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트랜드를 이끌어갈 게임들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E3는 이미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작년이 특히 절정이었어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는 각자 차세대 성장동력을 꺼내 놓음으로써, 종결을 모르는 플랫폼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렸습니다.

2014년 E3 출품작들은 각자의 특기로 무장한 채 차세대 플랫폼을 저격하고 있었습니다. 양 쪽 눈썹을 한껏 올리게 만드는 그래픽,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연출은 기본. 십수 년 담근 할매집 장맛처럼 이제는 연륜마저 묻어나는 개발력을 토대로 한 걸출한 작품들이 말 그대로 쏟아졌습니다.

예약된 대작들이 이렇게 많은데 준비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벤팀 전원에게 각자의 소감을 물었습니다. 섹시한 품질로 새벽 근무의 피로함도 잊게 만든 출품작들에 대한 경의입니다.






■ 위쳐3: 와일드 헌트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전체적인 평가를 끌어올린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마리오급 인지도라면 모를까. 뭣도 아니라면 영혼까지 끌어모은 바스트모핑 캐릭터 정돈 나와야지. 눈이라도 가려면.

위쳐는 이걸 해냈다. 흰머리 마초남에 끌린다고 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지는 말자. 충분히 납득 가능한 섹시함이다. 위쳐는 시리즈를 거칠수록 굵고 단단해진다. 아, 게임성 말하는 거다.



'CD 프로젝트 RED'는 부지런하다. 핀란드 소재의 이 게임사는, 자신들이 만든 게임 홍보를 위해 발품 파는걸 서슴치 않았다. 지나가는 유저 하나 둘 잡아가며 설명하는 그들의 모습은 E3에 참석한 중소기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3년 전 E3 현장에서는 그랬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다는 건 아니다. '위쳐2'가 엄청난 반응을 불러모은 후 홍보 전단지를 들고다니는 직원들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대신 'GOG'를 설립했다. 고전게임 및 인디게임 판매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단순 게임사에서 퍼블리셔로의 영업 확장이 아닌, 하나의 게임 유통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게임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리고 확실한 비전이 없다면 차마 시도하기 어려운 일인데.

여러 분야에 손을 대면서 본업인 게임 개발에 조금은 소홀할 수도 있었겠지만, '위쳐3'를 보니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 듯 하다. '위쳐2'는 훌륭한 게임이었지만, 완벽하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는 '위쳐2'가 탄탄한 기본기를 지닌 만큼, 군데군데 묻은 아쉬움을 지워낸 속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쳐3'는 딱 그만큼의 발전을 보여줬다. 괜한 혁신보다는 안정적인 진화가 시급했던 '위쳐' 시리즈를 매듭짓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직관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전투 시스템, 안구가 정화되는 그래픽이 뒤를 받친다.

다만, 변화의 선봉이라 할 수 있는 오픈월드 시스템 적용이 조금 걱정이다. 오픈월드는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다. 락스타도 GTA1, 2편으로 간을 본 뒤 3편 들어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역시 2편 들어서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 게임 개발에 잔뼈 굵은 공룡급 기업들도 함부로 도전하기 어려운 장르가 오픈월드라는 의미다.

물론, CD프로젝트가 수준급의 개발력을 지닌 게임사라는 것은 기자도 안다. '위쳐3'는 오픈월드이면서 동시에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세계 전체가 바뀌는 구조를 지녔다. 장인정신 없이는 두 시스템의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어쩌면 이것은 진화 속에 감춰진 혁신일 수도 있다. 제대로만 완성된다면, 구매해도 절대 아깝지 않은 작품일 게 틀림없다. (박태학 기자)

"위쳐3 어땠냐고요? 상상했던 그 전투가 그대로 펼쳐집니다"






■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
'암살단'이란 단어는 코어 게이머들 사이에 고유 명사로 자리잡았고, 흰색 후드티와 히든 블레이드는 그들의 상징이 되었다. 솔직히 조금은 걱정되는 속편. 하지만 내용은 꽉 차있다.

미뤄 두었던 역사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다. 한동안 숲속과 바다를 누비던 플레이어는 다시 도시남자로 거듭날 수 있다. 이제 때가 되었다. 민중의 가슴에 불을 당겨 프랑스 대혁명을 일궈낼 때가.



1편은 사실 크게 재밌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암살, 도주, 은신'으로 이어지는 무한 루프. 게다가 물에 빠지는 순간 사망하는 맥주병 알테어. 그냥 그런 게임이었던 '어쌔신 크리드'의 첫 작품은 빠르게 잊혀졌다. 그러나 2편부터 유비소프트의 포텐셜은 폭발했다.

산중노인 '알 무알림'의 마약 중독자 집단인 '어쌔신'은 인류의 자유의지를 위해 투쟁하는 지구방위대로 거듭났고, 시리즈 최고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에치오 아우디토레'는 수염과 털이 가득한 라틴족 남자에 불과했음에도 강력한 섹시 심볼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를 지나 콘스탄티노플(현재는 이스탄불)까지 넘나드는 그의 여정이 끝난 후 3편부터 새로이 시작된 이야기는 뜬금없이 등장한 인디언 소년 '코너 켄웨이'의 이야기. 그리고 이어 출시된 4편에서는 '해적'이라는, 암살단하고는 엄청난 거리가 있어 보이는 소재를 메인 스트림으로 삼았다. 유저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 스토리 라인은 꾸준히 이어지기에 나름 선방은 했지만, 중세 도시를 누비며 암살단을 이끄는 2편에서 너무나도 멀리 가버린 소재들 때문에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앞날이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E3에서 공개된 속편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는 이런 걱정을 말끔히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왕정에 대항하는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18세기 말의 프랑스 파리. 플레이어는 새로운 암살자인 '아르노 도리안'으로 화해 기름 잔뜩 끼얹어진 시민들의 마음에 불을 놓아야 한다.

더불어 '존재했지만 인상은 없었던' 멀티플레이에서 벗어나 한 층 강력해진 4인 코옵 모드까지 지원하는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 2편의 아성을 넘어 또 한번 게이머들 사이에 암살단의 신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정재훈 기자)

프랑스 혁명을 완수하라! '어쌔신크리드: 유니티' 플레이 영상






■ 데스티니
'전작만한 후속작 없다'는 말이 있다. 비단 시리즈물 뿐만 아니라, 명작을 만들어낸 제작사들의 명성을 잊게 만드는 신작들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씨프'가 그랬고 '타이탄폴'이 그랬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다름이 아니라, '헤일로' 시리즈의 아버지이자 '데스티니'를 만들고 있는, '번지'의 이야기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그 위세가 약하지만, 각종 문화 컨텐츠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헤일로'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21세기 최고의 SF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번지'는 최고의 게임제작사 중 하나로 우뚝 섰으며, 다양한 컨텐츠로 재생산될 만큼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번지'는 이제 새로운 SF FPS, '데스티니'를 들고왔다. 이번엔 MMO로. 다만 걱정거리가 많다. 그동안 콘솔시장에서 성공한 MMO 게임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 첫번째 불안요소다. 더군다나 '데스티니'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특 AAA급 게임이다. 그간 성공적인 콘솔 MMO로 평가받은 '파이널판타지11'이나 '판타지스타 온라인2' 정도의 성공으로는 성에 차지도 않을 터.

하지만 이러한 리스크를 떠나, 게임의 공개된 면면을 보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콘솔 환경에 맞춰, 기술이나 무기의 가짓수를 무작정 늘리기보다, 휴대 가능한 두개의 무기와 특수무기, 그리고 특수 스킬로 한정하되, 특색을 강화하고 질적인 향상에 투자했다. 또한 전직 등 성장요소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도 매우 세밀하다. 멀티플레이어간 상호작용 역시 대폭 강화되었다.

외계의 적 '다크니스'의 위협에서 한차례 멸망의 위기를 이겨낸 인류와 자신들을 희생해 인류를 구한 외계문명 '트레블러', 테라포밍된 달, 화성, 금성을 차지하고 인류를 위협하는 외계인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스페이스 판타지의 절묘한 조화는 그 설정 만으로 가슴 설레게 한다. 플레이어는 지구를 포함한 4행성의 오픈월드를 탐험하거나, 수색, 적 공격, 방어 등 다양한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콘솔 전용의 MMOFPS 라는 점에서 명확한 경쟁자는 없는 상태. 하지만 비슷한 컨셉의 '더 디비전'이 있고, 이미 PC진영에 포진한 MMO/MO FPS 들과 경쟁해야 한다. 항시 유료로 바뀐 PSN과 XBOX Live의 변화도 변수. 막대한 제작비를 고려해 보았을 때 아직 콘솔FPS의 불모지인 아시아 시장에 대한 공략 역시 필요하다. 어쨌거나, '데스티니'는 현세대에서 가장 방대한 MMOFPS가 될 것이고, 그 세계를 탐험하는 일을 주저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이명규 기자)

MMOFPS? 번지가 만들면 다르다! '데스티니' 신규 트레일러






■ 문명: 지구를 넘어서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그 소문의 게임 '문명'. 혹자는 학점을 잃고, 누군가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또 어떤 이는 직장까지 잃었다는 소문도 자자한 게임이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문명'이 타임 머신인 이유는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공통으로 외치는 '한 턴만 더'로 알 수 있다. 슬쩍 게임을 실행한 뒤 '한 턴만 더'를 외치다 보면 해가 뜨는 게임. 시간을 잊게 만드는 게임이 바로 '문명'이다.



기존의 '문명' 시리즈는 구석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돌도끼 만들던 사람이 우주선 발사할 때까지를 다루는 것이 '문명' 시리즈다. 기자는 우주선을 발사할 때면 장난말로 '나중엔 우주에 진출하는 것아 아니냐'는 말을 하곤 했다. 농담으로 했던 그 말을 파이락시스는 그대로 현실화했다.

'문명:지구를 넘어서'는 이제 인간의 역사라는 IP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상을 품고 있다. 인류의 과거가 아닌 미래. 기존의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이제 역사라는 현실적인 모습은 '문명:지구를 넘어서'에서 찾을 수 없다. 오직 상상의 세계만 존재한다.

무엇보다 파이락시스는 미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돈이 에너지로 바뀌고, 직선형이었던 테크트리가 방사형으로 변하고, 지구였던 배경이 지구 밖 어딘가로 달라지면서 파이락시스가 원하는 모습을 전부 그려낼 수 있는 조건은 마련됐다. 고정적이었던 역사의 흐름을 깨버리면서 원하는 세상을 그릴 수 있게된 것.

'문명:지구를 넘어서'는 자원을 얻어서 세력을 더욱 강하게 키워가는 것은 이전과 같다. 겉은 같은데 그 속은 다르다. 시드마이어가 이끄는 파이락시스가 만들고 있는 인류의 종착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시드마이어가 상상한 외계인과 인류의 미래를 만나는 것이 기대 된다. (송동훈 기자)

역사를 넘어 '상상력'의 세계로, '문명: 지구를 넘어서' 체험기






■ 데드아일랜드2
트레일러 보는 순간 '왔구나' 싶었다. 좀비가 될 줄 알면서도 조깅을 즐기는 쾌남. '데드아일랜드2'의 분위기가 한 두 단어론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단번에 보여주는 영상 아닌가.

새 개발진이 '데드아일랜드' 특유의 분위기를 잘 이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 먼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야거'는 뭔가 있어보이는 게임을 잘 만든다. 안그래도 강렬했는데, 더 강렬해질 가능성이 높다. 스토리든 연출이든.



공개된 것은 트레일러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전작에서도 그랬듯 '데드 아일랜드' 트레일러는 좀비 팬의 마음을 훔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변화점은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유통사는 딥실버 그대로지만 개발사가 테크랜드에서 '스펙옵스: 더라인' 개발사로 유명한 야거(yager)로 바뀌었다. 야거가 제작한 '스펙옵스'는 이전 시리즈와 달랐다. 철학적인 메세지를 지닌 스토리 라인은 게임 퀄리티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게이머의 머릿속에 기억됐다. 뭘 이어받으면 곧이곧대로 만들지는 않지만, 최소한 인상깊은 작품을 뽑아내는 곳이 바로 야거라는 말씀.

개발사가 바뀌고 시리즈 2탄으로 접어들면서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좀비 특유의 B급 코드가 녹아들었다는 것. 전작에서는 무거운 트레일러 분위기가 말해주듯 키워드는 '비극'이었고 플레이어에게 부여된 목표는 생존이었다. 확장팩 격인 '립타이드' 역시 이점을 그대로 반영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데드라이징' 정도의 막장 코드는 아니지만 좀비물의 클리셰와 같은 코믹 B급 정서를 포함시켰다. 미묘한 게임성의 변화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뭐 사실 그러거나 말거나, 좀비팬 입장에서 오픈월드 좀비게임의 후속작이라는데 E3 최고 기대작을 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민우 기자)

좀비와 함께하는 두 번째 여름휴가, '데드 아일랜드 2' 트레일러






■ 리틀 빅 플래닛3
언뜻 보면 그저그런 캐주얼 플랫포머 액션 게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외형에서 나오는 자극이 약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제대로 파고든다면, 이만큼 무서운 게임이 없다.

리틀빅플래닛의 아이덴티티는 무한에 가까운 확장성에 있다. 오브젝트 조정만으로 실제 계산이 가능한 계산기까지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무시하지 말자. 이 게임, 폴아웃3, MGS4, GTA4에 이어 2008년 GOTY 4위 했다.



화려한 그래픽과 액션, 실사에 가까운 웅장한 오픈월드를 기대하는 게이머들에게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귀여운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소품을 통해 나만의 세상을 창조해가는 컨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강렬한 임팩트로 다가왔을 게임이 있다.

갈색 털실로 짜여진 귀여운 리빅보이의 모험기, 리틀빅플래닛의 신작 '리틀빅플래닛3'가 이번 E3 소니 컨퍼런스에서 공개된 것이다.

전작들과 다르게 이번 시리즈에서는 새로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추가됐다. 몸 사이즈를 변형하면서 높낮이 있는 지형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토글(Toggle)과 네 발로 걸어다니면서 벽타기 점프를 구사하는 '오드삭(Oddsock)', 날면서 동료 플레이어들을 먼 곳까지 이동시켜주는 것이 가능한 스웁(Swoop)이 트레일러 영상을 통해 모습을 보였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새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등장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아가 이번 타이틀에서도 스티커와 오브젝트를 통해 다양하게 캐릭터를 꾸미는 것은 물론, 게이머들의 창의력을 활용해 유저 개개인의 월드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작품은 기존 1탄과 2탄을 만들었던 '미디어몰큘'사가 아닌 '스모디지털'에서 개발을 맡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웠다. 전작과는 다른 참신한 즐거움을 선사할 지, 전작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타이틀이 될 지는 앞으로 더 두고봐야 하겠다. (김지연 기자)

작지만 큰 세계, '리틀빅플래닛3' 트레일러 영상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