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학교 김지연 과학기술학연구소 박사]

'인터넷 게임중독'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첨단 기술이 발달된 디지털 시대에 주체란 무엇일까? 이러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에 대한 해답을 NDC2014에서 들을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 김지연 과학기술학연구소 박사가 27일 넥슨 사옥에서 '나는 디지털 시대의 주체일까, 주변인일까? 인터넷 게임중독 논쟁과 디지털 주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그는 "인터넷 게임 중독은 피할 수 없는 주제다. 게임이라고 하는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술과 인간 사이의 위치 짓기가 필요하다"며 금일 진행된 강연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기술에 대한 관점은 크게 2가지로, '도구주의'와 '기술결정론'이 있다. '도구주의'는 모든 기술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며, '기술 결정론'은 거대한 기계와 공장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삶이 왜소, 거대 기술을 통제할 역량을 상실했다고 보는 관점이다.

도구주의와 기술결정론은 얼핏보면 대립적으로 보이나, 어느 쪽에 책임을 귀속시킬 것이냐는 관점에서 보면 유사성이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상당히 복잡한 환경때문에 한 쪽의 책임만 몰아서 묻기가 어렵다.

그래서 최근 기술에 대한 관점으로 등장한 것이 '구성주의'다. 인간과 기술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기술에 투사, 선택된 기술이 강화되면서 사용자의 행위를 강화 및 변화시킨다는 의미이다. 기술과 인간이 유기체처럼 결합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사이보그'에 비유했다.


이러한 관점을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입, 게임을 중독물질로 보고 혐오할 것인지 단순한 도구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이어져 왔다. 인터넷 게임을 중독물질로 판정한다면, 인간은 무능하고 수동적인 행위자로 폄하되는 것이다. 반대로 게임을 단지 도구로만 본다면, 게임 기술의 역량과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

현재 '게임 중독'은 셧다운제와 중독예방법률안의 핵심적 개념으로 논의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아직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1990년대 중반, 일부 심리학자들이 물질남용장애 진단 기준을 응용해 '인터넷 중독장애'라는 용어와 진단 기준을 도입했다. 이후 '행위중독' 개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행위중독'이라는 용어에는 문제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개념정의가 취약하다는 것. 약물과 같이 섭취하거나 체내로 주입되는 물질에 대한 의존을 '중독'이라고 지칭하는데 게임은 신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행위중독' 개념은 용어 정의상 상충된다.

두 번째는 '행위중독'이라는 증상의 보편적 인과성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령, 진단기준 항목인 '인터넷/게임 이용시간'과 사회적응 정도간 상관성에 대해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중독'은 "문학적인 은유적 표현" 이라고 김지연 박사는 말했다.

모호한 개념의 중독 용어는 1990년대 심리학 및 교육학 분야 연구논문 등에 등장했다. 2001년에는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에 의거, '건전한 정보문화 확산 및 인터넷 중독실태 조사 예방 및 해소 사업'에 적용되었으며, 2002년부터는 '인터넷중독 실태조사'가 실시되기에 이른다. 이후 2009년 국가정보화기본법 제 30조에 '인터넷 중독'이 포함되면서 은유적인 정의에 불과했던 '인터넷 중독'이 법률적으로 규정됐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이 용어에 대해 학계의 합의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으나, 국가예산을 투여하여 인터넷 중독을 진단하거나 인터넷 중독률 감소계획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진흥원은 매년 전체 사용자의 약 10% 내외가 '인터넷 중독자'라고 발표하고 있다.

정부 기관의 발표는 상당한 신뢰성을 가지고 있으며 매체를 통해 재생산 되면서 힘을 부여받게 되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재생산된 '인터넷 중독'은 익숙하고 당연한 용어로 승격됐으며, 인터넷 중독 또는 게임 중독이 '존재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굳어졌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고 하는 용어는 과학적 또는 법률적인 합의가 완료되기 전에 사회적으로 정의가 내려졌으며 성급하게 결정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실제하는 위험'으로 수용된 것. 그런 성급한 결정이 발생할 만큼 강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김지연 박사는 첨언했다.

'게임 중독'에 대응하여 '게임과몰입'이라는 대안적 용어가 나오기도 했다. '게임과몰입'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게임중독은 개인적이고 병리적 증상을 지시하는 해석틀"이라고 비판했고, 사회행위적 분석틀이 필요함을 제시했다.

이에 문화부는 게임중독 용어를 대체할 대항마로써 '게임과몰입' 용어를 법률적으로 사용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일부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벽에 부딪혔으며, 입법과정에서 '중독'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면서 밀렸다. 중독 개념의 문제를 정확하게 비판했지만, 기존 중독 모델에서 대부분의 항목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개념이었기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중독' 용어 사용자들이나 '과몰입' 용어 사용자들 모두 무엇인가 새로운 변형이 발생했음을 감지, 기술사회적으로 새로운 현상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인터넷게임중독'이라는 용어가 널리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기술혐오와 결합하여 증식된 데 있다. 기술혐오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거나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이를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는 일종의 기술에 대한 위험인식이며 암묵적 저항이기에 왜 발생하는지를 분석하면 나아갈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기술이 국가 주도로 급진적으로 발전해왔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기술을 서서히 자신의 패턴에 맞게 받아들일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적응 못하는 것으로 낙인 찍혔다. 기술을 이해하고 관련 위험을 조절하는 민주적 과정이 소거됐다. 시민들은 다시 국가에게 책임을 물었고, 국가는 '인터넷/게임중독 치료'라는 편의적이고 기계적인 해법으로 유도를 했다는 것.



중독이냐 아니냐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정작 기술비판과 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적 참여가 부재하다는 부분은 주목받지 못했다. 국가는 기술논쟁을 병리적 프레임으로 환원하는 것은 시민을 '환자'라는 수동적 대상으로 만들 뿐 기술 사용의 주체로 안내할 수 없다. 즉 생산적인 방법을 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리적 프레임을 대신할 기술비판 담론을 구축해야 한다. 우선 기술혐오 사례를 충분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기술혐오자 또는 기술비사용자의 존재는 그 기술에 내재되어 있는 결함이나 결핍을 지시하므로, 그들에 대한 연구는 담론형성을 위한 내용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 담론을 형성해서 성공 외에 실패 사례를 연구하면서 기술의 진화와 발전으로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자녀들이 콘텐츠를 수용함에 있어 부모가 주도적으로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18세 등급 영화의 경우, 청소년들은 부모와 동반하더라도 입장할 수 없어, 국가의 등급판정이 부모의 등급결정보다 우선시 되고 있다. 이는 부모의 의사와 관계 없이 모든 연령에 대해서 강제적인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동반할 경우 18세 영화관람에 대해 국가가 그런 부모를 처벌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부모의 결정권을 허용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여성가족부는 현재 부모의 게임 아이디로 자녀에게 게임을 하게 할 수는 있으므로 강제적 셧다운제가 부모의 선택권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모에게 법률상으로는 정당한 의사결정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뒷문'이용을 허용하는 셈이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주체인 시민의 지위를 부정하는 것이며, 시민의 의사결정 역량을 퇴행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관습에 젖어있기 때문에 셧다운제에 대해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김지연 박사는 말했다.



물론 국가의 도움은 필요하다. 시민의 부족함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필요하지만 그런 부족함을 전제로 국가시스템을 강화하려는 것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국가시스템 역시 부모만큼이나 부족하며, 때때로 '합리적인 국가의 판단'은 오히려 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

국가는 평균적인 행위값을 근거로 절차화된 정책을 결정하기 떄문에 시민의 다양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결정을 기준으로 시민의 판단이 제한된다면 시민들은 점차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행동력량을 상실하게 된다. 인터넷 시대에 시민은 매번 새로운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수행, 국가는 그런 의사결정을 대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무언가를 제한함에 있어서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이러한 논쟁들이 시사하는 바는 기술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진 디지털 주체의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이다. 주체가 있어야 할 빈자리에 '게임중독'이 끼워넣어진 것이며, 이러한 문제들이 엉켜서 낳은 것이 '셧다운제' 라고 김지연 박사는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주체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디지털 주체의 연구 당위성에 대한 발표를 위해 김지연 박사는 '자아'에 대해 설명했다.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고 제기했던 사람들 역시 게임 중독이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에 찬성과 반대 양 측 모두 동일선상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서구 문화에서 자아나 주체는 근대사상과 함께 등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개별 인간 단위로 정의되어 왔다. 몸이라는 용기 안에 담겨진 내용물. 그렇다면 '나'는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나'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어떻게 나인가?"라는 질문은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왔다. 우리는 나 자신을 거울을 통해 발견한다. 2차원 평면에 맺힌 상을 보고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이 자아(Self)'이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보는지 식별할 수 없다.





어느 쪽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타자들에 의해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 주체는 타자와 관계 안에 자신의 자리를 가지는 자이며, 타자들에 의해 부상되는 존재이다. 그래서 주체는 '나의 외부'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김지연 박사는 "인터넷 중독을 주장하는 분들이 자아는 신체 내부에 존재하며, 온전한 형태의 자아를 오염된 게임과 같은 기술이 파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데 위협을 받고 있다는 논리를 펴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자아는 내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외부를 통해 확인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주체는 상징계와 중요한 연관성이 있다. 상징계는 주체가 진입하는 세계이다. 즉, 우리가 존재하며 보고 느끼는 바를 표현하는 언어 및 기호 등을 말한다. 상징계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만 존재할 경우 결핍될 수 있기에 여러개가 존재하며 음악이나 춤, 영화나 예술 작품 등으로 존재한다. 근대과학이나 자유주의 같은 정치체제도 상징계라 할 수 있다.

리얼리티(Reality)라고 일컫는 현실 역시 상징계가 만들어 낸 사물이다. 경도와 위도 등을 통해 기재되며 육지와 바다는 점과 선으로 표기된다. 즉, 상징계는 일종의 세상을 보는 해석틀이다. 그렇기에 실제(Real)와 리얼리티는 다른 개념이다. 가상의 망 속에 현실을 불러일으킨 것, 즉 결합된 형태의 인공적인 사이보그다.



디지털 주체도 이러한 상태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이라는 알고리즘적 기술 속에서 결합된 형태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 유저 닉네임과 게임 캐릭터라고 하는 것. 어느 측면에서 보면 둘 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두 가지 모두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속 세상에 몰두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고 실제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지연 박사의 의견. 상징계 속에서 사이보그 상태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며, 사람들의 신념과 믿음과 더 결부되었기 때문에 실제라고 다수에게 동의되고 있는 개념이다.

디지털 기술은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재현,주체(자아)를 재현하는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며,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상징계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게임을 단순한 중독 물질로 간과하고 넘어가기 보다는 하나의 상징계로써 바라보고 분석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지연 박사의 관점이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더 충분히 재현할 매개물을 항상 욕망한다. 디지털 주체는 디지털 기술 규칙에 의해 해석된 자이며 그 기술형식에 의존하는 행위자다. 동시에 모든 상징계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주체에게 새로운 부재(결핍)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상징계는 없기 때문.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그 안에 위치한 자신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윤리적 주체의 시작이다.

강연을 마치며 김지연 박사는 "게임이라는 작은 시범장을 기반으로 담론을 형성한다면 디지털 세계를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인터넷 게임은 하나의 상징계로서 디지털 세계과 그곳의 주체를 압축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