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순위권을 한참 내려야만 겨우 찾아볼 수 있지만, 출시 당시인 7개월 전에는 독특한 컨셉과 잘 된 최적화로 인해 호평받았던 모바일게임이 하나 있다. 모바일게임의 기본 소양과도 같았던 'for kakao' 타이틀 없이, 마케팅도 거의 안 된 상태에서 출시된 이 게임의 이름은 바로 '무적의 용병단'이다.

지난 NDC강연에 이어 이번 KGC2014에서 또 한 번 강연대에 오른 크레이브몹 한대훈AD에게 이 게임은 굉장히 특별한 경험으로 스며있다. 3D모델링을 작업하다 처음으로 아트디렉터(AD)라는 이름표를 달고, 난생 처음으로 메이저의 위치에서 제작해 본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의 경험이 담긴 이 강연의 제목이 '초보AD의 게임 하나 완성하기'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대훈 AD는 순혈(?) 아트디렉터는 아니다. 캐릭터와 배경 모델링, 디렉팅, 시나리오, 이펙트, 모바일 버전 컨버팅 작업, 포스터 제작, 3D코스튬 제작 등 'AD의 기본 소양'에 들기엔 어쩐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경력의 보유자다. 아, 물론 개발 경력 12년동안의 노하우는 어디 가진 않겠지만. 허나 선뜻 '아트디렉터'란 중책을 맡기에는 여러모로 조금씩 핀트가 엇나가있다. 한 AD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소규모의 회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소규모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일수록 저처럼 잡다한 경험이 많은 멀티플레이를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난생 처음 맡아보는 AD라는 임무에 자못 열정에 가득 차 있었고요. 그 열정으로 인해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고생도 했지만, 확실히 배운 것도 많았어요. 그렇기에 '무적의 용병단'은 저에게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타이틀입니다. "

▲ 크레이브몹 한대훈 AD

▲ 아트디렉터라 하기엔 독특한 그의 경력



크레이브몹 합류, 방향을 정하다

한대훈 AD가 크레이브몹이란 회사에 합류할 당시, 그가 마주한 '무적의 용병단'은 이미 2D버전의 9:9전투 프로토타입이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이를 좀 더 역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 AD는 디렉터와 상의해 3D 그래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하지만 그의 아트 팀은 단 두 명. 그것도 2D 원화가였다. 이미 2D프로토타입이 나온 상태에서 3D그래픽으로 전향하려면 택도 없는 숫자였지만, 한 AD는 추가 채용을 꺼려했다. 소규모 개발진이다 보니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았던 것이다.

"작은 팀일수록 사람 한 명 뽑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자칫 잘못 뽑았다간 팀 전체의 분위기가 망가질 수 있고...구인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무시 못하죠. 소규모 팀에게 시간과 비용은 매우 중요하니까요. 또한 많은 개발진은 많은 개발비를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2D원화가 팀원에게 3D모델링을 전수하는 것이었죠."

허나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은 인력으로도 그럴 듯한 미들코어 게임을 만들 수 있어야 했다. 크레이브몹의 '무적의 용병단'이 경쟁해야 할 대상은 대규모 기업의 대형RPG 타이틀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AD 개인적으로도 자식도 생겨 가족부양의 책임도 막중해졌기에 부담감과 책임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러한 심적 동요는 이후 설명할 고생길로 이어지게 된다.

▲ 대기업의 쟁쟁한 RPG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크레이브몹 아트팀의 목표

▲ 당시 열의로 불타올랐던 한대훈 AD


본격적인 개발 시작!

한대훈 AD가 프로젝트에 합류했을 때 디렉터에게 전달 받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 해외, 특히 북미권에서 유행할 수 있는 스타일.
2. 섬에 사는 몬스터들이 용병을 구성, 모험을 떠난다는 컨셉대로, 인간형을 배제한 몬스터를 작업해 줄 것.
3. 자신만의 용병단을 만든다는 기분이 들도록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하게 할 것.


난생 처음 AD라는 직책도 맡은 직장인으로서, 가족원이 한 명 더 증가한 가장으로서 열정에 가득 찬 한대훈 AD는 바로 디렉터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는 인간형이 아닌 몬스터를 디자인하며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커다란 덩치로, 당시 그래픽 트렌드였던 3~4등신의 일본형 SD캐릭터가 아닌 고유한 특색을 담고 마법속성에 맞춘 컬러감으로 캐릭터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외에 한 AD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바로 최적화였다. '무적의 용병단'이 본디 지향했던 전투는 9:9단체전으로, 이를 원활히 구동하기 위해서는 스펙을 가볍게 설정해야 했다. 따라서 배경은 매우 간단하게 구성하고 캐릭터의 스펙도 가볍게 해 본디 지향했던 9:9전투 상황에서도 잘 구동될 수 있도록 그래픽을 처리했다.

대신 UI에는 욕심이 있었다. 다수 전투를 진행하는 게임인만큼 묵직한 느낌을 주고 싶던 한대훈 AD는 단단한 돌, 둔탁한 재질의 나무와 쇠로 이루어진 UI를 기획했고 이에 유명게임인 워크래프트3을 레퍼런스로 삼아 디자인 착수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담은 3D화면의 9:9전투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프로토타입은 개발에 큰 도움이 됐어요. 완성된 모습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니 무엇을 더해야 할 지, 무엇을 수정해야 할 지가 딱 보였거든요. 일단 딱 보기에 9:9전투는 너무 난잡해 보여서 6:6전투로 방향을 돌리게 됐습니다. 또한 그래픽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발견되었죠. 이제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 당시 계획했던 초기 그래픽 기획. 이대로 3D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3D 프로토타입 그 후

진행속도는 만족스러웠지만, 문제가 꽤 많았다. 한대훈 AD가 발견한 문제는 바로 '퀄리티'였다. 누가 봐도 '몬스터'외형인 유닛은 소유욕구가 뚝 떨어지게 생겼고, UI역시 전문인력 없이 작업했기에 해상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두 명이서만 아트를 담당하니 어쩔 수 없지, 사람 좀 많았다면 다른 게임처럼 잘 만들었을 걸! 초기에 얻는 용병이 꼭 예뻐야 할까?"라고 자기방어를 위해 핑계를 대긴 했지만 자신감도, AD로서 추구했던 방향성도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저에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죠. 여러 조언과 격려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조언은 바로 '대훈씨가 잘하는 걸 하세요'였어요. 그걸 듣는 순간 딱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이런 상황이 왔던 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이었어요."

한대훈 AD는 과거를 하나하나 돌아보며 잘못을 짚었다. 일단 한 AD 스스로가 북미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일본 스타일-아무리 넓게 봐야 아시아 스타일-이었고, AD라는 직책을 처음 맡았다 보니 의욕이 넘쳐 본인이 잘하는 분야를 주장하지도 못한 채 디렉터의 요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그는 큰 선택을 하게 되었다. 바로 '리뉴얼' 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줄 알았더니...

'잘하는 대로 하자'고 마음 먹은 한대훈 AD는 지금껏 진행했던 아트의 방향을 대부분 바꿨다. 일단 신입 배경 원화가를 충원해 10년 차 이상의 개발자들 사이에 활기를 불어넣고 퀄리티 있는 배경을 완성하려 노력했다. 또한 '팬시'를 키워드로 삼고 심플한 형태에 컬러감만으로도 감정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상황 상 많은 걸 변경할 수는 없었지만 기존 용병도 수정을 가하고, 신규 용병도 단순한 형태에 색감을 강조해 귀여움을 살렸다.

여기에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애초의 '모든 유닛을 몬스터 외형으로'와 '커스터마이즈 지원'이라는 초기 게임 컨셉을 전면 수정한 것. 인간 캐릭터가 주는, 특히 여성 캐릭터가 주는 호감도를 무시할 수 없다 판단한 한 AD는 세부적인 부분은 색감으로 간단히 표현하더라도 외형 자체를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러한 디자인에 커스터마이즈를 지원하면 본래 추구했던 캐릭터성을 표현하기 힘들어지겠다고 판단, 해당 기능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또한 UI도 파트별로 구성하고 조립이 가능한 형태로 제작, 새로운 UI를 제작하더라도 필요한 파트를 재활용할 수 있게 해 팀의 업무량을 대폭 줄였다. 여기에 UX(User Experience,유저 경험)도 염두에 두고 기능이 같은 버튼은 화면이 바뀌더라도 같은 위치에 배치해 새로운 콘텐츠가 들어가더라도 따로 매뉴얼을 제작할 필요 없이 UI를 제작했다. 이제 리뉴얼은 끝났다.

▲ 아이의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아 귀여운 동물 캐릭터 제작에 착수하게 되었다

▲ 초기의 몬스터 디자인(...)에서 탈피, 귀여운 기린을 캐릭터로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 초기 그래픽에서 리뉴얼했더니 이렇게 깔끔해졌습니다!

▲ 물론 그 과정 속에 한대훈 AD의 신념이 녹아있기도...


이제 개발이 약 60% 진행된 상황. 리뉴얼 후 팀 내 반응은 괜찮았다. 처음으로 그래픽에 대해 칭찬도 받았다. 근데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가 그래픽 대거 개편 이후 보이게 되었다.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유닛이 동시에 전투하는 단체지향적 게임인데도 혼자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플레이어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해주고 도움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한대훈 AD는 튜토리얼 및 가이드 캐릭터를 추가하기로 결심, 반말을 사용하는 털털한 소녀를 작업하게 되었다. 단 한 명의 캐릭터였지만 추가 의상이나 표정을 다양하게 마련해 호감도를 높이는 등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다. 여러 명의 캐릭터에게 줄 정성을 한 명의 캐릭터에게 몽땅 썼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애초 프로토타입까지 나온 전투화면 작업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거의 다 되어있다고 생각하고 캐릭터와 배경 작업부터 먼저 진행하다보니 차일피일 미뤄졌던 것이다. 인원 수만 9명에서 6명으로 바뀌었다 뿐이지 애초 설정한 '단체 전투'라는 컨셉은 변하지 않았고, 초기부터 최적화는 염두에 뒀기 때문에 전투화면에서 캐릭터 하나하나에 많은 공을 들일 수 없었다.

"전투화면 구성에 중점을 뒀던 건 '나무보다는 숲을 보자!'였습니다. 나무, 그러니까 몬스터 하나하나만 보면 솔직히 퀄리티가 떨어지니까요. 따라서 전체화면을 멋지게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역동적인 전투 씬을 위해 카메라 연출도 자동으로 시점이 변하게끔 했고, 한 눈에 딱 봐도 캐릭터가 어느 수준인지 파악할 수 있게 장착무기 및 방어구를 등급에 따라 강조했어요."

애초에 최적화를 염두에 두긴 했지만 단체 전투를 3D로 구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대훈 AD는 당시 가장 보편적인 최적화 테스트 기기인 갤럭시 S2에서 40FPS이상의 구동스펙을 내기 위해 노력했던 이 시기를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빛 볼 날도 서서히 다가왔다. 개발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 가이드 캐릭터 '로안'을 정성들여 작업, 플레이어에게 친근함을 주려 했다
약간의 신념을 더하고자 했지만...정식서비스 때는 신념을 굽힐 수 밖에 없었다는 한대훈 AD


▲ 작업에 소홀했던 전투화면을 적극 작업, 훨씬 역동적인 씬으로 일궈냈다


거의 완성! 이제 남은 것은...

"개발이 90%이상 진행되면 그래픽 팀이 해야 할 일은 대체로 정해져 있죠. 바로 폴리싱입니다. 매일매일 다른 기기에 APK파일을 넣어 퇴근길에 살펴보면서 불편한 점을 체크, 다음날 아침에 수정하는 나날이었죠. 출시가 막바지이니 UX도 신경쓸 수 밖에요. 플레이할 때 편하라고 퀵메뉴 버튼을 추가했는데, 버튼 한 두개 추가한 것만으로도 화면이 복잡하고 게임이 어려워 보이더군요. 어쩔 수 없이 레이아웃을 전면 검토하고 수정, 좀 더 깔끔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초기 화면인 '캠프'의 디자인 퀄리티를 한층 올리고, 초기 캐릭터에도 인간형, 그것도 미소녀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도 플레이어에게 '재미있는 게임처럼 보이네!'라는 생각이 들게끔 마련한 장치였다. 이로서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출시된 '무적의 용병단'. 외주 하나 없이 단 3명이서 만들어 낸 지난 날이 자랑스러웠고 당시 평가도 꽤 괜찮았기에 많은 힘을 얻었다며 한 AD는 추억에 잠겼다.

▲ 폴리싱을 거쳐 마침내 완성!


그리고 그 후, 스스로를 되돌아보다

아쉬운 부분은 분명 있었다. 그는 AD로서 성장하지 못한 채 바쁘게 업무만 수행하는 데 급급했다며 지난 날을 반성했다. 또한 게임 내에 놀라움과 즐거움을 주는 숨겨진 요소, 이른바 여유로움을 담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며 다음 프로젝트에는 이를 계획적으로 녹여낼 것을 다짐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첫 AD역할을 잘 수행한 듯 합니다." 특히 최적화 같은 경우 한 AD가 초반부터 많은 고민을 거친 부분인데, 이 부분에 많은 칭찬을 받아 기뻤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이런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를 아트 팀원 하나하나가 멀티플레이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회사 전체가 한 프로젝트에 전력 개발해 높은 집중도를 가져갔던 것이라 분석했다. 이처럼 1년여 간의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1시간 동안 풀어낸 한대훈 AD는 제일 좋았던 부분을 추억하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특히 가장 만족스러운 건 좋은 동료들을 얻었다는 거겠죠. 그래픽을 리뉴얼한다는 게...어찌보면 불신을 가질만한 데도, 1여년의 시간 동안 8명의 동료들이 서로 끈끈한 정을 쌓아 왔었기에 큰 작업을 믿음을 주고 시간을 주더라고요. 소규모 개발사에서 몸담은 사람이라면 베테랑의 실력을 가진 동료도 좋지만, 무엇보다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