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의 정도(正道)를 걷던 기자가 뜬금없이 학교를 땡땡이치고 PC방으로 등교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2의 흔하디흔한 반항도 아니고 그저 게임을 하고 싶어 학교 수업 따위 사뿐히 즈려밟았었다. 물론 학생부 선생님이 분에 넘치는 사랑을 하사하시어 내 다리 몽둥이를 즈려밟아서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당시 다리 몽둥이와 등가 교환한 것이 '어둠의전설'이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라는 걸출한 게임의 틈바구니에서 개성을 표출해 자신만의 게임성을 어필했던것으로 기억한다. 더불어 집에서 플레이할 때 모뎀 특유의 접속소리도. 키잉 지이이익 캬아아악~

▲ 권순성 네오위즈 게임즈 제작 센터장


NDC2014에서 들을 수 있었던 권순성 네오위즈 게임즈 제작 센터장의 강연은 그 시절을 생각나게끔 했다. 그는 넥슨의 두 번째 MMORPG인 '어둠의전설'의 게임 마스터였다. 그가 '어둠의전설'과 연을 맺은 것은 1998년 1월 6일. 이미 1998년 1월 3일에 상용화가 돼 있던 상황이었다.

권순성 센터장은 이미 상용화가 되어있던 '어둠의 전설'을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는 '어둠의 전설'로 환골탈태시켜 기자의 등교를 막았는지에 대해 추억을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 이미 상용화된 게임에 투입되어 차별화를 꾀하다

권순성 센터장은 '어둠의전설'의 게임 마스터로 일하며 겪는 고충을 논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게임마스터는 기획, 운영, 테스트, 고객지원을 도맡아 처리하는 일종의 노예였다고 회고했다. "모든 것을 다했지. 그땐 그랬다."라는 말에 아스라이 묻어나는 추억이 느껴졌다.

'어둠의전설'이 상용화되던 98년은 국가적 재난인 IMF를 겪으며 창업붐이 일어날 때였다.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 열풍이 불던 때였으며, 그가 이미 상용화된 '어둠의 전설'팀에 투입될 때였다.

당시 어둠의 전설의 동접자수는 6명이었던 시기로 권순성 센터장은 게임을 살리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둠의 전설은 바람의 나라와 같은 서버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바람의 나라와 비슷한 구조를 취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고 그는 이점에 기안, 바람의 나라와 차별성을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공동 기획으로 진행된 어둠의 전설을 새롭게 기획하기 위해서 그는 기획에 관련한 모든 자료를 집대성하고 발전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내린 첫 번째 결단은 바람의 나라 유저들이 바람의 나라 이후에 할만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둠의 전설을 중급자용으로 디자인하기로 했다.


▲ 당시 게임마스터의 역할

▲ 당시 서비스되던 추억의 게임들




■ 파티플레이를 유도한 신의 한수 '코마'

그 후 차별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우선 겉모습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같은 2D도트 그래픽이지만 시점을 45도 비틀어 바람의 나라와는 다른 시점을 제공했다. 그는 그 당시를 떠올리는듯하다 이내 "그런데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둠의 전설은 바람의 나라와 차별을 꾀하기 위해 파티 플레이에 중점을 뒀다. 클래스를 차별화해 혼자서는 콘텐츠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있게끔 레벨을 디자인했고 마법과 기술을 상호 보완적으로 배치해 파티 플레이를 하게끔 유도했다.

여기까지 설명하고 한참 뜸을 들이던 권순성 센터장은 "여기서 저의 신의 한 수가 나옵니다. 바로 코마라는 건데요."라고 말하며 부끄러워했다. 당시 캐릭터의 죽음은 상당한 페널티가 부과되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죽음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던 시절이었다.

어둠의 전설은 캐릭터가 죽으면 바로 사망처리를 하지 않고 '코마'라는 유예기간을 두어 동료라던가, 지나가는 사람이 캐릭터를 살려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죽음에 거부감을 느끼던 유저들이 서로 어울려 파티플레이를 유도하는 데 일조 했다.





이 밖에도 속성개념을 전투에 도입해 상대방과 자신의 속성에 따라 데미지를 다르게 했다. 아이템의 경우 목걸이와 벨트를 이용해 공격 및 방어 속성을 결정하고 마법도 속성별로 준비해 전략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또한, 익숙한 수평 구조가 아닌 수직 구조의 던전 디자인을 구현해 차별화를 꾀했다.

권순성 센터장은 차별화 전략이 유저들에게 호평을 받아 11개월 만에 평균 동접자가 6명이었던 게임을 330명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서비스 15개월 후에는 평균 동접자가 1,000명을 돌파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둠의 전설을 함께 만들었던 인원을 소개하며 추억에 젖었다.


▲익숙한 이름이 곳곳에...

▲ 어둠의 전설 초기 모습

▲ 6명...

▲ 변화한 어둠의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