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사 : 프릭셔널 게임즈 ⊙ 장르 : 호러 어드벤처 ⊙ 플랫폼 : PS4, PC ⊙ 발매일 : 2015년 9월 22일

"인디언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도둑맞는다고 생각했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이먼 재럿은 어둡고 습하며 쇠냄새가 진동하는 공간에 홀로 남게 된다. 그곳의 모든 것은 붉거나, 푸르거나, 검다. 어째서 여기에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도 잠시, 엄습하는 것은 본능적인 공포다.

이제 해저로 들어간다. PATHOS-II. 분명 어딘가 빛은 있겠지만, 빛조차 무거워 도달하지 못하고 가라앉는 것이 바로 심연이다. 모든 것이 갇혀있는 것 같은 그곳에 마지막 인류가 있다. 자신의 생존과 인류의 존속 모두를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의 희망은 어떤식으로 이루어질까.

누군가는 받아들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해조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몇가지 설정이나 사소한 디테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SOMA라는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그만큼 이 게임이 던지는 화두는 마치 심해 속의 닻처럼 무겁고, 단단하고, 직설적이다.

'암네시아' 시리즈로 유명한 프릭셔널 게임즈의 신작, SOMA의 엔딩을 보고 난 후, 누군가와 이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어떤 게임이었고, 어떤 부분이 가장 무서웠고, 어떤 장면이 아름답고 충격적이었는가가 아니라,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주제의식에 대해서. 그만큼 이번 리뷰에서는 보다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마치 영화를, 소설을 비평하듯이, '플레이 그 이후'의 시점에서 말이다.

※ 본 리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순으로 완성되는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그 수천 년의 역사


SOMA에 대해서 보다 심도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흔히들 말하는 스토리텔링, 그러니까 '서사'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다. 소설, 영화 같은 서사 예술은 수 천 년 전부터, 혹은 인류가 의사소통을 시작한 때부터 만들어진 역사 깊은 것들 중 하나다.


과거 고대 그리스에서 서사 예술의 왕은 단연 희곡이었다. 그리고 그 희곡에서 빠트릴 수 없는 두가지는 '모순'과 '인간의 고결함'이었다.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로 유명한 소포클레스의 희곡을 비롯해 그리스 희곡의 대다수는 모순을 토대로 인간의 고결성을 시험하는 이야기였고, 그 핵심은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모순 만큼 어떤 이야기에서든 흥미로운 소재도 없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예언을 피하기 위해 한 행동이 예언을 완성'하고 마는 모순 때문에 한 인간의 삶이 박살나고 무너지게 된다. 이 거대한 시련은 오이디푸스가 그 스스로 자신이 가진 인간적 고결함을 자신이 원치 않는 사이 배신하게 만들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원망하며 스스로 눈을 멀게 하도록 만든다.


이런 거대한 인생의 굴레를 다룬 희곡들처럼, SOMA의 큰 틀은 같다. SOMA를 만든 프릭셔널 게임즈는 정말 거대한 모순을 끌고와,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그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당신의 발, 당신의 손이 되어 오감으로 전해지는 감각



SOMA의 게임플레이는 지극히 심플하다. 키보드는 발이고, 마우스는 손이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아이콘 몇 개를 빼면 달리 있는 UI도 없다. 전작 '암네시아'의 유일한 단점이었던 그래픽도 이제는 정말 대단해져서, 물, 빛, 금속의 세가지를 이용한 SOMA의 시각효과는 최상급이다. 4km 수심의 심연에서 혼탁해지는 시선과 빛, 정신 상태에 따라 분리되어 보이는 삼원색 등. 사운드는 당연히 훌륭하며, 플레이어는 모든 감각을 통해 '고립'되었다는 기분을 그대로 받는다.


SOMA는 사실 호러 요소를 가지고는 있지만, 완벽히 호러 게임이라고 지칭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사실 이 부분에는 전작 '암네시아' 의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임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암네시아'에 비하면 SOMA는 보다 스릴러에 가깝다. 이는 보다 많은 이들이 이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하는데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체 비율에 한해서지, 중간중간 나오는 잠입 구간은 전작의 그야말로 숨막히다 못해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을 완벽히 구현한다. 물리칠 수도 없고, 격리시킬 수도 없는 적들이 돌아다니는 복잡한 미로형 통로들을 지나가기 위해 몸을 감추다가도, 상황에 따라 내달리기도 하고, 시야를 돌려 뒤통수를 지나가는 소리를 듣다보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더군다나 훌륭한 시각효과와 음향, 또 사실적 1인칭 시점에 UI 배제, 분위기 구현에서 오는 엄청난 몰입도는 플레이어에게 그야말로 '해저에서의 고립'이라는 상황에 대한 공포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게임을 하는 동안 플레이어는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 격리에서 오는 두려움의 한복판에 버려진다. 이런 뛰어난 구현력이 바로 이 게임을 단지 구경이 아니라 직접 플레이 해봐야 하는 이유다.



'통 속의 뇌'를 잇는 '전자칩 속의 자아'



복제인간 혹은 또다른 나, 기계 속의 나 같은 모순적인 소재는 무수히 많은 게임, 영화, 소설에서 다뤄져 왔다. 고전 B급 명작 영화 '토탈리콜'에서부터 시작해 '공각기동대', '더 문' 이르기까지, 문명 사회에서 흐릿해지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현대에 와서 굉장히 많이 다루어진, 여전히 뜨거운 소재다.

결코 가볍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주제이고 소재이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이 클리셰로 정착되어 너무나 간단하게 간파당하곤 한다. 헐리우드 영화들인 '6번째 날'이나 '아일랜드' 역시 이런 복제인간을 소재로 했지만, 별다른 특징, 새로운 관점의 시사가 없었기에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만큼, 뜨겁지만 새롭다고 하기엔 조금 철이 지난, 어느정도 파훼가 진행된 소재였던 것이다.


이렇듯 이제는 흔해진 소재지만, SOMA의 대단함은 이 소재를 어떻게 다뤘느냐에서 나타난다. 사실 그동안 많이 다루어졌던 소재들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SOMA는 이 모든걸 깨버리고 선을 넘는다. '인류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수단으로 남은 모두의 인격을 전자칩 속에 담아 우주 속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게 한다'는, 사람에 따라 회의감이 들기도 하는 이 게임의 최종 목적 자체가 그 과감함을 대변한다. 육체가 없는 인격이 존재한다면, 또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이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사람이라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지금까지 육체를 벗어나 삶을 이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실 이런 논제는 마치 '사후 세계' 처럼 모호하기도 하고, 동시에 매우 흥미롭다. 사실 비슷한 것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에 있었던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정신을 담는 그릇'을 인간의 육체나 그를 닮은 무엇인가로 한정해왔다. 이를테면 사이보그나, 복제인간이나, 다른 이의 몸 같은 걸로.


하지만 SOMA는 보다 파격적으로 나아가, 아주 조그마한 전자칩에 담긴 자아가 과연 인간으로서 인정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직구를 던진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달리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도 없으며, 마치 꿈을 꾸듯 자신이 상상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단지 특정한 패턴의 전기 신호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이 상황에 '과연 그것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그 누구도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 모호한 문제다.



경계의 모호함,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



드디어 '모호함'까지 왔다면, 이제는 SOMA라는 게임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SOMA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경계의 모호함'이다. 이 게임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도,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도 모호하다.

SOMA의 첫 시작에는 "Reality is that which, when you stop believing in it, doesn't go away.(현실이란, 그것을 더이상 믿지 않더라도, 사라져버리지 않는 것이다.)" 라는 필립 K. 딕의 말이 나타나는데, 게임이 끝나고 난 뒤 다시금 이 문구를 보면, 마치 SOMA의 제작진이 필립 K. 딕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모호함, 혼동들은 플레이어가 직접 주인공인 '사이먼 재럿'이 됨으로서 극대화 된다. 재미있는 것은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 유저라 할지라도 게임 속에서 체험하게 되는 여러 '사이먼 재럿' 들을 과연 어떤 존재로 볼 것인지, 심지어 몇 명의 사이먼 재럿이 등장하는지 조차도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서사 매체들, 소설이나 영화처럼 제 3자의 객관적인 시점에서 사이먼 재럿들의 이야기를 보았다면, 너무도 쉽게 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직접적인 체험을 겪었기에, 그리고 그 수많은 사이먼 재럿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혼란스럽다. 처음 토론토에서 죽은 사이먼 재럿을 포함해 마지막 ARK의 프로그램까지 4명의 사이먼 재럿이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사이먼 말대로 '동전 던지기'에서 이겨온 1명의 사이먼 재럿과 마지막 ARK의 재럿만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혹은 맨 처음의 사이먼이 아닌 것들은 모두 진짜가 아니라 단정지을 수도 있다.

그동안의 게임들은 너무나 쉽게, 플레이어와 게임 상에서 조종하는 캐릭터를 1대1로 짝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SOMA는? 그런 속편한 정의가 불가능하다. 분명 플레이어는 그동안의 통념을 통해 단순히 프로그램, 전기적 신호 뭉치에 불과한 몇몇 인물들에 대한 거부감을 표할테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 자신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품은 사이먼 재럿이 되어보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가 이 모든 사이먼 재럿을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결국 SOMA는 '현실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매우 길게, 더욱 거대한 담론을 통해 던진다. 기계 속을 전전하며 자신이 몇명인지도 모르는 이가 마침내 도달한 프로그램 속 이상향이 과연 현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네가 직접 겪어보고도 이게 가짜라고 생각해?" 라고 말하는 듯한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



거대하고 근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물음



사실 이 게임의 파격적인 개념, 또 엔딩은 어떤 이들에게는 대단한 분노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종말 직전의 인류가 택한 마지막 생존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수도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스캔' 같은 방식에 큰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지금까지 기계 속 인간, 혹은 복제된 자아를 다루는 이야기들은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했다. 그 유명한 '공각기동대' 마저도 물리적 현실 위에 기계로 만들어진 사이보그 신체를 가지고 물리적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인간다운 삶의 기본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SOMA는 그런 현실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깊숙한 곳에 있는 핵심을 찌른다. 육체와 정신의 1대1 매칭이 어긋났을 때, 즉 기존의 기준이 깨어졌을 때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인간이 더이상 현실과 어떤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사이먼 재럿이 누리고 있는 '삶'은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단지 조작된 프로그램에 불과할까?

SOMA가 던진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니, 이제는 그 답에 대해 고민할 때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을 통해 형성되는걸까?, 하는 궁극적인 질문을 통해 우리는 제각각 '내가 스스로 인간이라 생각하는 이유'를 찾아갈테고, 거기에 좀 더 매진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홀로 남겨진 사이먼 재럿이 비명을 지르듯 내뱉는 'Don't leave me Alone(날 혼자 두지마)'을 들으며 우린 그의 감정에 너무나 강하게 동감하게 된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노력했던 사이먼 재럿이 이루어낸 생존은 결코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모순을 깨닫는 그 순간에 전해져 오는 감정은 단순히 어떤 한가지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막대하다.

고대 그리스의 희곡들은 이미 당대에 부터 주제 면에서 완벽히 완성된 서사 예술이었고, 그 존재만으로 후대를 좌절케 했다. 인류가 심해에서 발사 된 블랙박스에서까지 처절히 살아남는 상황만 아니라면, 천 년 쯤 뒤에는 SOMA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SOMA가 던지는 담론의 크기는 30달러짜리 인디 게임 하나가 품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수준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 담론이 더더욱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와닿는다. 지난 세기 인간사에 대해 진지한 질문들을 던져왔던 소설, 영화 등의 서사 예술의 뒤를 이어, 이제는 '게임'이 사람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르는 주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막대한 고독, 자아정체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중간중간 비춰지는 모든 고뇌들이 과연 '게임'이 아니라면 이렇게 깊고 진하게 전달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SOMA는 스토리텔링, 서사 예술로서의 게임의 능력을 극대화시켰고, 게임이 얼마나 더 멋진 서사를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프릭셔널 게임즈는 그 어떤 개발사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게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디 그들의 게임이 영원히 계속 되었으면 한다. 영원히 별 속에서, 별들과 함께 빛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