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추진기가 달린 거대한 망치 한 자루, 팀원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넓은 에너지 방패. 원거리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기반으로 하는 FPS 장르에서 중세 시대에 어울릴 법한 무기를 두른 라인하르트의 존재감은 설정과는 모순되게 실로 대단하다.

이는 화물 운송, 거점 쟁탈, 거점 점령, 점령 후 운송 등 오버워치안의 모든 전장이 필연적으로 상대팀과의 백병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조가 아무리 신궁이어도, 위도우메이커가 아무리 주드 로 뺨치는 전설적인 스나이퍼라도 결국은 거점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서는 거점에 진입하거나 차량에 근접해야만 한다. 방패를 들고 있던 라인하르트의 무서움은 그 곳부터 시작된다.

공격력 75 로켓 해머를 1초마다 사방으로 휘두르는 체력 300, 방어도 200 괴물의 근접 공격 능력은 오버워치 내의 어떤 영웅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력하다. 여기에 능숙한 지원가의 전폭적인 힐링까지 더해지면 라인하르트를 중심으로한 강력한 정공법이 탄생한다. 지원가의 도움을 제대로 받는 라인하르트를 보유한 팀의 승률이 압도적으로 높은건 오버워치를 하는 플레이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런어웨이와 루나틱 하이의 APEX 시즌2 결승전 대결에서 런어웨이의 승리에 무게를 더 많이 둔 이유는 바로 라인하르트의 화신 '카이저' 류상훈이 있기 때문이었다. 류상훈은 라인하르트의 화신처럼 보였다. 언제 방패를 들어야 하는지, 언제 망치를 휘둘러야 하는지 모든 라인하르트가 어려워하는 문제를 류상훈은 마치 '내가 답이다'라는 듯 정확하게 풀어냈다.

라인하르트를 중심으로 한 힘싸움은 루나틱 하이보다 런어웨이가 훨씬 강력했다. 런어웨이는 세 세트가 진행되는 동안 각 세트별 첫 교전에 모두 승리했다. 이 힘은 런어웨이가 초반 세트 스코어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줬다. 런어웨이가 승리를 위해 단 한 세트만을 남겨두기까지 '학살' 김효종, '스티치' 이충희, '콕스' 김민수 등 많은 선수들이 활약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은 단연 '카이저' 류상훈의 라인하르트였다.

어깨 싸움에서 밀린 루나틱 하이는 패색이 짙었다. 5세트 하나무라에서 6분여의 가까운 시간을 상대에게 주면서 A거점을 빼앗겼을 때는 사실상 경기가 끝난 듯 보였다. 김정민 해설은 런어웨이의 B거점 공략을 앞두고 "이제 B거점만 밟아서 런어웨이의 땅을 만들면 사실상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우승컵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일까? 우승까지 단 한 걸음만 남겨둔 상황에서 런어웨이의 발자국이 꼬이기 시작했다. 메이의 빙벽에 로드호그가 끊긴 것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리야의 궁극기 '중력자탄'이 '준바' 김준혁 디바의 매트릭스에 사라지고, '카이저' 류상훈의 라인하르트가 지원가의 백업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 연속해서 화면에 잡혔다. 런어웨이는 5세트 종료 전, 조합을 재정비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진 못했다.

실낱의 희망을 잡은 루나틱 하이는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기 시작했다. 루나틱 하이에게 운이 따른 것은 6세트 경기 맵이 도라도였다는 점이다. 도라도는 겐지, 파라 등의 영웅이 초반부터 벽을 타고 넘어가 상대 뒤를 공략하기 좋은 맵이었다. 루나틱 하이가 자랑하는 돌진 포커싱 조합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맵이었고, 루나틱 하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운명의 6세트, '후아유' 겐지는 두 번의 날카로운 뒷진영 공략으로 런어웨이를 무너뜨렸다.

런어웨이의 빈 틈을 파고든 이는 '후아유' 이승준의 겐지였다. 이승준은 6세트 도라도, 공격과 수비 초반에 두 번의 날카로운 공격을 성공시켰다. 공격 진영에서는 벽을 타고 적진 뒤로 넘어가 지원가를 끊어내면서 상대 탱커진을 붕괴시켰고, 수비 진영에서는 2층 건물에서 대기한 뒤, '미로' 공진혁과 함께 상대 진영 뒤로 떨어져 지원가를 잘라냈다.

런어웨이는 6세트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수비 진영에서는 믿었던 '카이저'의 라인하르트가 끝까지 궁극기를 아끼다가 제대로된 상황을 맞이하지 못하고 패배했고, 공격 진영에서는 1차 경유지 조차 통과하지 못할만큼 팀을 추스리지 못했다. 카메라에 비친 런어웨이 팀 선수들의 얼굴은 굉장히 어두웠다. 5세트에 생겨난 불안감이 6세트 참패와 맞물리면서 런어웨이 선수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경기는 최종 7세트까지 갔지만, 승부는 사실상 6세트에서 갈렸다.


루나틱 하이는 우승을 차지할 자격이 있었다. 루나틱 하이는 5세트 중반까지 연달은 패배를 겪으면서 좌절할수도 있었고, 경기를 포기할수도 있었다. 경기결과는 그만큼 암울했고, 런어웨이는 그만큼 강력했지만, 루나틱 하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경기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계속 지켜냈다.

반면, 런어웨이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위기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기세를 탔을 때는 어떤 팀보다도 무서운 실력을 보여줬지만, 마음속에 생겨난 불안감이 증폭되고, 팀 전체를 사로잡을 때까지 이를 추스리고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런어웨이는 강했지만, 우승에 어울릴만큼 노련하진 못했다.

루나틱 하이와 런어웨이의 승부가 갈린 데는 전략이나 각 선수들의 활약 등도 중요했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경험'이었다. 루나틱 하이는 이미 많은 무대에 올라섰고, 큰 무대에서 승리의 기쁨을 느껴보기도, 아쉬움의 눈물을 삼켜보기도 했다. 지난 시간동안 겪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이 루나틱 하이를 버티게 만들었고 끝내 역전하게 만들었다.

런어웨이에겐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팀 창단 이후 두 번째 시즌만에 우승에 도전했다. 그들의 실력과 노력은 루나틱 하이를 패배 바로 앞까지 몰아넣을만큼 대단했다. 비록, 우승으로 넘어가는 단 한 고비를 넘기지 못했지만, 이번의 패배는 루나틱 하이가 그랬듯 다음 결승, 다다음 결승 우승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