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텐버즈 유민우 대표

나에게 이 게임을 추천한 사람이 그랬다. "진짜 재밌어요". '캔디 크러시 사가'나 '냥코 대전쟁' 같은 귀여운 게임만 할 것 같은 말랑말랑한 사람이 땀내 가득한 ARPG를 추천하다니 좀 의외였다. 엘린마냥 귀여운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게임이 밝고 경쾌한 느낌도 아닌데 그 사람이 재밌다고 할 정도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 20분쯤 했을까. 솔직히 이야기해서 간만에 재밌었다. 게임 장르 자체는 흔하디 흔하지만, 묘하게 피비린내와 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모바일 게임에 '당연히' 있어야할 피로도 개념이 없어 내가 피곤해 질때까지 하고 났더니 40분정도 흘러 있었다. 40분 간 집중해 모바일 게임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봤다. 무슨 게임이냐고? 텐버즈가 개발한 'IRE: Blood Memory (이하 아이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약을 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강화, 합성 있다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 안타까워 그런다. 아, 개발자한테 돈은 커녕 커피 한 잔 얻어 먹지 않았다. 혹여 그런 의심은 묻어둬라.



■ 남자라면 모름지기 단단하고 묵직해야 되지 않겠나?


그러니까 먼저 게임을 소개하고 대표와의 인터뷰를 옮길 요량이다. '아이어'는 일단 장르 상으로는 흔하디흔한 ARPG다. 콘텐츠 구성은 '블레이드'의 성공이 후 쏟아져 나온 게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레이븐','히트'의 문맥과 같다.

그런데 전투가 다르다. 어두침침한 '룩앤필'이야 그 동안 워낙 다양한 게임들이 나왔으니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며 '밝고 귀여운 세계' 며 '실사를 옮긴 듯한' 혹은 '아름다운 동화 풍 세계' 등등. 그런데 블러드 본을 벤치마킹한 듯한 그 느낌은 전투로도 이어진다.

사실, ARPG가 이미 공식화가 되어 있어서 그 안에 차별화를 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아이어'는 가장 큰 부분인 전투에 방점을 찍었다. 기존의 ARPG들은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세팅'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나 아이어'는 '조작'에 초점을 두었다.

둔중하고 묵직하다. 그리고 느리다. 일반적으로 평타를 때리다가 스킬 쿨이 돌면 엄청나게 화려한 움직임으로 파샤샤샥 스킬을 쓰는 게임과 달리 '아이어'는 두 버튼을 조합해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진행한다. 물론 회피기도 있고 방어기도 있고.

[아이어 중간 보스 플레이 영상]

약간 몬스터헌터의 느낌이랄까. 1:1로 싸울 때의 긴장감이 있다. 가볍고 빠른 요즘 게임과 다른 맛이 분명히 있다. 전투 후 괴물이 터져나가면서 선혈이 흩뿌려지는 장면 또한 생경하다. 긴장감이 주는 재미가 속도감과 화려함이 주는 재미를 넘어선 것 같다. 경쾌한 핵앤슬래시 시대의 도래로 자리를 잃어버린 긴장감의 재림이다.

물론 '아이어'도 스펙 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중간 중간 유저가 전략적으로 스킬을 쓸 수 있어요', '자동 전투에서 타격감과 속도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라는 말과는 거리를 둔다.

특이할 점은 또 있다. 자동전투가 조건부다. 12시간 마다 2시간 동안 '에코의 유적' 버프가 활성화 돼 있는 동안에만 자동전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동전투조차 '스킬사용' 등 선택 옵션 없이 알아서 요정도 뜯어먹고(아이어에서는 요정을 뜯어 먹는 게 포션이다) 기술도 쓰고, 시간제 기술도 다 사용한다.

개인적으로 자동전투를 매우 좋아한다. 바쁜 일상에서 자동전투마저 없었으면 게임을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할 정도니까. 재료를 일일이 모은다고 생각만해도 귀찮고 지겹다. '도탑전기'의 소탕권이 게임 디자인상 엄청난 호평을 받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어는 퀘스트를 진행 함에 있어 아예 스태미너 개념을 없앴다. 게임 자체는 24시간이고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스테미너를 소모해야 한다는 혹은 스테미너가 부족하다는 스트레스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자동전투에 귀찮은 작업을 위임하고 나머지는 직접 즐기는 형태로 애초에 이원화 시켜버렸다.

처음에는 자동전투가 없어서 답답하지만, 콤보를 조합해가며 회피, 방어하는 맛을 한 번 맛보면 전투가 참 재미있어진다. 딱 몬스터가 거기 있고, 내가 몬스터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나랑 몬스터랑 무기로 이야기하는 거다. 낮은 난도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높은 난도로 올라가면 이게 긴장감이 되고 긴장감은 재미가 된다.

[버튼 두 개의 조합과 기술로 전투를 진행한다.]

실제로 현재 아이어를 즐기고 있는 게이머의 30%가 MFi패드 라든지, 블루투스 패드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전투 방향을 다르게 잡았고 이에 사람들이 반응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이어에도 아이템 등급이라든지 강화, 합성은 존재하고 스펙상에서 오는 허들 역시 존재한다. 마감새도 살짝 부족하고 콘텐츠 볼륨도 부족하다. 최적화 문제도 어느정도 해결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깔끔한 느낌은 아니다. 그래도 전투는 신선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돈은커녕 커피도 얻어먹은 적 없다. 현재 개발 인원 16명인 소규모 회사에 나 같은 말단 취재 인력이 무슨 콩고물을 받아먹겠다고 이렇게 쓰겠나. 비슷한 장르, 무기 등급, 강화, 합성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다. 재미있어서 소개해 주고 싶어 그런다. 아, 물론 취향은 좀 타는 게임이지만...


[몬스터마다 공격 특징과 약점이 있다]




■ 우리 같은 미세(微細)기업이 해봐야 안 될 거니까 안 하는 걸 해봤다

'아이어'는 앞서 언급했듯 굉장히 묵직하다. 그리고 느리다. 빠른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가볍고 화려한 것이 흥행에 연결되는 요소로 꼽히기도 하는데,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게임의 속도를 결정하는 데 많은 고심을 했다. 대전의 공방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게임의 속도 보다 심장박동 속도를 올리고 싶었다. 공방이 일어날 때, 전투가 일어날 때 긴장을 하게 함으로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게임이 속도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전투 자체의 팽팽한 긴장감에서 속도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무기마다 공격 속도가 다르긴 하다. 빠른 이동속도를 바탕으로 공격성을 표출하고 싶다면 건틀렛, 한 방을 제대로 넣고 싶으면 대검 등 무기 특색이 있다. 1:1로 싸움을 한다고 염두에 두고 몬스터와 타이밍, 거리 싸움을 구현하고자 했다. 한 대 안 맞으려고 노력하는 긴장감을 살리고 싶었다.

약간 고어한 연출도 연장선에 있다. 괴물이 터져나가며 피 웅덩이가 남는다든지 하는 건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을 강조하고자 한 의도다. 피나 폭발이 주는 말초적인 자극보다는 분위기를 전달해주고 싶었다. 4D가 아니라 전장의 냄새를 맡게 할 수는 없지만, 그 느낌만은 주고 싶었다. 전장의 긴장감. 생존의 땅에서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무너져 버린다는 느낌?

세계관 중에 요정의 피를 섭취해 체력을 회복한다는 설정이 있다. 요정을 뜯어먹는 건데, 요정은 차원을 다니면서 생명의 정수를 축적하고 이를 생명수로 제공하는 거다. 즉 피는 일종의 메타포(metaphor, 隱喩)다. 생명이 축적된 우주의 힘? 그런 판타지적인 느낌이 있잖나."


▲ 으어어 터져 나간다!

대전 액션에 전술적인 느낌을 살리고자 해서였을까? 아이어는 모바일 ARPG들이 대부분 선택하는 '구성'의 재미보다 시쳇말로 '뚜드려 패는' 재미를 준다. 이는 콤보 조합해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디바이스 조작계상의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버튼을 두 개로 간략화하고 콤보 길이를 줄였다. 심지어 배후 공격같이 하드코어한 개념도 들어가 있다. 고전적이다. 그것도 굉장히.

사실상 모바일 ARPG에는 흥행 공식이 있고 흥행에 성공한 게임들은 모두 100%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비슷한 흐름의 UI 및 UX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이미 사용자에게 검증받았다는 뜻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아이어'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많은 게임사가 차별화 차별화하는데 실제로 차별화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고 모험적인 일이었으리라. 아이어와 같은 조합 시스템을 가지고 나온 게임들이 어디 한둘이었겠나. 빛을 못봐서 그렇지. 그런데 이게 오판에서 비롯된 장점이었다.

"뭐... 우리도 기본적인 세팅은 있다. 그런데 잘 세팅해 들어가서 칼질 많이 한다고 이길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다. 고난도에서는 정신 못 차리면 요정을 뜯어먹기도 전에 바닥에 누워버리는 캐릭터를 보기도 한다.

전투 시스템을 이렇게 만든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유행하는 스킬 터치 게임을 못 만들 거 같아서다. 그런 게임은 정말 잘 만들고 잘 이해하는 회사가 정말 정말 많다. 대기업이 가다듬고 가다듬어서 나왔는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같은 시스템으로 경쟁해서 되겠나. 아니, 우리는 중소기업도 아니고 미세(微細)기업이다. 따라갈 수가 없다. 노하우도 없고.

사업적 판단도 있었다. 워낙 핵앤슬래시 게임이 많고, 앞으로도 엄청나게 잘 만든 게임들이 나올 텐데 우리같이 영세한 기업에 마케팅이나 리소스에서 그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아마 이게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하드코어하게 만든 건 오판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콘솔 게이머나 PC 게이머들이 모바일 게임을 제법 즐길 것으로 생각했다. 완전한 오판이었다. 모바일 게임으로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모바일 시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했으니...

덕분에 이런 전투 시스템이 나왔다. 아무래도 가장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게 전투 시스템 아닌가 싶다. 음 그래. 전투 시스템이다. 사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했다. 확확 쓸고 나가는 것보다는 맞으면 '기분 나쁘다'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전장에 딱 둘이 있는 거다. 너랑 나랑 있고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하는데 그게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지향했다. 모탈 컴뱃을 좋아해서 피니싱 무브도 만들어 놓고 앞으로 업데이트를 통해서 점점 이 느낌은 발전시킬 예정이다. 한 외국유저는 랜스의 피니싱 무브인 발 구르기를 보고 본인도 아프다고 표현했다. 그곳을 밟는…. 뭐 암튼 아이어는 전투의 재미가 가장 큰 무기인 것 같다. 단순히 스킬을 쓰는 게 아니라 생각하며 싸우게 유도한 시스템이 경쟁력 있다고 생각한다."


▲ 콤보 공격. 어렵지 않다.

아이어의 효과음도 참 인상적이다. 톤 조절이나 게임의 색채만큼이나. 개인적으로 모바일 게임 사운드를 잘 안 듣는 편인데 듣고 있으면 꿈도 희망도 없는 거 같아 먹먹해서 마음에 들었다. 특히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요정을 뜯어먹을 때의 효과음은 정말 충격적이다. 지하철에서 움찔할 만큼 말이다.

"요정의 괴성 때문에 평점 1점 주는 사람도 있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에서 충격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달까? 내부에는 사운드 제작팀이 없어서 협업을 진행했다. 레퍼런스를 잡아서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전달했는데 이렇게 멋지게 잘 나왔다.

작업하시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 요즘 이런 작업 해본 적 없는데, 되게 오랜만이에요.' 거친 느낌이 나는 리소스를 제작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


▲배후 공격 커맨드도 존재한다.

긴장감 있는 묵직한 전투를 살리는 수동전투를 위해 자동전투도 과감히 조건부로 변경했다. 개발자들 입장에서야 만들어 놓은 훌륭한 콘텐츠를 한 번 파고 들어가보라고 자동전투를 빼놓았겠지만, 사실 이 행동이야말로 모바일 RPG의 근간을 뒤틀어버린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자동전투를 여러 콘텐츠를 순환하며 즐기며 스테미너를 소모하고, 다시 자동전투를 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모바일 게임의 BM인데, 아이어는 아예 자동전투를 한 번에 2시간, 하루에 총 4시간만 할 수 있도록 조건부 자동전투를 하게 했다.

하루에 4시간이면 즐길 것 다 즐기지 않느냐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퀘스트부 분에 있어서 스태미너 개념이 없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통상적으로 모바일 게임은 즐길 수 있는 제한을 두고 이를 제화로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간단하면서도 거부감이 없는 BM이기 때문에 많은 게임사가 애용하고 있다. 착한 과금이랑 칭송받는 게임들도 시간=제화라는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어'에는 애초에 퀘스트 부분에서 스태미너 개념이 없어 이러한 공식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잼으로 구매하면 자동 전투를 더 할 수 있긴 하다. 게임을 좀 파고들었으면 하는 목적으로 이렇게 했다. 게임 색감 자체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낌 아닌가. 그런 느낌을 느끼면서 게임을 했으면 했다.

사실 처음에는 자동 전투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테스트 중에 유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아이어에는 학생 유저가 생각보다 적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자동전투를 추가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무턱대고 자동 전투를 넣고 싶지는 않아 여러 조합으로 테스트를 많이 했다. 그 결과 중간 지점인 지금의 상황에 도달했다. 자동 전투에 시간제한을 두고 수동 전투보다 몇 수 아래의 움직임을 구현하여 파밍 구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반복 작업할 때나 귀찮을 때 유용하다.

반응은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나쁘지 않다. 회사에서 몰래몰래 돌리는 자동 전투 맛에 산다는 해외 유저도 있을 정도다."


▲에코 각성 버프가 있어야만 자동 전투를 할 수 있다. 12시간 단위로 충전된다.

매우 특이하게도 아이어에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섹시한 여성 캐릭터가 출렁거리며 무기를 휘두르는 것에 대해 개인마다 가치 판단은 다르겠지만, 이미 유저 유입에 도움이 되는 요소임은 검증된 바가 있다. 갑옷이나 코스튬 판매 데이터를 보면 실제 매출과 연결됨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이어에는 없다. 여성의 곡선을 완전히 배제했다.

"우리도 고려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개발팀이 다 '아재'라 자신의 경험에 빗댄 분노와 상실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폭력과 땀내 그리고 피냄새. 그래서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멋진 캐릭터가 나왔다. 아무래도 다 남자니까 남자를 잘 알아서 남자 캐릭터만 만들 수 있었다. 또 하나는 게임을 제작 중일 때 미국에서 게이머게이트가 발생해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데 조금 생각을 많이 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시간과 리소스, 돈이 없어서 남자 캐릭터 1종만 나가게 된 거다. 그 후에 캐릭터 모델링을 몇 개 했는데 갑옷이나 검 같은 리소스를 최적화해서 고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보려고 했는데, 여성 캐릭터의 경우 미세하게 다른 라인을 가지고 있어서 다시 전부 리소스를 제작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마 여성 캐릭터가 추가돼도 비키니만 입고 하늘하늘 걸어 다니면서 방어력 500%인 캐릭터는 안 만들 것 같다. 만약 만든다면 '어드벤쳐 타임'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수잔 스트롱같은 보디빌더 형 여성 캐릭터를 만들지 않을까?"


▲ 클래스 구분이 없이 남자 캐릭터 하나만 등장한다.

여러모로 흥행 공식에서 벗어난 양식들이 자주 보인다. 만약 내가 대표였다면. 그리고 이 게 첫 번째 도전이 아닌 상태에서 자금난에 고민하고 있었다면, 매우 불안했을 것 같다. 불안하니까 어쩌면 '우리만의 색'이 아닌 대충 중국에서 어느 정도 순위권에 있는 게임 계약해서 현지화하고, 예쁘장한 레이싱 모델 몇 명 붙여서 광고했을 것 같은데…. 유민우 대표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랜드런칭은 올해 9월 29일이지만, 마켓 출시는 테스트란 명목하에 작년에 단행했던 게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걱정 안 했다. 자신이 있어서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 방향이 아니면 답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게임들은 BM이나 데이터 분석 등 노하우가 이미 쌓여있기 때문에 같은 시도를 하면 빛을 볼 확률이 1/10도 안 될 것 같았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살짝 벗어나자 였다.

그런데 지인들이 그랬다. '야 너무 벗어난다', '야 이건 아니야'. 지인뿐만 아니라 퍼블리셔들도 그랬다. '이거 안 돼요'라는 말은 예사였고 '미쳤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무래도 우리 같은 장르에 대한 지표가 없었으니까 그런 거 같다. 겉보기에는 ARPG지만, 사실상 전술 액션이니까.

우리는 아무런 지표가 없었다. 사업 관련 지표 역시 근사치라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OBT를 무작정 시도했다. 실제 서비스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랬더니 우리가 애초에 세웠던 가설 10개 중 8개는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비싼 상용 지표 툴을 이용하지도 못할 정도여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게임에 붙였다. 그리고 하나씩 파악해가며 개선해나갔다. 만들면 만들수록 더 잘 만들고 싶었다. 유저들의 피드백을 잘 받았다. 유저들이나 테스터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이슈를 던질 때가 많다. 이를 수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피드백을 수개월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테스트가 길어지지 않았나 싶다."




■ 과거에는 if가 없다.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때 뭔가 많은 게임이 '짬뽕'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크소울과 몬스터 헌터가 대표적이었다. 특히 랜스는 회피 움직임이나 특수기가 몬스터 헌터 판박이였다. 부위파괴도 그렇고…. 하드코어를 지향한 모바일 RPG들이 PC의 감성을 모바일로 재해석하면서 실패한 경우를 많이 봐왔는데 아이어는 그냥 그대로 옮겼다. 좀 간단해졌을 뿐.

"가장 큰 오판은 콘솔 게이머나 PC 게이머가 모바일 게임 층과 모바일 게임 유저층이 어느 정도 교집합을 이룰 것으로 판단한 거다. 아니었다. 잘못 생각했다. 뭐 과거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성립할 수 없으니까. 알았으면 이런 게임이 안 나왔을 거다.

성장은 '몬스터헌터'를 많이 참고했다. 요즘 신규 무기 컨셉회의를 하는데 '건랜스'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젤다의 전설, 갓오브워, 다크소울, 디아블로, 리니지, 기어즈오브워 등을 좋아한다. 폭력적이면서 꿈도 희망도 없는 걸 좋아한다. 팀원들은 대체로 몬스터헌터랑 슈터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데몬즈 소울, 블러드본, 다크 소울 같은 게임의 영향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기어즈오브워나 갓오브워 같은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한 부분도 있다. 물론 100% 만족하지 않지만. 업데이트해가면서 점점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부위파괴의 경우 처음에는 파괴된 부위 별로 드랍템이 달라지는 형태였다. 당연히 '몬스터 헌터'처럼 유저들이 직관적으로 알 줄 알았는데 헷갈리더라. 그래서 부위 파괴 부분을 하나로 합치고 확률적으로 아이템이 나오도록 했다."



덕분에 가볍게 접하기는 힘든 게임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실제로 배터리 소모도 제법 있는 편이고, 피로도 시스템도 없으므로 한 자리에서 진득하니 앉아 즐겨줬으면 하는 의도가 보이는 것도 같다. 미래에는 PC 대신 태블릿 PC가 그 자리를 차지하리라고 믿는 개발사나 미래학자들도 많기에 이를 노렸나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방향의 차이였다.

"내가 의도한 바는 이렇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자동 전투는 바쁠 때나 재료 모으는 귀찮은 작업을 할 때 하고, 시간이 있으면 차근차근 하나씩 게임을 더 파면서 알아가는 재미로 즐겼으면 좋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한국 게임머들은 빨리 레벨업해서 빨리 아이템 파밍을 완료하는 걸 재미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이어를 하면서 조금 여유롭게 보스 전략도 세워보고 다른 방법도 생각해보면서 여유롭게 즐겼으면 좋겠다. 입장 제한이나 스태미너 제한도 없지 않은가. 컨트롤러가 있으면 연결해서 차근차근 해보고. 현재 30%정도의 유저가 패드로 즐기고 있다. 매핑도 꾸준히 해 나가고 있고. 어떤 패드를 많이 쓰는지 시장조사를 해본적이 없어서 데이터는 없지만 피드백이 들어온 기기들은 대부분 매핑해 나가고 있다."


아이어는 그랜드 런칭 2주째를 맞이하고 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어떻게 해왔나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겠다는 계획이 매우 중요한 시기에 도달했다.

"11월, 12월, 1월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11월에는 난이도와 레벨 제한이 풀릴 예정이다. 또 신규 보스가 등장한다. 균열 시스템에서 상부에 보스도 들어간다.

12월에는 신규 무기 타입과 보스를 새롭게 추가할 예정이며 확장 모드 개념으로 던전 모드(가칭)를 추가할 생각이다. 1월에는 또 다른 신규무기와 길드를 구현할 생각이다. 가능하면 실시간 PvP도 테스트하고 싶다. 아마 그때 즈음이면 유저들이 자신이 육성한 캐릭터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해 보고 싶어 할 것 같다. 그래서 연구 중이다."



내년 1월 PvP 테스트를 목표로 하고 있는 '텐버즈'. 아이어는 글로벌 출시 하루 만에 애플 앱스토어에 피처드 됐다. 이는 소규모 개발사 혹은 인디 개발사에게 있어 굉장히 이례적인 성과다. 조금은 들뜰 법도 한데 텐버즈는 QA를 위해 당직을 계속 서고 있으며 새로운 피처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들도 게임과 함께 성장하며 나태함을 경계하겠다고 했다.

"개발하면서 지인 네트워크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게임이 너무 흐름에서 벗어나간다 싶으면 적절히 피드백을 주고 투자도 해주고 그랬다. 우리 회사 혼자 만든 게임은 아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어쩌면 자신들도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었는데 현실을 그러지 못하니까 우리에게 투영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많이 도움을 줬다.

서비스하기 전에는 유저들이 어떤 가려운 구석이 있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개발하면서 적중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도 생긴다. 생각보다 트래픽이 높아 우리도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운영 측면에서 조금 미숙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잘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

유저들이 '어 이런 게임 없다, 한 번 해볼까?'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업계 사람들도 '오 이런 게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여기까지 오는데 퍼블리셔나 창업 투자자들에게서 참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보란 듯이 서비스를 이어가고 싶다.

똑같은 것을 해서는 절대 거대 업체와는 경쟁할 수 없다. 우리처럼 다른 방향의 게임이 계속 나올 수 있는 교두보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래도 의미를 거둘 수 있다면 많은 시도가 일어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최적화나 볼륨 등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나 가능성이 보이는 게임이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납골당이나 변절자 등의 콘텐츠는 직접 즐겨보라는 의미에서 첨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명인 '10birds'는 '텐버즈'로 읽는 게 바르다고 한다. 괜히 ㅆ... 읍읍... 라고 읽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