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권익 보호도, 공정성도 없었다.

지난 18일 강남 곰exp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서든어택 2014 섬머 챔피언스 4강 크레이지포유와 퍼스트 제너레이션의 경기에서 규정을 지킨 팀이 피해를 강요받는 일이 벌어졌다. 규정을 숙지하지 못한 주최측이 크레이지포유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선수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기까지 했다.

논란의 시발점은 제3보급창고에서 진행된 1세트 9라운드였다. 9라운드 시작 당시 렉을 확인한 퍼스트 제너레이션의 우시은은 심판에게 이를 전달했다. 그러나 심판진이 이를 확인하고 경기 중단을 선언하기 전에 퍼스트 제너레이션의 조민원이 상대편에게 잡히고 말았다.

퍼스트 제너레이션은 렉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게임을 할 수 없었다며 해당 라운드를 인정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를 받아들인 주최측은 재경기 할 것을 크레이지포유측에 통보했으나, 크레이지포유는 경기 규정상 이미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해당 라운드는 유효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반발했다.

1시간 가량 합의점을 찾지 못한 끝에 주최측이 내린 결론은 1세트를 무승부 처리하는 것이었다.


■ 심판은 무얼 했나?

심판은 우시은이 렉이 걸린것을 자신이 확인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상이 있을 경우 즉각 경기를 중지시켜야 하는 것이 심판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심판의 정지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게임 진행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우시은이 렉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팀인 퍼스트 제너레이션은 이와 관련한 상황 통보 및 경기 중지를 듣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주최측은 선수들이 헤드셋을 끼고 있는 상황이라 심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규정상 문제가 있을 경우 채팅으로 이를 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하지 않았다. 보이스 프로그램으로 이러한 내용을 팀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자 주최측은 해당 경위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말을 흐렸다.


■ 규정은 공정하게 적용됐나?

누구보다 규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할 이가 심판이고, 주최측이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관련 규정을 알고 있는 이는 크레이지포유 뿐이었다.

서든리그 규정 서버규칙에 따르면 핑 불균등에 대해 '경기가 시작된 이후로 항의를 할 수 없다. 단, 전체적인 핑 이상일 경우 심판의 판단 하에 서버점검 후 재경기 진행' 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경기 중 드롭과 관련해 '교전 후(사상자가 발생한 경우)만일 양 팀 선수들이 고의가 아닌 문제로 서버연결이 실패했을 경우 그 라운드는 유효로 처리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9라운드가 시작된 후에 자신의 렉에 대해 항의한 우시은과 퍼스트제너레이션은 규정을 위반한 셈이다. 더군다나 그 시점 역시 교전 후이기 때문에 해당 라운드는 유효한 것으로 처리, 크레이지포유의 승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사건 당시 심판진과 주최측은 이러한 규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경기 후 주최측은 '해당 라운드를 시작할 때부터 우시은에게 렉이 있었고, 퍼제의 다른 한 선수 역시 렉이 있는 것을 심판이 확인했기 때문에 불공평한 게임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라운드가 시작된 후에 제기된 우시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단 두 명만 렉 현상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확대 해석을 한 것이다.

결국, 모호하게 규정을 적용한 주최측은 '1세트 무승부 처리'라는 규정에 없는 결론을 도출해 이를 선수들에게 강요했다.


■ 선수들에 대한 주최측의 심리적 압박

대회 주관사인 넥슨GT와 곰exp가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은 이 뿐만이 아니다. 크레이지포유는 주최측이 무승부라는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했음을 설명했다.

재경기 할 것을 얘기한 주최측에게 항의를 하자 규정을 모르는 탓에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끼워맞추는 식으로 얘기했을 뿐만 아니라 무승부를 강요하면서 윽박지르며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더군다나 무승부를 결정짓는 과정에서 각 팀 리더에게 10초 안에 이에 따를 것인지, 혹은 몰수패를 받을 것인지 결정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크레이지포유의 리더 박정연은 팀원과 상의해보겠다고 얘기했으나, 주최측은 '리더가 결정할 일이지, 팀원과 상의할 필요가 없다'며 초를 세기 시작했다. 결국, 박정연은 3초 남았다는 주최측의 얘기에 무승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규정을 알고 있었기에 억울했던 크레이지포유로서는 주최측의 심리적인 압박까지 이어지자 정상적인 경기력을 펼칠 수가 없었다. 무승부 발표 이후 진행된 2세트에서 크레이지포유는 골든 라운드까지 가는 승부끝에 패배했고, 이어진 3세트에서는 큰 격차로 패하고 말았다.

마인드 스포츠라고 얘기되는 e스포츠이기에 선수들의 심리는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그런데 크레이지 포유는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주최측의 압박으로 인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2, 3세트는 정상적인 게임 진행의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 무승부 규정은 옳은가?

선수들간의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한 주최측이 내린 결론은 1세트 무승부였다. 더 이상의 경기 지연을 막기 위해 이런 결론을 내린 주최측의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일까?

이번 사건과 관련해 주최측 주장의 가장 큰 핵심 내용은 9라운드가 '공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 있어 공정한 판단은 내려질 수 있지만, 공평한 판단은 내려질 수가 없다. 그러나 규정을 무시하고서라도 공평한 게임을 만들고자 했던 주최측의 노력은 무승부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스스로 부정한 셈이 됐다.

규정에 따르면 크레이지포유는 자신들이 9라운드에 승리하며 세트 포인트를 만든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승부 처리로 인해 크레이지포유는 다 잡은 경기를 놓치게 되면서 일차적으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어진 주최측의 주장은 크레이지포유로서는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서든리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맵 선정이다. 경기 전 맵선정에서 가위바위보에 이긴 크레이지포유는 퍼스트 제너레이션이 잘하는 크로스포트 맵을 4강에서 제외시켰다.

그런데 주최측은 무승부라는 결론과 함께 다시금 가위바위보를 진행했고, 여기에 이긴 퍼스트 제너레이션은 남은 두 맵인 크로스포트와 프로방스 중 당연스레 크로스포트를 선택했다. 따라서 무승부 이후 진행된 2, 3세트에서 퍼스트 제너레이션과 크레이지포유가 1 대 1 동점을 기록했다 하더라도, 이어진 4세트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퍼스트 제너레이션이 승리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결국, 강제적으로 양보를 요구받았던 크레이지포유는 연이어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온상민 해설 역시 불만족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온상민 해설은 경기가 재개된 후 "어이가 없다. 해설을 너무 오래 했나 보다."며 당시 상황을 비꼬았다.


■ 크레이지 포유가 원하는 건?

1세트 9라운드에서 크레이지포유가 승리했음에도 무승부 결론이 내려지면서 이득을 본 이는 퍼스트 제너레이션이다. 더군다나 주최측의 압박까지 받아야 했기에 크레이지포유로서는 해당 경기 결과를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크레이지포유는 3, 4위 결정전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정식적으로 재경기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경기 역시 규정에 의거해 1세트 5:4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주최측에서는 재경기와 관련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스포츠 경기에 있어 규칙과 규정은 선수들의 권익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며, 정상적인 경기 진행과 심판들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해 넥슨GT와 곰exp가 내린 결론은 선수들의 권익을 지키지도, 정상적인 경기를 진행하지도, 그리고 심판들의 권위를 세우지도 못한 악수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