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새벽,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리그오브레전드 프로씬에서 '피미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선수(가족들의 요청으로 인해 실명은 기재하지 않습니다.)의 투신 소식.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컸다. 그가 투신하기 전 리그오브레전드 인벤에 남긴 폭로글 때문이었다.

e스포츠 업계에서 승부조작이란 말은 금기와도 같다. 이미 지난 2010년, 승부조작 사건들로 인해 큰 진통을 겪었던 e스포츠 업계다. 당시 관계자들과 기자들 그리고 팬들과 선수들까지 모든 이가 치를 떨었다. 아직 확실히 제도권에 들어서지 못한 e스포츠였기 때문에 당시 승부조작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마모씨'로 인해 게임 방송국 하나가 없어졌고, 스타1이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피미르 선수의 폭로글에는 승부조작에 관련된 내용이 노골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창단 당시 강력한 멤버들로 구성되었던 ahq 코리아는 허울 뿐인 팀이었으며, 오로지 사설 도박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 구성된 팀이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e스포츠 업계에 큰 상처를 남긴 승부조작의 병폐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승리의 순간과 팬들의 환호성. 그 어두운 이면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온갖 더러운 거래들이 벌어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건의 중심이 되는 팀 ahq 코리아. 현재는 공식적으로 해산된 상태다.


인벤팀은 일명 'ahq 코리아 사태'를 피미르의 글을 기반으로 재구성함과 동시에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최근 인벤팀은 한국 리그오브레전드 프로씬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기획중이었다. 그리고 조사과정 중 알아낸 ahq 코리아는 분명 문제가 있는 팀이었다.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가 생각하던 그 이상으로 부정한 일들이 ahq 사태의 뒤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ahq 사태의 시작과 끝. 그 모든 과정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다시 살펴본다. 그리고 중간중간 숨어있는 의문점들을 하나씩 알아보려 한다.


◈ ahq 코리아의 시작.


리그오브레전드 프로씬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 리그오브레전드를 주력으로 활동하는 프로게이머들이 부상했고, 각자의 커리어를 쌓았다. 물론 성공하는 프로게이머는 소수. 잊혀지는 게이머들이 더 많았지만, 많은 이들은 프로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

그 때 그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그는 ahq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프로 팀을 창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개 모집을 통해 모집한 선수들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몇몇은 프로 팀에서 활동했던 선수다. 물론 각광받던 아마추어 신예들도 함께했다. 그렇게 그들은 ahq 코리아라는 팀을 만들었고, 첫 월급과 장비를 받으며 리그오브레전드 프로씬에 뛰어들었다.

모든 선수들이 열정에 타올랐다. 이대로라면 프로 선수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존재했다. 실제로 ahq 코리아의 멤버 면면은 강력했다. 최정상급은 아니었지만, 신생 팀 치고는 굉장한 볼륨의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 ahq 코리아의 멤버들은 분명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ahq 코리아의 운영은 곧 난기류를 만났다. 감독이 말한 원인은 자금의 부족. 이 문제는 곧 표면으로 드러났다. 피미르 선수가 남긴 글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숙소 잡는 돈, 생활비, 장비, 월급은 감독이 빌려온 돈으로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하루 두 끼, 무말랭이만 먹었어요. 제대로 된 식사를 요구하자 식당에 외상을 걸고 밥을 시키더군요."

하지만 이와 별개로 N감독의 감독 자질은 훌륭한 편에 속했다고 한다. 실제 당시 선수들의 실력은 꽤 늘었고, 전술이나 오더 설명 역시 훌륭한 편이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실제로 ahq 본사의 후원이 있었다면, 선수들이 식비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의문점이 생긴다. 대만의 ahq 본사가 약속한 후원의 구체적 규모는 어떻게 되는가? 아니. ahq의 지원 자체가 사실이 맞는가?


◈ 승부조작. 그리고 그 과정.


N씨의 말은 교묘했다. 일단 그는 온게임넷을 언급했다. "온게임넷에서 말하기를 대기업 팀에게 져주지 않으면 본선 진출을 시키지 않겠다는 협박이 들어왔다. 그러니 우리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안된다." 교묘한 언변이었다. 물론 이는 사실무근이며 황당무계하기까지 한 거짓말이었다. 온게임넷은 프로게이머들에게 성공의 무대와도 같은 의미가 있었다. 이제 첫 발을 내딛는 어린 선수에게, '온게임넷'이라는 단어 자체는 거짓도 사실로 만들어내는 위력을 발휘했다.

▲ 그는 온게임넷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미르의 글에 따르면 N씨의 제의에 모든 선수가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N씨의 제의에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내 실력대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한 선수들이 있었다. 결국 N씨는 몇몇 선수들과 1:1 자리를 만들어 제의를 했다.

결국 피미르는 N씨의 이런 제의에 넘어가고 말았다. 본선 진출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실력을 보이고 싶다는 바람. 그 둘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더 높은 곳을 보고 싶었다. N씨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회 초년생에 생태를 잘 모른다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피미르는 KT 불리츠와의 경기, 그리고 CJ 프로스트와의 경기에서 일부러 패배하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의 지시였다. 물론 그가 아무 거리낌 없이 이런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승리와 패배 사이에서 갈등했고, 결국 KT 불리츠와의 첫 세트에서 지시와 다르게 승리를 거뒀다. "한타를 이기는 각이 보였습니다. N감독이 시킨 경기를 져야한다는 오더와 제 눈에 보이는 승리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참다 참다 이겨버렸습니다. 그 뒤부터는 출전 못하더라도 이겨야겠다는 생각에 한 세트를 이겼습니다."

▲선수들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 옳은 길인가...


엄청나게 고민했을 것이다. 피미르는 온게임넷이 실제로 그런 협박을 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본선 진출은 성공으로 가는 발걸음과도 같다. 경기에서 지라는 지시를 받은 상황에서도 그는 승리를 원했다. 프로 선수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열망이었다. 하지만 그는 첫 세트 이후 본선 진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N씨의 거짓말을 끝까지 믿고 있던 그는 일부러 경기에서 패배했고, 얼마 못 가 죄책감과 회의감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 N감독의 변명,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피미르 선수는 결국 이를 팀원들에게 털어놓았다. 이렇게 선수 생활을 하느니 그만 두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선수들 모두가 이를 알아버린 시점. 이에 N씨는 예정된 나진과의 경기에 돈을 걸 테니 한 건 크게 치고 빠지자며 한번 더 팀원들을 꼬드겼다. 물론 팀원들은 그리할 생각이 없었기에 이를 거절했다. 나진과의 경기가 끝나고 돌아온 선수들이 본 광경은 가관이었다. N씨는 선수들의 연습용 컴퓨터 세 대를 팔고 숙소를 정리중이었다. 왜 컴퓨터를 팔았냐는 선수들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ahq 본사에 돈을 줘야 해서 팔았다. 지금 돈이 없어서 전기, 수도, 가스 다 끊기게 생겼다."

피미르 선수는 ahq 본사의 매니저와 접촉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의문점을 하나하나 물었다. 첫 질문은 ahq의 후원 규모였다. 여기서 상기했던 의문점 하나가 해소된다. ahq 매니저의 말은 이랬다. "우리는 팀 이름, 장비, 유니폼을 후원한 것이 전부다. 자금 지원은 단 한푼도 없었으며, 한국 팀에 대한 관리자를 공식적으로 고용한 적이 없다. 대만 본사에도 한국팀을 관리하는 부서는 없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선수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후원 규모는 ahq의 자금 지원을 받고, 상금의 50%를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이 모두가 거짓이었던 것이다. ahq는 N씨가 아닌 선수 개개인에게 장비를 지원한 것이었기에, N씨에게 장비를 처분할 권리는 없었다. 이 때 피미르 선수는 사태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N씨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 N씨는 프로게임단을 키울 목적이 없었고, 애초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의 모습은 감독이었지만, 실제 의도는 달랐다.


N씨의 입장에서 이 사태를 풀어보면 이렇다. N씨는 돈을 벌 계획을 구상했다. 한창 붐이 일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 프로씬. 그곳에서의 승부조작을 통한 사설 도박이 주수익원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수들을 모집했다. 선수를 모은 그는 ahq의 장비 및 네이밍 스폰을 얻어낸 후, 선수들에게 ahq의 자금 후원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처에서 자금을 끌어와 첫 월급을 지급했다. 월급을 받은 선수들은 당연히 이 말을 믿었다.


팀이 궤도에 오르자 그는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섰다. 온게임넷의 이름을 팔아 선수들에게 승부조작을 종용했다. 어린 선수들은 오히려 돈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안 그는 본선 진출권을 미끼로 선수들을 유혹했고, 본선 진출과 승리의 갈래에서 흔들린 선수들은 끝내 승부조작에 동참하고 말았다.


그의 거짓말은 끊이지 않았다. 대만 본사에 자금을 송금하려면 세관에 걸리게 되어 월급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 애초에 사실이 될 수가 없었다. 1만 달러 이상의 자금은 세관에 걸린다는 말 부터가 말이 안되는 것이고, 애초에 ahq 본사는 자금 후원을 약속한 적도 없었다.


승부조작을 통해 돈을 벌려던 N씨는 선수들이 더 이상 자신과 공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자 발을 뺐다. 당시 선수들에게는 상금의 50%를 떼기로 한 것을 무효화한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이 역시 어이없는 발언이다. 애초에 ahq는 자금 후원을 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상금에 대한 권리 역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외에도 N씨가 한 수 많은 거짓말은 피미르 선수의 폭로글에 실려 있었고, 관계자들의 말에 의해 증명되었다.



◈ 밝혀지지 않은 의문. 그리고 더 나아가 생각해야 할 점.


한국e스포츠협회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전격적인 진상 규명에 나섰다. 클린 e스포츠를 주창한 전병헌 회장의 의지를 생각한다면, 결코 쉽게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다. 더불어 e스포츠의 성지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은 국가의 이미지도 실추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사태가 마감되는 것을 보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은 남아있다.

첫 번째, '왜 선수들은 빠르게 이러한 사태를 고발하지 않는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선수들 중 이런 제의를 받은 이들은 더 있다고 한다. 물론, 절대 다수의 선수들은 이런 일에 동조하지 않는다. 많은 프로게이머는 본인이 프로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 승리를 통해 얻는 명예를 중시하는 경향 역시 강하다. 그런 그들이 이런 제의를 쉽게 폭로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어떤 보이지 않는 외압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다른 이유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어 쉽게 이야기를 꺼낼수 없다는 점. 이는 납득할 만한 이유다.

두 번째, 'N씨에게 자금을 지원해 준 이들은 아무 연관이 없는 이들인가?'

피미르 선수의 폭로글을 읽어 보면 N씨는 지인들의 자금으로 초기 자금을 해결했다고 나와 있다. 과연 이들이 N씨의 어떤 면을 보고 자금을 선뜻 내주었을까? 어쩌면 밝음 이면에 만연히 퍼져 있는 사설 도박과 불법 베팅의 암류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N씨는 그들의 지시를 수행했을 뿐, 실제로는 더 거대한 조직 혹은 그룹이 뒤에 자리할 지도 모른다.

실제 몇몇 관계자들과 나눈 대화에 따르면, N씨는 자금을 지원해주는 사람을 ahq의 매니저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하지만 ahq 본사는 공식적으로 한국인을 고용한 적이 공식적으로 없다고 밝혔다. 이 거짓 행위에 동조했다는 점에서 이 인물의 정체 역시 의심되는 부분이다.

▲ 어쩌면 생각 이상의 어두운 면이 버젓이 존재할 수도 있다.


세 번째, N씨는 사건 종료 후, 체불된 월급을 지급했다.

N씨는 팀이 해산된 후 몇몇 선수들에게 밀린 월급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월급을 받은 선수들조차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상황. N씨는 대단히 입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됨됨이를 속단할 수는 없다. 그의 체불된 임금 지급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더,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아직 어떤 사항도 실제로 밝혀진 바는 없다는 점이다. 많은 증인이 있고, 점점 말이 맞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당사자가 시인한 사실은 없다. 언제나 제 3의 경우를 생각해 두어야 하는 것. 잘잘못은 따지되, 무고하게 휘말리는 희생자들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승부조작' 자체에 피미르가 동참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같은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승부조작에 동참하지 않은 선수도 있었다. 이들처럼 본인의 의지로 승부조작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피미르도 일방적인 피해자가 될 수는 없다. '인간' 피미르의 사연은 안타깝지만, '프로게이머' 피미르에 대한 접근은 이성적이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 많은 일이 의문에 싸여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번 사태에 대해 대대적으로 해결 의지를 내세웠지만, 앞으로 더 건강한 e스포츠 업계를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이 사건의 전말은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제 바통은 검찰로 넘어갔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14일, 검찰 측에 N씨를 형사 고발했다. 이미 한 차례 e스포츠 업계의 승부조작을 수사했던 검찰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현직 정치인인 전병헌 한국e스포츠협회장이 굳은 의지를 내세운 상황이다.

※ 해당 기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피미르 선수의 폭로와 인벤의 취재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