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의 소울을 빼앗겼다고요?"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됐다네."



이곳은 브리 마을 남쪽에 위치한 뱀스터 마을이다. 니르의 시체를 룩하트에게 전하기 위해 므네메 마을로 돌아갔던 나는 브리 마을에서 온 의문의 수송대가 뱀스터 마을로 향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의문의 수송대는 바로 '나태의 소울'을 운반하는 부대였고, 뱀스터 마을로 나태의 소울이 운반된 이유는 오랜 옛날부터 수호석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안전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잠깐의 쉴 틈도 없이 뱀스터 마을에 도착한 나는 마을 원로인 비톨드님이게서 나태의 소울을 빼앗겼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상황은 처참했다. 뱀스터 마을은 큰길을 사이에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는데 아랫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돼버렸고, 윗마을 역시 여기저기 부서지고 그을린 건물들 투성이었다.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세워둔 방벽들이 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이 마을은 수호석 덕분에 마을이 생긴 이래 몬스터의 침공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모트롤과 고블린의 습격을 받았다네. 끔찍한 일이었지. 그나마 촌장의 희생 덕분에 윗마을을 지켜낼 수 있었어. 뒤늦게 알았지만 모트롤들이 노린 것은 수호석 안에 보관되어 있던 나태의 소울이었네. 브리마을에서 아르카나 수송대가 운반해온 상자가 수호석을 관리하던 아르카나인 루케니에게 전달됐는데 그 안에 나태의 소울이 있던 게야."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죠?"


"루케니 외에는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지. 우리가 알아낸 건 침략을 당하고 나서 뒤늦게 루케니가 촌장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을 때라네. 침략당하기 며칠 전에 루케니는 모트롤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촌장에게 비밀리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촌장은 수호석만을 믿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네. 마지막까지 목숨을 바쳐 마을을 구하려고 했던 것도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감 탓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먼.


"루케니는 지금 어디에 있죠?"


"루케니는 모트롤들의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섰네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어. 정찰대의 말로는 아랫마을에서 루케니로 짐작되는 시체가 있다고 했네. 안타까운 일이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그 누구도 마을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해 시체를 수습할 수가 없었지..."


"그럴수가..."





루케니는 전투 아르카나가 아니었다. 아르카나의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몸이 약했던 탓에 전투 대원에 선발되지 못했던 루케니는 뛰어난 소울 친화력을 인정받아 이곳 뱀스터 마을의 수호석 관리자로 배정받아 임무를 수행해오고 있었다. 아르카나 훈련소를 졸업하면서 밝게 웃던 루케니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왔지만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루케니는...제가 데려오겠습니다..."


"부탁하네. 루케니를 혼자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 나태의 소울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네만 그것을 빼앗긴 것은 우리 마을의 책임이네. 혹시라도 소울의 행방이나 모트롤들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면 알려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나태의 소울을 가져갔으니 더이상 공격해오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긴장을 늦추셔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겠네. 자네도 몸조심하게나."



폐허가 된 아랫마을에는 모트롤들이 이미 철수한 뒤였다. 어렵지 않게 루케니의 시체를 찾아낸 나는 슬픔을 억누르고 루케니를 라마의 등에 옮겼다. 라마 역시 루케니를 기억하는 듯 구슬프게 울었다.




'유피 언니! 이 라마 이름 백설기라고 지어도 되나요? 새하얀 게 꼭 백설기 같이 생겼어요. 헤헷'


라마의 이름을 지어주겠다던 루케니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루케니의 말을 웃으며 흘려 들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너도 루케니를 참 좋아했었지? 루케니에게도 너에게도 참 미안하구나...너무 늦었지만 루케니의 바람대로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백설기란다."


백설기는 나를 위로하듯 나에게 얼굴을 부볐다. 그때 백설기의 등에 눕혔던 루케니의 품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보고서인듯했다.


모트롤 무리를 감시하던 끝에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암흑 소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세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지시 내용으로 볼 때 브리마을과 므네메 마을을 공격해온 것이 모두 이들 짓으로 보인다.

이들이 뱀스터 마을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고블린의 주술 덕분이었다. 정체불명의 그 사람이 고블린에게 수호석을 파괴할 주문을 알려줬다. 수호석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고블린들이 가져간 수호석의 핵을 되찾아야 한다.

빼앗긴 나태의 소울은 툰드 초원으로 운반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태의 소울은 부피가 크기 때문에 운반하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고 수송 부대의 움직임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브라블린이 마법을 사용하더니 나태의 소울의 크기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나태의 소울을 되찾는 일이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된다.





브라블린이 나태의 소울의 크기를 줄였다고? 어서 빨리 이 사실을 아르카나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나는 백설기의 등에 올라 뱀스터 마을로 돌아왔다.


"오랜만이에요, 유피님"


"레비나님!"



마을에는 레비나님이 와 있었다. 루케니가 마을을 나서기 전에 레비나님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루케니의 비보를 전해 들은 레비나님은 크게 마음 아파했지만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루케니의 보고서에 따르면 모트롤들이 나태의 소울에 마법을 걸어 크기를 줄여 비밀리에 운반하고 있습니다. 나태의 소울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그나마 툰드 초원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루케니가 알아낸 것이 천만다행이네요."


"루케니의 희생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서 툰드 초원으로 추격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곧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피님은 이곳에 남아 따로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피님도 알다시피 이곳 뱀스터 마을의 외곽에는 레긴 장군의 생가가 있습니다. 레긴 장군이 이그네아 방어전을 승리로 이끌며 힘멜 공화국의 영웅이 되면서 레긴 장군의 생가는 힘멜 공화국민의 방문으로 끊이지 않았지요.


그런데 뱀스터 마을이 침공당할 때 레긴의 생가에 하피들이 나타나 방문객들을 납치해 근처 동굴로 갔습니다. 몇몇은 하피의 매혹 마법에 걸려 스스로 따라가기도 했다는군요. 지금 뱀스터 마을은 구출대를 파견하기도 힘들뿐더러 일반 병사는 하피의 매혹 마법에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아르카나가 나서야 하지만 나태의 소울을 추적하는 일도 늦출 수가 없군요. 유피님이 이 일을 조사해줬으면 합니다."





"이젠 하피까지 말썽이군요. 알겠습니다. 뭔가 알아내는 대로 연락 드릴게요."


힘멜 공화국의 영웅 레긴 장군... 그의 생가에 왜 하피족이 나타난 것일까? 나는 다시 백설기의 등에 올랐다.


To be continue...


라마 이름은 '윤아구몬'님의 '백설기'로 선정되었습니다.
라마 이름 짓기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