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와일드 카드전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던 아프리카 프릭스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포스트 시즌에는 밴픽부터 무언가 다른 모습으로 임했지만, 그 이상 오르지 못했던 팀. 하지만 올해는 확실히 달랐다. 새로운 시도에 정교함이 더 해지면서 '설계의 아프리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경기력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른 팀들 역시 앞선 포스트 시즌 경기를 보고 대처하면서 승리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대처는 아프리카 프릭스였다. 아이템부터 챔피언 픽까지 생각하지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등장했다. 2015년 섬머 포스트 시즌에 타이거즈가 꺼냈던 탑 말파이트와 미드 야스오가 다시 등장하고 지휘관의 깃발을 든 미드 카르마, 최악의 승률인 스카너를 활용해 승리하는 법까지. 승리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한 흔적이 경기에서 느껴졌다.

과거부터 아프리카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왔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고대유물 방패를 든 원거리 딜러를 활용해봤고, 서포터 카밀, 탑 라이즈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보여준 팀이었다. 그리고 2018 스프링이 그 때와 다른 점은 단지 새로운 시도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하는 그림을 게임에 그대로 그려내 승리까지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선 경기에서 그들이 완성했던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무결점에 빈틈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설계는 제대로 통했다.


핵심 '유칼'을 찌르는 설계
설계를 완성할 힘까지 지닌 아프리카 프릭스



이번 포스트 시즌 중 가장 주목받은 신예는 '유칼' 손우현이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 자리를 지켜온 '페이커' 이상혁을 상대로 과감한 경기를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공격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아군의 합류와 손발을 맞춰 여러 차례 킬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발군이었다. 로밍과 한타 능력 역시 빠지지 않았기에 약점마저 찾기 힘든 미드 라이너처럼 보였다.

아프리카는 이런 '유칼'을 제대로 저격했다. 정규 스플릿 마지막 경기에서 '유칼'에게 패배해본 만큼 완벽한 준비를 해왔다. 대세 픽을 모두 잘 다루는 '유칼'을 밴으로 막지 않았다. 오히려, 픽을 열어두고 맞춤식으로 대처해 손발을 묶어놓는 설계에 들어갔다. 단단한 수성과 딜을 자랑하는 아지르, 로밍과 한타에서 활약하는 탈리야의 약점을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 아지르 프리딜은 꿈도 꾸지 못할 5인 CC 조합


'유칼'은 아지르가 성장해 프리딜을 넣으면 어떤 파괴력을 내는지 이전 경기에서 충분히 증명했다. 수성이 좋은 챔피언이 정글러와 함께 상대 라이너를 끊어내는 장면 역시 만들어냈기에 약점 역시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다수의 CC를 보유한 챔피언으로 그 구멍을 만들어냈다. 성장할 틈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 다시 한번 킬을 내려고 들어오는 아지르의 움직임을 흘리자 바로 설계에 들어간 것. 이니시에이팅으로 유명한 '투신' 박종익의 라칸과 킬까지 완성할 스카너-벨코즈까지 모든 걸 준비했다. 포탑 사이에서 거리 유지하던 아지르 역시 라칸이 '번쩍'하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라인을 빠르게 밀고 합류하는 탈리야를 상대로는 지휘관의 깃발을 든 카르마를 꺼냈다. 지휘관의 깃발이라는 아이템은 방어력 수치가 붙어있기에 AP 챔피언인 카르마가 들 것이라는 상상은 쉽게 하기 힘들다. 사이온과 같은 탱커들이 주로 활용했던 아이템을 미드 포탑 압박을 위해 든 것이다. 확실히 포탑 체력의 압박을 느끼게 됐고 '유칼'을 비롯한 KT의 행동 반경은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팀원들이 미드 라인을 커버해주는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풀리는 듯했으나, 바론 버프와 함께 두 번째 압박이 시작됐다. KT가 작은 방심을 하는 사이에 의외의 공성 능력으로 미드 라인을 순식간에 밀어내면서 확실히 기세를 가져왔다.

솔로 랭크에만 나올 것 같던 야스오의 등장은 더욱 놀라웠다. 비록, 사이드 라인에서 끊기는 장면이 나왔지만, 한타 구도에서 순식간에 6킬을 쏟아낼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했다. 탈리야가 발 빠른 합류전에 장점을 보일 때, 야스오는 우직한 한타 활약으로 기세를 가져온 것이다. 경기는 '크레이머'의 놀라운 활약으로 끝났지만, 한타의 기세로 케이틀린이 성장할 시간까지 벌어준 야스오 역시 제 역할을 해냈다고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가 꺼낸 무기들은 단순한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 KT가 대거 킬을 내는 상황, 사이드 라인에서 야스오가 연이어 끊기는 장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돌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게 2018의 아프리카만의 장점이다. 설계를 끝내 완성할 수 있는 저력이 생긴 것이다.


승률 데이터는 숫자일 뿐?
예측할 수 없는 아프리카 프릭스의 카드



아프리카 프릭스에게 승리를 가져다줬던 픽만 보면 신기하다. 앞서 말했던 야스오-말파이트는 말할 것도 없고 정규 스플릿 승률 42.2% 스카너와 43.3% 라이즈. 데이터 상으로 보면 롤챔스 리그에서 결코 대세, OP 챔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과감하게 꺼낼 수 있었다. 한 스플릿 동안 쌓여왔던 데이터가 무색해지고, OP라는 단어의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대신, 안 좋은 승률의 챔피언을 어떻게 활용해야 승리할 수 있을지 아는 팀이 아프리카였다.

이번 플레이오프 2R에 등장했던 스카너는 1세트의 아쉬운 점을 깔끔하게 털어내는 주역이었다. 1세트에서는 모든 라인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미드와 탑 라인은 정글 지역 교전에서 패배해서 그럴 수 있지만, 개입이 없었던 봇 라인마저 밀리면서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 아프리카의 분위기를 가져오는 4인 다이브 설계

새롭게 투입된 '모글리' 이재하의 스카너가 '쿠로'의 벨코즈와 함께 곧바로 풀어버렸다. 빠르게 순간이동까지 활용한 다이브를 성공시키면서 봇 라인에 포블을 선물해준 것이다. 기세가 중요한 포스트 시즌에서 봇 라인에서 울린 승전보는 확실히 아프리카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봇이 풀리자 미드로 향해 아지르를 끊어내는 다이브마저 성공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아프리카는 스카너를 어떻게 활용해야 승리할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것이다. 이전까지 5:5 대치 상황에서 무리하게 상대를 끌어내려고 하다가 자신이 끊기는 스카너와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 시즌 '기인'을 대표할 만한 픽인 탑 라이즈 역시 그렇다. 미드 라이즈가 성행하던 시절에도 탑에서 뽑아 4연승 후 1패라는 엄청난 승률을 자랑했다. 순간이동과 함께 들어가는 공간 왜곡으로 상대를 끊고, 라인 주도권까지 잡았던 '기인'의 라이즈 픽은 미드 라이즈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KSV 역시 포스트 시즌에서 탑 라이즈를 기용할 만큼 다른 팀들이 따라 할 만한 무기였다. OP 챔피언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팀이 바로 아프리카 프릭스라고 할 수 있다.


결승을 앞두고 최연성 감독과 '쿠로' 이서행은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아직 다 보여주지 않았다는 듯한 말을 남겼다. 최연성 감독은 "PO 2R에 보여준 건 준비해온 여러가지 중 일부다. 준비한 것이 상황에 맞지 않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새로운 픽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아프리카 프릭스 특유의 10인 체제로 가능한 내부 연습으로 그 카드를 더욱 갈고 닦았다는 것이다. 지휘관의 깃발 카르마가 그랬고, 앞으로 나올 카드 역시 내부 검증을 거친 새로운 무기가 나올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킹존 드래곤X를 상대할 새로운 무기가 준비돼 있을까. KT 전 '유칼' 저격에 성공했듯이 아프리카의 시선이 킹존의 어디로 향할지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킹존 드래곤X는 무결점의 행진을 이어왔고, 작년 섬머 역시 그대로 우승을 차지했다. 작년 결승전에서는 기존 스타일인 탑 라인 중심 운영에 힘을 더해 깔끔하게 승리하는 모습이었다. 작년부터 어떤 팀도 쉽게 찾지 못했던 약점이 올해는 드러날 것인가. 순항을 이어온 아프리카가 무결점의 킹존의 약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