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과 같은 시기에 개최된 '도쿄게임쇼 2016(이하 TGS)'의 취재를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사소한 근심거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바로 행사 취재가 이어지는 장장 일주일간 평소 즐기던 온라인 게임 '파이널판타지14' 속 일일 컨텐츠인 '일일 복권'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상의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면, 캐릭터의 칭호를 '도박사'로 변경하고 게임 속 유원지인 '골드소서'로 떠나는 '충실한 에오르제아 라이프'를 즐기던 저에게 일일 복권 없이 보내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와중, TGS의 스퀘어에닉스 부스 한켠에 마련된 '파이널판타지14'의 시연 코너는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이자,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죠.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14' 시연 존에서는 아직 한국 서버에 추가되지 않은 신규 컨텐츠, '더 피스트(The Feast)'를 플레이해볼 수 있었습니다. '더 피스트'는 '파이널판타지14'의 첫 확장팩 '창천의 이슈가르드'의 3.2 패치를 통해 추가될 예정인 컨텐츠로, 원형의 투기장 내에서 '4vs4' 혹은 '8vs8'의 협동전 형태로 치러지는 PvP 모드입니다.



◆ 미리 알아두자! PvP 모드 '더 피스트(The Feast)'의 기본 규칙

- 참가 가능 레벨 60, 아이템 레벨 150 조정

- 4vs4 매치 팀 구성 - 탱커 1, 근접 DPS 1, 원거리 DPS 1, 힐러 1

- 8vs8 매치 팀 구성 - 탱커 2, 근접 DPS 2, 원거리 DPS 2, 힐러 2

- 승리 조건: 정해진 목표 이상의 메달을 모으거나, 제한 시간 안에 더 많은 메달을 모은 팀이 승리

- 모든 유저는 기본적으로 100개의 메달을 보유한 상태로 시작

- 상대를 잡으면 해당 유저가 소유한 메달 중 일정량이 떨어지고, 이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진행

▲ FFXIV '아드레날린 러쉬TV'에 등장한 '더 피스트' 플레이 영상



긴 대기열을 지나 시연 존에 들어서니, 먼저 '더 피스트'의 규칙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8vs8 매치로만 진행되는 시연은 빠른 회전을 위해 오직 8분 동안만 진행되며, 상대방을 잡으면 보유하고 있는 메달의 절반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또한, 모든 참가자가 중복되는 일 없이 서로 다른 직업을 선택해서 플레이해야만 했죠.

이때, 떨어진 메달을 한 명의 유저가 계속해서 습득하면 '헤비메달'이라는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해당 디버프가 적용된 상태에서는 적에게서 받는 대미지가 크게 증가하는데요. 웬만해서는 쉽게 죽지 않는 탱커 캐릭터가 계속해서 메달을 습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된 특수 규칙 중 하나였습니다.

이외에도 경기의 템포가 늘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추가된 일종의 서든데스 모드인 '데인저 타임'과 다양한 버프를 획득할 수 있는 '서플라이 박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이후 본격적인 팀 분배가 진행됐습니다. 경기에서 승리한 팀은 '더 피스트'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상품으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순간보다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이었죠.

▲ '파이널판타지14'를 처음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 팀 분배는 '파이널판타지14'를 처음 플레이하는 유저의 수를 고려해서 결정됐습니다

▲ 팀 결정 후에는 상의를 통해 직업군을 배분하는 시간이 진행됐죠.

▲ 직업군을 정한 이후엔 키보드 혹은 패드로 자신에게 맞는 스킬 배치를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 저는 탱커 직업군 중 가장 익숙한 '나이트'를 선택했습니다

평소 선망하던 아이템 레벨 180의 PvP 장비를 풀 세트로 착용하고, 평소 손에 익은 배치로 키 세팅까지 마쳤지만, 경기 시작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익숙하다는 생각에 무심코 선택한 '나이트'는 PvP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을뿐더러, 이번 시연을 통해 '파이널판타지14'를 처음 접하는 '새싹' 참관객이 같은 팀에 4명이나 됐었거든요.

8명의 팀원 중 절반 이상이 '새싹'이라도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시합에 임했지만,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릴 줄을 몰랐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서플라이 박스를 파괴하여 버프 아이템을 챙기려는 팀원은 없었고, 모든 인원이 하나로 뭉쳐 하나의 대상을 먼저 공격한다는 기본적인 전술을 고려할 겨를도 없었죠.

미약하나마 열심히 스턴기를 넣으며 대항해봤지만 어디서 함께 레이드라도 뛰어본 '역전의 용사'들처럼 똘똘 뭉쳐 공격해오는 상대 팀을 도저히 이겨낼 재간이 없었고, 결국, 저의 첫 번째 '더 피스트'는 제한된 전투 시간인 8분을 채 채우기도 전에 메달을 전부 잃는, 압도적인 패배로 마무리됐습니다.

상대 팀의 환희에 찬 승리의 함성을 뒤로하며 빈손으로 부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라며 포기하려던 그때, 승리의 징표인 티셔츠를 받고 돌아가는 참관객들의 뒷모습을 보고 돌연 '역시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심기일전의 마음가짐으로 꼭 승리하여 티셔츠를 얻겠다는 다짐을 하며, 미리 예정된 다음 취재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두 팀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 패자는 말이 없습니다. 물론 티셔츠도 없습니다

바삐 움직이며 예정된 취재에 매진하던 도중, 설욕의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업체에서 마련한 세션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시계를 보니, TGS 행사가 종료되는 5시까지 약 한 시간의 여유가 남아있었죠. 어떻게 할지 망설이며 고민하기도 잠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퀘어에닉스의 부스 앞에 도착한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 종료까지 시간이 얼마 남기지 않아 마지막으로 단 두 명의 참관객만 시연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서둘러 대기열에 합류하고, 다시 긴 기다림을 이어가던 때였습니다. 시연 공간 안에 왠지 낯이 익은 인물이 보여 유심히 살펴보니, '파이널판타지14' 재건의 일등공신인 스퀘어에닉스의 '요시다 나오키' PD가 보였죠.

▲ 예정된 취재를 모두 마치고 설욕을 위해 다시 찾은 '스퀘어에닉스' 부스

▲ 미코테와 라라펠에게 응원을 받고,

▲ 승자에게 주어지는 티셔츠를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웁니다

요시다 나오키 PD는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인벤 게임 컨퍼런스 2016(IGC)' 행사에도 강연자로 참여할 예정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명함을 건네고 인사까지 나누고 나니 '혹시 시연 없이 그냥 티셔츠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다소 비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지울 순 없었지만, 8명이 한팀으로 진행되는 PvP 매치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팀을 이뤄 승리를 거둔다는 불확실한 방법보다는 확실한 방법을 택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승리를 거둬 지난 패배를 설욕한 후, 그 보상으로 티셔츠를 받겠다는 애초의 마음가짐에서 벗어나 그저 티셔츠를 받고 싶다는 본말이 전도된 마음으로 그에게 부탁하자, 요시다 나오키 PD는 웃는 얼굴이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역시 그럴 수는 없죠.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쟁취하세요!"

▲ 마침 파이널판타지14 부스에 방문한 '요시다 나오키' PD

요시다 나오키 PD의 그러한 대답을 들은 순간, 정신이 번쩍 깨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긴 시간 줄을 서며 다짐했던 마음들, 티셔츠를 받아 돌아가는 승자팀의 뒷모습을 봤을 때의 부러우면서도 분했던 감정 등, 잠시 잊고 있었던 다양한 것들이 한꺼번에 물밀듯 터져 나온 것 같았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시연에 참가한 저는 근거리 DPS 직업군인 '용기사'를 선택했습니다. 탱커로서 팀을 지키는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슴을 뜨겁게 만든 새로운 마음가짐이 승리에 대한 눈에 보이는 기여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을 사용하여 상대의 공세를 저지하고,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여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자니, 화면에 승리를 알리는 'WIN'이라는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드디어, 그렇게나 꿈에 그리던 '더 피스트'의 첫 승리를 쟁취한 순간이었습니다.

▲ 개인 피해량 15만, 2/0/1의 스코어로 꿈에 그리던 승리를 거머쥡니다!

승리의 감동을 함께 플레이한 팀원들과 나누고, 서로의 공적을 칭찬하고 있으니, 승자 팀에 보상으로 주어지는 티셔츠가 차례로 제공됐습니다.

검은색 가장 큰 사이즈, '더 피스트'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손에 받아들자 자연스럽게 손이 떨리는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달라붙었나 싶으면서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참가한 해외 게임쇼에서 승리를 통해 얻은 첫 번째 전리품이었기 때문에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는 10월,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을 요시다 나오키 PD를 만나면, 당시의 기억과 함께 이 한마디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쟁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