두 명을 잡고 올라온 최성훈 선수를 이겼을 때, 그 때 정말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아요. 그 다음 선수가 누가 됐든 간에, 내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하면 이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고요.

사실 우승한 뒤에 실감이 하나도 안 났어요. MLG는 관중이 별로 없거든요. 상대의 GG를 받고 경기를 마치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막 분주한 거에요. 그래서 '다음 경기가 또 있나?' 싶어서 어리둥절했었던 기억이 나요. 우승하고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바로 그 때 실감이 났어요. 긴장했고, 땀이 많이 나서 바보같이 말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요. 미국에 살면서 미국 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행복했어요.


[ ▲ 눈 앞에서 놓쳤던 아쉬운 IPL5 우승컵 ]


이건 안 물어볼 수가 없죠. 가장 최근 IPL5에서 준우승했을 때는 정말 아쉬웠을 것 같은데요.

IPL5는 준우승하고 난 뒤에도 제게 자신감을 많이 심어줬던 리그에요. 미국에서 계속 살아가면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심어줬던 리그. 2위한 후 한국에 왔을 때, 더욱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사실 그 동안은 한국 팬 분들이 그리 많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뿌듯했어요. 블리자드 컵 초청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잖아요. 그래서 정말 오랫만에 국내 팬 분들을 만나뵙고 경기로 인사드릴 수도 있었고 말이에요.

사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인데, 그래도 제게 정말 큰 자신감을 줬어요. 미국에서 살아가는 제게, 미국 대회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거든요. MLG때도 그랬지만, IPL 때는 더 했어요. 미국에서 가장 메이저 급인 양대 리그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는 데에도 기뻤고요. 내년을 더 기약하고 기대하게 해줬던 대회에요.


가장 최근엔 한국에서 블리자드 컵에 참가하셨는데요.

아, 블리자드 컵. 솔직히 기대 굉장히 많이 했었는데, (원)이삭이랑 경기할 때 실수를 많이 해서 져서 아쉬워요. 기량을 좀 더 발휘했으면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었는데. 긴장을 많이 해서 실수를 했던 점들이 막 생각나고 아쉬워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였지만, 얻은 것도 많았어요. 한국에 있을 때 성적이 좋지 않았어서, 기회가 되면 또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네요. 한국 무대에 나서면 오히려 더 긴장하는 것 같아요.



해외 진출 1세대 프로게이머, 해외 생활을 말하다


2012년 전 세계 프로게이머 상금 랭킹 20위 권 안에 이름을 올리셨는데요. 이런 꾸준함의 비결이 있다면요?

어, 저 지금 그 사실 처음 알았어요(웃음). 몰랐어요.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음, 은근히 기쁜 성적이네요. 저는 포기를 안 하는 게 장점이에요. 게임하는 게 정말 즐겁기도 하고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이 성격 덕을 참 많이 봐요.

게임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이것 저것 준비하고, 다른 선수와 맞닥뜨려 자웅을 겨루는 모든 과정이 즐거워요. 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게임을 좋아하니까, 오랫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해 나갈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은 대회에 나가다보니,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솔직히 한국에 있었으면 포기했을 것 같기도 해요. 힘든 과정이 분명 있으니까요. 이런 힘든 과정들을 못 이겨내고, 포기하고 본가인 제주도로 갔을 것 같아요. 전 미국에 편도로 왔어요. 힘들어도 집에 갈 수 없도록 배수진을 쳤죠. 처음 한 달은 정말 힘들었죠. 모든 걸 다 때려치고 집에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이 악물고 하다보니 어느 순간 익숙해졌고, 미국 생활도 편안해졌어요. 그 때 다시 직업을 진심으로 즐기게 됐던 것 같아요.


음, 말만 들어도 현지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외로운 게 가장 커요. 정말 커요. 음식이 안 맞는다거나 하면 한국 음식을 구해서 먹으면 돼요. 한 시간 거리라도 달려가서, 한국인 마트에서 많이 사다 먹으면 되거든요. 심심하면 대학로에 나가 분수같은 데 앉아 사람 구경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요.

하지만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이겨내고, '혼자' 열심히 해야 하는 게요. 진짜 힘들 때도 시차가 있으니, 전화해서 터놓고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 점들이 가장 힘들어요. 사실 외국 생활에서의 힘든 점이 외로움 하나 밖에 없는데, 그 한 가지가 전부를 차지할 만큼 너무 커요.


그 부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계기가 있었나요?

팬들이에요. 팬 분들께서 항상 응원해주시는 게 너무 도움이 됩니다. 제가 잘 하든, 못 하든 항상 응원해주세요.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분들이에요. 특별한 한 분이나, 여자친구가 있다거나 그랬던 건 아니에요. 팬 분들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만약 팬 분들마저 없었다면 정말 너무 힘들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해외 팬 분이 있다면?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는 있네요. 대회가 끝난 후 머리를 자르고 햄버거 가게에 갔는데, '바이올렛이다'라면서 알아보고 사인 요청을 하는 거에요. 그 때 대회와 모습이 달랐는데도 절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제가 관심병이 좀 있는 걸까요(웃음). 팬 분들께서 절 알아볼 때 진짜 기분이 너무 좋아요. 한국에서는 저를 거의 모르잖아요. 외국에서는 공항에서라든지, 햄버거 가게라든지 어디서든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에요.

뭐랄까, 그리고 딱히 기억나는 팬이라고 한 명을 짚긴 어려워요. 전체적으로 좋게 봐 주시는 점이 너무 좋아요. 근데 남자 팬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웃음). 스트리밍을 하면 사람들이 보잖아요. 그런데 게임 이야기는 안 해주고, 잘생겼다라든가, '셔츠나 벗어라'라고 농담을 하기도 해요(웃음). 그게 너무 웃기고 재밌어요.

아, 기억에 남는 선물은 있네요. 독일의 한 팬 분께서 생일이라고 팔찌를 보내주셨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제 생일을 축하해주니 굉장히 기분이 오묘했어요.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좋고, 더 열심히 하고 싶고. 그 때 정말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트위터로 감사하다고 메시지도 보냈어요. 항상 트위터로 응원해주시는 팬 분들도 너무 좋아요. 기쁘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


해외 진출을 꿈꾸는 게이머들에게, 먼저 진출한 입장으로 조언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처음에 오면 아마 신나서 막 대회를 나가실 거에요. 해외 대회는 국내 대회만큼 방식이 어렵지도 않고 해서, 쉽게 생각하고 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건 굉장히 착각이에요. 사는 것, 먹는 것 등 생활 방식 자체가 한국과 180도 다르기에 적응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그런 부분들을 감안한다면 해외 대회의 장애물은 대회 방식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 먼저일 겁니다.

그리고 정말 겪어봐서 이야기하는 건데, 외로움을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 거에요. 그런 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게임에 집중을 못할 뿐 더러, 집중력있게 플레이하고 싶어도 원하는 만큼 경기력이 나오지 않을 거에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진출하는 것 자체는 외국 문화도 받아들이고, 여러 나라의 사람을 만나 경험도 쌓고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감만 있으시다면 도전해 볼 만 해요. 저는 제게 해외 진출을 상담하는 사람들에겐 웬만하면 추천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미 제 아는 동생 두 명이 왔다가, 잘 안 돼서 돌아갔어요. 추천은 하지만, 걱정도 많이 되네요. 해외 생활이란게 정말 쉽지 않아요. 정말 잘 생각해보시고 결정하셔야 할 겁니다.


근시일 내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블리자드 컵 귀국 이후 한국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간 영어 공부를 잘 안 했어요. 게임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와서, 문법 책도 사가지고 미국으로 들어가려고 해요. 그 외엔 자기계발에 치중할 계획이고요. 손가락이 계속 움직이는 한은(웃음) 게이머를 계속 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릴게요!

저번 블리자드컵 때도 인사드렸지만, 한국에서는 저를 모르는 팬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해외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만, 해외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한국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면서 많이 만날 기회를 도모하고 있으니까요,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인터뷰를 보시고 나서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트위터 등으로 질문해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그러니 프로게이머 지망생 분들이나, 해외 진출을 생각하시는 게이머 분들의 질문도 환영합니다. 트위터 ID는 @AZUBUVIOLET 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