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문자'와 함께 발전을 이룩했다. 부모에게 혹은 주위 어른들에게 직접 전수받은 지식과 정보를 몸에 익히는 방식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 중에 하나는 그러한 지식을 글로 남겨 후대에 전달했다는 점이었다. 궁극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 덕분에 인류는 더욱 포괄적인 개념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글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니까.

문자의 장점은 일일히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욕설'의 파괴력 증가다. 우리는 점차 깨달았다.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찰진 욕이 고막을 통해 뇌속으로 전달되는 것보다 문자를 통해 전달될 때 더 기분 나쁘다는 것을. 문자의 특성상 읽는 이는 작성자의 당시 감정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표정과 억양 등 부수적인 요소가 배제되기 때문. 그래서 보통 욕설로 적힌 문자는 읽는 이에게 더욱 맹렬하게 전달된다. 상상력의 힘이란.

오늘 할 이야기는 이와 관련된 것이다. 최근 오버워치를 하다 보면 자극적인 멘트를 듣는 빈도가 크게 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건 옆 동네 이야기 아니냐고? 꼭 그렇지만은 않을텐데.


여기도 더 이상 '클린'하지 않다


'욕을 들으면 수명이 늘어난다'는 말이 있다. 가끔 친한 친구가 욕을 먹고 있는 걸 보면 본인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너 오래 살겠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전혀 없지만, 우리 사이에 '욕 먹기 = 수명 연장'이라는 인식이 깊숙하게 박혀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수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욕먹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기분 좋은 척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자는 나름 심리학을 복수전공했다. 그래서 사람 심리에 대한 내용을 잘 알고 있다. 학점은 묻지 말자. 그건 엄연한 사생활 침해다.

사실 욕설이라는 것은 내뱉는 이로 하여금 후련함을 느끼게 해준다.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참아내기 보다는 해소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과감한 욕설로 스트레스를 푼다. 물론, 욕설은 방송에서 '삐-'하는 신호음으로 처리될 만큼 나쁜 짓이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보면 이러한 상식을 잠시 망각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물론, 모든 팀 게임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일 수 없기에 유저들은 잦은 의견충돌과 팀워크의 부재를 경험한다. 이를 표출하는 방법 중에 자주 활용되는 건 두 가지다. 키보드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통장 잔고를 깎아내리는 방법. 그리고 욕설을 내뱉는 방법. 마지막으로 욕설을 타이핑하는 방법.

▲ 이 정도 채팅이면 '클린'한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은 너무 리스크가 커서 잘 활용되지 않는다. 순간 스트레스는 풀리겠지만, 그날 밤 침대에 누우면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경험할 것이 뻔하다. 두 번째 방법이 활용되곤 하지만, 많은 유저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서 세 번째 방법에 이른다. 게임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느끼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곧장 키보드로 피아노로 연주를 시작한다. 다다다다닥. 그 경쾌한 선율과 함께 치밀었던 화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문제는 욕설의 피해자가 된 사람이다. 욕설은 듣거나 읽는 이의 기분을 망친다. 그럼 그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이를 분출하고 싶어진다.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욕설이 오고간다. 마치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등장하는 유명한 피아노 배틀 장면처럼. 주고받는 키보드의 선율 속에서 채팅창은 점점 오염되고 만다.

우리가 즐겨 하는 오버워치도 마찬가지다. e스포츠 종목 중에 가장 최근에 출시된 오버워치조차 '욕설맨'들에게 점령당하는 중이다. 많은 이가 지나친 욕설을 하는 유저들을 게임 내 존재하는 '신고' 기능에 고발하고 있지만, 오늘도 오버워치 채팅창은 온갖 욕설에 고통받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오버워치가 막 출시됐을 때를 떠올려보면, 채팅창이 꽤 깔끔했다. 그렇다고 그때 오버워치를 했던 사람이 모두 천사였던 건 아니었다. 팀 게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유저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니까. 당연히 '내가 너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의 문장이 오고갔다.

▲ 오버워치 인벤 'Naeri' 님 게시글

그래도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 밑바탕에는 블리자드에 대한... 뭐랄까, 믿음? 이런 것이 있었다. "블리자드는 심한 욕설을 하는 유저에게 강력한 제재를 내린다"는 소문이 유저들 사이에 돌았다. 그리고 때마침 블리자드가 '핵'을 사용하거나 버그를 악용, 혹은 심한 욕설을 한 유저들을 거침없이 철퇴로 내리찍었고, 위와 같은 소문은 점점 '팩트'로 굳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전세계 유저들은 오버워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한국 유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버워치는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아직 그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PC방 점유율은 곧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수. 점점 더 많은 유저들이 입소문을 타고 오버워치를 플레이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욕설 채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같은 말도 더 사나운 표현으로 탈바꿈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 왜 나만 화물 밀고 있냐"고 했을 말도 "아 (욕설) 왜 나만 화물 밀고 있냐고 (욕설)들아"로 바뀌었다. 당연히 상대방의 부모님을 찾는 욕설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상 한 게임 당 한 번 이상은 심한 욕설이 채팅창에 난무하는 것을 본 것만 같다. 블리자드의 강력한 제재에 대한 소문과 이따금 올라오는 제재 관련 '인증샷'도 이들의 언어 폭력을 막지 못하고 있다.

▲ 오늘도 '욕설맨'에 대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사실 게임 내 욕설 채팅 문화... 문화라고 표현하기엔 문화라는 단어에게 너무 미안하다. 아무튼 게임 내 욕설 채팅에 대한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 그리고 하나의 게임 내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욕설의 수위가 올라간다는 것은 더욱 심각한 이야기다.

이 사회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당연히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 그런데 욕설은 듣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므로 안하는 것이 맞다. 내 기분 풀리자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망치는 건 말도 안되는 행동이다. 우리는 문명인 아니겠나.

뭐? 오버워치 하다가 욕을 잔뜩 먹고 화나서 쓴 기사 아니냐고? 기자는 욕을 먹는다고 화를 내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욕을 듣게 되면 내 잘못을 수용하는 편이지. 방금 전에 끝난 게임에서도 가만히 욕을 듣고만 있었다. 음... 무언가를 들킨 기분이군. 기자가 못해서 패배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