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는 처음이 있다. 그리고 그 처음은 대부분 서툴다. 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할 때, 걸을 때, 달릴 때를 생각해보라. 웅얼거리고, 쓰러지고, 넘어짐으로써 사람은 배우고 성장한다. 이 외에도 사람이 처음 마주하는 다양한 경험들은 맘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잘 하는 것'은 언제나 특별하다.

여기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에 특별한 선수가 등장했다. '유칼' 손우현은 2017년 5월부터 kt 롤스터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후, 약 10개월간의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고 2018년 3월 LCK 데뷔전을 치렀다. 피나는 연습이 선행되더라도, 첫 무대는 떨리기 마련인 법. 그러나, '유칼'의 데뷔전에서 미숙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를 즐기는 여유가 느껴졌다.


2001년생인 '유칼' 손우현은 올해 한국 나이로 불과 18살이다. 자랄만큼 자랐다고 할 수도 있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라 할 수도 있는 시기다. 그러나 e스포츠 프로신,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LCK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선보이고 있는 그의 플레이들은 성숙할만큼 성숙하다. '유칼'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는 없었고, 벌써 본인만의 색깔을 만든 그는 LCK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있다.


긴장 제로!
성공적으로 마친 데뷔전

매 시즌마다 다수의 신인 선수들이 LCK 데뷔전을 치른다.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심정은 어떨까. 수많은 관객 앞, 부스 안에서 치르는 첫 경기. 그동안 해왔던 스크림과는 다르게 내 플레이의 결과가 팀 성적에 직접 영향을 준다. 내 움직임, 스킬 사용은 물론 미니언을 처치하는 모습까지 만인에게 보여진다.

모든 게 낯선 상황, 신인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실수하지 않는 것으로 '신인치고 무난하다'라는 말은 최고의 찬사 중 하나이다. 실수를 부르는 것은 뜻하지 않은 긴장이기에 신인 선수에게 마인드 컨트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데뷔전에서 콩두 몬스터의 '엣지' 이호성을 만난 '유칼'은 두 세트 모두 팀의 선픽으로 아지르를 가져왔다. '엣지'는 후픽으로 탈리야를 가져갔다.

그리고 시작된 '유칼'의 첫 경기 첫 세트, 그에게 긴장 따윈 없었다. 안정적인 라인전을 기본으로 깔아둔 채, '레이즈' 오지환 자크의 갱킹을 영리한 앞 무빙으로 흘려내는 센스 플레이를 뽐냈다. 이후 '유칼'의 아지르는 한타 구도에서도 무난한 활약을 펼치며 데뷔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이어진 2세트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동일한 아지르-탈리야의 대결 구도에서 나온 깔끔한 한타 캐리 이후의 승리, '유칼' 아지르의 DPM은 무려 885로 kt 롤스터가 가한 총 대미지의 46.3%를 꽂아 넣었다.


성공적이었던 데뷔전 이후 일주일 만에 '유칼'의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는 SKT T1, 미드는 '페이커' 이상혁. 제아무리 이번 시즌에서 폼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신인 선수가 대회 경기에서 '페이커'를 처음 마주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부담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유칼'은 당연하다는 듯이 안정적인 라인전을 시작하며 첫 한타였던 드래곤 싸움에서는 슈퍼 플레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패기를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다
점점 과감해진 '유칼', 본격적으로 영역을 구축하다

데뷔 후 3연승을 거둔 '유칼'은 킹존 드래곤X의 '비디디' 곽보성을 만나 경기를 치렀다. '유칼'의 라인전을 풀어가는 능력은 이미 LCK의 베테랑 선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킹존 드래곤X전에서는 그게 다였다. 뾰족하게 눈에 띄는 플레이 없이 무난한 플레이를 이어가다가 무난하게 패배했다.

2018 LCK 스프링 스플릿은 앞으로 단 세 경기만 남아있었다. '유칼'의 평가는 신인치고 무난한 미드 라이너가 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세 경기를 통해 '유칼'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뒤바꿔놨다. '무난'이라는 단어는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외치는 듯이, 일정이 계속될수록 '유칼'의 플레이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피지컬을 앞세운 과감함이 만든 '유칼'의 칼날은 언제나 상대방을 향했다.

bbq 올리버스전에서 '유칼'은 1세트 패배 이후 연달아 아지르를 꺼냈다. 이에 '템트' 강명구는 두 번 모두 후픽으로 직스를 가져가며 버티기를 선택했다. '유칼'은 알겠다는 듯이 '템트'의 직스를 타워 안에 박제시켰고, 팀원들과의 호흡을 자랑하며 bbq 올리버스를 천천히 무너뜨렸다.

MVP전에서도 '유칼'은 돋보였다. 미드 스웨인을 LCK 스프링 스플릿 최초로 꺼내 1세트를 승리한 후, 2세트에서 MVP가 스웨인을 밴하자 아지르를 가져왔다. 그 전까지 4전 4승이었던 아지르는 '유칼'의 필승 카드였다. '유칼'은 초반 한타 구도에서 '이안' 안준형의 코르키를 솔로 킬 내며 kt 롤스터의 대승을 이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아지르 5연승을 챙겼다.


아프리카 프릭스전에서 '유칼'의 재능이 꽃을 피웠다. 순위가 결정된 상태였기에 더욱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첫 세트에서 라이즈를 꺼낸 '유칼'은 '쿠로' 이서행 사이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19분경 한타에서는 위기에 빠진 kt 롤스터를 구해내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세트 승리 후 MVP를 수상했다.

이어진 2세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칼'의 판이었다. '쿠로'의 카르마를 상대로 솔로 킬을 낸 후, 발길이 닿는 곳마다 아프리카 프릭스의 챔피언들에게 죽음을 선물했다. 아프리카 프릭스의 에이스로 MVP 경쟁을 하고 있던 '쿠로'였기에 임팩트는 더욱 컸다. 결국 '유칼'은 2세트까지 MVP에 선정되며 스플릿 마지막 경기의 단독 MVP가 됐다.





또 다른 첫 경험
첫 플레이오프와 다전제, 그러나 한층 빛난 '유칼'

스플릿이 끝나고 LCK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시작됐다. 상대는 SKT T1, kt 롤스터에게 더없이 중요한 경기에서 '폰' 허원석 대신 엔트리에 오른 것은 '유칼'이었다. 데뷔전에 이어 '유칼'에게 플레이오프와 다전제라는 또 다른 첫 경험이 찾아온 것이다. 상대는 다시 한번 '페이커'로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적이었다. 그러나 스플릿에서 한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 '유칼'이었기에, 팬들의 기대는 충분히 컸다.

혹시나는 역시나로 끝났다. '유칼'은 4세트 모두 '페이커'를 압도했다. 움직임은 스플릿 때보다 한층 과감해져 돌아왔다. 챔피언 픽과 상성은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공격적인 스탠스를 유지했다. 정글러 '러쉬' 이윤재와 '스코어' 고동빈을 향한 지원 요청도 대부분 주효했다. 이성과 본능이 합쳐진 압박은 '페이커'를 번번이 포탑 안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유칼'은 첫 다전제까지 3:1 승리로 끝냈다.


이번 SKT T1전을 통해 '유칼'은 '잘한다'라는 평가를 넘어 더없이 과감하고 공격적인 본인만의 스타일을 팬들에게 눈도장 찍었다. 또한 어떤 무대든, 어떤 적이든 상관없이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해졌다. 인터뷰마다 꺼내는 "'스코어' 고동빈 우승시켜주기"라는 그의 목표는 근거 없는 신인의 패기가 아니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유칼'은 실력으로 증명하고 있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
결승으로 향하는 길목, 꿈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유칼'이 치른 공식전은 불과 16세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 적은 세트 안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유칼'에게 남은 것은 좋았던 시작만큼 꾸준히 좋은 플레이를 펼쳐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기는 것뿐이다.

kt 롤스터의 다음 경기는 8일에 치러지는 아프리카 프릭스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다. 스플릿에서의 승부는 1승 1패로 끝났기에, 이제 확실한 위아래를 가릴 차례다. kt 롤스터가 준비해 올 전략에 따라 '유칼' 대신 '폰'이 기용될 수도 있겠지만, 선발로 '유칼'이 등장해 스플릿 경기 때와 같이 초반 분위기를 흔들어놓는다면 kt 롤스터의 승리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유칼'이 스스로 파멸에 빠질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치른 대부분의 경기에서는 위험천만한 줄타기를 멋지게 끝냈지만, 아프리카 프릭스의 교과서 같은 설계는 '유칼'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리는 것에는 익숙해도 맞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을 '유칼'이기에 한층 치밀한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스코어'의 우승은 곧 '유칼'의 우승이다. 만약 kt 롤스터가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승리로 마무리한다면 '유칼'은 자신의 꿈과 더불어 LCK 데뷔 시즌 우승이라는 위업에도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다. '유칼'의 꿈을 향한 돌풍은 어디까지 통할까. 다음 경기에서도 당연히 긴장하지 않을 '유칼'의 플레이와 그로부터 나올 변수를 지켜보자. kt 롤스터의 팬이 아니더라도, 분명 충분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