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소리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구정이 다가왔습니다. 2017년이 된 지 벌써 한 달쯤이나 됐다니... 한두 살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간다는 말이 실감 나서 씁쓸합니다.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네요.

여느 때 같았으면 오랜만에 친척들과 수다를 떨 생각에 기뻤겠지만, 마냥 기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공부는 잘되냐고, 이성 친구는 있냐고, 취직은 했냐고,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물어보는 친척들의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인터넷에 떠도는 '짤방'처럼 노후준비는 잘 되시냐고 되물어보실 건 아니죠? 그러진 맙시다. 명절의 화목한 분위기는 소중하니까요.

사실 가는 길부터 걱정입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시는 분들은 자신을 양옆에서 짓누르고 있는 인파에, 자가용을 타고 가시는 분들은 일주일 째 일(?)을 보지 못한 대장처럼 꽉 막힌 도로 상황에 짜증이 나실 겁니다. 누군가 눈 깜짝할 사이에 고향까지 데려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 기사를 정독하고 나면 '순간 이동'이 뭔지 확실히 느끼실 수 있을 거거든요. 인벤 e스포츠팀의 앤서 기자와 코멧 기자가 직접 엄선한 명경기 Best 5!

※ 주의 : 운전하시는 분은 이 기사를 읽지 못하게 하세요. 고향 말고 다른 곳에 도착할지도 모릅니다.


LoL : '페이커'의 한 방! SKT T1 vs ROX 타이거즈


워낙 대회가 자주 펼쳐지는 LoL 종목이기에 명경기 하나를 선정하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마다 응원하는 팀도 다르고, 그렇기에 명경기에 대한 기준도 다 달랐기 때문인데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경기 중에서 LoL 계의 마이클 조던이자 메시로 불리는 '페이커' 이상혁이 남다른 한 방을 보여줬던 경기로 의견이 좁혀졌습니다.

2016 LoL 월드 챔피언십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작년 10월 22일. 언제나 그랬듯이 SKT T1과 ROX 타이거즈가 상위 라운드에서 만났습니다. 매번 양 팀 간의 대결은 희대의 명경기로 손꼽혔던 만큼, 관계자들과 팬들 모두 엄청난 기대감을 드러냈죠.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기대감에 제대로 부응하면서 또다시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환호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양 팀의 1세트가 특히 그랬습니다. 엎치락뒤치락.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죠. 분위기는 SKT T1 쪽에 있었지만, ROX 타이거즈도 저력을 발휘하며 결과를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경기는 후반으로 향했고, SKT T1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상대가 화염의 드래곤 3스택을 쌓은 상황에서 장로 드래곤 한타를 먼저 설계했죠. ROX 타이거즈도 화염의 드래곤 3스택에 장로 드래곤 버프를 더하면 한 방 역전이 가능했기에, 싸움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페이커' 이상혁의 오리아나가 상황을 순식간에 종료했습니다. '쿠로' 이서행 빅토르의 '점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페이커'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공을 상대 딜러진 쪽으로 보냈고, '충격파' 대박으로 잘 성장했던 빅토르를 재빨리 쓰러뜨렸습니다. '프레이' 김종인의 케이틀린 역시 빠른 반응속도에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죠. 순식간에 딜러진을 잃은 ROX 타이거즈는 한타에서 대패했고, SKT T1이 그대로 1세트 승리를 따냈습니다. 이 장면만 보고 싶으신 분들은 영상 기준으로 1시간 17분부터 보시면 됩니다.

▲ 출처 : OGN 유투브 채널


이 경기를 선정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만약 SKT T1이 1세트에 '페이커'의 '충격파'로 승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ROX 타이거즈는 2세트와 3세트 모두 미스 포츈 서포터라는 깜짝 카드로 SKT T1을 격파하면서 세트 스코어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1세트마저 ROX 타이거즈가 승리했다면, 결승에서 삼성 갤럭시와 대결했던 팀은 ROX 타이거즈였을 가능성이 높았겠군요. 많은 것이 걸렸던 세트였기에 명경기로 선정하게 됐습니다.


스타크래프트2 : 이것이 '섹시저그' 이병렬 vs 김준호


역사가 오래된 스타크래프트2 종목에서도 명경기 하나만 선정하는 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의 뇌리에 박혀있는 경기를 뽑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다가 생각난 사람이 바로 진에어 그린윙스 소속 이병렬 선수였습니다. '섹시저그'라는 그의 별명이 가장 돋보였던 경기를 선정하기로 했고, 다음에 소개할 경기를 이번 기사에서 언급하기로 했죠.

2015년 열렸던 스타2 프로리그 통합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진에어 그린윙스와 CJ 엔투스는 접전 끝에 에이스 결정전을 맞이했습니다. 살 떨리는 상황이었죠. 진에어 그린윙스에서는 이병렬을, CJ 엔투스에서는 김준호를 부스 안으로 보냈습니다. 맵은 에코. 두 선수 모두 자신의 상대를 예상했다는 듯이 무대에서 악수를 하면서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중계진은 김준호의 승리를 예상했습니다. 당시 이병렬의 경기력도 좋았지만, 김준호라는 이름의 무게감이 상당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모두들 '섹시저그' 이병렬이 또 어떤 깜짝 빌드를 선보일 것인지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됐고, 두 선수는 무난한 초반을 보내면서 현장의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그때까지는 모두 정석 빌드 싸움에서 강력함을 보이는 김준호의 승리를 예상하였죠.

▲ 출처 : esports tv 유투브 채널(SPOTV GAMES)

경기가 중반으로 향하면서 이병렬이 '섹시저그'라는 자신의 별명을 입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주머니' 업그레이드. 그리고 맹독충 둥지 건설까지. 모두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맹독충 드랍 전략은 자유의 날개 시절에 잠깐 빛을 발하는 듯했다가 프로토스의 안정적인 수비에 막혀 사장됐던 전략 아닌가! 하지만 이병렬은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명언을 그대로 믿는 것 같은 플레이를 차근차근 이어갔는데요. 상대의 전진을 최대한 막으면서 자신의 전략을 숨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됐습니다. '배주머니' 업그레이드가 끝나자마자 열린 대규모 한타. 여기서 이병렬은 엄청난 수의 맹독충을 대군주에 태우고 상대 주력 병력의 머리 위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맹독충 무리! 김준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갸우뚱했고, 이병렬은 한타 대승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이병렬은 승부에 쐐기를 박는 동시다발 맹독충 드랍으로 상대 탐사정을 맵에서 지워버렸죠.

이병렬은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맹독충과 히드라리스크를 동반한 주력 병력으로 김준호의 심장부를 노렸죠. 김준호는 이미 수비할 수 있는 병력을 대부분 잃은 상황. 김준호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아쉬워했고, 이내 GG를 선언했습니다. 이 시대 가장 섹시한 저그, 이병렬! 그의 '섹시'한 전략이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랍니다.


카트라이더 : 승부를 가른 0.005초?! 유영혁 vs 문호준


'속도감'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카레이싱이죠.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면서 상대 카레이서와의 심리전을 통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엄청난 긴장감과 짜릿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종목입니다. e스포츠에도 이와 비슷한 종목이 있으니, 바로 카트라이더인데요.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결정되곤 하는 카트라이더 경기 중에서도 가장 짜릿했던 명경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카트라이더의 황제로 오랫동안 군림했던 문호준과 그를 항상 위협했던 실력자 유영혁. 이들이 지난 2015년 열린 카트라이더 에볼루션 결승에서 만났습니다. 문호준이 이끄는 솔라이트 인디고와 유영혁 중심의 팀106의 대결이었죠. 양 팀은 치열한 승부 끝에 에이스 결정전을 맞이했고, 모두의 예상처럼 양 팀의 에이스인 문호준과 유영혁이 출전했습니다. 저도 당시 현장에서 양 팀의 대결을 마음 졸이며 봤던 기억이 있네요.

▲ 출처 : esports tv 유투브 채널(SPOTV GAMES)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유영혁이 문호준을 에이스 결정전에서 꺾고 팀106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만년 2인자로 불렸던 유영혁이 드디어 문호준을 넘어선 순간이기도 했죠. 이 경기를 선정한 이유는 유영혁의 스토리 때문만이 아닙니다. 두 선수의 승패는 '0.005초'라는, 정말 근소한 차이로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정말 팽팽한 레이스가 이어지던 순간, 유영혁이 문호준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밀리면서 장애물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유영혁의 화면에서 문호준이 개미만큼 작아졌죠. 그렇게 두 선수의 대결이 싱겁게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유영혁은 포기하지 않고 역전을 위해 레이스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유영혁은 문호준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지막 코너링. 유영혁이 조금 더 깔끔한 코너링을 선보이면서 두 선수가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유영혁과 문호준 모두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해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죠. 모두가 긴장했던 상황. 결과 창이 화면을 채웠고, 유영혁이 0.005초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내용이 발표됐습니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 그렇게 유영혁은 문호준을 넘어 카트라이더 1인자로 군림하게 됐죠. 그리고 지금도 유영혁의 시대는 이어지고 있답니다.


스트리트파이터3 : 신내린 '블로킹' 우메하라 다이고 vs 저스틴 윙

▲ 출처 : EVO 공식 영상 캡처

레이싱 게임인 카트라이더는 누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지로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매우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매력을 가진 장르가 있는데요. 바로 격투기 게임입니다. 어떤 캐릭터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몰라도, 화면 상단에 뜨는 체력 바만 보면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 쉽게 알 수 있죠. 다양한 e스포츠 종목을 즐기는 팬들 사이에서도 직관성만 따지면 격투기 게임이 최고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직관성과 엄청난 피지컬이 연결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명장면이 나오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이미 격투기 게임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경기지만,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회자되는 최고의 명경기, 우메하라 다이고와 저스틴 윙의 EVO 2004 준결승전! 여기서 우메하라 다이고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엄청난 피지컬을 선보이며 현장 분위기를 최고조에 달하게 만들었습니다.

▲ 출처 : evo2kvids 유투브 채널

당시 켄을 선택했던 우메하라 다이고는 상대인 저스틴 윙의 춘리에게 계속 얻어맞아 체력을 거의 잃은 상황이었습니다. 가끔 반격했지만, 힘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저스틴 윙은 그대로 경기를 끝내고자 필살기를 작렬했습니다. 상대가 가드를 올려도 춘리가 무조건 이기는, 도저히 역전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여기서 잠깐 스트리트파이터 상식을 알려드릴게요. 왜 저 상황에서 켄이 가드를 해도 춘리가 이길까요? 스트리트파이터에도 일반 격투기 게임처럼 방향키를 뒤로해서 막는 '가드'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방어를 완벽하게 해내도 조금씩 체력이 깎입니다. 그러니 위의 상황에서 켄이 춘리의 필살기를 다 '가드'해도 조금씩 깎이는 체력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역전이 가능했을까요? 스트리트파이터에는 '가드' 말고 또 하나의 방어 기술이 있으니, 바로 '블로킹'입니다. 상대가 나를 때리는 순간에 맞춰서 방향키를 앞으로 했다가 다시 중앙으로 돌려놓으면, 아무런 체력 손실 없이 상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엄청난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가 없으면 불가능할 것 같은 시스템입니다. 한두 번은 가능하겠지만, 어떻게 상대의 공격을 다 예측해서 '블로킹'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메하라 다이고는 그 어려운 걸 해냈습니다. 이제 영상을 다시 볼까요? 어떻습니까. 이 경기가 왜 격투기 게임 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불리는지 확실히 알게 되셨나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필살기 한 방으로도 상대 체력을 0으로 만들 수 없다고 직감한 우메하라 다이고는 점프 발과 아래 발 등 작은 타격기와 함께 필살기를 연계하는 센스까지 선보였습니다. 왜 항상 프로들 간의 대결에서 '역전할 가능성이 0이 아닌 이상,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명경기였습니다.


CS:GO : FPS는 보는 재미가 없다? 프나틱 vs 엔비어스

▲ 출처 : ESL 공식 영상 캡처

흔히 한국을 'FPS의 무덤'이라고 부릅니다.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다양한 FPS 장르가 한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해 생긴 말이죠. 블리자드의 오버워치만이 FPS 장르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FPS는 보는 재미가 별로 없다는 것도 e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말입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FPS e스포츠에서는 명경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조준 실력과 칼 같은 반응속도, 치열한 전략 싸움 등 볼거리가 풍성하죠. 그중에서도 이번에 준비한 경기는 아직도 회자되는 명경기 중 하나입니다. 국내 중계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영어만 보이고 영어만 들리긴 하지만...

때는 2015년 ESL ONE 쾰른 결승전 1세트.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프나틱과 엔비어스가 만났습니다. FPS 장르를 좋아하는 팬들에겐 과거 SKT T1과 ROX 타이거즈의 대결만큼 흥미진진한 대진이라고 할 수 있죠. 어느덧 경기는 종반부를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프나틱은 엔비어스에게 라운드 스코어 7:14로 지고 있었고요.

▲ 출처 : ESL 유투브 채널

영상 기준으로 54분 20초부터 프나틱의 역전 시나리오가 쓰이기 시작합니다. 프나틱은 또다시 라운드 패배를 내주면 무기 구매를 위한 자금이 부족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프나틱은 당황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해낼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연거푸 해냈습니다. 그 시작은 'krimz'였습니다. 그는 B 사이트에 매복한 다음, 상대 세 명을 한꺼번에 쓰러뜨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때부터 프나틱은 라운드 스코어를 많이 따라잡게 됩니다. 여기서 프나틱는 엄청난 전략을 선보입니다. 영상 기준으로 75분에 프나틱은 무려 네 개의 AWP를 구매하는 강수를 둡니다. 그리고 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좁은 문으로 고개를 내민 상대를 빠르게 제압,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죠. 그리고 프나틱은 그 기세를 몰아 꿈만 같았던 1세트 역전승을 이루게 됩니다. 2세트에도 기세를 이어간 프나틱은 엔비어스를 격파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고요.

위기를 극복하는 뛰어난 집중력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깜짝 전략. 역전승을 가능케 하는 이런 '미덕'은 종목을 가리지 않고 팬들에게 많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가 봅니다. 명경기 인정!


(번외) 스타크래프트 : 얼마만의 '땡히드라'인가... 이제동 vs 이영호


한때 한국을 휩쓸었던 스타크래프트. 아직도 크고 작은 대회가 많이 열리면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마무리된 ASL 4강에서 엄청난 대진과 경기가 있었습니다. '폭군' 이제동과 '최종병기' 이영호의 맞대결!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매치업이었죠. 그래서였을까요? 현장은 경기를 보러 온 팬들로 가득 채워졌고, 온라인 중계에도 정말 많은 시청자가 몰렸습니다.

이번에 선정한 경기는 두 선수의 4세트입니다. 1세트에 승리하면서 기분 좋게 시작한 이제동. 하지만 2세트와 3세트 모두 이영호에게 내주면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이제동이 준비했던 전략은 모두 이영호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죠. 원래 단단함의 상징이었던 이영호가 그날따라 더욱 그렇게 보였고, 4세트를 준비하는 이제동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그렇게 두 선수는 4세트를 맞이했습니다. 영상 기준으로는 1시간 37분 20초부터 보시면 됩니다.

▲ 출처 : AfreecaTV Live 유투브 채널

벤젠에서 펼쳐진 4세트. 이제동은 빠르게 히드라리스크 덴을 건설해 모두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건설 완료된 세 개의 해처리. 감이 오시나요? 맞습니다. 이제동은 과감한 '3해처리 땡히드라' 전략을 선보였습니다. 이영호는 이를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고 안정적으로 빌드를 올렸죠. 그러다가 '스캔'으로 이제동의 전략을 늦게나마 파악, 부랴부랴 배럭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죠. 다수의 히드라리스크가 수비 병력이 별로 없던 이영호의 앞마당에 들이닥쳤습니다. 이영호가 벙커도 짓고, SCV까지 동원하면서 수비에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막아뒀던 입구가 뚫렸고 본진에도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결국, 멋진 일점사 플레이로 상대의 마린과 메딕이 쌓이기 전에 각개격파한 이제동이 위기를 극복하며 5세트를 끌어냈습니다.

물론, ASL 4강은 이영호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기세를 탄 이영호는 결승에서 염보성마저 격파하면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죠. 이영호의 우승도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이제동이 4강 4세트에서 선보였던 깜짝 전략도 팬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브루드워 시절도 아니고, 오리지널 시절에나 유행했던, 10년을 훌쩍 넘기는 시간을 뛰어넘고 다시 등장했던 '3해처리 땡히드라' 전략. 저그 선수들은 원래 이렇게 다 '섹시'한가요?


저희 두 기자가 준비한 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이 기사의 제목처럼 여러분의 시간을 빼앗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떤가요? 기사를 정독하다 보니 어느새 그리운 고향에 거의 다 도착하지 않았나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e스포츠 명경기들을 직접 보면서 어느 정도 즐거우셨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명경기가 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속상해하시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팀 회의에서 나왔던 경기를 모두 다 넣으려고 했다면, 저는 설 연휴 내내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을테니까요... 중요한 건 e스포츠에 이렇게 명경기가 많았다는 기분 좋은 사실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e스포츠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가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 기사를 마칠까 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e스포츠 명경기는 무엇인가요? 댓글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