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스의 세계관, 암흑 시대부터 현세까지 (각 항목을 선택하시면 해당 정보로 빠르게 이동합니다.)

암흑 시대
  ㄴ 루멘의 몰락 이후 
  ㄴ 나라바 건국 

현세
  ㄴ 영웅 하르만의 등장
  ㄴ 상황자 전쟁의 발발
  ㄴ 남부 도시들의 부흥
  ㄴ 플로린 독립 전쟁과 파다나의 굴욕
  ㄴ 아미스타드 도시 연방의 대두
  ㄴ 우니온 연합의 창설과 코르누스 산맥의 비극
  ㄴ 가을 전쟁의 시작과 끝
  ㄴ 남북국 시대의 개막



☞ 세계관 1편, 창조부터 용과 거인의 전쟁 그리고 엘프 등 상고 시대까지 [바로가기]

☞ 세계관 2편, 발전과 번성 등 역사적 황금기 고대 루멘 시대 [바로가기]



■ 루멘의 몰락 이후

루멘 제국의 몰락과 함께, 대륙에는 훗날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어둡고 혼란한 시기가 도래했다.

마법을 잃어버린 인간의 문명은 수백 년 전으로 퇴보했고, 야만 종족과 선주 종족이 각지에 발호했다.북방에서는 오크와 고블린이 남방에서는 놀 족이 장벽을 넘어 과거 루멘 제국의 영토를 침탈했다.

한편 코르누스 산맥 북쪽에서는 알토크 인의 여러 부족과 나라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한때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수많은 도시들이 야만 종족들, 혹은 무지한 알토크 병사들에게 약탈당하고 파괴당했다.

남대륙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마법을 잃어버린 캄푸스 인들은 고립된 상태로 붉은털 놀 족의 침략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캄파니와 테르니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가 불타고 말았다.






■ 섭리의 탄생과 신들의 황혼

루멘 제국의 멸망 직후, 대륙 남부 놀란도 방면의 거대 장벽을 지키던 상장군 가이우스 케사스의 군단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더 이상 보급이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가이우스 케사스는 휘하 병사들을 데리고 놀란도 황무지를 떠나 북상을 시작했다. 마법 통신의 단절로 니그라 투리스의 재앙에 대해 모르는 채 코르누스 산맥을 향하던 가이우스 군단은 대초지 북부에서 한 무리의 피난민과 조우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코르누스 산맥을 따라 온갖 악마들이 창궐하고 있으며, 흔히 전사의 나라라 하는 드레이 지넨의 고왕국조차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가이우스 케사스는 숙고 끝에 더 이상 전진을 포기하고, 대초지에 진지를 구축했다.

루멘 제국의 교범에 충실하게 설치한 토루는 견고했고, 놀 족과 수많은 전투를 벌이며 단련된 케사스의 병사들은 강건했다. 가이우스 케사스는 무용과 지도력을 겸비했지만 지나치게 강직한 성품 탓에 황제의 미움을 사 제국의 변경인 놀란도로 좌천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니그라 투리스의 재앙 직후 악마들의 제물로 전락한 중앙군과 달리 병력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가이우스 케사스는 주변 지역의 야만 종족을 물리치고, 몰려드는 피난민을 구원했다. 흔히 하비히츠 제국의 남부 원정이 캄푸스 인을 암흑 시대에서 해방시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때까지 남부 대륙의 인류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바라가 대초지에서 놀 족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 영웅 하르만의 등장

암흑 시대의 막바지, 알토크 인의 한 갈래인 하비히츠 부족에 하르만이라는 이름의 걸출한 영웅이 등장했다.

무용과 지략을 겸비한 하르만은 열국 난립의 시대를 끝내고 강대한 통일 왕국을 건설했다. 알토크 족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왕위에 오른 하르만은, 이제 야만 종족으로부터 인간의 영토를 되찾겠노라 선언했다.

하르만이 이끄는 알토크 왕국의 군대는 오크와 고블린을 상대로 연전 연승하며 대수해 살터스와 인접한 플로린 땅까지 진격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후세에 길이 회자될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하르만의 신하 되기를 자청한 플로린의 군주 샤를이, 믿을만한 동맹으로서 엘 그라디스의 수호자 타나라와 루푸스 대전사 볼드 바타르를 하르만에게 소개한 것이다.

인간과 엘프, 루푸스의 영웅들은 야만 종족의 상대로 한 성전(聖戰)을 결의하고, 상고 시대 엘프와 드워프의 가장 오랜 맹세를 계승하는 군사 동맹을 체결했다. 이를 다른 말로 두 번째 맹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이에 위협을 느낀 오크와 고블린 역시 핏빛 깃발 아래 연합 세력을 형성하고 히에라-바실레이아에 맞섰다. 이로써 북부 대륙을 무대로, 문명 세계의 국가들과 야만 종족의 세력들이 정면으로 맞서는 거대한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장장 십여 년에 걸친 길고도 처절한 싸움 끝에, 신성 동맹은 피의 깃발 우르다타를 카스트라 그란디스 바깥으로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하르만이 장렬하게 전사하고, 장자인 아이거가 그 뒤를 이어 알토크 왕위에 올랐다.

성전이 끝나자 알토크 왕국의 영토는 과거 루멘 제국의 북부 속주 전체와 비견할 정도로 넓어졌다. 아이거는 고대 루멘의 정통을 계승하는 하비히츠 제국을 선포하고, 하르만의 무덤에 성황(聖皇) 광명제(光明帝)의 시호(諡號)를 바쳤다.

아이거는 또한 타나라와 볼드 바타르를 각각 신생 제국의 수호경(守護卿)과 변경백(邊境伯)에 봉했으며, 엘프와 루푸스가 명예 신민(臣民)으로서 하비히츠 영토 내에서 모든 권리를 누린다고 선언했다. 타나라와 볼드 바타르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하비히츠 제국은 명실상부한 북부의 패자 그리고 문명 세계의 영도 세력이 되었다.

이렇게 인간의 두 번째 제국인 하비히츠를 주축으로 엘프와 루푸스가 참여한 제5시대의 신성 동맹 히에라-바실레이아, 줄여서 하이란이 탄생했다. 아이거는 젊은 시절부터 고대 루멘의 역사와 문화에 심취했으며, 인류 제국의 건설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북부 대륙의 정세가 안정되자, 아이거 대제는 고대 루멘의 영토를 수복하기 위한 친정(親征)에 나섰다.

원래 하비히츠 부족의 수호신이자 이제는 신생 제국의 상징이 된 비상하는 매가 그려진 깃발 아래, 오크와 고블린을 상대로 한 성전을 통해 단련된 수만 명의 정병(精兵)들이 우르투스 회랑을 통과했다.

당시 남부 대륙에는 아직도 놀 등 야만 종족들이 위세를 떨쳤고, 인간의 세력으로는 스페치아와 캄파니, 나바라 등 몇몇 도시들이 고립된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거 대제는 크고 작은 싸움으로 놀 족을 몰아내고, 인간의 도시들을 해방시켰다. 캄푸스 인들은 아이거를 해방자로 환영하며, 루멘 제국의 후계 그리고 인류 제국의 유일 황제로 인정했다.






■ 삼황자 전쟁의 발발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영광을 마침내 손에 넣은 아이거 대제는, 그러나 어이없게도 원정 도중 풍토병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다.

원정에 동행했던 황태자 아람은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제국 본토로 귀환을 서둘렀다. 그러나 아람이 우르투스 회랑에서 드레이 지낸의 재건을 꿈꾸는 헤르바티 고산족의 전사왕 베르베크와 충돌하는 등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제도 히에라콘에 머무르던 2황자 츠반이 먼저 황제를 자처했다. 그리고 막내인 3황자 트란은 겨우 목숨을 건져 플로린 지역으로 도망쳤다.

이후 세 황자는 저마다 자신이 아이거 대제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하며 내전을 벌였다. 하비히츠 제국의 영토는 셋으로 갈라져 츠반은 제도 히에라콘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역을 차지했고, 아람은 코르누스 산맥과 인접한 남부 지역을 장악했다. 그리고 막내 트란은 플로린의 반왕 골루아와 손을 잡고 자신의 세력을 넓혀갔다.

사실 플로린 왕국 내부적으로는 하비히츠 제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원래 플로린은 일종의 연맹 왕국으로, 성황 하르만에게 충성을 맹세한 샤를 대왕은 전제 군주가 아니라 유력 귀족들로 구성된 제가 회의에서 선출된 지도자였다.

하르만이 샤를을 플로린 왕으로 봉작하면서 세습 왕조가 시작됐기 때문에, 유서 깊은 귀족들 중에는 공공연히 그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넘긴 인물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플로린은 원래 북방 빈터란트의 투르스 족이 대륙에 개척한 영토로, 귀족 가문들 중 상당수가 투아르단 왕국과 혈연을 가지고 있었다.

대륙 진출을 염원하는 투아르단 왕국은 플로린 지역이 하비히츠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고, 암암리에 왕가와 대립하는 귀족들을 지원했다. 마침내 아이거 대제의 남부 원정으로 제국의 간섭이 느슨해진 틈을 타, 골루아 백작이 반란을 일으켰고 플로린 왕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황자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자, 골루아 백작은 향후 플로린의 완전한 독립을 조건으로 삼황자 트란을 지원했다. 후일 삼황자 전쟁이라 불린 이 내분은 무려 칠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제국 각지에서 날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가장 먼저 무너진 황자는 각각 플로린과 남부 대륙의 지원을 받는 형제들과 달리 히에라콘에 고립된 둘째 츠반이었다.

제도를 수복한 아람은 트란을 플로린 왕 골루아의 괴뢰라고 비난하며 총공세를 준비했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골루아는 트란의 신병을 아람에게 바치고, 자신은 맨발에 머리를 푼 채로 히에라콘의 궁정에 출두했다.

이는 플로린과 하비히츠가 모두 뿌리를 두고 있는 고대 알토크 족의 관습에 따른 행동으로 전쟁에 패한 지도자가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부족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비를 청하는 의미였다. 아람은 트란과 골루아를 반역죄로 처형한 뒤, 친 제국파인 샤를의 적통을 왕좌에 복위시키면서 삼황자 전쟁을 마무리했다.






■ 남부 도시들의 부흥

북부 대륙이 삼황자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있는 동안, 코르누스 산맥 이남의 도시들은 다시금 번영하기 시작했다.

아이거 대제의 원정으로 구 루멘 제국의 영토에서 야만 종족이 일소되었고, 서부 대초지도 케사스 가문이 이끄는 나바라 인들이 놀 족을 장벽 바깥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평화와 안정이 돌아오자 원래 풍요롭던 남대륙의 도시들은 급격히 성세를 회복했다. 특히 삼황자 전쟁에서 아람을 적극 지원했던 스페치아는 제국의 협력으로 우르투스 회랑을 통한 무역로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리부스 강과 이어지는 운하를 건설해 수상 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캄파니와 스페치아로 이어지는 길목을 따라 대륙 남북의 재화와 물산이 끊임없이 이동했고, 제국의 내전이 끝난 이후 교역은 더욱 활발해졌다.

남부 대륙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암흑 시대 버려진 땅이나 도시 사이의 공백지도 차츰 사라졌고, 고립된 채 살아가던 인류는 마침내 루멘 제국 시절의 영역을 회복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루멘 제국의 정통 후예인 캄푸스 인들의 자신감은 날로 높아져 갔다. 마침내 스페치아 시의 유력 가문인 스포르차는, 남부 대륙의 각 도시가 상호 방위를 위한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도시 별로 고립된 나머지 야만 종족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에는 단지 군사적인 목적 외에도, 도시 간 도로와 수운의 정비, 봉화와 파발을 통한 연락망 구축 등 경제적으로 활용 가능한 세부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다수 도시들이 흔쾌히 찬성했고, 대륙 남부의 인간 거점들은 느슨한 동맹의 형태로 묶이게 되었다.

조약 체결 이후 캄푸스 인들 사이에는 루멘 제국의 멸망 이후 잃어버렸던 연대감과 자부심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남부 대륙에 산재한 여러 도시를 한꺼번에 부를 때 우정을 의미하는 아미스타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미스타드에 속한 도시들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고,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스페치아에서 출발한 상단이 캄파니가 생산하는 곡물을 각지로 실어나르고, 나바라의 용맹한 전사들이 도시들 사이의 교역로를 방어했다.

오랜 어둠의 시기를 지나, 대륙 남부에서도 인간의 영역이 점차 넓어졌으며, 적어도 주요 도시 인근 지역에서는 더 이상 야만 종족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플로린 독립 전쟁과 파다나의 굴욕

남부 대륙의 캄푸스 인들이 다시 하나로 뭉치는 동안, 북부 대륙에서는 플로린 독립 전쟁이라는 또 다른 내분이 발생했다.

표면적으로는 하비히츠 황제가 플로린의 왕위 계승에 개입하며 촉발된 이 전쟁은, 사실 과거 아람과 골루아의 시대부터 축적된, 아니 원래 연맹 왕국의 군주였던 샤를이 성황 하르만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세습 왕조를 건설하면서 시작된 양국 간의 오랜 갈등과 불화가 마침내 폭발한 결과였다.

초반에는 모두가 하비히츠 제국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투아르단 왕국이 본격적으로 플로린을 지원하자 전쟁은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남부 대륙의 여러 도시들은 전쟁의 추이를 지켜보며, 아이거 대제의 남부 원정 당시부터 계속해 오던 하비히츠에 대한 조공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결국 하비히츠 제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 내전은 대륙에 수많은 분란의 씨앗을 심어놓게 되었다. 플로린 독립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 하비히츠 제국은 곧바로 조공을 중단한 남부 도시들에 대한 응징을 개시했다. 하비히츠 황제는 우르투스 회랑을 통해 대군을 파견했고, 아미스타드 인들은 항전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다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각 도시의 지도자들은 황제가 보낸 장군 앞에 머리를 풀고 사죄하는 굴욕을 감내해야 했을 뿐 아니라,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무거운 조공 의무를 떠안게 되었다.

하비히츠 제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부 대륙의 최대 곡창인 파다나 지역을 직할령으로 삼았다. 황제는 파다나 북부에 거대한 성채를 건설하고, 총신들 중 하나에게 변경백의 작위를 내려 그 일대를 다스리게 했다.

훗날 파다나의 굴욕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사건으로, 하비히츠 제국은 다시 한 번 대륙의 지배자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아미스타드 인들의 가슴 속에는 제국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이 쌓이게 되었다.






■ 아미스타드 도시 연방의 대두

아베라르도는 스페치아 시의 지배 가문인 스포르차의 당주 두카드 스포르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산수와 문학, 철학, 웅변 등에 소질을 보였으며, 화술이 뛰어나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어내는 일에 능숙했다. 그는 서른 살 무렵까지 상인으로서 아미스타드 영내의 여러 도시는 물론이고 하비히츠 제국, 그리고 엘 라노와 샤카라 같은 이종족의 도시까지 오가며 상품을 거래해 큰 돈을 벌었다.

뿐만 아니라 특유의 사교성을 발휘해 각지의 유력자들과 돈독한 친분을 쌓기도 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한 아베라르도는 젊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교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파다나의 굴욕을 통해 독립성과 주권을 철저히 부정당한 남부 도시들의 하비히츠에 대한 적개심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아베라르도는 이런 분위기를 틈타 아미스타드 인들의 결속을 강화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다른 도시까지 확대해 나갔다.

오랜 세월에 걸친 준비 끝에, 마침내 아베라르도는 원대한 계획의 첫 단계를 시작했다. 그는 유사시에 발동하는 조약이 아니라 항구적인 군사 동맹의 성격을 가진 아미스타드 연방의 출범을 추진하는 한편, 알폰소 케사스나 미켈레 로쏘 등 다른 도시의 지도자들과 함께 더 이상 제국에 조공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하비히츠 황제 군트람은 이에 대해 우려와 유감을 표시했지만, 아미스타드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군트람은 파다나 지역의 변경백인 비테게에게 군사 행동을 명령했다. 이때가지만 해도 하비히츠 제국에서는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변경백의 출진은 본격적인 침공이라기보다 일종의 무력 시위였다.

하비히츠 제국은 파다나의 굴욕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재현되리라고 생각했다. 즉, 위풍 당당한 제국의 용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남부 대륙의 소심한 장사치들이 겁을 먹고 스스로 머리를 조아릴 줄 알았다.

하지만 변경백이 스페치아 시를 포위한 후 사죄를 요구하자, 아베라르도 스포르차는 단호한 거절과 함께 제국군과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다혈질로 유명한 비테게 변경백은 격분하여 스페치아 시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고, 그렇게 훗날 대륙 전쟁의 서전(緖戰)으로 평가받는 스페치아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아베라르도는 스포르차 가문 휘하의 도시 청년단을 동원해 스페치아 내부의 불만 세력을 억누르는 한편, 가용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스페치아의 모든 시민이, 여자와 어린이까지 총동원되어 성벽 위로 돌을 나르고 무너진 부분을 복구했다. 하비히츠 제국군은 본격적인 전투를 예상하지 못한 탓에 투석기과 충차 등 공성 병기가 부족했고, 덕분에 스페치아 시는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함락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뒤, 마침내 아베라르도가 기다리던 응원군이 도착했다. 기사왕 알폰소가 이끄는 나바라의 기병대가 제국군의 후방에 나타난 것이다. 아베라르도는 제국군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자 나바라 시로 도움을 청하는 사자를 보냈다.

그는 알폰소 케사스의 인품과 역량에 대한 신뢰만으로, 반드시 시간 내에 원군이 도착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나바라 기병대가 무서운 기세로 제국군의 후방을 들이치자, 사기가 오른 스페치아 시의 방어 병력도 쉴 새 없이 화살과 투창을 퍼붓기 시작했다.

앞뒤로 적을 맞이한 제국군은 정예 군사답게 분전했지만, 결국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변경백 비테게도 혼전 중에 전사했으며, 살아서 하비히츠로 돌아간 병사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스페치아 공성전의 승리로 아미스타드 인들은 커다란 자신감을 얻었고, 그 동안 답보 상태에 있던 도시 연방의 창설도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하비히츠 제국이 이대로 물러날 리는 없기 때문에, 대규모 상비군의 조직과 전쟁 물자 확보 등 전쟁 준비가 시급했다.

스페치아 공성전의 승리와 나바라 기병대의 활약에 자극받은 각 도시의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연합군에 지원했다. 아미스타드 영내에서는 전에 없던 상무(尙武) 풍조가 유행했고, 지식인과 학자들 사이에서도 루멘 제국의 몰락이 자국의 방위를 알토크 족 용병들에게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각 도시 지도자들로 구성된 연방 평의회는 각 도시마다 성벽을 보수 혹은 증축하고, 거대한 종탑과 봉화대를 건설했다. 이로써 아미스타드 연합의 도시들은 보다 굳건한 방어 태세를 갖추었으며, 어느 한 도시가 침략당할 경우 신속하게 원군을 파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 우니온 연합의 창설과 코르누스 산맥의 비극

하비히츠 제국이 아미스타드 연방의 독립과 변경백 비테게의 죽음을 좌시할 리 없다는 점은 분명했다.

실제로 태양제 군트람은 스페치아 공성전의 패배 소식을 접하자 즉시 원정 준비에 착수했다. 이런 정황을 포착한 아미스타드 측은 동맹 세력의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무리 도시 연방의 결속이 공고하다 해도, 북부 대륙을 지배하는 거대 제국 하비히츠와 정면으로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

아베라르도는 직접 엘 라노와 샤카라, 시라카, 심지어 미그달까지 방문해 대륙 남부의 여러 종족과 교섭을 벌였다. 그는 아미스타드 연합이 독립을 선언하고 반기를 든 이상 제국은 남대륙을 직접 관할하려 들 것이며, 제국의 대군이 남하하면 아미스타드 뿐 아니라 인근 모든 세력이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각 종족을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 상인으로 떠돌던 시절부터 구상해 오던, 대륙 남부를 포괄하는 대동맹을 결성했다.

한편 하비히츠 제국에서는 아미스타드 정벌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속국 내지는 식민지로 여겼던 아미스타드에 의해 오천 병력이 전멸하다시피 하고 변경백까지 전사한 사건은 제국의 수치로 여겨졌다. 기사 계급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는 즉시 아미스타드를 응징하고, 나아가 남대륙의 모든 인간 도시를 제국이 직접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래부터 호전적인 성격이 강한 하비히츠 제국의 많은 귀족과 기사들은 파다나 평원을 비롯한 대륙 남부의 드넓고 비옥한 토지, 그리고 부유한 도시 국가들을 약탈해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에 대한 열망으로 들떴다. 태양제 군트람은 절친한 벗이자 심복인 플로린 왕 조프루아에게 아미스타드 원정의 준비를 지시하고, 황제 자신이 직접 친정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황제의 칙령이 반포되자 제국 각지에서 전쟁에 굶주리고 출세에 목마른 기사와 하급 귀족들이 갑옷과 무기를 챙겨 히에라콘으로 모여들었다.

꼬박 두 해에 걸친 준비 기간 끝에, 하비히츠 제국의 원정군이 히에라콘의 성문을 나섰다. 원정군의 선봉에는 황태자 시절부터 남다른 무용과 담력으로 이름을 날린 태양제 군트람과 하비히츠 최강의 무력 집단인 제국 기사단이 섰다. 준비 기간이 길었던 까닭은 하비히츠 제국의 이번 원정이 단순한 무력 행사가 아니라 아미스타드의 완전 정복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정군의 후미에는 공성전을 염두에 둔 투석기와 충차가 줄을 이었고, 장기전에 대비해서 어마어마한 물자와 치중이 포함되었다. 남부로 진격한 제국의 원정군이 가장 먼저 공격한 대상은 아미스타드 소속의 도시가 아니라 중부 산맥의 고산족 정착지였다. 하비히츠와 아미스타드 사이를 가로지르는 코르누스 산맥의 고산족들은, 제국 영토로 편입된 이후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몸이 날래고 활쏘기에 능한 고산족 전사들은 유격전을 펼치며 제국에서 파견한 관리와 코르누스 인근 지역에 봉토를 가진 귀족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파다나 요새의 제국군이 스페치아 공성전에서 패배한 이후에는 이런 저항 세력이 더욱 기승을 부려, 하비히츠 영주가 살해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제국군은 하비히츠 영내로 진입하기 전에 후방을 안정시키고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고산족 저항 세력의 토벌에 착수했다. 제국군의 토벌은 철저하고 집요해서, 저항 세력이든 아니든 건장한 성인 남성은 모두 처형당하거나 원정군에 강제 징병되었고 고산족 마을과 정착지가 몇 군데나 초토화 되었다.

이로 인해 제국에 대한 고산족의 원한은 더욱 깊어졌고, 일시적으로는 코르누스 산맥 일대가 잠잠해졌지만 더 큰 분란의 소지를 남기게 되었다.






■ 가을 전쟁의 시작과 끝

코르누스 산맥을 지나 파다나 요새에서 여름을 난 원정군은, 이어지는 가을 스페치아로 진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제국 측 예상과 달리, 스페치아 아니 아미스타드 도시 연방은 수성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연합의 각 도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수적으로 열세인 아미스타드 측에서는 도시 방어를 위해 병력을 분산시킬 경우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페치아 공성전의 영웅 알폰소는 대담하게도 최소한의 방어 병력까지 모두 차출, 제국의 원정군과 비슷한 규모의 군세를 형성했다. 물론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어차피 회전에서 패배하면 한 줌의 방어 병력은 의미가 없다는 논거로 각 도시의 유력자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알폰소가 지휘하는 아미스타드 연합군은 파다나 평원의 남쪽 경계에 포진한 채 제국군을 맞이했다. 아미스타드 연방이 수적으로 약간 열세였지만, 제국군이 대륙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행군을 거친 직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전투였다.

형형색색의 기치가 오르고 전사의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제국군은 진형을 좌우로 벌려 적을 포위하려 했고, 이에 맞서는 연합군은 쐐기꼴로 중앙 돌파를 노렸다. 일단 양측의 선봉이 검과 방패를 마주치자 순식간에 수백 수천의 병사들이 죽어나갔다. 사위에는 온통 죽어가는 자들과 죽어있는 자들로 가득했고, 강물처럼 흐르는 피가 평원의 옥토를 듬뿍 적셨다.

파다나 평원에서 제국군은 병력의 우세를 이용한 정면 승부를 고수했다. 실제로 이는 전술적으로 올바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미스타드에게는 숨겨진 수가 존재했다. 전투가 반나절 정도 계속되었을 때, 세 방향에서 일제히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제국군의 척후를 피해 거리를 두고 매복해 있던 우니온 연합의 군사들이었다. 서쪽에서는 엘 라노의 아쿠아 엘프들이, 동쪽에서는 이블리스와 시렌이 각기 제국군의 측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북쪽에서는, 놀라운 속도로 파다나 평원의 경계를 따라 우회 기동한 판테라 전사들이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저 전설적인 돌격을 감행했다. 삼면에 적을 맞이한 하비히츠 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태양제 군트람은 이름난 기사답게 예상치 못한 전개에도 병사들을 독려하며 분투했지만, 알폰소 케사스와 검을 나눈 끝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알폰소가 군트람의 황금 투구를 창 끝에 걸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자, 제국군은 전투를 포기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니온 연방은 달아나는 적군을 파다나 평원의 북쪽 경계까지 추격했으며,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제국의 원정군 중 3할에 이르는 수가 죽거나 포로로 붙잡혔다. 이는 사실상 하비히츠 건국 이래 가장 치명적인 패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미스타드 연방의 모든 도시들은 밤새도록 종을 울리고 폭죽을 터뜨렸으며, 아베라르도 스포르차와 알폰소 케사스, 미켈레 로쏘, 프랑코 데 루카 등 영웅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 남북국 시대의 개막

가을 전쟁의 승리로 아미스타드 도시 연방은 하비히츠 제국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하비히츠 제국이 파다나에서 입은 손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아미스타드가 우위를 차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투입한 원정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하비히츠 제국은 최종 방어선을 코르누스 산맥 북쪽까지 후퇴시켰다. 아미스타드 연방은 파다나 평원의 영유권을 차지했고, 헤르바티 고산족의 잇따른 봉기로 코르누스 산맥 일대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특히 가을 전쟁에는 하비히츠와 아미스타드 외에도 아쿠아 엘프, 이블리스, 판테라, 시렌 등 다양한 종족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런 정세 변화의 여파는 대륙 전체에 미쳤다.

승리감에 도취된 아미스타드 연방에서는 과거 루멘 왕국의 영토를 되찾자는 재정복 운동이 일어났다. 동족이라는 의식 없이 살아오던 아미스타드 인들이, 단 한 차례의 승전을 계기로 위대한 루멘의 후예라는 동질감을 갖게 된 것이다.

아베라르도가 이끄는 연방 평의회의 주도 하에, 아미스타드 도시들은 점차 하나의 국가로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각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정비되고, 도시 사이의 완충지대로 존재하던 공백지가 개척되었다. 그밖에도 새로 획득한 파다나 평원의 영토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난공불락의 관문 요새를 건설하기도 했다. 이로써 북쪽의 하비히츠와 남쪽의 아미스타드가 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남북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