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페이커' 이상혁의 게임 실력을 수치로 나타낸다면 KDA 평균 수치나 퍼스트킬 타이밍, 1:1 대치의 승리, 골드나 CS 평균 등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치는 프로게이머의 신체 능력 정보가 빠져있다.

'NDC 2018'에서 프로게이머 훈련 프로젝트란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 이병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의외로 프로게이머의 신체 능력이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게임은 스포츠 중에서 두뇌 역할이 강조된 바둑에 비유되곤 했는데, 실은 축구와 같은 신체 능력도 게임에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병주 교수는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게이머랩(GamerLab)에서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한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연구란 인력장치 최적화, 사용자의 키보드나 마우스 사용 성능 측정, 게임 난이도 최적 설계 등이다.

이 교수는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은 뇌와 몸이 함께 쓰인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바둑으로 이긴 뒤, 구글은 '스타크래프트'로 인간에게 도전하겠다 밝혔다. 이것으로 바둑과 스타크래프트의 차이를 알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알파고가 인간과 같은 조건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펼치려면, 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컴퓨터 게임은 바둑에 비해 역동적이다

▲ 게임은 지금까지 정신 능력만 강조됐는데, 신체와 환경도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예: 에임을 잘 맞추는 신체능력, 키보드와 마우스 감도 환경)

게이머랩은 현재 성능측정과 성능향상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두 방안 모두 게이머와 시스템이 연구 대상이다. 연구는 핀란드 알토 대학과 공동연구로 진행되며, 게임 디자인 전문인 페르투 교수와 인지심리학 전문인 안티 교수가 함께한다.

이병주 교수는 e스포츠가 이미 대중적이고 중요한 스포츠로 부상한 데 반해, 게이머들이 어떻게 연습하고 훈련받는지에 대한 연구나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런데 e스포츠는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감각 운동'이나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영향을 받는 '인지 성능'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기존의 스포츠 훈련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즉, e스포츠는 인지능력과 신체능력의 주화를 필요로 고난도 스포츠라고 그는 소개했다.

그가 밝힌 게이머랩의 목적은 e스포츠 선수의 퍼포먼스와 관련된 공학기술 및 성능측정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게이머랩은 실제 게이머의 훈련에 관여하고, 장기적이고 철저한 연구로 최고의 연습 방법과 모범 사례를 수집한다. 이와 함께 사용하는 인터페이스 기술과 훈련 방법에 적극적인 변화를 가함으로써 선수의 성능을 체계적으로 개선,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겠다고 이병주 교수는 밝혔다.


위 사진은 게이머랩에서 사용하는 측정 도구, '무빙 타겟 셀렉션(moving target selection)'이다. 이병주 교수는 "게이머의 반응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적이 공격한다고 감지하는 걸 넘어서 어떤 기술을 쓸 것인지, 어느 방향으로 쏠 것인지도 프로게이머는 '예측'한다. 이를 '내부시계 정밀도'라고도 부른다. 시각정보 효율은 타겟이 움직일시 게이머에게 얼마나 빨리 정보가 전달되는지를 의미한다.


게이머와 일반인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일까?

인지모델에 근거해 게이머랩은 네 가지 범주를 설정해 테스트를 진행했다. 네 범주는 위험하지만 성공, 안전하게 성공, 위험하게 실패, 안전하지만 실패로 나누었다. 피실험자는 카이스트에서 "내가 좀 FPS를 잘하지"라고 자신하는 학생 10명과 태어나 한 번도 FPS를 한 적 없는 학생 10명이다. 실험은 3차원으로 움직이는 타겟 맞추기 30분, 멈춰있는 타겟 맞추기 30분씩 진행했다.


이병주 교수는 첫 번째 실험 결과가 꽤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FPS 좀 했다는 학생들이 처음 해 본 학생들보다 실패율이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결과를 "FPS 경험이 없는 학생은 도전적이지 않아 시도 횟수가 적었고, 그로 인해 성공률이 높게 나왔다"고 해석했다. 즉, 게이머의 실패율이 높다고 해서 '못 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FPS 경험이 많은 학생들이 '더 도전적'이라고 봤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Cmu는 어디를 맞추려고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의미한다. 0.5에 가까울수록 중앙을 맞추려 하는 것으로, 잘함을 의미한다. 이 실험에서는 게이머가 일반인보다 고정된 타겟 중앙을 더 잘 맞췄다. 이역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가진다고 그는 전했다.


델타(Delta)값은 게이머가 쏘는 타이밍을 측정한 결과다. 수치가 낮을수록 게이머가 '타이밍 좋게 쏜다'를 의미한다. 이 실험에서는 게이머가 일반인보다 2배 정도 자신의 움직임을 신뢰한다고 나타났다.


움직이는 타겟 맞추기 실험에서는 게이머가 일반인보다 실패율이 높았다. 이 결과 역시 게이머가 일반인보다 '더 도전적'이기에 나타난 결과라고 이병주 교수는 해석했다.


씨시그마(Csigma) 값은 예측도를 나타낸다. 수치가 낮을수록 예측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실험에서는 게이머가 일반인보다 훨씬 예측을 잘하고 시각정보에 민감함이 나타났다. 이병주 교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라고 전했다.

이병주 교수가 진행한 실험은 웹에서 누구나 직접 테스트할 수 있다.(에이밍 테스트)


기술이 게이머의 실력을 높일 수 있을까?

게이머의 무기는 키보드와 마우스이다. 대부분의 게이머는 자신만의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고, 때로는 자신에게 맞는 모니터까지도 준비한다. 특히 마우스의 움직임과 커서의 움직임에 게이머는 특히 민감하다. 그래서 많은 게이머가 현장 경기를 준비하면 연습 때와 실전의 마우스 커서 환경을 동일하게 만든다.

이것을 흔히 "마우스 감도를 맞춘다"라고 표현한다. 이병주 교수는 마우스 감도를 과학적으로 풀어내, 함수 값으로 표현할 수 있고 최적화까지도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마우스 가속 함수'는 마우스를 1센티미터 움직였을 때 커서가 얼마큼 이동했는지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마우스 감도를 최적화하는 프로그램 오토게인(AutoGain)은 깃허브를 통해 사용할 수 있다.

▲ 빨간 지점이 게이머가 키보드를 가장 밑까지 누른 순간이다

키보드 입력 최적화도 기술로 가능해졌다. 보통의 키보드는 입력을 감지해 중간 지점에서 결과를 출력한다. 그래프에서는 Traditional Activation 지점이다. 그러나, 게이머가 가장 원하는 순간은 키보드를 가장 끝까지 누른 순간이다. 이병주 교수는 "임팩트 지점에서 명령이 되도록 설정했더니 정밀도가 94% 향상됐다"고 소개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이병주 교수는 "내용을 보면 기존보다 많이 연구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라며, 이어 "많은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있어 연구를 이어가면서, 많은 프로게이머와 훈련 방법이나 실력 측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