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스 세게관, 고대 루멘 시대 (각 항목을 선택하시면 해당 정보로 빠르게 이동합니다.)

  새로운 안트로포스 출현
  초기 루멘의 성립
  중기 루멘의 발전
  제정 루멘의 태동
  시황제 유벤타스
  루멘 제국의 발전
  섭리의 탄생과 신들의 황혼
  니그라 투리스의 재앙
  알토크 인의 남하 
  군인 황제 시대
  루멘 제국의 멸망



☞ 세계관 1편, 창조부터 용과 거인의 전쟁 그리고 엘프 등 상고 시대까지 [바로가기]

☞ 세계관 3편, 암흑 시기에 이어 남북국 시대의 개막 현세까지 [바로가기]



■ 새로운 안트로포스 출현

벤투스가 릴리안테스를 파괴하자, 생명 나무에 깃들어 있던 권능이 온 세상에 퍼져나갔다.

이 권능은 다이몬 신족이 창조한 만물에 영향을 미쳐, 섭리가 생겨난 이래 고정되어 있던 본질과 형상에 변화를 일으켰다.

다만 피지스가 릴리안테스에 부여한 권능은 혼돈이 아니라 조화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매우 점진적일 뿐 아니라 섭리가 부여한 법칙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졌다.

그렇게 이 세계의 수많은 동식물은 세대를 거듭하며 구조와 기능이 더 복잡해지고 종류와 수가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이렇게 진화한 종들 중 몇몇은 에시르나 드베르그에 버금가는 지능을 가지게 되었다. 진화에 의해 지능이 높아진 종족들은 대부분 질서나 섭리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의지와 욕망이 그들 안에 내재한 혼돈의 기운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오크나 고블린, 트롤 같은 어리고 지적인 종족들은 지성이 없는 동식물과 달리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고 파괴와 살육을 일삼았다. 몰락해 가는 종족 에시르와 드베르그는 이들보다 아득히 앞선 문명을 보유했지만, 수적인 열세 탓에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지온 세계에는 미쳐버린 선주 종족들과 미친 채로 태어난 야만 종족들이 들끓었다. 그러다 마침내 질서와 혼돈이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지성을 발현시킨 종족, 즉 에시르의 뒤를 잇는 새로운 안트로포스가 출현했다.


새로운 안트로포스, 인간은 에시르와 마찬가지로 질서와 혼돈이 조화를 이루는 종족이었다.

비록 이런 조화는 에시르와 달리 약하고 깨지기 쉬웠지만, 그래도 인간은 자기 안의 혼돈을 다스리려 애쓰는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엘 그라디스의 에시르는 미망 속에서도 이상과 완성을 추구하는 이 어린 안트로포스 종족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에시르는 인간이야말로 유일 의지에서 비롯한 자신들의 역사를 계승하고, 그 발자취를 이어갈 존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 그라디스의 에시르는 인간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지식과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하고 인류 문명의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






■ 초기 루멘의 성립

에시르의 도움으로 발전한 여러 갈래의 인류 문명들 중 루미나라는 일파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평원족 의 영웅 루미라스가 갈색 오크를 물리치고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왕국 루미나를 세웠다고 한다. 흔히 평원족이라고도 하는 캄푸스 인, 그리고 소수의 헤르바티 고산족이 루미나 건국에 참여했다.

이후 일곱 명의 왕이 루미나를 다스렸고, 그들 중 마지막 셋은 루미라스의 후예와 결혼한 헤르바티 족장의 혈통이었다고 전해진다. 전설의 진위야 어쨌든 루미나가 왕정 국가였고 후기에 이르러 헤르바티 인의 지배를 받았다는 자체는 역사적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초기 루미나의 왕은 정치와 군사, 종교를 포괄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루미나는 시작부터 여러 부족의 연맹 성격이 강했던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각 집단의 지도자들이 원로원을 구성해 왕권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수파인 헤르바티 족이 왕위를 차지하면서, 정체(政體)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결국 루미나는 헤르바티 왕에게 충성하는 루미나 지넨과 원로원을 따르는 루미나 루멘으로 분열했고, 한동안 파다나 지역에는 두 개의 국가가 병존했다.

루미나 지넨과 루미나 루멘은 때때로 영토나 자원을 놓고 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오크나 고블린 등 야만 종족의 침략 앞에서는 하나로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선주 종족인 크로쿠타 즉 놀 족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루미나 지넨이 멸망했고, 다시 루미나 루멘이 놀 족을 격퇴했다. 이로써 파다나 지역은 오롯이 루미나 루멘의 영토가 되었다.

한편 루미나 지넨의 생존자들은 코르누스 산맥으로 터전을 옮겨 새로운 나라인 드레이 지넨을 세웠다. 이 때를 기점으로 헤르바티 족은 적어도 루멘의 공식적인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드레이 지넨은 제국 루멘이 멸망하고 나서도 수백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며 하비히츠 제국 등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코르누스 산맥에 위치했던 고산족의 나라 드레이 지넨은, 오늘날까지 헤르바티 고왕국이라는 이름을 전하고 있다.

이 시가의 루미나 루멘은 도시 국가에 가까웠다. 루미나 루멘의 시민들은 원로원의 투표를 통해 집정관 아르콘을 선출했다. 루미나 루멘의 신분 제도는 엄격하지 않아서, 연배와 지혜를 갖추면 누구라도 원로가 되고 또 집정관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다.

아미스타드 일부 학자들이 제국 시절의 전성기보다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하는 인류의 초기 공화정은 바로 이 시기의 루미나 루멘을 일컫는다. 그러나 사방이 평탄하고 비옥한 파다나 지역에 자리한 루미나 루멘은 야만 종족의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침략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점차 사회적 계급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 중기 루멘의 발전

야만 종족들에 비해 신체 능력이 뒤떨어지는 인류가 오크와 놀 등과 맞서 싸우려면 무기와 방어구가 필요했을 뿐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작전을 활용해야 했다.

그래서 루멘 군대의 주축은 중장 보병이었다.

그런데 당시 금속은 값비싼 자원이라 가난한 사람들은 군인이 되기 위한 장비를 갖추기 어려웠다. 결국 재산의 다과를 기준으로 차등적인 종군권(從軍權)이 발생했고 이는 곧 참정권으로 이어져 병원회(兵員會) 켄투리아가 원로원을 대체했다.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주위의 인간 부족을 병합하고 세력을 불리는 동안, 루멘은 사실상 오늘날의 하비히츠나 심지어 판테라 종족의 샤카라와 유사한 군사 국가의 성격을 유지했다.

중무장한 보병들이 방진(方陣)을 이루는 전법은 거칠고 사나운 야만 종족을 상대로 효과를 발휘해, 루멘은 숙적인 갈색 오크를 북부 삼림 지대까지 몰아냈다.

코르누스 산맥 이북의 알토크 지역까지 속주로 삼자, 루멘은 엘 그라디스의 실반 엘프 종족과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마룡의 광란과 디아스포라, 즉 에시르 분열 이후 쇠퇴해 가던 실반 엘프는 인류를 자신들의 후계로 여겼기 때문에 호의와 친절을 베풀었다.

실반 엘프는 루멘의 인간들에게 마법을 비롯한 학문과 기술을 전수했고, 일부는 고문이나 조언자 역할을 자청하기도 했다. 엘프의 발전된 기술과 마법을 손에 넣자, 인류는 야만 종족을 손쉽게 압도할 수 있었다.

루멘 인들은 점차 무기가 아닌 마법을 가장 강력한 힘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지식과 학문을 중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과거 높은 신분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중장 보병의 역할은 이제 반 야만 상태에 머물러 있던 알토크 인 용병들이 대신했다.

그리고 루멘 인들 중 고위 마법사들은 파트리키라는, 오늘날의 귀족과 유사한 계층을 형성했다. 신흥 계급인 파트리키는 현자회(賢者會) 사피엔스를 결성해 병원회와 함께 루멘의 정치를 이끌었다.

병원회와 현자회의 이원 집정부 시대에 루멘 인들은 건축과 예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때로는 인간 특유의 집념과 도전 정신을 발휘해 엘프나 드워프조차 능가하는 성취를 보이기도 했다.

이전까지 오크나 고블린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던 속주의 알토크 인들도 루멘의 지배를 받으며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흡수했다. 공화국 루멘의 영광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고, 이 시기 인류가 차지한 광대한 영토는 전에 없던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 제정 루멘의 태동

루멘 후기는 부와 권력, 그리고 무엇보다 마법 사용에 따른 계급의 분화가 고착되기 시작했다.

병역이나 육체 노동은 주로 속주 출신의 알토크 인들이 도맡았고, 루멘 시민은 주로 정치나 학문, 마법 연구 등 보다 고상한 직무에 종사했다. 루멘 시민 중에서도 대대로 고위 마법사를 배출한 파트리키가 아닌 평민 계급 플레브스는 정계나 공직에 진출해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출세가 힘들었다.

예외가 있다면 파트리키 명문가의 가신이나 피후견인인 클리엔테스가 되거나 모두가 기피하는 군역에 나서는 방법밖에 없었다. 루멘 황가의 시조인 에르메키스 아크무스는 바로 후자의 경우로, 한미한 가문 출신의 그는 어린 나이에 군 복무를 선택했다.

에르메키스 아크무스는 갈색 오크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군단 사령관이 되었지만, 일부 파트리키가 장악한 주류 사회에는 결코 입성할 수 없었다.

에르메키스는 수도 루멘의 중앙 정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알토크 속주에 노력과 열정을 쏟았다. 그는 갈색 오크를 몰아내고 북부 삼림 지대를 개간했으며, 관대하면서도 공정한 지배로 알토크 인들의 신임을 얻었다.

에르메키스의 명성이 높아지자, 점차 능력은 있지만 출신이 평범한 루멘 청년들이나 알토크 인이라는 이유로 진급에서 누락된 하급 장교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었다. 이런 움직임을 수상하게 여긴 루멘 중앙군은 사문회(査問會)를 열어 에르메키스를 소환했다.

그러자 에르메키스는 대담하게도 휘하 군단과 함께 루멘 본토로 귀환, 수도가 보이는 리부스 강 유역에 진지를 건설했다.

평의회는 즉시 에르메키스를 반역자로 선언하고 토벌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부분 알토크 인이거나 플레브스 출신의 루멘 인이 사령관으로 있던 속주의 6개 군단 중 네 곳이 에르메키스를 지지하고 나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속주의 병력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평의회는 루멘 본토의 중앙군을 출동시켰다. 하지만 루멘 중앙군은 파트리키 가문의 자제들이 정계나 관직으로 진출하기 전에 거쳐가는 직책을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마법 전력은 다소 우세했지만,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에르메키스의 속주 군단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에르메키스는 리부스 강 유역에서 중앙군 3개 군단을 각개격파한 뒤, 무장을 해제하고 단신으로 리부스 강을 건넜다. 평의회는 강 건너에 버티고 있는 속주 군단의 보복이 두려워 감히 그를 체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에르메키스가 평상복에 붉은 망토만 걸치고 백마를 탄 채 입성하자, 수도 루멘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평민 계층은 마치 오크나 놀 족을 대승을 거둔 개선 장군을 맞이할 때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에르메키스는 평의회에서 루멘의 건국 정신에 위배되는 신분 제도 및 클리엔테스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파트리키와 플레브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연설했다.

그리고 루멘 후기부터 평의회에서 선출하던 아르콘을 예전처럼 시민 전체의 투표로 뽑게 한 뒤,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관이었던 바르카스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무려 다섯 번이나 집정관을 연임했다.






■ 시황제 유벤타스

에르메키스의 집권은 루멘 사회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지배 계급을 이루던 파트리키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었다. 반대로 플레브스 계층에게도 그 동안 막혀 있던 정계나 중앙 관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또한 에르메키스와 함께 본토로 진군했던 알토크 인 병사들에게 루멘의 시민권이 주어졌다.

이를 기점으로 알토크 인도 전장에서 공을 세우거나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증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루멘 시민으로 거듭난 알토크 인은 자신의 고향인 속주의 관리로 부임하기도 했다. 이는 알토크 속주를 진정한 루멘의 일부로 만드는 동시에, 독립성을 보다 강화시키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다.

한편 다섯 번이나 집정관을 연임하면서, 에르메키스는 점점 더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평민 계층은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으며, 내전 이후 실권을 잃어버린 평의회는 그를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실제로 속주 출신의 알토크 병사들은 에르메키스를 루멘의 ‘왕’으로 칭하기도 했다. 에르메키스가 총애하는 부관 바르카스는 이런 현상을 목격하며 근심에 잠겼다.

바르카스는 유력한 파트리키 가문인 아반타스의 사생아로, 비록 플레브스나 다름없는 처지에 불과했지만 어릴 때부터 정통 루멘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루멘의 초기 공화정을 동경하고 재현하려 했던 그는 파트리키 위주의 계급 사회를 타파해야 한다는 에르메키스의 주장에 찬동했다.

그러나 점점 모든 권력이 에르메키스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등 상황이 자신의 생각과 달리 흘러가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낌새를 눈치챈 파트리키 세력은 바르카스에게 접근해서, 원래 목적과 달리 독재자가 되어버린 에르메키스를 처단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그 당위성과 진정성을 받아들이려면, 구시대의 유물인 파트리키가 아니라 에르메키스의 심복이자 정치적 동지인 바르카스가 거사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결국 파트리키 세력의 설득에 넘어간 바르카스는 만찬 석상에서 건배를 청하던 옛 상관의 심장을 찔렀고,에르메키스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비보가 알려지자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동을 일으켰고, 루멘 시내는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바르카스는 그 자리에서 병사들에게 체포되었고, 평의회는 성난 군중을 진정시키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다.

중앙군을 총동원한 끝에 시내의 소요는 가까스로 멈췄지만, 에르메키스의 지지 세력인 플레브스는 물론이고 속주의 군단들까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루멘 전체에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평의회는 중앙군 사령관 중 가장 연장자인 유벤타스 아트너스에게 사태 수습을 맡겼다. 유벤타스는 명문 중의 명문 파트리키로 꼽히는 아트너스 가문의 후계자로, 그가 암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고 하자 플레브스 계층을 중심으로 한 에르메키스의 추종 세력은 크게 반발했다.

유벤타스는 휘하 중앙군을 움직여 폭동과 소요를 다스리는 한편, 에르메키스의 죽음에 대한 수사를 단시일에 끝마쳤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과 달리, 기득권을 되찾고자 하는 파트리키 세력을 암살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했다.

유벤타스가 발표한 명단은 루멘의 유력한 파트리키를 망라하다시피 했고, 그 중에는 아트너스와 혈연으로 이어진 가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내심 유벤타스를 믿고 있던 파트리키 세력으로서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배신 행위였다.

재판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이, 성난 군중이 이들의 가문으로 쳐들어가 저택을 불지르고 일가족을 몰살시켰다. 유벤타스는 휘하 병력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한 마디의 명령만을 내렸고, 치안을 유지해야 할 중앙군은 무차별적인 폭력을 방관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가문들도 덩달아 화를 입었고, 가까스로 화를 면한 일부 파트리키는 교외로 피신하거나 숨을 죽인 채 사태의 추이를 주시했다.

날뛰던 군중이 제풀에 지칠 무렵에야, 유벤타스는 중앙군을 풀어 폭도들 중 주동 세력과 특히 죄질이 나쁜 자들을 잡아들였다. 유벤타스는 그들을 살인과 강도의 죄로 참수형에 처한 뒤, 에르메키스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파트리키들과 나란히 효수했다.

시민들은 유벤타스의 과감하고 단호한 일 처리에 열광했고, 그는 이듬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파트리키라는 출신 성분에도 불구하고 에르메키스의 후계자를 자처한 유벤타스는 플레브스를 중용하고 속주 출신이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늘렸다.

세 차례의 임기를 마친 뒤 유벤타스는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종신 집정관에 올랐다. 유벤타스는 비록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모든 권력을 독점하며 사실상 루멘의 제정 시대를 열었다. 때문에 후세의 역사가들은 그를 시황제(始皇帝)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 루멘 제국의 발전

유벤타스의 양자 카이로스는 젊은 시절 군인으로 복무하며 속주의 여러 지역을 고루 경험했고, 선거를 통해 종신 집정관이 되었다.

이 시절에는 루멘 본토와 인접한 지역에 놀 족의 침략이 잦았는데, 군 경험이 풍부한 카이로스는 몸소 전선을 누비며 병력을 지휘했다. 사람들은 경의를 담아 카이로스를 임페라토르, 즉 최고 사령관이라 불렀다.

이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는 훗날 아미스타드 말로 황제라는 단어의 뿌리가 되었다. 또한 하비히츠 어로 황제는 카이로스의 이름에서 비롯한 카이저라고 한다. 임페라토르 카이로스는 자신의 지위를 아들에게 승계했고, 곧 루멘 황가의 시조가 되었다.

카이로스가 초기 루멘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혈통에 따른 권력 세습을 강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이를 견제할 파트리키 세력이 유벤타스 시절 일소되다시피 했으며 둘째, 속주의 알토크 인이 대거 루멘 시민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알토크 출신의 시민들은 정치 참여의 욕구와 공화정에 대한 향수를 지닌 순수 캄푸스 혈통의 루멘 인들과 달랐다. 알토크 인은 고등 교육을 받은 경우가 드물었고, 원래 가부장적인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자랐으며, 주로 군 복무를 통해 시민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상급자에 대한 절대 복종에 익숙했다.

이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임페라토르에게 변함 없는 충성을 바쳤다. 그래서 루멘 제국에는 ‘황제의 권력은 속주로부터 나온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원래 루멘이 코르누스 산맥 북쪽 지역을 속주로 삼은 이유는 반 야만족인 알토크 인의 발호를 저지하고 한편으로 엘 그라디스와 교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제정 시대에 들어와서는 알토크 속주도 완전히 루멘의 일부가 되었다.
루멘은 명실상부한 인류의 통일 제국으로 자리잡았고, 인구와 영토 면에서 다른 어떤 국가나 종족도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루멘 인들의 마법 수준은 영원한 수명을 지닌 엘프에 비해 전반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었지만, 실용적인 목적 특히 군사 방면의 활용에 있어서는 오히려 앞서는 측면이 있었다. 여기에 알토크 병사들의 무용이 더해져, 군사적인 역량에서는 이미 루멘 제국과 대적할 세력이 없다시피 했다.

엘프와의 관계도 역전되어, 북방의 니더란트 노른 족과 오우거의 연합 세력이 엘 그라디스를 공격했을 때 루멘 제국이 구원에 나서기도 했다.

루멘은 이제 엘프와 대등한 동맹 관계였고 실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날로 쇠락해가는 엘 그라디스를 외침으로부터 보호하는 입장이었다. 공화정 말기의 혼란 속에서 주춤했던 문화적인 역량도 제국의 안정과 함께 발전을 거듭했으며, 타라소스 황제 치세에 최고조를 이루었다.

루멘 제국이 드워프의 협조를 얻어 본토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장벽 카스트라 그란디스를 건설한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 제3시대는 그야말로 인류 제국 루멘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섭리의 탄생과 신들의 황혼

사실상 제정을 수립한 시황제 유벤타스로부터 카이로스, 페리소스, 타라소스, 드라이단, 힐란, 아트니우스로 이어지는 칠현제(七賢帝)가 다스렸던 약 250년 동안, 루멘에는 평화와 번영이 계속되었다.

임페라토르 카이로스의 치세 말년, 오우거 로드 안카르나쉬에게 속주의 3개 군단이 전멸하는 참패를 당하긴 했지만, 제국의 방어선을 살터스 지역으로 후퇴시킨 뒤로는 군사적으로도 안정적인 시기가 계속되었다.

거대 장벽을 건설한 타라소스 황제 때부터는 변경의 수비도 더할 나위 없이 견고했고, 국내의 치안이 확립되어 교통과 물자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제국 내의 각지에서는 도시가 번영했으며, 엘 그라디스 또한 루멘 황제의 보호 아래 서서히 국력을 회복해 나갔다.

루멘 제국의 영향력 아래 온 대륙이 평화를 구가하던 이 시기를, 후세의 역사가들은 팍스 루메나, 즉 루멘에 의한 평화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팍스 루메나 시대의 거대 장벽 건설로 인해 인간과 엘프를 중심으로 한 안트로포스 문명이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평화가 오래 지속된 나머지 루멘 인들 사이에서 타락과 방종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칠현제 시대의 후반에는 제정 초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파트리키와 플레부스, 루멘 본토와 알토크 속주 사이의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 니그라 투리스의 재앙

칠현제 시대의 막바지, 루멘 제국에는 커다란 재앙이 일어났다.

그 발단은 파트리키 계급의 몰락 이후 비밀 결사로 변한 현자회가 지닌 야망이었다. 현자회 사피엔스의 마법사들은 다시 한 번 루멘 제국의 주도권을 차지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보다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다.

그러던 중 현자회 소속의 마법사 술라가 코르누스 산맥 북쪽에서 스페르마 광맥을 발견했다. 스페르마는 일종의 광석으로 신화 시대 거인들이 파괴한 혼돈의 씨앗으로부터 새어 나온 다이몬 신족의 권능이 결정화된 물질이었다. 스페르마의 정체를 밝혀낸 술라는 상고 시대의 엘프 여왕 에를리오네처럼 그 힘을 이용하고자 했다.

술라는 인류가 스페르마라는 열쇠를 통해 창세 시대의 다이몬 신들에 버금가는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술라는 현자회가 지닌 자원을 총동원해 스페르마를 채취하고, 코르누스 산맥 깊숙한 지역에서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다이몬 신들의 권능을 연구했다.

이런 행동은 곧 게헨나에 도사리고 있던 다이몬 신족의 관심을 끌었고, 악마들이 찾아와 술라와 다른 마법사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결국 술라는 악마들의 꾐에 넘어가 코르누스 산맥에 거대한 차원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문으로 강력한 악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현자회의 마법사들은 죽음을 당하거나 타락해 다이몬 신들의 노예가 되었고, 코르누스 산맥에는 하루 아침에 거대한 검은 탑이 솟아났다. 이 탑은 세계와 세계를 잇는 일종의 다리로서, 게헨나의 다이몬 신들이 지온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훗날 니그라 투리스의 재앙이라고 불리게 된 이 사건은 지온 세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섭리가 유지하던 조화가 흔들리면서 기상 이변과 자연 재해가 잦아졌고, 다이몬 신들의 권능으로 혼돈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러자 섭리에 기반한 엘프들의 마법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는 엘 그라디스와 루멘 제국의 약화로 이어졌다.

반대로 오크와 고블린 등 야만 종족과 그들이 사용하는 원시 주술은 예전보다 강력해졌다. 또한 이지를 상실했던 선주 종족들 중 일부가 다시 문명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니그라 투리스의 재앙을 기점으로 수 세기 동안 지속되던 팍스 루메나, 루멘의 평화가 끝나고 대륙의 정세는 서서히 혼란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 알토크 인의 남하

루멘은 코르누스 산맥 북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여러 차례 알토크 족과 충돌했다.

이후 루멘 제국이 알토크 지방을 속주화 하고, 이민족에 대한 포용 정책을 펼치면서 이런 갈등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카스트라 그란디스 건설 후, 제국의 경계 바깥에 위치한 일부 알토크 인들은 사실상 루멘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몇몇 부족은 루멘의 폐쇄 정책에 반발하며 국경 지대에서 약탈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장벽 안쪽으로 이주하고자 했다. 장벽 바깥의 알토크 인들은 카스트라 그란디스 내부의 공한지에 정착하거나 루멘 군대에서 복무할 수 있었고, 시민권 획득도 가능했다.

알토크 족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농경지가 부족해지자, 장벽 바깥에서 안쪽으로 이주하는 알토크 인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알토크 인들은 루멘 문명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와 문화적인 생활을 동경했다.

루멘 제국도 관용적인 태도로 알토크 인의 이주를 허락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 문화적 적응과 융합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제국 말기, 알토크 인의 이동은 약탈과 파괴를 수반하게 되었다. 니그라 투리스의 대재앙 이후 루멘 제국의 방비가 약화되자, 야만 종족들이 일제히 발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카스트라 그란디스 때문에 루멘 속주를 침략하기 어렵자 대신 장벽 바깥의 알토크 부락을 공격했다.

공포에 질린 알토크 인들은 대대적인 이주 허가를 요청했지만, 루멘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다. 알토크 인의 반란이 일어나자 루멘 제국에서는 황제 발렌스가 직접 병사를 이끌고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니그라 투리스의 대재앙으로 마법 전력이 크게 약화된데다, 속주 군단의 병사들은 같은 알토크 인들과 싸움을 피하려 들었다.

결국 루멘 군은 마르타 전투에서 대패하고, 발렌스 황제마저 전사했다. 마르타 패전으로 말미암아 이후 150년 동안 제국 각지에서 혼란과 무정부 상태가 뒤따랐다. 알토크 인의 여러 부족들이 제국의 모든 지역을 거의 마음대로 이동하면서 루멘의 행정 조직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또한 알토크 인의 남하로 카스타라 그란디스의 방어가 허술해지자, 북쪽의 오크와 고블린, 남쪽의 놀 등 야만 종족들도 장벽을 넘어 루멘 제국의 영토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 군인 황제 시대

니그라 투리스의 대재앙과 알토크 인의 남하 이후 루멘 제국의 영토는 연일 공격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루멘 제국은 카스트라 그란디스와 속주 군단에 의지해서 간신히 침략을 막아내야 했고, 급격한 사회 변동이 일어났다. 마법의 시대가 저물고 창칼의 시대가 도래하자, 전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속주 출신 알토크 병사들의 위상이 높아졌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대단위 공격 마법을 난사할 수 없게 되어, 수렵 생활을 하는 알토크 인들이 장기로 삼는 궁술의 중요성이 재고되었다.

당시 루멘 제국과 야만 종족의 군사적 충돌은 주로 카스트라 그란디스를 중심으로 하는 수성전(守城戰)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알토크 궁병대는 곧 종군 마법사들을 대체하는 핵심 전력으로 부상했다.

루멘 제국의 말기, 야만 종족을 상대로 한 전쟁 수행은 알토크 병사들이 도맡다시피 하게 되었다. 그러자 본토 출신의 순수 루멘 혈통이 속주 군단의 지휘를 맡는 관행도 점차 사라지고, 알토크 태생 사령관의 수가 하나 둘 늘어났다.

시간이 흐르자 속주 군단은 알토크 인 사령관을 중심으로 군벌(軍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약화는 군사력 외에 행정력의 저하로도 이어져 제국 정부가 더 이상 군단을 통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자 군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졌고, 심지어는 제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에 속주 군단이 직접 개입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알토크 출신의 속주 군단 사령관 가하르만이 제위를 찬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찬탈자 가하르만은 황제의 관을 쓰고 난 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부하인 발타르의 배신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이후 각지의 군단 사령관들이 무력으로 제위를 차지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으며, 루멘 제국은 십 년에 걸쳐 열두 명의 황제가 바뀌는 대 혼란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의 황제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몇몇 루멘 인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속주 출신의 장군이었기 때문에 흔히 군인 황제라고 불렸다. 이처럼 제위를 둘러싼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 루멘 제국의 군사력은 점점 더 약화되어, 야만 종족의 침략을 저지할 힘을 잃어버렸다.

반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탄압 정치는 더욱 강화되어, 루멘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자치시(自治市)가 쇠퇴하고 시민들의 충성심도 땅에 떨어졌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와 같은 군인 황제의 등장이 루멘 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평가한다.






■ 루멘 제국의 멸망

루멘 제국의 멸망 시점에 대해서는 역사가들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이들은 가하르만의 반역으로 마그라스 혈통의 마지막 황제 다르바가 제위에서 물러난 때 루멘이 멸망했다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군인 황제 시대까지 루멘 역사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연대상으로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십 년에 걸쳐 열두 명의 황제가 바뀌었던 군인 황제 시대의 혼란기를 거치며, 루멘의 국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특히 군사 부문이 형해화 되다시피 해 속주 군단은 제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에 동원되느라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남하한 알토크 부족들이 그 공백을 휘젓고 다녔다.

군인 황제 시대의 막바지, 병력 부족과 관리 소홀로 카스트라 그란디스가 여기저기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북쪽의 오크와 남쪽의 놀 등 야만 종족이 일제히 밀려들자 이미 오합지졸이나 다름 없던 루멘 군은 속수무책으로 패전을 거듭했다.

일부 군단의 사령관은 그 와중에도 제위를 놓고 내전을 벌이다 공멸하기도 했다. 대륙 전역에 걸쳐 야만 종족이 위세를 떨쳤고, 인간의 도시는 서로 고립되는 지경에 놓였다. 루멘 황제는 더 이상 무의미한 칭호가 되었고 속주의 각 군단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야만 종족의 공세에 무너졌다.

이렇게 루멘 제국이 멸망한 이후 인간의 영역은 기존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루멘 제국 말기의 대혼란 속에서 인간들은 생존 자체가 벅찰 지경이었고, 과거의 찬란한 유산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바야흐로 이백 년에 걸친 암흑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대륙 북부에서는 야만 종족의 발호가 비교적 빠르게 진정되었다. 강인하고 용맹한 알토크 인들은 창칼로 자신들의 영토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또한 루푸스 종족의 참전으로 오크와 고블린 등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알토크 인들은 곧 서로에게 무기를 돌렸고, 전란이 끊이지 않는 열국 난립의 시대가 도래했다.

대륙 남부에서는 놀 족의 침략이 백여 년 동안 더 계속되다, 광명제 오토의 원정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 종족의 숨통이 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