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롤드컵에서 해외팀과 LCK팀의 다전제 대결 구도의 긴장감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3년부터 롤드컵 우승 트로피는 모두 한국팀이 가져갔고, SKT T1이 3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게다가, 2015년부터 롤드컵 8강 이상 올라간 한국팀이 해외 팀에게 패배해 떨어지는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플래시 울브즈가 그룹 스테이지 단계에서 SKT T1(2016)과 쿠 타이거즈(2015)를 꺾긴 했어도 상위 라운드에서 한국팀을 만날 기회마저 없었기에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롤드컵에서 중국팀 RNG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한국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로 깔끔하게 2전 전승을 기록하면서 상위 라운드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RNG는 중국식 운영의 대표 주자로서 누구보다 매서운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더 높은 곳에서 LCK 팀을 만나더라도 위협적일 만한 경기력이었다.

반대로, 롱주 게이밍은 이번 롤드컵 역시 LCK가 강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해외 지역 1번 시드팀들이 모두 탈락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아 1번 시드 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그룹 스테이지에서 홀로 전승을 기록하면서 단 1패의 오점도 남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킬과 어시스트를 비롯한 각종 차트까지 최상위권을 장악하며 LCK 팀 중에서도 최고의 기세로 달리는 중이다.

이번 롤드컵에서 LCK와 LPL의 기세를 대표하는 롱주 게이밍과 RNG. 메타에 대한 해석부터 다른 그들의 승리 공식은 무엇일까.



한 박자 더 빠르게 불타는 '향로' - 중국-RNG 특유의 메타 활용법은?



RNG와 중국 팀들은 이번 롤드컵의 핵심인 '불타는 향로'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원거리 딜러의 무서운 후반 캐리력에 집중한다면, RNG는 한발 빠르게 불타는 향로를 활용한다. 초-중반부터 강하게 몰아쳐 이득을 취한 뒤, 빠르게 원거리 딜러가 활약할 수 있는 한타 중심의 경기로 끌어가 승기를 굳히는 것이다.

RNG는 G2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모두 협곡의 전령과 포블을 챙겼다. 단순히 봇 라인에 힘을 줘 포블을 가져가는 것을 넘어 다양한 스노우 볼의 형태를 선보였다. 삼성 갤럭시와 1차전에서는 봇 라인을 밀어 넣고 탑으로 합류해 다이브 킬-포블-협곡의 전령까지 세가지 이득을 챙겼다. 1, 2차전 모두 포블을 기록한 뒤 협곡의 전령 대치 구도가 나왔고, RNG가 샤낭을 마치고 유유히 빠져나가며 일방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그림이 나왔다. 삼성 갤럭시가 협곡의 전령 쪽에 인원을 배치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는 장면이 연이어 나왔다. 페네르바체와 2주 차 경기에서는 상대의 다이브를 깔끔하게 받아치면서 기회를 잡았고, G2를 상대로 포블을 내주고도 킬 스코어 격차를 벌렸다.

이렇게 운영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순간 초반 RNG의 힘은 막강해진다. 한타 중심 구도에서 빠르게 '우지'의 화력이 초-중반부터 빛나기 시작하면서 그대로 RNG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상대가 불리한 상황을 한타로 극복해보려는 순간, 이미 '우지'가 화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초반 주도권은 나머지 팀원들의 픽으로 확실히 잡아간다. '향로'가 더 빨리 타오르도록 기름을 붙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픽으로 삼성 갤럭시 전에서 'Mlxg'는 자르반 4세와 리 신을 뽑을 수 있다. 자르반 4세로 초반부터 상대 미드-탑 라이너의 점멸을 강요하고 다이브-한타 구도에서 활약할 수 없도록 힘을 빼놓는다. 리 신으로는 미리 시야를 장악한 뒤 '앰비션'을 끊어내는 장면도 나왔다. 탑-정글이 탱커를 선택했을 때는 미드 제이스와 같은 픽으로 초반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다. 그렇게 포블과 협곡의 전령을 차지해 원거리 딜러에게 글로벌 골드로 힘을 실어주고 시작한다.



한타 단계에서는 탑-정글 픽이 활약한다. 상대가 대놓고 수비를 하려는 순간, 탑 라이너 '렛미'가 등장한다. 자르반 4세와 함께 포탑으로 뛰어드는 탑 갈리오, 상대 '뚜벅이' 딜러 위에 이퀄라이저 미사일을 깔아버리는 럼블. 한타와 다이브에서 좋은 픽을 가져와 스노우 볼에 가속도를 붙여주는 것이다. RNG 앞에서 '대치 구도'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갈리오와 럼블의 궁극기가 함께 하는 초-중반 교전에서 원거리 딜러의 활약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중반 단계에 팀 파이트에 강한 픽을 잘 활용한 팀이 RNG다.

이 모든 RNG 조합의 정점은 역시 원거리 딜러 '우지'가 뛰어난 활약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원거리 딜러가 활약할 수 있는 아이템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정확한 포지션과 계산을 보여준다. 한타 때 상대 원거리 딜러나 서포터를 먼저 쓰러뜨리고 일방적으로 자신만 딜을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한타 단계에서 확실한 활약을 보여줬기에 팀원들 역시 '우지'를 믿고 나머지 팀원들이 초반부터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것이다. 불타는 향로-봇 라이너 중심의 현 메타에서 핵심 역할을 잘 해냈다. 페네르바체전 베인 픽은 RNG가 얼마나 '우지'를 중심으로 경기를 펼치는지 잘 보여준다.


▲ '우지'가 왔다!




탑은 역시 딜러?! - 여전히 롤드컵 분위기는 LCK가 최강, 롱주 게이밍


▲ 탑 탱커 없어도... '아빠-엄마'는 괜찮다

초가스-마오카이-갈리오 같은 탱커가 이번 롤드컵의 탑 라인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롱주 게이밍은 지난 롤챔스 섬머 결승부터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여전히 '칸' 김동하의 자르반 4세와 제이스라는 딜러 카드를 주로 선택했다. 분명, 불타는 향로와 함께 탑에서 봇으로 핵심 라인이 바뀌었다. 원거리 딜러가 딜을 잘 넣을 수 있게 탱킹과 CC를 넣어주는 탱커를 뽑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 탑 딜러를 선택한 많은 해외 팀들이 그룹 스테이지 단계에서 패배하면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롱주 게이밍은 어떻게 탑 딜러와 함께 전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롱주 게이밍 특유의 한타 능력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피지컬과 판단이 뛰어나기에 팀원들 스스로가 활약할 구도를 찾아간다. 다른 팀들이 탑-정글 탱커가 버티면서 원거리 딜러가 딜을 하는 구도라면, '프레이' 김종인은 탑 탱커 없이 스스로 살아남아 딜까지 한다. 그것도 '뚜벅이' 원거리 딜러 바루스(3회), 코그모로 말이다. 나머지 팀원들도 마찬가지로 칼 같은 어그로 핑퐁과 함께 살아남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기가바이트 마린즈 전 한타에서 그런 양상이 잘 나타난다. 모든 CC가 한 방에 들어가면서 끝나는 한타가 아닌 적절히 치고 빠지는 롱주 게이밍 특유의 한타가 나왔다. '커즈' 문우찬의 그라가스부터 파괴전차의 용기 특성과 술통 폭발을 적절히 활용해 살아남는다. '비디디' 곽보성의 라이즈는 다른 라이즈처럼 존야의 모래시계나 심연의 가면 없이 공격 아이템을 위주로 둘렀다. 대천사의 포옹과 스킬 보호막만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딜을 하고 있다. '칸'의 자르반 4세는 두 번에 걸쳐 나눠서 들어간다. 들어 갈 때마다 상대의 소환사 주문을 낭비하게 하거나 상대의 목숨을 위협한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타이밍에 들어가 상대 딜러를 제압하는 장면이 더 해져 롱주 게이밍이 자랑하는 한타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한타 단계에 자신감 있는 롱주 게이밍은 탑 라인 운영에도 안정감이 붙었다. 예전처럼 미드-정글이 탑 라인에 힘을 줘 시원하게 뚫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탑 라인전 단계에서 상대를 찍어누르며 이득을 챙긴 것도 아니었다. 다른 팀처럼 봇 라인 중심으로 향했고, 탑 라인에 '칸'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칸'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라인전 단계를 마치고 상대 개입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부터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냈다. 지독하게 '농사'를 짓던 나서스 역시 충분히 강해졌다고 판단했을 때부터 들어가 킬을 내는 깔끔한 판단을 선보였다. 2차전에서는 봇-미드 중심의 교전이 일어나자 바로 제이스로 '소아즈'의 레넥톤을 솔로킬 내버렸다. 자르반 4세 역시 한타 단계에서 상대 핵심 딜러를 끊어내는 제 역할을 해냈다. 한타로 승기를 잡는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탑 딜러로 사이드 라인에서 무리하게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어 보였다.


▲ 사실, 정글 없어도 '칸'은 잘하는 편이다?


안정감을 찾은 롱주 게이밍은 위기가 찾아와도 침착하게 대처했다. 임모탈스와 첫 경기 초반부터 봇 다이브로 스노우볼을 굴려 격차를 벌리고 있었다. '고릴라'의 카르마를 끊고 드래곤 사냥을 하는 순간, 롱주 게이밍의 나머지 네 명이 바론으로 향하는 승부수로 역전을 펼쳤다. 기가바이트 마린즈와 2차전에서는 매섭게 들어오는 렝가와 갈리오, 그리고 렝가를 다시 살려주는 질리언 조합에 무너지며 기세를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롱주 게이밍은 게임 내에서 침착하게 상대 전략에 대처했다. '프레이'의 바루스가 질리언의 발을 묶어 렝가를 다시 살릴 수 없게 만드는 장면이 나왔고, 바루스-라이즈라는 '뚜벅이' 챔피언들이 죽지 않고 딜을 넣는 그림 같은 한타가 이어진 것. 1만 골드 이상의 차이에도 흔들리지 않은 롱주 게이밍이었기에 완벽한 6전 전승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RNG와 롱주 게이밍 모두 일방적으로 모든 경기에 승리하진 못했다. RNG는 G2를 상대로 초반부터 굴리려던 스노우볼이 깨지면서 그대로 패배한 경기도 있었다. 롱주 게이밍은 앞서 말했던 임모탈스와 기가바이트 마린즈 전에서 초반 주도권을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두 팀은 다시금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한타 구도를 만들며 승리를 챙겼다. 초반 스노우볼로 원거리 딜러가 활약할 구도를 빠르게 만들어내는 RNG, 차례로 치고 빠지는 극한의 개개인 피지컬을 보여준 롱주 게이밍. 이번 롤드컵에서 더욱이 한타가 중요하기에 두 팀이 보여주는 특유의 스타일이 더욱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