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훌쩍 넘는 세월동안 e스포츠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오래 걸린 것 같지만 다른 스포츠 종목의 발전 속도와 빗대어 보면 이만큼 빠른 성장을 보인 경우는 없었다.

사실, e스포츠와 다른 스포츠를 빗대는 것은 맞지 않는 비교법일지도 모른다. 다른 스포츠는 그 하나하나가 각각의 종목이지만, e스포츠는 수많은 종목을 포괄하는 일종의 개념에 가까우니 말이다. 어찌됐건, e스포츠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으며, 그 발전의 이면에는 비디오 게임의 발전이 존재한다. 마치 철강 산업과 조선 산업이 함께 발전해 온 모습과 같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라는 시장은 참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분야에서 일본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국가이다. 세계 3대 게임쇼의 하나를 개최하고, 세계 콘솔 시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명작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e스포츠'라는 단어를 일본에 대입하면, 딱히 이렇다 할 이미지가 나오지 않는다. e스포츠를 꽉 잡은 국가들 사이에 일본의 자리는 없고, 격투 게임 정도를 제외하면 누구도 e스포츠를 이야기할때 일본을 거론하는 일이 없다. 아니 그 전에, 일본 게임 중에 e스포츠로 발전한 게임 자체가 몇 없다. 몇몇 격투 게임이 'evo'등의 대회에서 플레이되는 정도일까.

'시그니아 벤쳐 파트너스'의 '서니 딜런(Sunny Dhillon)'은 이와 같은 e스포츠의 발전을 옆에서 지켜봐온 인물 중 한 명이며, 동시에 일본 게임 시장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게임이라는 산업에서는 '강국'의 면모를 갖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e스포츠'에서는 약소국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일본. 일본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CEDEC 2016의 현장에 그가 발을 들였다.

▲ 시그니아 벤쳐 파트너스, '서니 딜런(Sunny Dhillon)

'어째서 e스포츠는 개발자들에게 중요한가?'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설명하자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다소 난해한 주제. 서니 딜런의 논점은 명확했다. 그는 감성이나 분위기, 열광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논하지 않았다. 오로지 수치로 표현되는 가치만이 그가 강단에 들고 온 모든 것이었다.

"e스포츠는 '경쟁'을 포함한 모든 게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몇몇 관객에게 경쟁하는 게임을 플레이해 보았냐고 물어본 그는 그렇다는 관객의 대답에 '당신 또한 e스포츠 플레이어다'라고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e스포츠는 더 이상 게임에서 파생된 무언가가 아니다. e스포츠는 이미 게임의 일부이며, 모든 게임은 e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모든 게임은 '경쟁'이란 요소와 결부지어 설명할 수 있다. 심지어 혼자 플레이하는 게임의 경우도 '타임 어택'이라는 방법으로 e스포츠화가 가능하다. 실제로 그렇게 e스포츠의 영역을 넓히는 종사자들 또한 존재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명확했다. '더 이상 게임 개발과 e스포츠를 별개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e스포츠는 생각 이상의 부가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e스포츠의 여부는 게임 본연의 가치에서 더 나아간, 일종의 보너스 효과와도 같다. 게임 자체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하되,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밑거름과도 같은 거다.

▲ e스포츠와 기반 산업은 이미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어 그는 e스포츠로 이어진 가치의 사슬(Value Chain)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종목이 되는 게임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퍼블리셔'와 이를 기반으로 꾸려지는 '팀', 그리고 팀간의 경쟁의 무대가 되는 '리그'와 리그를 중계하는 방송사에 이르기까지, e스포츠를 시작으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의 사슬은 마치 꼬리를 문 뱀처럼 원형을 그리며 이어져 있었다. 이 모든 영역이 가치를 창출하는 하나의 집단이며, 동시에 e스포츠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는 산업인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다음 부분이었다. e스포츠와 기존의 다른 스포츠는 태생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종목'의 기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야구, 축구를 비롯한 구기 종목들만 해도, 그 종목의 기원이 되는 스포츠의 시작은 명확하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비슷한 놀이가 플레이되고 있었고, 거기에 '룰'이 생기면서 스포츠가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야구나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집단이나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뤄진 일종의 '자연 발생'의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e스포츠는 모든 종목의 기원이 뚜렷하고, 그 기원이 되는 '개발사' 덕분에 스포츠로서의 지위가 성립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개발사(혹은 유통사)'가 e스포츠로 만들어지는 가치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위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 e스포츠라는 금자탑의 꼭대기에는 '개발사(유통사)'가 존재한다.

개발사는 게임을 창조하고, 이를 이용한 모든 산업에 관여한다. 일반적인 스포츠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개념이 e스포츠에서는 '정점'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서니 딜런'이 처음 말한 '왜 개발자들이 e스포츠에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이 나온다. e스포츠는 이미 성숙한 산업이고, 개발자가 종목의 창조자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물론 종목으로서 e스포츠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일단 고정적인 가치 창출의 수단을 마련하는 입장에서 e스포츠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어 서니 딜런은 다소 진부한, 산업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팀에는 어떤 팀들이 있고, 이들이 어떻게 수익을 만들어 내는지, 방송사들은 또 어떤 방법으로 수익을 만들고,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설명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성장'의 정도였다. e스포츠는 최근 몇 년 사이, 년간 40%가 넘는 연대비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의 예측대로라면 3년 후인 2019년에는 10억 달러 규모를 돌파하게 된다. 절대적인 수치로는 많다고 할 수 없으나, 그 성장세를 바라보면 이게 얼마나 큰 규모인지 가늠할 수 있다.

▲ 절대 가치는 높지 않으나 '성장세'는 무섭다

이제 해답이 나온다.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고, 수익을 거두는 과정은 하나의 순환을 그린다. 거둔 수익으로 다음 작품을 만들 기반을 마련하고, 그 작품을 서비스하면서 또 수익을 거둔다. 이는 게임 산업 자체의 기본과도 같은 흐름이며, 변하지 않는 구조다.

그 와중에 e스포츠가 옆에 붙는다. 마치 커맨드 센터에 붙는 컴셋 스테이션처럼. 게임이라는 기반 안에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뽑아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갑'의 위치는 개발사가 갖게 된다. 개발자가 e스포츠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로는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지 않을까 싶다.

'서니 딜런'의 강연은 다른 강연과는 조금 달랐다. 어느정도 감성에 기대는, 열정과 노력을 말하는 강연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PPT에 수치와 도표를 사용했고, 명확하게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 강연에 임했다. 누군가는 그의 강연을 '수익만을 생각하고 말하는 내용'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기자 또한 이 강연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서니 딜런은 방법론을 거부하고,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강연을 지속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한다'가 아닌 '지금 상황이 이렇다'로 시작해 끝나는 내용. 다른 강연이 밥을 먹는 법을 알려준다면, 그는 잘 차려진 12첩 반상을 그냥 보여주었다. 어떻게 먹을지는 개발자들이 직접 생각해야 할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