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시간.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시간. 저건 내가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를 구매하고 지금까지 플레이한 총 시간이다. 솔로 모드와 듀오, 스쿼드는 물론 1인칭 모드까지 모두 즐겼다.

엄청난 수의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거의 비슷한 조건에서 살아남는 방식인 만큼, 게임 한 번에 정말 다양한 사건이 터진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는 재미있거나 황당한 상황도 있었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멋진 장면을 연출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이건 나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배그를 플레이하면서 겪었던 일들 중에 많은 이에게 공유하고 싶었던 장면이나 상황, 게임을 실제로 공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그 첫 번째 이야기다.


무기 운이 없어
초반 격전지만 가면 무기를 못 찾아 슬픈 사내


비행기에서 낙하하고 조금이라도 지면에 빨리 내리는 법. 건물들의 구조와 이를 빠르게 파밍하는 법. 무기나 헬멧, 조끼, 가방이 나올 확률이 높은 집. 이런 공략들이 유행했던 이유는 뭘까. 바로 초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조금이라도 빨리 잡기 위해서다.

배그는 생존 게임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 옆이나 앞을 지나가는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그러려면 무기는 필수다. 내 작고 여린 주먹으로 언제 상대를 치사량까지 때릴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상대는 내가 주먹을 휘두르는 동안 무기를 찾아 내 생명을 앗아갈 것이 뻔하다.

그래서 배그에서는 은근히 초반 무기 운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는 초반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대도시나 밀리터리 베이스, 학교, 병원, 페카도, 아시엔다 델 파트론 등 격전지에서 특히 그렇다. 심지어 비행 경로에서 멀리 떨어진 소규모 마을에서도 가끔 초반 싸움이 일어나기에 초반 무기 운이 그쪽에서도 중요한 경우도 왕왕 일어난다.

하지만 난 초반 무기 운이 극악 수준이다. 마을에 내려도 집을 2, 3채는 털어야 겨우 무기다운 무기를 하나 얻곤 한다. 초반 격전지에서는 무기를 끝내 구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잦았다. 가끔 손을 풀거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대도시 혹은 격전지에 내리면 손도 못 풀고 스트레스만 더 쌓이는 상황을 자주 맞이했다.

▲ 아니... 어디서 그래 무기들을 찾으셨어

혹여나 무기를 집었다고 해도 참 뭐랄까... 내가 내 상황을 봐도 딱한 장면이 나오곤 한다. 상대가 즐비한 지역에서 처음 잡은 무기라고는 R1895, 일명 '맥크리 총'이나 윈체스터. 혹자는 이런 총들이라도 줍는 것이 어디냐고 하겠지만, 꼭 내가 이런 총을 집어들고 싸우려고 하면 만나는 상대는 M416나 AKM 정도의 총을 들고 있다는 게 문제다.

▲ 난 윈체스터인데 자네는 왜 M416인가

물론, 무기 운이 따라줘서 격전지에 내리자마자 AKM이나 샷건 등 초반 싸움에 유리한 총을 집어들고 전장을 누비며 킬 포인트를 쓸어 담았던 적도 있었다. 무기를 갖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내 총알을 피해 뛰어다니다가 결국에는 쓰러지는 상대를 지켜볼 때 느낄 수 있는 그 짜릿함이란.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저런 처지였던 적이 더 많았지' 라는 생각에 울컥했던 기억이 더 많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미라마 맵의 페카도에 내려 바로 더블 베럴 샷건을 얻었다. 무서울 것이 없는 상황. 개머리판을 장착한 '킹갓우지'만 조심하면 내가 패왕이 될 수 있었다. 마침 내 앞에 무기가 없는 사람도 도망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렉인지 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졌고, 나는 어디선가 날아온 수류탄에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 결말

누가 저기서 수류탄이 날아올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을까. 사실 자주 겪었던 일은 아니지만 초반에 남들보다 우월한 무기를 얻으면 대부분 저렇게 허무하게 죽었던 일을 몇 차례 당했다. 총을 구해서 파밍을 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가 나오길 기다리던 상대에게 당한다거나...


난 정말 운이 없을까
다양한 방법으로 내 운을 점쳐보기로 했다


배그에서 초반 격전지만 가면 무기를 얻지 못해 도망 다니다가 혹은 무기를 얻어도 허무하게 전사하는 나. 과연 난 정말 운이 없을까.

생각해보면 난 항상 운이 없었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모의고사 성적도 나쁘지 않았지만, 시험 바로 전날 기흉에 걸려 입학 시험을 보지 못했다. 꼭 이런 인생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난 항상 운이 없었다. 그 흔한 경품 당첨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나다.

언제까지 내 인생에 운이 따라주지 않을까. 난 이대로 배그만 하면 무기를 얻지 못한 채 허무하게 죽임을 당할 것인가. 이는 경품 당첨이나 외고 입시 시험을 보지 못했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다.

일단 내가 정말 운이 없는 놈인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 강 위를 걸어 다니면서 내가 서 있는 곳 얼음이 깨지지 않는지 테스트해보려고 했지만, 그건 잘못하면 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기에 포기했다.

우선 횡단보도 신호가 내가 도착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초록불로 바뀌는지 알아봤다. 이건 정말 우연히 내가 그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 실험해야 했던 만큼 기한을 따지지 않고 총 10번 시도했다. 그 결과, 단 1번 내가 횡단보도 앞에 서자마자 초록색으로 신호가 바뀌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이런 비슷한 실험을 몇 가지 시도했다. 엘레베이터가 내가 타려고 할 때 그 층에 서 있었는지, 지하철이나 버스가 내 정류장 도착 시간과 맞물리는지 등. 결과는 참혹했다. 이쯤 되면 내가 정말 운이라는 것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게 입증됐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굴복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에게도 운이 따를 것이다. 이런 믿음 하에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신년 운세를 점치는 것이었다. 만약 여기서도 운이 좋지 않다고 나오면 배그에서 초반 격전지나 대도시에 낙하산을 펴지 않고 소위 '짤 파밍'을 이어가리라.

그렇게 시도해본 올해 총 운세는 정말 좋은 말 투성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심금을 울렸던 코멘트를 기사에 담아보았다.

▲ 오예



신년 운세의 힘?!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행했던 실험 결과 따위 믿지 않기로 했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무료로 봤던 신년 총 운세에는 분명히 올해 운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걸맞은 큰 준비를 하라고 했으니,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고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본 운세를 완벽하게 믿을 순 없기에 에란겔의 포친키나 밀리터리 베이스, 학교, 병원 등 완전한 초반 격전지는 아니지만, 나름 파밍 싸움이 가능한 밀타 파워로 향했다. 나를 포함해 밀타 파워 공장에 내린 사람은 총 3명. 이번에도 무기 운은 따라주지 않았고, 건물 옥상 쪽에 내린 나는 시작과 동시에 S12K를 든 상대에게 쫓겨 체력이 바닥난 채로 1층으로 도피했다.

'역시 인터넷 운세 따위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내 눈 앞에 DP-28이 보였다. 평가가 그리 좋은 총은 아니었지만, 이게 어디인가. 재빨리 집어들고 장전을 마쳤다. 그리고 난 그 총기와 함께 2킬을 기록, 단숨에 밀타 파워 공장의 지배자가 됐다.

▲ 이리도 운 좋은 사내가 정녕 나란 말인가

한 줄기 빛이 내 몸을 비추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던가. 100% 믿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봤던 내 운세를 믿고 배그를 한 결과, 그토록 나와 인연이 없어 보였던 초반 무기 운이라는 친구가 방끗 미소지으며 내 옆으로 와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무기 운이 없었던 건 '여기 내리면 또 무기 운이 없겠지' 라고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라고. 이제 다시는 내 운을 의심하지 않으리라. 이제 난 대도시나 초반 격전지의 왕이 되리라. 그렇게 오늘도 난 격전지로 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