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딘가의 군사(軍師)가 말했다. 싸움을 필승으로 이끄는 명군사란 누구보다 겁쟁이라고. 겁쟁이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에 겁을 집어먹고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다. 겁쟁이는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군사의 얘기다. 겁만 많아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전쟁에 이기려면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있다. 대군에 맞서 돌진하는 용감한 병사들.

아무래도 나에겐 군사의 재능은 손톱만큼 있는 것 같은데, 병사로서는 아닌 모양이다. LoL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건만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는 매번 떨림이 멎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안전한 방패에 몸을 숨기고 확실하게 내 몸이 안전할 때만 덤벼든다. 그래서 주로 맡게 된 포지션이 원딜이었다.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기회가 왔을 때만 나서기 위함이었다. 병사 포지션을 담당하는 탱커나 근접 챔피언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겁이 많아서 망설이다가 아군에게 "왜 먼저 안 들어가냐?"는 핀잔을 받으며 전투에서 패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브론즈를 탈출하고 천상계로 가기 위해서 자신의 한계를 깨뜨려야만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바루스만 골라서 아군 뒤에 숨어 포킹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최전방에서 아군을 위해 용감하게 돌격하는 탱커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탱커 챔피언을 찾던 나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LCK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세계수 마오카이였다.



[나는 브론즈다 3화] '최강의 방패' 마오카이




마오카이는 대회에서 탑 라인에 자주 등장하지만 브론즈 세계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챔피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브론즈엔 기본적으로 '캐리 병'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탑 라인엔 마오카이같은 순수 탱커보다는 다리우스나 티모같은 챔피언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동료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순수 탱커도 충분히 캐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서 2인분 또는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나 뭐라나. 나는 그 말을 듣고 큰 고민 없이 RP로 마오카이를 구입했다.

협곡에 들어서기 전 마오카이에 대한 공략 글을 읽었다. 마오카이의 스킬 콤보는 상당히 단순했다. 묘목을 던저 놓고 W로 접근해서 Q로 때리면 끝이었다. 물론 궁극기인 '복수의 소용돌이'는 잊지 않고 켜야 한다. 여러 개의 공략 글을 종합해 봤을 때 세 가지 정도만 명심하면 됐다. 첫째, 라인전을 무난하게 넘긴다. 둘째, 한타가 펼쳐지면 '순간 이동'으로 빠르게 합류한다. 셋째, 교전이 펼쳐지면 적절한 탱킹으로 아군을 잘 보호한다.

이 정도면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간단해서 공략 글을 여러 번 읽을 필요도 없었다. 처음 하는 챔피언은 일반 게임으로 연습해보고 랭크 게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나는 첫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랭크 게임을 선택했다. 게임에 들어가기 전 느껴지는 떨림이 오랜만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선두에서 아군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일념으로 전의를 불태우며 게임에 들어갔다.

나는 항상 TV에서 봤던 대로 도란 링과 포션 두 개를 사 들고 탑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나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줄 것으로 확신했던 마오카이가 나를 패배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거란 사실을.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사항이 그 무엇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시작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 이상적인 탱커 마오카이, 단단함 그 자체였다




시작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상대를 압도하는 느낌을 받진 못했지만, 마오카이는 예상대로 정말 단단했다. 패시브를 통해서 체력을 회복할 수 있어서 라인 유지력이 좋았다. 비록 묘목 착지 데미지가 사라졌지만, 강력한 Q스킬을 통해서 라인 클리어가 쏠쏠하게 됐다. 무엇보다 라인전 단계에서 갱 호응력이 뛰어난 것이 마음에 들었다. W로 발을 묶고 Q를 적이 도망치는 반대 방향으로 사용하면 나와 정글러 쪽으로 적이 당겨졌다. 일단 적이 W를 맞으면 점멸이 빠지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첫상대로 AD 캐넨을 만났다. 내가 마오카이를 선픽한 것을 보고 카운터 치려는 속셈인 듯했다. 브론즈에서도 나름대로 카운터 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브론즈의 수준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아서 현지인으로서 뿌듯했다. 비록 초반에는 케넨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지만, 방어 아이템이 확보되자 케넨의 공격이 아프지 않았다. 앞서 배웠던 E-R-W-Q 풀 콤보를 넣자 딜 교환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마오카이의 진가는 한타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챔피언 자체의 단단함은 물론, 아군의 피해량을 20%나 줄여주는 강력한 궁극기를 갖고 있었다. 특히, 그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아군이 위험하면 재빨리 날아와서 적의 발을 묶고 밀쳐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조합에 잘 어울리고, 상대의 변칙적인 움직임에도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마오카이는 그야말로 팀이 원하는 이상적인 탱커였다.

첫 게임부터 팀원들에게 칭찬 세례를 받았다. 빠르게 합류해서 탱킹을 잘 해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딜러만 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탱커로서의 짜릿함이 느껴졌다. 탱커의 매력에 눈을 뜬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 첫판부터 칭찬 세례를 받았다




■ 외로운 탱커 마오카이, 브론즈에서는 글쎄?


▲아트록스에게 굴욕적인 솔킬을 당했다


마오카이가 솔로 랭크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를 알게 됐다. 일단 카운터 픽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내가 마오카이를 선픽하면 피오라, 다리우스, 럼블 등 마오카이를 숨도 못 쉬게 압박할 수 있는 챔피언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브론즈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아트록스와 클레드까지 등장해서 나의 마오카이를 괴롭혔다. 최대한 사리면서 CS를 챙겨도 라인전 주도권이 없으니 순간 이동이 복귀용 순간 이동으로 자주 사용됐다.

라인전을 무난하게 넘기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라인전이 어려울 경우 정글러가 풀어줘야 하지만 브론즈에서 정글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오히려 미드와 바텀이 터지지 않길 기도해야 한다. 다른 라인이 터져버리면 내가 탑에서 아무리 잘 커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타가 펼쳐졌을 때, 나름대로 잘 버티면서 우리 팀 딜러들이 딜을 잘 넣어줄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나 혼자만 마지막까지 살아있고, 아군은 이미 전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 혼자 살기도 벅찬데 아군 딜러들의 목숨은 어떻게 챙길 수 있겠는가. 브론즈는 자기 목숨 챙기는 것도 벅차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군 딜러를 지키지 못하고 앞에 보이는 적에게 무작정 W를 쓰고 들어가는 바람에 아군 딜러가 바로 잘리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순간 이동 타이밍을 잡는 것이었다. 상황이 종료될 때쯤 시전되는 나의 '뒷북 순간 이동'을 보고 팀원들이 차라리 점화를 들라며 꾸짖었다. 하지만 나도 억울한 것이 있다. 교전이 펼쳐졌을 때, 주위를 둘러봐도 순간 이동을 시전할만한 와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미리 채팅으로 교전이 발생하면 와드를 잊지 말고 설치해 달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타에서 대패한 뒤 남는 것은 팀원 간의 마찰뿐이었다.



[나는 브론즈다] 3주차 성적


▲ BRONZE 3 50LP (↓125LP)


2연승을 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내리 9연패를 하고 말았다. 부끄러울 정도로 처참한 성적이다. 진지하게 LoL을 그만둬야 하나 자괴감에 빠졌다. 고심 끝에 선택한 마오카이가 나를 연패의 늪에 빠뜨릴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탱커'를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 LoL에서 만만한 포지션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마오카이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게임을 거듭할수록 마오카이가 정말 좋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원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챔피언은 진절머리 나서 처다도 안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마오카이만큼은 언제든 기회가 되면 다시 꺼내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마오카이는 좋은 챔피언이었다.

비록 마오카이가 브론즈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힘든 챔피언이지만, 숙련도를 높여서 호흡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 충분히 존재감을 뽐낼만한 챔피언이었다. 대회에서 주류 픽으로 자주 등장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전히 마오카이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다. 이렇게 좋은 챔피언으로 이 정도 성적밖에 올리지 못했다니. 그래도 앞으로 마오카이 관련 교본을 볼 기회가 많이 남아있어서 위안으로 삼고 있다. 마오카이는 앞으로 대회에서 자주 등장할 것이다.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선보이는 마오카이 플레이를 보고 나의 부족한 점을 조금씩 채워나갈 생각이다. 끝으로, 못난 주인을 만나서 고생한 마오카이에게 감사와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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