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권투 만화 더 파이팅(The Fighting)이 묘사한 많은 경기 중 기무라 타츠야와 마시바 료의 주니어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는 20년이 넘게 진행된 연재 중 독자에게 가장 많은 감동을 전한 에피소드로 손꼽힌다.

챔피언 마시바 료에게 도전하게 된 기무라 타츠야. 마시바 료는 왼손 가드를 내린 상태에서 주먹을 날리는 일명 '플리커 잽' 등을 구사하는 주니어 타이틀급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반면, 기무라 타츠야 본인은 자신이 장점도, 단점도 없는 밋밋한 선수라는 것을 깨닫는다. 연습과정에서 플리커 잽을 비집고 들어가더라도 경기를 마무리할 한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기무라 타츠야는 물고기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에서 착안한 '드래곤 피쉬 블로우'를 개발해 경기에 나선다.

모든 이들의 예상처럼 경기는 마시바 료가 주도했다. 상대의 뛰어난 기술에 수세에 몰리던 기무라 타츠야는 고전 끝에 마시바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회심의 드래곤 피시 블로우를 날린다. 펀치가 제대로 적중하면서 기무라 타츠야는 승기를 잡지만...




2016년 LCK에 복귀한 MVP는 처음부터 눈에 띄는 팀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막 호흡을 맞췄고, 배울 건 산더미처럼 많았다. 게다가 부족한 라인전 실력은 MVP 본인들이 인정할 만큼 명확한 약점이기도 했다.

MVP는 1년여의 패배와 경험을 통해 자신들만의 무기를 만들어낸다. 바로 카운터 펀치다. 부족한 라인전 단계의 피해를 최소화해 체력을 비축하고, 상대가 본격적으로 때리려는 타이밍에 먼저 주먹을 뻗어 상대를 맞춘다. 상대는 라인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었기에, MVP의 반격을 예상하지 못한다. 펀치가 턱에라도 걸릴 경우, MVP는 곧바로 상대를 몰아쳐 경기를 끝냈다.

2017년 MVP는 노련한 팀이었다. 자신들의 약점인 라인전 단계에서 게임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맞았다. 그렇게 중, 후반 운영에 돌입하면 MVP는 자신들이 먼저 한타 각을 보고 싸움을 걸었다. MVP는 주로 아군 정글 쪽에서 한타를 자주 유도했다. 라인전이 끝난 상대는 본격적으로 아군 정글에 진입해 시야를 장악하는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진영이 분산된다. MVP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싸움을 걸어 최소한 한 명을 전장에서 이탈시켜 한타 필승 구도를 만들었다.



▲ MVP의 카운터 펀치가 제대로 들어가는 순간

MVP의 카운터 펀치는 상대가 유리할수록 더 날카롭고 아프게 들어갔다. 때리기만 하는 상대의 가드가 내려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의미에서 kt 롤스터는 MVP에게 상극이었다.

kt 롤스터는 라인전 압박을 통해 경기를 풀어가던 팀이었다. 각 라인을 담당한 개개인의 개인 기량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라인전의 우위를 통해 운영하고 승리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MVP가 더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라인전이 강점인 kt 롤스터는 라인전이 약점인 MVP를 일방적으로 때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때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뭐야, 얘들 너무 못하잖아. 이 경기는 절대 안 지겠는데?'

kt 롤스터는 유독 MVP전에서 무리한 싸움을 여는 경우가 잦았다. 우리가 유리하니 대충 싸워도 이긴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MVP의 카운터 펀치는 빛을 발했다. 그것이 브랜드로, 사이온으로 눈에 띄었기에 MVP의 강점이 이색적인 챔피언 기용처럼 보였을 뿐. MVP의 진짜 무기는 불리할 때, 상대가 방심할 때 내지르는 카운터 펀치였다.



▲ kt 롤스터는 MVP의 카운터 펀치를 조심하고 있었다.

이번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 kt 롤스터가 MVP를 상대로 승리한 이유는 단 하나, 방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2 세트에는 라인전부터 조심스럽게 풀어갔고, 중, 후반 한타 구도에서는 먼저 때리지 않고 상대가 주먹을 내뻗기를 기다렸다가 받아쳤다. 시야 장악 단계에서도 MVP의 노림수를 잘 경계하고 있었다. 애쉬의 마법 수정 화살이 번번이 빗나갔던 건, kt 롤스터가 그만큼 충분히 조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MVP는 kt 롤스터와의 대결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약점이라고 평가받았던 초반 라인전을 굉장히 잘 준비해왔고, 유리한 상태에서 중반 운영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중, 후반 운영에서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한타 집중력도 굉장히 좋았다. 바루스를 노리고 들어가는 '비욘드' 김규석의 리 신이나 케넨을 압박했던 '애드' 강건모의 사이온, 변수를 만들던 '맥스' 정종빈의 블리츠크랭크, 여전했던 팀워크까지 보는 이들의 눈을 호강하게 한 경기력이었다.


상대를 인정하고 경기를 준비한 kt 롤스터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이안' 안준형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신드라를 인정하고 밴픽과정에서 금지했던 것도 좋았고, 다소 무리했던 몇 장면이 3세트에 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조심스럽게 경기를 운영했다. 마지막 3세트에는 본인들의 장점이었던 강한 라인전 능력까지 살아나며 3:0 완승을 거뒀다.

kt 롤스터와 MVP의 대결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MVP와 상대를 인정한 kt 롤스터의 다음 매치업은 서로가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대비했는지에 따라 경기 승패가 판가름날 것이다. 서로 완벽히 다른 개성을 지닌 MVP와 kt 롤스터. 두 매력적인 팀의 대결을 당분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