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규모의 2017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이 세계 축제다운 경기와 볼거리로 중국 대륙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팬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는 중국팀들은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한국 팬들은 '그래도 우승은 한국'을 외치면서도 해외팀과의 경기를 조마조마 지켜보는 중이다. 그리고 영원한 라이벌 북미와 유럽 역시 뜨거운 열기 속에서 누가 더 나은지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뜨거운 감자가 존재한다. 바로 '불타는 향로'다. 이미 롤드컵 시작 전부터 OP(Over Power)를 자처한 불타는 향로는 아군의 성능을 대폭 증가시켜주는 서포트 아이템이다. 특히 원거리 딜러 챔피언은 불타는 향로의 고유 지속 효과를 받는 순간, 상대를 순식간에 녹여 버리는 시너지를 발휘한다. 여기에 체력 흡수 기능까지 갖춰, 상대하는 입장에서 여간해선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현재 상황에서 승리로 가는 지름길인 불타는 향로가 있으니 롤드컵에 참가한 팀들 모두 마다할 리 만무하다. 지금까지 치른 플레이-인 스테이지를 포함해 그룹 스테이지 1주 차까지의 경기를 살펴보면 63경기 동안, 불타는 향로는 59경기에 등장했다. 극 초반에 경기가 마무리돼 아이템을 완성하지 못한 경우를 포함하면 60경기에 달한다. 오죽했으면 '향로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겼을 정도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아이템이라 평가하기에는 억울한 면도 있다. 서로가 불타는 향로를 갔을 때, 결국 잘하는 팀이 승리한다는 공식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롤드컵의 트렌드를 주도하던 존재는 항상 있었고, 그것을 무조건 OP라 분류하기에는 어렵다. 단순하게 1티어로 지정된 챔피언들과 비교하면 밴픽 단계라는 과정이 없는 아이템은 모두가 같은 조건이기 때문에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저 불타는 향로는 선택이 아닌, 필수불가결인 그야말로 신 메타라고 보는 것이 옳다.

▲ 향로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잔나와 룰루.

■ 유례없는 절대적 아이템 메타, "잔나님 CS 드세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 준비한 전략과 전술이 매우 뚜렷한 색채를 띠었다. 정글러가 강타를 배제하거나 서포터가 블리츠크랭크를 택해 순간이동으로 초반 싸움을 설계하는 등 독창적인 모습이 많았다. 조합만큼이나 수 싸움이 매우 치열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때에 따라 세 개의 순간이동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한타에 특화된 챔피언들의 조합이 돋보였다.

2013년과 2014년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라인 스왑 운영과 함께 수많은 와드를 통해 주도권 싸움이 펼쳐졌다. 그리고 탑 라이너의 소환사 주문이 순간 이동으로 굳혀지면서 합류 싸움 역시 치열해졌다. 대부분 첫 타워를 나눠 가지면서 우월한 시야를 바탕으로 오브젝트 컨트롤에 적극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원거리 딜러는 단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고, 서포터와 정글러는 시야에 중점을 두며 탑 라이너에 필연적인 다이브 공격을 수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흐름은 탑이 이어받게 된다. 2015년은 공수 밸런스는 물론 운영 측면에도 위력을 발휘하는 다리우스가 주류 픽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미드 라이너들은 다양한 챔피언으로 조합에 깊이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르블랑-카사딘 등을 고르는 팀이 있는가 하면, 빅토르나 아지르처럼 수성과 후반을 지향하는 이들의 전투 구도로 이어졌다. 당시 원거리 딜러는 징크스를 필두로 트리스타나-시비르 같은 후반에 위력을 과시하는 챔피언들이 자리했다.

정글러의 활약이 돋보였던 2016년에는 상체 쪽에서 벌어지는 2:2 싸움이 빈번해지면서도 봇 듀오의 주도권 싸움이 매우 중요해졌다. 라인 스왑이 사라지면서 맞 라인전에 대한 중요도가 커졌고, 대개 진과 이즈리얼의 대결로 흘러갔다. 만약 이 싸움에서 기세가 꺾인다면 팀 운영에 큰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이 5인 다이브 공격을 감행하곤 하는데, 전과 달리 원거리 딜러의 유틸성이 큰 역할을 해냈다. 그러한 이유로 애쉬도 상당히 오랫동안 1티어 원거리 딜러로 평가받았다.

▲ 봇 라인의 구도를 완전히 뒤바꾼 불타는 향로.

그러한 탓에 봇 듀오의 원성은 자자했다. 딜러로서 활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서포팅 역할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당연할 터였다. 그러나 올해 불타는 향로가 떠오르며 봇 듀오의 활약은 활활 타올랐다. 물론, 이전까지의 원거리 딜러 메타와는 차이점이 크다. 불타는 향로와 얼마나 시너지를 발휘하는지가 관건이 됐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밴을 당하는 칼리스타를 제외하면 트리스타나-코그모-트위치가 세력을 이룬다. 잔나-룰루가 뒷받침하는데, 여기서 서포터는 불타는 향로 완성을 목전에 두면 미니언을 양보받기까지 한다. 사장 됐던 '돈 룬'과 시간만 흐르면 골드가 수급되는 고대 주화가 시작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불타는 향로가 봇 라인전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사실상 순수한 2:2 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데스를 기록하면 안 되기에 봇 듀오의 소환사 주문으로 방어막과 회복이 조합됐고, 밀리지 않는 선에서 불타는 향로를 먼저 완성하면 그것으로 일차적인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반 싸움을 하니 갱킹 위협은 줄어들고, 원거리 딜러 보호에 최적화된 서포터가 존재하니 시야석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반대로 표현하면 아군 정글러는 갱킹 호응력이 떨어지는 수비적인 라인에 굳이 동선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 됐고 말이다.

▲ 그 무엇도 불타는 향로보다 우선될 수 없다. '고릴라' 강범현의 아이템 트리.

■ 비선 실세 불타는 향로, 모든 것은 '그 아이템' 뜻대로.

앞서 말한 대로 불타는 향로의 영향력은 엄청났지만, 비단 봇 듀오만 제한받는 것은 아니다. 수비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위해 많은 곳의 희생이 따른다. 예컨대 탑 라인과 정글러는 탱커 챔피언이 선호된다. CC(Crowd Control)기와 단단함을 갖춰 원거리 딜러 보호와 이니시에이팅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 대표적으로 그라가스와 세주아니 그리고 마오카이가 있다.

당연히 공격적인 챔피언들도 모습을 드러내지만, 자르반 4세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 큰 성과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미드 라이너들의 역할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 압도적인 기동성을 자랑하는 탈리야가 밴 리스트에 오르며, 라이즈의 등장이 눈에 띈다. 신드라 또한 꾸준히 부름 받는 중이다. 이들은 스킬 적중에 따라 상대 원거리 딜러를 잡거나 카이팅을 통해 지속 전투에 힘을 쏟는다. 만약 공격이 엇나갈 경우, 상대 반격에 허무하게 죽을 가능성이 높아 이전처럼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기는 어려워졌다.

서포터들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국내 프로게임단들은 잔나를 가장 좋은 챔피언으로 꼽는다. 그런데 성능에 대해서 섣불리 좋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불타는 향로가 없었다면 잔나-룰루 구도가 형성될 이유는 없었다는 게 주된 의견이었다. 즉, 불타는 향로와의 시너지가 좋았기 때문이지 챔피언 자체가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밴 카드를 소모하기에도 아깝다는 주장 역시 존재했다. 불타는 향로가 그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꺼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결국, 불타는 향로가 전 라인을 좌지우지 하는 셈이다. 하다못해 '향로폿'이 아니더라도 니달리, 아이번 같은 정글러를 활용해 버프를 입힌다. 간혹 미드 카르마도 불타는 향로를 이용하며, 어떤 방법으로든 아군에게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승리를 향한 길이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 재미까지 불태운 향로? 각 지역팀들도 '절레절레'

너도나도 그저 불타는 향로를 외치니 재미가 반감됐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롤드컵 뒷이야기로 한 팀은 "어떤 팀은 불타는 향로 때문에 엎어지는 연습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극단적으로 '침대 메타'라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비상식적인 결과가 발생한다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프로게임단 한 관계자는 "아무리 유리해도 서로 불타는 향로가 나온 후반이라면 한 번의 실수로 뒤집힌다. 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과정이 무시되는 현 상황이 무척 아쉽다"고 의견을 전했다.

다른 한국 팀의 반응은 "잘 비비면 누가 이길지 모르기 때문에 결과를 기다리는 팬들은 재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준비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로또 같다"고 답했다. 또 "불타는 향로를 중심으로 조합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만약 이를 파괴하려고 전략을 준비한다면 유통기한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셈이다. 우리의 선택에 기한이 생긴 것뿐만 아니라 상대의 아이템 구성이 언제 되는지도 중요해졌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사실 준비한 쪽의 리스크가 훨씬 크기 때문에 굳이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수혜자로 여겨지는 중국팀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답변을 건넨 관계자는 "솔직히 후반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아서 해외팀이 한국팀들을 상대로 변수를 만들 여지는 충분하다"면서도 "불타는 향로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휘어잡아 빨리 끝내야 하는데, 한국팀을 제외하면 스노우 볼을 굴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공략법을 제시하고 싶어도 부담이 크기 때문에 그저 메타에 순응하는 것이 해답이다"라고 말해 중립적인 입장을 표했다.

북미팀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는 "그냥 OP다. 2017년은 불타는 향로라고 표현하면 모든 설명이 끝난다"며 말을 아꼈고, 유럽팀은 "균형 잡힌 경기가 아닌,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탑, 정글, 미드 라인은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봇 라인은 유연하지 못하고 같은 방식으로 흘러가 흥미가 떨어진다"고 평했다.

전반적으로 각 팀의 반응은 부정에 가까웠다. 획일화된 경기가 롤드컵 초반부터 지루함을 발생시켰다면서도 어째서 불타는 향로의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패치가 늦어졌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절대적으로 강했던 한국팀을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결과를 통해 재미를 만드는 게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반응도 뒤따랐다.

▲ 향로 앞에서도 자신들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 롱주 게이밍.

■ 팩트 체크, 경기 시간과 챔피언의 다양성에는 문제가 없다.

직접 경기를 하는 프로게이머들과 팬들의 반응은 다를 수 있다. 단순하게 경기 양상만 가지고 재미가 없다고 하기에는 취향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진득한 장기전에서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는 점을 즐길 것이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역전승을 거둔다면 그 짜릿함 또한 충분히 흥미 요소다.

정말 팀 대부분이 후반을 지향하며, 현재 메타가 기형적인 구조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 아직은 섣부르다. 이제 그룹 스테이지 1주 차를 진행했을 뿐이고, 남은 경기가 더 많은 상황에서 누군가 공략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크다. 그전에 정말 불타는 향로가 장기전을 초래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기간 24경기의 평균 시간을 따져보면 2017 롤드컵은 평균 경기 시간 약 37분으로 지난해 대비 약 1분 이상 단축됐다. 2015년 그리고 2014년과 비교하더라도 약 1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장기전의 척도라 할 수 있는 40분 이상 경기 역시 올해는 8회에 불과했다. 2016년과 2014년은 이보다 한차례 많은 9회를 기록했다.

사실 챔피언의 다양성 문제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챔피언의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쳤을 뿐, 1라운드 1주 차까지 모습을 보인 챔피언은 51개에 육박한다. 이전 기록들과 대조해 보면 같은 기간 2016년 46개, 2015년 58개, 2014년 49개로 절대 적지 않다.

대신 봇 듀오 구성에서 이번 롤드컵에는 14개의 챔피언밖에 선택받지 못했다. 이전 시즌들보다는 낮은 수치다. 잔나(15회)-룰루(14회)-트리스타나(13회) 순서로 높은 픽률을 보였으며, 이전 롤드컵들처럼 최소 6개 이상의 챔피언이 고르게 등장하지는 못했다.

■ 향로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분명 보이는 데이터로 불타는 향로의 문제를 삼기 모호하다. 당연히 모든 팀이 같은 아이템을 가지고 비슷한 운영을 한다는 점은 지루함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나, 시류에 편승하면서도 이를 파훼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자르반 4세-오리아나-라칸을 구성해 대역전을 일군 SKT T1의 극 한타 조합이나 삼성 갤럭시를 무너뜨린 RNG의 치명적인 속공 그리고 기가바이트 마린즈의 충격적인 운영이 그 증거다.

앞으로 밴픽 단계에서도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질 것이며, 남은 대회 기간 얼마든지 새로운 방식으로 타파하는 팀이 나올 수 있다. 잔나와 룰루를 금지해 향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아니면 탈리야와 비슷한 유형의 강력한 로밍 특화 챔피언을 꺼낼 여지도 충분하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결과만 지켜봤을 때, 큰 틀은 불타는 향로다. 그리고 그에 맞설 수 있는 해답도 향로뿐이다. 어느팀이 묘수를 고안할지 궁금하지만, 간단하게 재미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어쩌면 불타는 향로가 일으키는 나비효과는 실로 거대할 수 있다. 과정보다 결과가 더 재미있는 정말 예상하기 어려운 역대 최고급 롤드컵을 기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