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재미있다.

게임을 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고, 가끔은 재미를 얻으려다 스트레스를 얻어가기도 하는 것이 게임이지만, 기본적으로 게임은 재미있다. 물론 여기서 '재미'는 굉장히 여러 가지 개념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상대를 이겼을 때의 희열,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키워냈을 때의 성취감 등등,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는 다양하다.

NDC2015 현장에서 첫 강연을 맡은 넥슨코리아 이준식 기획자의 첫 강연은 '재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승리의 희열, 성취욕, 마이크로 컨트롤을 하면서 오는 말초신경의 자극이 아니다. 아무 허들 없이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재미'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 넥슨 카스온라인2 이준식 기획자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2(이하 카스온라인2)'는 최근 진짜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법이야 어떻든 '카스온라인2'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바로 '숨바꼭질 모드'를 통해서 말이다.

이준식 기획자의 강연은 '카스온라인2'의 '숨바꼭질 모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탄생 비화를 다루고 있었다. FPS의 틀을 깨고, 재미 그 본연을 찾아가는 기획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며, 어떤 점을 노려 기획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을 웃기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화두는 여기서 시작한다. 이른바 '개그 본능'이다. 어찌 보면 현대 사회에 들어 정립된 개념 중 하나라 여길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개그 본능'또한 '생존'과 '번식'이라는 인간의 1차적 목표와 중요하게 결부된 '본능'중 하나라 보아도 무방하다.


'개그'라는 소재 자체가 인간관계를 기름칠하는 윤활유와 같기에, 사회성을 가지는 '인간'이라는 종에게는 말 그대로 '본능'과 같이 적용될 수 있는 거다. '숨바꼭질 모드'는 이렇듯 '본능'을 노린 모드였다. 성공하는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인간 본연의 무언가를 자극한다는 것을 볼 때 '가능성'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 난 멋져!

'숨바꼭질 모드'는 어쩌면 '모험'에 가까울 정도로 간단한 발상 끝에 나온 모드다. 한 팀은 사물로 변해 맵에 자연스럽게 숨고, 다른 팀은 그것을 찾아다닌다. 이게 전부다. 그 외에 몇몇 시스템이 존재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그게 끝이다. 재미를 만드는 주체는 '게임'이 아니다. 바로 '유저'다. 유저가 스스로 개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모두와 함께 즐길 수 있게끔 하는 무대. 숨바꼭질 모드는 그 '무대'이다.

▲ 구조 자체는 참 간단하다.

'숨바꼭질 모드'는 무대. 배우는 '유저'. 기획자의 역할은 '본능의 자극'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온라인 게임'이 가지는 타 미디어와의 차이 때문이다. 게임의 최대 특장점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가 혹은 화자가 독자, 시청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유저가 다른 유저에게 직접 작용할 수 있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온라인 게임에서는 가능하다. 애초에 그게 온라인 게임의 핵심이기도 하다.

▲ 보고 웃는 것이 아닌, 직접 남을 웃기거나, 함께 웃길 수 있다는 것



유저를 '게이머'가 아닌 '배우', '코미디언'으로 생각하라

기획하는 과정에서 중요했던 건 유저들이 표현할 수 있는 툴, 그리고 무대를 다양화하는 것이었다. 변신할 수 있는 사물을 다양화해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바꾸었고, 몇몇 사물에는 애니메이션을 첨가해 의외의 상황이 나올 수 있게끔 하었다. 예를 들면 자판기로 변신한 유저는 실제로 캔 음료를 쏟아낼 수 있고, 말 동상으로 변신한 유저는 앞발을 허우적댈 수 있는 식이다.

나아가 위치 파악이 중요시되는 FPS게임에서는 절대 쓰일 일이 없던 '말풍선' 기능이나, 옵저버의 위치를 날아다니는 카메라로 만들어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느끼게끔 하는 등의 장치는 유저들이 게임 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개그 본능을 뽐낼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숨바꼭질 모드'는 FPS라고 할 수가 없는 게임이다. FPS와 닮은 점은 1인칭 시점이라는 것 단 하나. 2014년 9월 업데이트 이후, 유저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실질적인 동시 접속자 수도 늘어났고, 피드백 숫자도 증가했다.

▲ 예상을 뒤엎는 플레이가 나오는가 하면...
▲ 승리는 뒷전이고 상황극을 벌이는 유저들도 생겨났다


유저들의 '본능'을 자극한 결과였다. '숨바꼭질 모드'를 즐기는 유저들에게 승패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을까?', '다른 이들보다 훨씬 큰 웃음을 불러일으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가 이 모드를 즐기는 이들의 마음이었다. 이들은 매 판 스스로 목표를 설정해 동기를 부여하고, 끊임없이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게임을 할수록 콘텐츠가 더욱 늘어나는 '궁극의 선순환'이다.



'숨바꼭질 모드'는 결코 통상적인 게임이 아니다. '카스온라인2'라는 탈을 썼을 뿐이지, 완벽하게 다른 게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게임의 정점'인 것도 아니다. '숨바꼭질 모드'가 모든 게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게임이라면, 이미 전 세계의 게임 트렌드는 '개그'의 코드로 맞춰졌을 것이다. 밥과 반찬에 익숙해진 한국인이 가끔 한번 먹는 면식 요리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개그 본능'의 자극은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소재임이 틀림없다. '샌드박스 게임'이 큰 인기를 얻은 것 역시 유저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게임 내에서 표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모두가 즐거워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최고의 게임으로 꼽히는 'GTA5'의 장점 중 하나 역시 유저가 거의 모든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저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고,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준다는 것이 어떤 파괴력을 가지는지 충분한 사례가 되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게임'을 하면서 '재미'를 얻는 유저들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패배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게이머들 또한 많다. 가끔은 아무 부담 없이, 어떤 마음의 벽 없이 그저 웃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개그 본능'을 자극하는 게임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