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장문의 글보다 사진 한 장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그렇기에 각종 현장에서 쓰이는 기사에는 사진이 적게는 한 장부터 많게는 수십장의 사진이 들어간다. 하루가 멀다고 열리는 각종 게임 관련 행사나 e스포츠 리그가 있는 날이면 사진기자들은 기사와 함께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현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니곤 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e스포츠 선수나 유명인사들을 항상 가까운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있으니 마냥 부러워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진기자들 역시도 다른 취재기자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고충과 애환이 함께하는 직업이다. 사진 한 장에 울고 웃는 사진기자의 하루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아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사진기자'라는 포지션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 적어보자 한다. 아무도 몰라주기엔 꽤 매력적인 직업이니까.



1. 사진기자의 일상

사진기자의 업무 특성상 많은 일정을 e스포츠 팀과 함께 하다 보니 간혹 e스포츠 팀이 아니냐는 오해를 종종 받기도 하지만 사실 사진기자는 '뉴미디어 팀' 소속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각종 SNS에 게임 관련된 뉴스와 콘텐츠 등을 제작해 올리는 것이 일상업무이다.

현장취재가 없는 날에는 (사실 대부분 현장 취재가 있긴 하다) 사무실 한쪽에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새로운 기사가 올라오는지 감시하다가 동료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들을 SNS의 특성에 맞게 가공하여 업로드하곤 한다.


▲장비보다 포켓몬이 많아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이 외에도 각종 만평이나 만화, 영상 등 말 그대로 '미디어'와 관련된 모든 일을 맡아서 제작하고 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추가로 사진기자들은 포토샵을 다루는데 꽤 능숙하므로 기사에 들어갈 여러 가지 삽화, 일명 '짤방'을 제작하곤 한다.

주로 밤에 활동하는 e스포츠 기자들의 습성상 새벽에 한창 솔랭을 돌리고 있는데 갑작스레 '짤방' 좀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상대 정글의 갱킹 마냥 예고 없이 들이닥치고는 하는데, 지금이야 이런 일들이 아주 익숙해졌기 때문에 별 힘들이지 않고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입사 초기엔 그저 사진만 찍으면 되는 줄 알고 있던 터라 꽤 애를 먹던 기억이 난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인벤 만평을 비롯해서...


▲기사에 들어가는 각종 이미지들 또한 사진기자가 작업한다.


▲이런 짤방은 새벽에 만들어야 약빨(?)이 더 잘 받는 경우도 있다.


현장 취재 일정은 회의 시간을 통해 조율된다. 롤챔스만 계산해도 한 주 동안 5일이나 일정이 잡혀있고 피파 온라인3, 스타크래프트2, 하스스톤 등 꽤 많은 게임이 항시 리그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사진기자 한 명이 이 모든 일정을 감당하기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각자의 여가생활, 중요한 약속, 경조사, 레이드 일정 등을 고려해 (아마도) 균등하게 분배가 된다.



2. 사진기자의 현장


사진기자는 회의 시간을 통해 분배된 일정에 따라 리그가 열리는 현장으로 취재를 나가게 된다. 현장취재는 사진기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 업무 중 하나인데, 취재가 가장 잦은 롤챔스를 기준으로 하루에 2경기씩 진행되다 보니 2:0으로 단군이 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쉴 틈도 없이 경기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선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현장의 흔한 사진기자.JPG


▲현장에서 쓰이는 장비들


다시 한번 규모가 가장 크고 빈도가 잦은 현장인 롤챔스를 기준으로 하자면 사진기자들은 경기 시작 1시간 전에서 늦어도 40분 전에는 현장에 도착하곤 한다. 5시에 시작하니 보통 4시쯤이면 현장에 도착하게 되는데 상암의 경우, 이때부터 사진기자의 하루 중 가장 피 말리는(?) 시간이 시작된다.

바로 경기 시작 전 40분 동안만 주어지는 포토타임 때문. 이 40분 동안 세트별 경기 기사, 종합 기사, 포토 기사, 그리고 풍경기에 올라갈 모든 사진을 찍어야 한다. 문제는 이 40분 안에 선수들이 부스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

차분히 부스에서 손을 풀며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도 물론 존재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부스 밖에서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도 있으므로 포토타임 마감 10분 전, 조금 심한 날은 5분 전에 부스에 들어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텅 빈 부스를 보면 앞이 깜깜하고 속이 타들어 가지만 어쩌겠는가.

이날의 주인공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사진 좀 찍어야 하니 부스에 좀 앉아 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그저 대기실에서 모든 준비를 끝내고 1분이라도 빨리 부스로 나와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자넨 평소에 우리들 사진에 이상한 드립을 쳤지...'


▲'이제 게임을 시작하겠다...'


▲사진기자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풍경이다.


▲'가...가지말아줘...'


물론 이렇게 부스 자체가 텅 비어버리는 일은 아주 드물다. 반드시 한 명 내지 두 명의 선수들은 부스에 나와서 손을 풀고 있고,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나머지 팀원들도 하나둘, 부스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아마 이 순간이 사진기자가 가장 바쁜 시간이 아닐까?

좀 더 다양한 모습의 선수들을 담기 위해 쉴 틈 없이 셔터를 누르곤 한다. 분명 카메라 패널에 1,000장 이상 표시되던 메모리 카운트는 포토타임이 끝나면 많을 때는 300, 평균적으로는 5~600이 표시되곤 한다.

▲일단 찍고보자!!


▲경기 전엔 이런 다양한 모습도 찍을 수 있다.


▲가끔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기도...


▲이런 사진엔 반드시 캡션으로 드립을 치고 싶어진다.


▲LoL 뿐만 아니라 APEX 등 다른 리그 또한 포토타임에 자비란 없다.


▲그저 주어진 시간동안 최선을 다할 뿐...


가끔 인터뷰 등을 통해 얼굴을 익힌 선수들이나 카메라를 겁내지 않아 하는 선수들은 렌즈를 향해 포즈를 취해주기도 한다. 아니면 의도치 않게 카메라를 한 0.5초 정도 바라봐주는 선수들이 가끔 있는데, 이럴 때는 인게임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커튼콜을 피하던 나의 반응속도를 떠올리며 재빠르게 셔터를 눌러줘야 한다.

운이 좋으면 정말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지만, 보통 커튼콜 4발 중 3발 정도를 맞던 내 케이틀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현자타임에 빠지게 된다.

▲보통 커튼콜의 4발 중 1발은 피하니까, 같은 논리로 1장 정도는 건질때가 있다.


▲평소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선수들은 아예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해주기도 한다.


▲이런 날엔 꼭 퇴근하고 나서 미뤄뒀던 강화를 지르곤 한다.


만약 이 40분 안에 충분한 사진을 찍지 못했다면 조금은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게 된다. 경기 시작 후에는 단상 위쪽으로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단상 밑에서 망원렌즈를 장착한 채로, 양손을 치켜든 채 고통받으며 추가 사진을 찍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구도도 제한적이고 경기 시작 후에는 다양한 모습을 담을 수 없으므로 반드시 포토타임 동안 최대한 다양한 구도의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좋다.


▲단상 밑에서 찍게되면 이런 구도 밖에 나올 수 없게 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특설무대에서 촬영을 해야하는 경우엔


▲이런 참사가 벌어지기도...


▲표정이 사진기자를 구원한 케이스


▲강남 넥슨 아레나의 경우 경기 중에도 충분히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리액션들을 담을 수 있다.


▲피파 온라인3 리그는, 골을 넣은 선수들의 리액션이 크기 때문에


▲골이 터진 선수가 있는 부스를 향해 전력질주를 할 때도 있다.


▲아 참, 그리고 넥슨 아레나에는...


▲여신들이 존재한다...


포토타임 동안 무사히 사진 촬영이 끝났다면 이제부터 길고 긴 편집과정이 남아있다. 포토타임동안 찍었던 수백 장의 사진 중 쓸만한 사진을 선별해서 보정작업에 들어간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취재기자들은 경기를 보며 경기 기사를 작성하지만, 사진기자는 모니터와 씨름하느라 경기 내용은 하나도 보질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복귀하고 침대에 누워 자기 전에 그 날 있었던 경기를 인터넷으로 다시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곤 한다. 난 분명 현장에 있었는데 왜 전부 처음 보는 장면인 것인지...

▲포토타임이 끝나면 길고 긴 인내와 고뇌의 시간이 찾아온다.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런 몹쓸 사진을


▲심폐소생하고 나면 묘한 쾌감마저 느껴진다.


보정작업이 끝났다면 경기 기사에 활용될 사진들을 취재기자들에게 전달하고 풍경기 작성에 돌입한다. '돌발포토'로 통하는 현장 풍경기는 전임자였던 라쏘기자가 온갖 드립으로 기틀을 잡아놨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드립을 쳐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사명감(?)이 존재했다.

포토타임에 마구잡이로 찍은 사진들을 그럴듯하게 배열하고, 어울리는 드립을 생각하면서 캡션을 달다 보면 어느새 경기는 막바지를 향해 내달린다.


▲입사 전, 일반인이었던 필자에게 문화컬쳐를 선사했던 라쏘기자의 드립



▲돌발포토의 드립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기가 끝나면 승자 인터뷰와 단체 사진 촬영이 진행된다. 경기 내내 기자실에 틀어 박혀있던 사진기자들이 다시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상암의 경우 14층에 있는 선수 대기실 앞에서, 강남의 경우 2층 기자실 앞쪽에서 사진 촬영이 진행된다. 방송사에서 진행되는 MVP 인터뷰가 끝나고 팀원들이 모두 모이면 기념 촬영과 인터뷰 사진 촬영을 하는데, 아무래도 경기가 끝난 후에 촬영이 진행되는 터라 선수들도 긴장이 많이 풀려있고 홀가분한 상태. 때문에 팀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시간이다.

▲경기 종료 후 진행되는 MVP 인터뷰가 끝나길 대기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인터뷰를 마친 선수들은 대부분 들떠있는 모습.


▲부스에선 볼 수 없었던 자연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


▲스킨십을 좋아하던 '엄티' 엄성현 선수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체 사진은 이렇게 촬영된다.


▲기자실 앞에서 진행되는 인터뷰 사진 촬영


▲보통 이렇게 무난한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렇게 유쾌한 포즈를 취해주는 선수들도 있다.


▲촬영하다 보면 가끔 탈모빔을 맞기도...


▲영상 인터뷰 일정이 있는 날엔, 구단 측에 먼저 허가를 구하고 촬영이 진행된다.


▲이렇게 영상 인터뷰까지 마치면, 사진기자의 하루도 끝나간다.


이렇게 인터뷰 사진까지 모두 무사히 마무리하고 나면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난다. 온종일 경기장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고, 계단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당장에라도 침대에 누워 골아 떨어지고 싶다가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돌발포토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고 있자면 다음 날에 다시 현장으로 출근할 수 있는 힘을 얻고 한다.



3.사진기자의 하루 끝

사실 사진기자는 리그 현장 뿐 아니라 각종 인터뷰, 게임 관련 행사, 화보 촬영, 인벤 방송국 자체 프로필 촬영 등 수 많은 현장을 누비곤 한다.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목적을 가진 현장으로 항상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잘 찍을 수 있을까?' '무사히 촬영이 끝날까?'라는 불안감이 마음속 한 켠에서 맴돌곤 한다.

▲특히나 결승전처럼 큰 무대일 수록, 부담은 커져만 간다.


▲물론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나서의 그 뿌듯한 기분은 정말 멋지지만...


▲'뱅' 배준식 선수의 화보는 기획부터 촬영까지의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사실 화보가 나갈 수나 있을까, 하고 심하게 걱정했었다.


▲'마린' 장경환 선수의 화보는 꽤나 장시간에 걸쳐 촬영됐는데


▲긴 촬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입사하고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찍게 된 조은정 아나운서의 화보.


▲지금 찍으라고 하면 이거보다 다섯배는 잘 찍을 수 있을텐데...쩝!


불안감 속에서도 어김없이 촬영은 진행되고 생각보다 만족했던 적도, 찍고 나서 정말 막막했던 적도 많다. 하지만 막연하게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이미지가 실제로 렌즈 앞에서 펼쳐질 때, 결과물로 스크린에 띄워 질 때, 그 순간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은 아마 사진기자만의 특권이 아닐까?

조금이라도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혹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오늘도 사진기자들은 노트북과 카메라를 등에 메고 현장으로 향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마친다.


▲다음 현장에서 만나요!


사진 : 석준규,남기백,박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