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미소가 없어지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가락시장 구석에서 평소 친분이 있는 개발자들과 회를 먹으며 그들의 개발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학생들이랑 있었다고 기분 좋은가 봐? 우리도 반짝반짝 빛나던 그 때 참 좋았는데."

학생들이랑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열정이 묻어나는 후끈함이 좋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멋졌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 재지 않는 순수한 열정이 좋았다. 왜 이런 게임을 만들게 됐냐, 왜 이런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그냥요, 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는 그들이 좋았다. 한 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 5월 1일. 이천 시내에서도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자가용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될 즈음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따라 올라가니 게임콘텐츠 스쿨 학생들의 졸업작품 게임 제작 발표회, '청강 크로니클'과 마주할 수 있었다.

게임콘텐츠 스쿨은 창의적 게임 콘텐츠 창작 역량을 강화하는 제작 중심의 직무 코칭 시스템으로 기획자, 프로그래머, 그래픽디자이너, QA 전문가를 길러내는 교육 과정이다. 게임콘텐츠 스쿨에서 가장 큰 행사인 '청강 크로니클'은 재학 중인 3학년 학생들이 게임 스튜디오에서 1년간 제작한 작품을 발표하는 자리로 이날 발표한 게임은 한 학기 동안 더 다듬어져서 지스타에 출품하게 된다.

이 행사에는 교수, 재학생, 졸업생뿐만 아니라 넥슨, 위메이드, 엔도어즈 등 현직 종사들도 찾아와 고교 대회를 찾은 스카우터들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취업 결정이 나기도 한다고 한다.

행사는 2학년들의 모바일 게임 우수작 발표로 시작됐으며, 산학협력 실무참여 프로젝트에 이어 QA팀과 10여 개의 졸업작품팀의 발표가 이어졌다. 각 팀의 발표 뒤 진행된 질의 응답 시간에는 졸업생과 현직 개발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져 발표자들의 진땀을 빼기도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청강 크로니클 행사장'으로 안내한다.



▲ 행사의 시작은 2학년이 알렸습니다.

▲ 대학생만이 가능한 패기 넘치는 발표.

▲ 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 졸업 작품의 품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CKQA(ChunKang Quality Assurance) 발표.

▲ 지도교수님을 사장으로 모시는 회사네요.


▲ 모두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은 마법 소녀. 아, 남자입니다.


▲ 무대에만 올라오면 공손해지는 두 손

▲ "나는 모르겠다..." 라는 표정인 걸까요.


▲ 무대에만 올라오면 공손해지는 두 손(2)

▲ 질의 응답 시간에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머리에 꽃...


▲ 행사 후에는 졸업생과 현직 개발자들의 멘토링이 진행됐습니다.




▲ 현업 인들도 참여,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 전용 도서관.

▲ 희귀한 도서도 많았습니다.

▲ 게임오보.




■ 발표 작품 동영상 - "완성 버전은 지스타 2015에서!"


[▼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동영상으로 연결됩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동영상으로 연결됩니다.]



■ 토막 인터뷰 - "그냥 궁금해서요"


▲ VR 기기를 활용한 세모팀

오큘러스를 활용해야겠다고 결정한 이유가 있어요?
VR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었어요. 또한, 게임을 떠올릴만한 특징을 잡고 싶기도 했고요.

학생 관점에서 VR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우선 멀미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1분도 못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현재로써는 느리게 움직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큘러스 라이브러리도 많이 찾아보면서 공부해 나가고 있어요.

컨트롤러가 따로 없는 것이 흥미롭네요.
많이 고민했어요. 키보드와 마우스, 게임패드 등을 시도하기는 했는데 성에 차지 않았어요. 지금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서 좀 더 직관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했어요. 덕분에 좀 더 공포스런 분위기도 얻을 수 있었어요. 사실 VR 기기를 활용하자고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처음에는 저희도 긴가민가했어요. 레퍼런스도 적고...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이 신기함과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와서 고마웠어요.



▲ 귀여운 캐릭터로 많은 호응을 얻었던 별똥별팀

발표할 때 많은 호응을 받았어요. 캐릭터 디자인 컨셉은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요?
팀이 몇 번 깨졌어요. 발표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3명이 함께 겨우 제대로 된 팀을 꾸릴 수 있게 됐어요.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의 퀄리티를 뽑을 방안을 강구하다가 고안하게 됐습니다. '월리를 찾아라'에서 착안했고요. 거기에 오브젝트를 구경하는 재미를 추가했습니다.

아까 동영상 보니까 바닥 배경이 캐릭터만큼이나 인상 깊더라고요.
일일이 타일 작업을 해서 붙였어요. '메이플스토리2'의 분위기적 장점을 모바일로 옮기면 어떨까 싶어서 하게 됐고요.

혹시 에셋을 판매할 계획도 있나요?
(웃음) 글쎄요...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요.



[▲ 22.4의 쿼터뷰 드래그 액션 RPG 'Elpia']

처음 영상을 봤을 때 조금 과장해서 상용 모바일 게임이 떠올랐어요.
감사합니다. 졸업작품이니까 최고의 퀄리티를 뽑고 싶었어요. 팀원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했어요. 8개월 동안 참 열심히 만들었죠.

아마추어로서 만드는 마지막 작품인데 오늘 제작 발표까지 하고... 감회가 어떠세요?
사회에 나가면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못 만들잖아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잘 만들고 싶었어요.



[▲ 탄산에 질린 연구원이 우주로 보낸 히치하이커의 어드벤쳐, 메리고라운드의 '에뜨와르']

에뜨와르가 무슨 뜻인가요?
프랑스어로 꽃이라는 단어에요.

영상이 되게 예쁘더라고요.
고맙습니다. 유니티5의 디렉터 셋을 이용해 제작했어요. 발표 몇 일 전까지만 해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변했어요. 팀 명이 메리고라운드라 그런지 많이 엎어져서...

많이 고생했겠어요.
자고 싶어요...



▲ 20대 여성의 감성을 담은 '하루꽃'을 개발한 도담도담팀

게임이 풍기는 분위기가 독특하더라고요.
20대 여성이 품고 있는 불안감, 부담감에서부터 출발했어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불안감? 팀원이 모두 여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보니까 공통으로 통하는 감성이 있더라고요. 여자가 20살이 되면 꽃이 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꽃을 통한 이야기로 이러한 감성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일기 등을 통한 재해석도 준비되어 있고요.

동양적인 분위기가 인상 깊더라고요.
그냥 동양 느낌을 풍기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동양적인 감성이 우리 감성을 잘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요. 교수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하루꽃'을 지스타뿐만 아니라 굿게임쇼에도 출품할 생각이에요.

아마추어로서 마지막 작품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업계에 나가도 이렇게 힘들까요? (웃음) 그래도 팀 작업하는 게 즐거워요!



■ 토막 인터뷰 - "안녕하세요, 대마왕 정종필입니다."


'충무공전', '임진록2', '천년의 신화', '군주 온라인', '아틀란티카', '삼국지를 품다'. 국내 게임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게임들입니다. 그리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의 정종필 교수가 개발에 참여했던 게임이기도 합니다. 테크니컬 아트 디렉터 (Technical Art Director)라는 직함 대신 교수가 되어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정종필 교수를 만나봤습니다.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정종필 게임콘텐츠스쿨 게임전공 교수

업계에 오래 몸담았었는데, 교수가 된 지금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업계에 있을 때가 편하기는 했어요. 돈도 많이 받고. (웃음) 지금은 집에 안 가고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새벽에도 학생들이 모르는 거 있으면 교수실로 찾아와서 물어봐요. 덕분에 저도 열심히 공부해야만 하죠."


학생들이랑 대화를 나누다가 "회사 들어가면 만들고 싶은 거 못 만들잖아요."라는 말을 들었어요. 뭔가 가슴이 찌르르하더군요.

"현실이죠... 잘 가르치고 있는 거 같네요. (웃음)

아무래도 조직에 들어가면 자신의 색을 수놓을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이 기회가 소중한 기회인 거죠. 회사에 들어가서 디렉터가 되는 것도 10년은 걸릴 테고, 디렉터가 된다고 해서 100% 자기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자신이 회사를 차려서 독립하기 전에는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봐야죠. 회사를 들어가더라도 현재하고 있는 것들은 매우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거에요."


아직 우리 사회 인식이 전문대라고 하면 낮춰보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요, 직접 보고 들어보니 속된말로 학생들 실력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입학하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올해 경쟁률이 10:1이 넘었어요. 신입생 중에 괴물이라고 부를 만한 학생들도 들어오고요. 그런 학생들 덕에 교수회의가 화기애애해지기도 한답니다. (웃음)

신입생을 뽑을 때 그래픽, 기획, 프로그래머 전공을 다 뽑아요. 4년제 대학교는 미대에서 그래픽, 공대에서 프로그래머, 이런 식으로 분리해서 뽑을 수 밖에 없어서 같이 공동 작업을 하기 어려워요. 저희만의 강점이라고 할까요?

1학년 때는 기획, 그래픽, 프로그램에 관한 수업을 직무에 상관없이 다 들어요. 이렇게 수업을 듣다가 전직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2학년에 올라가면 스마트 폰 앱 게임을 만들어보고 2학기 때 팀을 결성해서 팀 프로젝트 작업을 하죠.

팀 구성도 실무랑 똑같아요. 팀이 엎어지기도 하고 팀이 꾸려졌다 하더라도 기획 자체가 엎어지기도 하고. 오늘 발표하기까지 정말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퀄리티가 안 나와서 혼나기도 하고, 개발하다 힘들어서 교수실에 찾아와서 울기도 하고요.

실무에서 열심히 해서 인센티브를 받고자 하는 목표가 있듯이 여기서는 열심히 해서 지스타에 출품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거에요."


프로젝트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실무에서 그렇게 하기 때문이죠. 프로젝트 중심의 작업을 해보지 않으면 단편적인 것밖에 모르거든요. 전체 프로젝트를 본 경험이 없으니까요. 그래픽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머가 뭐 하는지 관심도 없고 프로그래머는 기획자가 뭐 하는지 관심도 없는 것처럼 말이죠.

'현재2관' 4층에 가면 프로젝트 작업을 위한 사무실이 있어요. 실제 사무실은 아니고 게임 회사를 그대로 옮겨 놓고 거기서 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누면서 밤새워 팀 프로젝트 작업을 해요. 정말 소중한 경험을 먼저 하는 거죠.

여기는 학교니까,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 달라야 해요. 이 곳 만큼 시설이나 커리큘럼이 잘 짜여있는 곳도 없어요. 교수도 19명이나 있고요.

현업에서는 프로젝트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실제로 신입들에게 일을 시켜보면 프로젝트를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나요. 프로젝트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시야가 좁을 뿐만 아니라 작업 도중 발생하는 문제를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는지, 누구와 협업하고 타협해야 하는지를 몰라요. 자신에게 주어진 것밖에 모르죠.

이곳에서는 자신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배우고, 유관부서와의 협력, 타협 등을 통해 좀 더 풍부하고 빠른 경험을 획득할 수 있는 거죠."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단기적인 목표도 중요하잖아요. 염두에 두고 있는 목표가 있을까요?

"졸업작품의 수준이 해를 거듭할수록 올라가고 있어요. 아직 제 마음에는 안 들지만요. (웃음)

올해 신입생 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게임 업계 종사자인 학생이 있더라고요. 이제 한 세대가 순환한 느낌이랄까요? 현재 한국 게임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던 층은 점점 늙어가고 있고, 바로 프로젝트에 투입해도 될 역량을 지닌 신입들은 줄어들고 있어요.

앞으로 10년 이내에 오래된 개발자와 신입 개발자들 사이에 공동화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중간층을 매울 수 있는 능력 있는 개발자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예요. 그러므로 바로 프로젝트에 투입할 수 있도록 현업 종사자 수준의 퀄리티를 원하는 것이고요.

지스타에 졸업작품을 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업체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부스에서 업계를 놀라게 할만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그러면 현업 개발자들도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공부할 테고 말이죠. 업계에 좋은 흐름을 가져오겠죠."

▲ 프로젝트는 여기서! 4층에 마련된 회사(?)

▲ 누가봐도 게임 만들고 있는 사람.

▲ 지스타에서 발표할 그날까지 쪽잠도 불사하겠다는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