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년이란 폐관수련의 세월, '야인'이 되어 돌아온 남자 '변현우'
김홍제 기자 (desk@inven.co.kr)
역사와 전통이 깊고, 전문화된 e스포츠 리그일수록 체계적인 연습 환경과 자본이 뒷받침 된 게임단이라는 큰 울타리는 좋은 성적을 내는 팀들의 전제조건이 돼버렸다. 게임이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아마추어와 프로게이머의 경계선이 애매한 경우 무소속 선수들이 본선에 진출에 성적을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15년이란 역사가 이어져온 스타크래프트2나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LoL의 경우 무소속 선수가 높은 무대에 진출하기란 이제는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든 선수가 있다. 자유의 날개 시절, 결승 무대를 밟아보진 못했지만, 항상 래더 상위권, 본선 무대에서 일정한 성적을 내며 '잘하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선수. 연맹과 협회로 선수들을 구분 짓던 시기, 이 선수의 성적도 하락하면서 '역시 연맹은 협회 선수들에게 안되나?'라는 떡밥은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그렇게 그도 잊혀져갔다. 그러나 2년이 넘는 공백기를 깨고 2016 시즌 돌연히 등장해 존재감을 떨치며 무소속 최초 결승 진출에 성공한 소년만화의 주인공 같은 선수. '야인' 변현우의 이야기다.
Q. 사상 최초로 무소속 결승 진출인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팀에 소속되어 있을 때도 결승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고, 예전보다 지금이 더 경쟁이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도 굉장히 신기하다. 다들 인터뷰에서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하지만, 나는 진짜 혼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Q. 무소속이라 고충이 많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음.. 어떤 것들이 힘들다고 단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 몇개만 추려보자면, 일단 연습 상대를 구하는 것. 그게 제일 큰 어려움이다. 내가 원할 때 연습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팀들은 프로리그가 있어서 연습 요청을 하기도 어렵고 예를 들어, 내가 A팀 연습을 도와줬다고 치면 A팀의 상대팀 선수들과는 연습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국내 선수들과 연습 자체가 힘들어지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중국이나 북미, 유럽 선수들, 혹은 아마추어들과 연습한다. 오죽하면 이번 GSL을 준비하면서 박진영 해설이나, 평소 친분이 있는 (조)성주 프로토스와 연습했다.
그리고 경기장 오는 것 자체부터 이미 지친다(웃음). 경기 전날은 항상 긴장상태라 컨디션도 안 좋은편이고, 멀미도 심한데, 매일 천안에서 서울까지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경기할 때, 특히 다전제 같은 경우 매 세트마다 끝난 뒤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상대가 어떤 빌드를 사용했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힘들다는 것? 다른 선수들은 코치가 부스에 들어와서 다 알려주고 조언을 해주지 않나.
2년이 넘는 공백, 변현우는 2015년 겨울부터 래더 상위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등장한 변현우는 오프라인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으면서 온라인 대회를 휩쓸었다.
그리고 공허의 유산으로 시작되는 2016 시즌. 많은 팬들은 변현우가 오프라인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열광했고, '무소속 선수'라는 타이틀은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결국, 무소속 신분으로 쟁쟁한 국내팀 소속 선수들과 경쟁에서 승리하며 스타2 역사상 개인리그 최초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팬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Why. 왜 변현우는 국내 팀에 입단하지 않는 걸까?'였다.
Q. 무소속으로 어려운 점들이 많음에도 국내 팀 활동을 고려하지 않는 것인가?
무조건 팀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다. 지금 시스템에서 내가 국내 팀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e스포츠협회에 포스팅 신청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 다가오는 두려움이 너무 싫다. 그리고 강아지와 떨어지는 것도 싫고.
Q. 숙소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루머가 있는데, 그것 때문은 아닌가?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나도 팀 생활을 합치면 3년 정도는 해봤다. 단체 생활 자체는 좋지만, 너무 빡빡하게 체계적인 시스템은 굉장히 싫어한다. 나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타입이다. 진짜다(웃음).
Q. 2013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2년이 넘는 사라진 기간 동안 뭐하고 지냈나?
복귀할 때부터 이 질문을 엄청 많이 받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내 실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루머가 있었던 거로 알고 있다. 나쁜 일들이 있던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말하고 싶진 않다(웃음).
Q. 경기력 외에도 승리 후 인터뷰에서 4차원 화법으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런 반응이 올 줄 몰랐는데, 신기하다. 동료 프로게이머들도 콘셉트냐냐고 묻지만 전혀 아니다. 원래 내 모습이다.
Q. 2년 동안 사라졌다가 갑자기 등장했고, 게다가 무소속으로 결승까지. 뭔가 산속에서 엄청난 수련을 하고 하산한 '야인'의 느낌인데?
캐릭터가 잡히는 건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던 별명은 아니지만(웃음). 원래 원하던 이미지는 속세와 단절된 은둔자나 데스노트에서 L 같은 느낌을 원했다.
인터뷰 도중 문득,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변현우의 오른쪽 손목이었다. 프로게이머가 아니라도 게임을 정말 열심히 해본 유저라면 간혹 손목의 좌측 하단에 굳은살이 생기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현우의 손목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충격이었다. 수년 동안 업계에서 수십, 수백명의 프로게이머를 봐왔지만, 이 정도 상처는 처음봤다. 도대체 연습량이 얼마나 많아야 이렇게 되는 걸까. 직접 보지 않았어도 그의 노력이 충분히 전해졌다.
Q. 손목 상태가 말이 아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가?
내가 생각해도 연습을 정말 많이 한다. 이 정도 될 때까지 하면 개인리그 결승에 오를 수 있다(웃음). 그리고 요즘은 리그오브레전드나 오버워치에 관심이 높은데, 나에게 갓게임은 스타크래프트2다. 아직도 나는 스타2가 너무 재밌고, 이것밖에 모르는 바보다.
Q. 테란이 저그에게 강한 대신 프로토스에게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본인의 생각은?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완전 못 이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인드 차이다. '힘들지만, 이길 수 있어'와 '사도 정말 사기네'는 한 끗 차이다(웃음).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 결승에서 김유진 선수와 붙는데, 오히려 4강이 더 고비였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Q. 2016년 2월, IEM 타이페이 결승에서 김유진에게 2:4로 패배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프로토스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개념이 없었다. 무소속이라서 최신 트렌드나 개념을 터득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두 세트나 따낸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Q. 항상 긴장감이 발목을 잡았다고 했다. 요즘은 나아졌나?
이번 GSL 4강전을 하면서 느낀 게 긴장을 안 하고 있더라. 마지막 4세트에서는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다. 예전에는 세팅할 때 손을 부들부들 떨어서 마우스 패드도 떨어뜨리고 청심환도 항상 먹었는데 요즘은 먹지 않는다.
Q. 예전 팀 동료들과 연락은 하고 지내는지?
진에어의 (조)성주, (장)현우랑도 자주 연락하고, 아프리카 프릭스 조지현이랑도 가끔 만난다. 얼마 전에 일산에 놀러 갔는데, 현우, 지현이랑 같이 밥을 먹었다. 분명히 성주도 나오라고 했는데, 자야한다고 귀찮다고 안 나오더라(웃음). 그리고 (이)정훈이랑은 가끔 안부만 묻는다.
Q. 결승에 진출한 뒤, 스스로 트위터에 팬들을 위한 치킨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선수 변현우가 아닌 사무국장 변현우가 진행한 이벤트다. 개인적으로도 팬들과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트위터도 팬들이 원해서 시작하게 됐고, 개인방송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 사진이나 글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하다 보니까 재밌더라. 아! 그리고 치킨 이벤트 당첨자는 아이러니하게 백동준 선수 팬이었다.
Q. 혼자서 선수 겸 코치, 사무국 등 1인 게임단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졌다.
GSL 4강 당시, 경기 전 코치 인터뷰를 하는데, 삼성은 송병구 코치가 했고, 나는 무소속이라 그냥 1인 2역으로 내가 하기로 했다(웃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Q. 올해 초 복귀했을 때 온라인 최강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올해 온라인 대회로만 상금을 1500만 원 이상 벌었다고 들었는데?
한국인이 나갈 수 있는 대회는 그냥 다 참가한다고 보면 된다. 첫 번째 이유는 경험이고 상금은 두 번째다. 지금 GSL 결승에 진출한 원동력은 온라인 대회다. 다양한 온라인 대회를 나가는 게 오히려 지금 같이 GSL처럼 중요한 무대에서는 내 빌드나 전략이 노출된다고 볼 수 있지만, 프로게이머가 대회를 가리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꾸준히 온라인 대회에 참가할 생각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준 인벤에 감사드리고, GSL 결승에서 정말 재밌는 경기를 보여드릴 테니까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무소속 최초 우승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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