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의 첫 강연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 – 문명’은 그야말로 이번 GDC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세션이었다. 게임의 이름 값 뿐만 아니라, 이 포스트모템 세션에 문명 시리즈의 개발자이자 모든 게임 개발자들의 대부인 시드 마이어가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족히 수백 명은 수용할만한 거대한 강연장을 자리는 모두 들어차고 빈 공간에는 빼곡히 사람들이 서서 강연을 듣는 락 공연장으로 만든 시드 마이어(Sid Meier). 자신이 십수 년 전 직접 만들었던 게임을 다시 돌아보는 느낌은 어떨까? 시드 마이어와 더불어 '문명'의 개발에 참여했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같은 명작을 만들어낸 브루스 셸리(Bruce Shelley)가 이 세션을 진행했다.

▲ '문명' 의 개발자들인 브루스 셸리(좌)와 시드 마이어(우)



오늘 강연에서 '문명' 을 처음 만들었던 1991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우리가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했던 것들과 그 과정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어떤 옳은 일과 어떤 틀린 일을 했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게임이 만들어졌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문명'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지구상의 모든 문명의 역사를 게임 안에 담아보자. 게임으로 할 수 있는 인류의 모든 역사를 담고 싶었다. 당시 우린 좀더 젊었고, 야망이 넘치고 무모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시드 마이어의 해적!' 이라는 오픈월드 게임이나 '시드 마이어의 코버트 옵스' 같은 잠입 액션, 또 '레일로드 타이쿤' 등을 만들어왔었다. 우리는 둘 다 역사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문명이라는 아이디어에 쉽게 매료됐다.

6천 년 간의 인류사를 게임 하나로 압축하는 것은 막연히 생각해보아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우리는 막 '레일로드 타이쿤' 을 마무리 한 때였고, 또한 그 당시는 소위 '갓 게임' 장르의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던 때였다. 우리 또한 그런 시뮬레이션 게임의 부흥에 힘입어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내고 게임을 만들었고, '레일로드 타이쿤' 또한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시드 마이어는 늘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들을 기록해두고 이를 말하면서 토론하길 좋아했다. 그는 모두의 의욕을 고취시키는데 능력이 있었다. 그러던 1991년 어느날, 우리는 최초로 플레이 가능한 '문명'을 마주했다. 그것은 내 기억에 남을만한 굉장히 인상적인 경험이었고, 이것이 누구에게든 좋은 경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수많은 타이쿤 게임들과 보드 게임을 같이 공부했다. 무엇이 '문명'에 좋은 주제인지 고민했고, 그러면서 '문명'과 '기술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들에 푹 빠지게 됐다.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나서는 게임의 예상 고객들을 고민하고, 이 게임을 어떻게 시장에 내놓을지 고민했다. 그때 '문명' 은 제법 큰 기획이었고 여러가지 고려할 부분이 많았다. 좀더 특별하고 대단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 그만큼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


처음은 매우 간단한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첫 유닛이 세상을 탐험하고, 그것이 문명의 발전의 첫 단계로 점점 뻗어나가는거다. 이렇게 게임을 구체화하려고 했다. 아이와 가족이 모두 즐길 수 있고,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문명들이 교류하고. 게임은 당연히 시작단계에서부터 재미있어야 했고, 이 게임의 재미는 어디서 올까? 하는 고민들을 거듭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하면 굉장히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떻게 도시를 키울지, 어떤 테크트리를 선택할지 등등…초반 15분의 선택은 게임 후반에 이르러 거대한 결과를 가져오고, 이 여파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플레이어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그 여파를 가늠할 수 있다면, 이는 아주 좋은 동기 부여의 수단이 된다.


우리는 처음에 이 게임을 '문명' 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 그 당시에 나온 역사 게임들의 이름이 있지 않았나? 그런 것들과 비슷했다. '라이즈 오브 네이션' 이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같은 게임들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마케팅 팀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게임 플레이에서 뭔가를 끌어내고 싶어했는데, 그중 하나가 '문명' 이었다.문명은 게임의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고, 과거 게임들의 작명법-'해적!'이나 '레일로드 타이쿤' 같이-을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메인 타이틀 이미지가 이름과 함께 나왔다. 최초의 '문명'(Civilization)이 그렇게 나왔다.


우리가 '문명' 을 만들때 고민한 것 중 또 하나는, 게임플레이를 '턴 베이스'로 할 지 '리얼타임'으로 할 것인지 선택하는 부분이었다. 당시 유명했던 클래식 '심시티' 등의 게임들이 이런 고민을 부추겼고, 굉장히 많이 갈등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 큰 성공을 거둔 '심시티' 등의 게임들은 턴 베이스가 아니었으니까. 모든 요소를 같이 동시에 파악하고 조절하는 것이 당시 시뮬레이션에서 일반적인 흐름이자 유행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문명' 은 '턴 베이스'를 택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로는 당시에 유행하던 리얼타임 방식의 전략 게임들의 플레이타임이었다. 리얼타임 방식의 전략게임들은 길어야 한시간 내에서 플레이 한 번이 끝났다. 그 이상은 지나치게 플레이어를 피로하게 했다.

우리는 좀 더 긴 호흡을 원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선택'을 중시하는 게임을 만들었고, 유저들이 자신의 선택을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싶었다. 어떤 테크트리를 올릴지, 어떤 전략을 짤지 등등. 대규모 워게임들도 그러하듯, 우리가 선택한 전반적인 컨셉은 "너는 시간이 좀 필요할거야. 여기서 충분히 생각하라고." 였다. 사실 당시에 이와 관련해서 회사 내에서 다툼과 이견이 많았는데, 확실히 당시로선 혁신적인 컨셉이었다.


'문명' 에는 항상 위대한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여기 이 '간디'는 워낙 유명해졌기에 큰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지도자를 디자인할 때, 특별히 '무엇인가'를 강하게 의도하지 않았다. 이 간디를 예로 들 때, 우리는 '문명' 의 간디가 전쟁광이 되도록 프로그래밍 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지도자를 활용하면서도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 플레이어들의 플레이는 정말 다양하고, 우리가 설계한 게임플레이는 여러가지 선택을 하는데 제약이 없다. 그러니까 간디라도 '세계의 정복자'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도서관의 아동 구역에서 유명 위인에 대한 책들을 엄청나게 탐독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고 배우는데 쉽게 친숙함을 느끼고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었고, 그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을 직접 플레이하는 기분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문명에 있어서 '지도자'들은 게임의 아주 중요한 축이 되었다.

당시 우리는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굉장히 열성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와는 다른 역사 게임을 만들자!"는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다.


'테크트리'는 위인들 외에도 유저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더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자는 목적에서 나온 기획이었다. 예를들어 '화약' 테크를 플레이어가 발명한다고 해보자. '화약'은 강력한 전쟁수단이고, 그만큼 전쟁을 유용한 수단으로 삼게 해주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플레이어는 적극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게임을 플레이할 방법을 얻게 된다. 게임이 항상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면, 플레이어는 거기에 자극받아 더욱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모드와 시나리오가 추가했다. 특히 '모드'들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이 모드들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제안이다. 게임을 어떻게 개선할지,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유저들이 내놓은 해답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작은 팀이었고, 쓸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개발팀은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었고, 시드 마이어 역시 그런 압박들 중 하나였다(웃음). 아주 많은 아이디어가 시드 마이어의 사무실에서 나왔고, 이건 마치 축구를 하는 것 같았다. 시드 마이어가 아이디어를 마구 던지면 우리가 골키퍼처럼 그걸 다 막아내는거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정보를 게임 속에서 줄 필요는 없었다. 게임의 디테일들을 담은 인포그래픽은 좋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당장 게임 플레이에 필요하지 않고, 직관적이지 못한 정보들은 모두 배제했다.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은 밸런스 테스트의 일화도 있다. 문명 최초 버전에서 그리스의 전차 유닛은 정말, 지나칠 정도로 강력했다. 오죽하면 전차만 가지고도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당시 유닛의 수치 중 공격력을 딱 1만 조정했는데, 그게 그리스 전차 유닛이 '완벽한' 밸런스 포지션으로 잡는 힘이 됐다. 그렇게 '작은 숫자'라고 큰 힘을 가진다는 반증이랄까.


그리고 우리는, 게임의 '시작'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할 때마다 행성의 탄생에서 문명의 발전을 느낄 수 있는 인트로 영상을 보여줬다. 우주에서 태어난 행성에 문명이 자라나고, 이제 그 문명간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부귀영화를 꿈꾸는, 우리가 바라는 방향을 영상으로 제시해줬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젊고 무모했으며, 문명은 그만큼 많은 시도를 한 게임이다. 그 결과 지금의 '문명' 시리즈가 있어 흥미롭고 즐겁다. 여러분도 우리들의 여정에 계속 따라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