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가 끝난 지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를 뽑으라면 단연 프로 미식축구 리그인 NFL일 것이다. 경기날이면 거리에는 각 구단의 유니폼을 입은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식당의 TV에서는 중계방송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에 맞먹는 인기를 구가하는 스포츠리그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미국 전국 대학팀이 모여 대결하는 NCAA 대학 미식축구 리그다.

모든 대학 스포츠를 총괄하는 NCAA의 인기는 MLB, NFL, NBA 같은 다른 프로 스포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120여 개 팀이 붙는 최상위 디비전 FBS의 경기는 전국에 생중계된다. 심지어 NFL의 경기 중계 일정이 NCAA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안배를 할 정도다. 이런 탄탄한 대학 리그는 모든 선수들이 최상위 프로 스포츠 리그인 NFL이 필요로 하는 모든 조건을 쉬이 갖추도록 해주는 것에서 나아가, 전체 선수 풀을 늘리고, 아예 독립적인 생태계로서 새로운 문화를 제공하고 있다.

▲ 전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NCAA FBS 팀들

이처럼 미국의 대학과 스포츠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미국의 어지간한 명문 대학교들이라면 대체로 그 학교를 대표하는 종목의 스포츠 팀이 있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캘리포니아 주 공립 대학교의 집합인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중에서도 스포츠로 특기할만한 캠퍼스가 하나 있다. 바로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에 유치한 UC 어바인(이하 UCI)이다. 다른 학교엔 다 있는 미식축구 팀 하나 없는 이 학교엔 대신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e스포츠다.

미국 대학교 중에서 가장 강한 '오버워치' 프로 팀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UCI. 이들은 올해 미국 대학교 중 최초로 교내에 e스포츠 아레나를 설치했다. 각종 e스포츠 이벤트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e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이곳은 교내 e스포츠 프로그램과 함께 설치되어, 학교 안팎으로 e스포츠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 개미핥기(Anteater)를 마스코트로 쓰는 UCI

이전부터 UCI는 다른 대학교가 스포츠 선수들을 영입, 장학금을 제공하고 선수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e스포츠 분야에서도 전세계의 인재를 영입하고, 장학금을 제공하고, 전문적인 코칭 스탭 아래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왔다. 또 컴퓨터 게임 사이언스 전공을 개설하여 게임의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다양한 게임 관련 학문을 가르치는데 힘써온 학교다.

학교 측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설치, 운영되고 있는 이 e스포츠 아레나. 어쩌면 UCI의 e스포츠 시스템은 대학 e스포츠에 있어서 가장 선진적이고 멋진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인벤 글로벌이 그곳을 탐방해봤다.




e스포츠도 가능한 선수 장학금, 대학 팀, 전문 훈련의 꿈



UCI e스포츠 아레나는 지난 9월, UCI 학생 회관에 개관했다. 길다란 콩코스를 통해 바로 입장할 수 있는 이곳은 약 80여 대 가량의 게이밍 PC가 한국의 PC방 구조로 배치되어 있고, 한 켠에는 약간의 게이밍 콘솔이 있다. 각각의 자리에는 최신 게이밍 마우스와 키보드, 헤드셋, 의자까지 준비되어 있어 딱딱한 미국식 PC 카페 보다는 훨씬 친숙한, 전형적인 한국의 PC방 다운 느낌을 준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시설이 두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선수들의 친선전을 위한 최대 6대6 대결을 염두에 둔 연습장, 그리고 자체적으로 리그를 중계하는데 필수적인 중계석이다. 연습장의 경우 본래 5대5 로 고려되었으나, '오버워치'의 흥행 이후 6대6으로 가설해 운용하고 있다.


e스포츠 아레나에 설치된 PC들은 모두 스폰서인 IBUYPOWER 등 게이밍 PC를 전문적으로 제작, 판매하는 회사들에게 공급 받아 최신 게임들을 모두 구동할 수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도타2' 를 비롯해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오버워치' 등 비교적 요구 사양이 높은 게임들도 모두 최상의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더불어 '리그 오브 레전드' 에서는 한국 PC방의 그것을 벤치마킹해, 라이엇 게임즈의 지원으로 전 좌석에서 모든 챔피언을 플레이할 수 있고, IP/EXP 부스트를 제공, 또 100여 개 이상의 스킨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재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어, 언제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 라이엇 게임즈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소개하는 팜플렛

그 때문인지 e스포츠 아레나는 전반적으로 여유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띄었다. 게이밍 콘솔을 잡고 모여 대난투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웃으며 같이 게임을 즐겼고, 게이밍 PC가 놓인 구역에서는 학생들이 친구들끼리, 혹은 혼자서 여러 게임을 플레이했다. 또 방문 당시 며칠 남지 않았던 'LoL 월드 챔피언십' 의 경우 e스포츠 아레나 앞 콩코스 무대에서 대규모 뷰잉 파티를 열어 같이 대회를 즐길 것이라 했다.

▲ 마크 뎁(Mark Deppe) Acting Director

이런 e스포츠 아레나를 설치할 수 있었던 저변에 대해 디렉터인 마크 뎁은 "우리 학교는 이미 비디오 게임과 관련된 여러가지 학과 과정을 갖추고, 가르치고 있다. 미디어 아트, 컴퓨터 사이언스 등등. 이 아레나는 그들이 직접 게임을 체험하고, 게이머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며 "지난해 학부생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그 중 72%가 자신이 게이머라고 대답했고, 또 게이머 중 89%가 e스포츠를 서포트 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UCI의 게이머 커뮤니티인 TAC(The Association of Gamers) 아래 다양한 종목의 게임 클럽, 커뮤니티가 모여있으며, 3천 명이 넘는 인원이 이에 속해있다. 마크 뎁에 따르면, 이는 미국 대학 e스포츠 커뮤니티 중 가장 큰 규모다.

또한 UCI 는 e스포츠 분야에서도 다른 프로 스포츠와 동일한 방식의 지원을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e스포츠 아레나에서 만난 한국계 학생 양현재씨는 UCI e스포츠 팀의 코치, 선수로 활동하며 입학 후 3년 간 장학금을 보장 받았다.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 장학금을 지원하여 선수를 입학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 출신 선수들과 코칭 스탭을 영입, 전문적인 훈련 체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지원과 e스포츠 아레나의 운영은 한 프로 스포츠를 양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두가지 요소를 모두 노리고 있다. 바로 선수를 훈련시키는 것과, 그 스포츠 자체의 대중적인 저변을 늘리는 것이다. UCI e스포츠 아레나는 당장 아마추어-프로 레벨의 대학 선수들, 그리고 그들의 클럽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약 3천 명 이상의 기대 수요 뿐만 아니라 실력, 질적인 면에서도 발전을 도울 코칭 스텝과 선수들 또한 함께하고 있다. e스포츠 아레나는 이들의 연습장이자, 경기장이며, 클럽 하우스이고, 또 팬들과 함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 UCI는 컴퓨터 게임 과학 학위 과정을 개설해 운영중이다

사실 이런 대규모의 e스포츠, 비디오 게임 관련 시설을 학교 내에 설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투자할 게임 기업들, 등록금을 대는 학부모들과 졸업한 동문, 대학교가 위치한 지역 사회 등 다양한 부분에서 동의와 투자가 필요했다. e스포츠 아레나의 책임자 마크 뎁은 e스포츠 아레나의 설립 과정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게임이 가진 가치, 효과를 알리고자 한다. 게임은 사람의 여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비판적인 사고법, 기억력 등, 실제로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비디오 게임들은 기억 관련 질병들에 도움을 준다. 게이머들은 이런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느끼고 인지하고 있지만, 대중적인 여론은 아직 이를 잘 모른다. 우리는 한 발 나아가, 이런 비디오 게임을 지원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다른 많은 학교들이 전통적으로 자기 대학의 스포츠 팀을 지원해 온 것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하지만 UCI 에는 풋볼 팀이 없다. 대신 e스포츠 팀이 있으며, 아마 교내에서 가장 큰 스포츠 문화일지도 모른다. 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를 갖고,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 사실 놀랍게도 우리는 이 일을 추진하는 동안 그런 큰 어려움을 겪지 못했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동시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기뻐하고, 만족스러워 했다."

사실 이러한 반응을 세계 어디에서나, 어느 학부모에게서나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UCI는 정말 희귀하면서도, 올바른 시도를 먼저 해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스포츠의 저변이 확대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여기서 발견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사상누각이 아닌 백년지대계의 e스포츠를 위해



프로 스포츠 리그에 있어서 그 기틀을 받침해주는 학생 리그들의 중요성은 매 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모든 스포츠는 매년 초중고교, 그리고 대학리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확충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만큼 학생 리그들은 미래의 프로 선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며, 미래의 팬을 만듬으로서 프로 스포츠를 단순히 관람하는 것 이상의 문화로서 만드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현재, e스포츠 종목별 최상위 리그의 인기는 다른 프로 스포츠와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다. 지난 LoL 월드 챔피언십 기간 동안 NBA에서 사용하는 구장들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과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경기들은 언제나 만석이었다. 분명 e스포츠 라는 종목의 팬들이 가진 열기는 다른 종목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래, 최상위 리그와 보통의 유저 사이에 있는 다양한 저변을 생각한다면 e스포츠는 아예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밀려나버린다. 초등학교 이전 리틀 리그부터 시작해 초중고교, 대학교, 사회인 리그까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기존의 프로 스포츠에 비하면 e스포츠는 그 저변이 매우 미약하다. 부족한 선수 풀, 미흡한 관중 동원력, 극단적인 팬 문화 등 이는 어떤 악재로든 최상위 리그가 흔들리게 되어도, 이를 제대로 붙잡아줄 기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최상위 디비전인 FBS에서만 전국 120개의 팀이 자웅을 겨루는 것이 NCAA 풋볼 리그다. 물론 이는 단순 비교하기엔 너무 극단적인 표본이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전세계적으로 대학 e스포츠는 이벤트전이 아닌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춘 제반 리그 하나 없는 셈이다. 그런 환경에서 UCI 의 시도는 최근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발표한 '오버워치 리그' 등으로 대표되는 e스포츠를 기존의 프로 스포츠와 동격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모래밭이건, 진흙탕이건 기둥을 세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기둥을 굳건하게 지탱해주는 것은 단단한 기초다. e스포츠는 그 어떤 프로 스포츠보다 생활 스포츠로서 우리 모두가 관객이자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다. 그만큼 e스포츠는 학생 스포츠, 생활 스포츠로서나 프로 스포츠로서나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UCI e스포츠 아레나는 그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시도들 중 가장 선진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는 사례다.

우리가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과 우리가 보고 즐기는 게임이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닌, 같은 틀 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팬에게 있어서 분명 짜릿한 일이다. 그런 흐름이 어디에서건 이어지길 바라며, UCI가 앞으로 멋진 플레이와 좋은 성적, 그리고 즐거운 팬 문화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사진 = 석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