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에 반가운 얼굴이 돌아왔다. 스타크래프트1에서 이영호와 함께 테란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국본' 정명훈이 그 주인공이다. 의경으로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친 정명훈은 전역과 함께 스타크래프트2 선수 복귀를 선언했다.

10년 동안 프로게이머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정명훈이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의 가슴속에 열정이 여전히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자신의 피를 끓게 했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던졌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정명훈은 차원이 다른 노력을 기울이며 몸을 예열하고 있었다.

정명훈은 인터뷰 내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강력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28살, 프로게이머로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정명훈에게 나이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손이 느린 덕분에 아직도 손목이 튼튼하다"며 긍정 에너지를 뿜어냈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정명훈. 그와 나눈 진솔한 대화를 지금 전해드린다.



Q. 정말 오랜만이다.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오랜만에 인터뷰로 인사드리게 됐다. 의경으로 군 복무를 건강하게 마치고 스타크래프트2로 복귀한 프로게이머 정명훈이다.


Q. 전역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전역 소감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정말 시간이 안 갔다. 그래도 군 복무를 하면 할수록 시간이 빨리 가더라. 군 복무 중에도 계속 게임과 e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다. e스포츠 기사나 지인을 통해 e스포츠 소식을 많이 접했다. 전역하기 두 달 전부터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을 결정하고 경기를 찾아보면서 감을 익혔다.


Q. 군 복무 중에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

처음 전입했을 때, 내가 누군지 대원들이 못 알아봤다. 몇 시간 뒤에 내가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다들 신기해했다. 군대에서 휴일이나 명절에 대원들과 스타크래프트1을 많이 즐겼다. 나중에 직접 대회도 열었는데, 나는 직접 출전하지 않고 대회 진행과 코칭을 했다. 내가 전역하게 되면서 대원들이 이제 나에게 코칭을 못 받게 됐다며 아쉬워하더라.


Q. 가장 궁금한 질문을 하겠다. 스타크래프트1과 스타크래프트2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스타크래프트2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스타크래프트1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스타크래프트1 대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열리는 ASL이 전부였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1 선수는 방송 위주의 생활을 해야하는데, 나는 그런 것을 잘할 자신이 없었다. 재밌게 자극적으로 방송을 해야 시청자가 좋아하는데, 나의 성격상 그런 것이 안 맞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경기를 묵묵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보여주면서 연습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 분위기를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입대할 당시 팀들이 많이 해체됐고, 대회가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아서 다시 돌아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크고 작은 개인 리그가 많고 WESG같은 큰 규모의 해외 대회도 많이 생겼다.

친한 친구인 (어)윤수, (김)도우와 자주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얼굴이 너무 좋아 보였다(웃음). 종목을 결정하기 전부터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 분위기에 대해 많이 물어봤는데, 나쁘다고 말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나만 열심히 하면 괜찮을 것 같다며 다들 좋은 쪽으로 얘기를 많이 해줬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2 종목을 선택했다.


Q. 군입대 당시 프로게이머 은퇴를 선언했었는데, 다시 프로게이머로 복귀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홧김에 은퇴 선언한 것이 있었다. 입대할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게임에 100% 집중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나는 해외 팀 소속이었는데, 혼자 연습하니까 뒤처지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개인 리그 예선까지 탈락하면서 홧김에 은퇴를 선언했다.

시간이 흘러 제대 이후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아직 선수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번 더 불태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도 스타크래프트2가 재밌었다. 보는 것도 재밌고, 플레이하는 것도 재밌었다. 그래서 다시 프로게이머로 돌아오게 됐다.



Q. 처음에는 스타크래프트2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경기력이 크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 벤시 한 기로 기적의 역전승을 만드는 등 명경기를 많이 만들었는데?

확실히 스타크래프트2는 열심히 할수록 성적으로 결과가 나온다. 대신 연습을 덜 하면 결과도 나쁘다. 그 당시 열심히 하니까 실력이 많이 올랐다. 그런데, 방심하거나 실력이 올랐다고 자만해서 연습을 덜 하면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고 최대한 열심히 할 생각이다. 지금은 게임 생각밖에 안 하고 고민거리가 많이 사라졌다. 지금 당장은 많이 부족하지만, 다시 기량을 끌어올릴 자신이 있다.


Q. 의경 복무 당시에도 그랜드마스터 상위권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지금 본인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을 결정하고 외출을 나올 때마다 래더를 했는데, 그랜드마스터는 쉽게 찍었다. MMR 6천부터는 프로게이머들과 많이 만나서 올리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스타크래프트2는 인터페이스가 쉬운 게임이라서 복귀하고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어려운 게임이지만, 그건 제대 이후 본격적으로 연습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 지금도 MMR을 많이 올리고 있는 단계다. 분위기가 좋다.


Q. 스타크래프트1 선수 시절부터 '노력파'라는 말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노력파가 맞는데, 재능이 없진 않다(웃음). 재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다. 그래도 노력은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하고 있다. 말년 휴가부터 한 달 동안 하루에 12시간씩 3주간 연습했다. 장시간 연습을 했는데도 몸이 잘 버텨줬고, 자신감도 점점 생겼다. 아쉽게 GSL 예선을 뚫진 못했지만, 좋은 경험이 됐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제대한 지 한 달밖에 안 됐고, 본격적으로 성적을 내는 것은 다음 시즌부터다.


Q. 혼자 연습하는 데 힘들지 않나?

아무래도 SKT T1에서 오랫동안 대표 선수로 활동해서 다른 KeSPA 팀 유니폼을 입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해외 팀은 스폰서 느낌이 강하다. 입대 전에도 데드픽셀즈 소속이었는데, 전역 이후 다시 데드픽셀즈 소속이 됐다. 제대를 앞둔 당시 데드픽셀즈 오너에게 "데드픽셀즈에서 스타크래프트2를 다시 해도 되겠냐"고 물었는데, 너무 좋아하더라. 이번 홈스토리컵도 팀의 지원을 받고 다녀왔다. 조지현과 함께 데드픽셀즈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활동하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Q. 언급한 대로 최근 홈스토리컵에 출전했다. 오랜만에 출전한 해외 대회인데, 출전 소감이 궁금하다.

3년 만에 참가한 해외 대회였는데, 너무 만족스러웠다.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유럽의 풍경, 현장의 열기, 자유로운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좋았다. 크게 입상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정한 기준에서 만족할 성과를 얻었다. 게임 수가 많았는데, 게임을 하면서 실전 감각을 많이 찾은 것 같다.


Q. 최근 문성원, 원이삭 등 여러 선수가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복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복귀한 선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문)성원이 형, (원)이삭이 모두 열정이 남다른 선수들이다. 대회에서 탈락하면 바로 연습을 안 하는 것이 보통인데, 성원이 형은 홈스토리컵에서 탈락하고 나서도 연습실에 꾸준이 나와서 연습을 했다. 이삭이도 선수들에게 계속 조언을 구하며 열심히 하더라. 다들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성원이 형이 GSL 예선을 뚫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예선을 뚫은 것처럼 기뻤다. 비슷한 입장이기 때문에 복귀한 선수들이 잘하면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계속 잘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힘이 날 것 같다.


Q. RTS 게임 특성상 나이가 들수록 피지컬에 제한이 생길 수 있는데, 지금 피지컬은 건재한가?

나이가 많아지면 피지컬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다. 남들이 볼 땐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반응 속도도 괜찮다. 충분히 연습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GSL 예선장 가서 느꼈는데, 내가 손이 가장 느리더라. 외국 선수들 모두 나보다 손이 빨라서 조금 위축되긴 했다(웃음). 그래서 '나만의 길을 가자'는 생각으로 했다. 나만의 속도가 있는데, 억지로 빠르게 하면 플레이가 오히려 더 안 좋아지는 편이다. 스타크래프트는 APM이 전부가 아니다. 머리싸움이 중요하다.

스타크래프트1 때부터 손이 느린 편이었는데, 덕분에 게임을 아무리 많이 해도 손이 멀쩡하다. 10년 넘게 게임을 했지만, 손목이 크게 아팠던 적이 없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2는 인터페이스가 편해서 특히 많은 도움이 된다.



Q. 스타크래프트1에서 정점을 찍었던 선수로서 스타크래프트2에서도 다시 정점을 찍을 수 있을까?

'92년생 선수들이 곧 군대에 가니까 빈자리를 내가 차지하러 온 것이 아닌가'라는 말이 있었는데, 절대 아니다. 나는 그 선수들 모두 있어도 우승한다는 마인드로 시작했다. 그 정도 각오가 있어야 우승할 수 있고 프로게이머로 살아남을 수 있다. 초심을 잃지 않을 생각이고 잘할 자신도 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의 선택에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Q.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에 바라는 점이 있나?

욕심일 수도 있지만, 과거처럼 양대 개인 리그가 생겼으면 좋겠다. 지금 국내에서 규모가 큰 오프라인 대회는 GSL밖에 없는데, 다른 방송국에서 개인 리그를 열면 프로게이머 입장에서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WCS, 드림핵 등 한국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하도록 제한된 대회가 많다. 당시 한국 선수가 너무 잘했기 때문에 제한이 생겼는데, 지금은 한국 선수와 외국인 선수의 격차가 많이 사라졌다. 몇몇 한국 선수들은 여전히 월등히 잘하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격차가 거의 없어졌다. 외국 선수 중에서도 '세랄', '닙', '스페셜', '스칼렛'은 정말 잘한다. 한국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도록 과거에 생긴 제한을 풀어줬으면 좋겠다.


Q.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에 포함되는 등 전체적인 e스포츠 판이 과거보다 발전했다. 어떻게 보고 있나?

아시안게임 소식을 듣고 감회가 새로웠다. 이러다가 몇 년 뒤에 정말 e스포츠로 군 면제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목과 상관없이 e스포츠 판이 커진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계속 긍정적인 분위기가 유지돼서 판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 같은 사람도 은퇴 이후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고, 아직 입대하지 않은 선수들도 고민이 많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의 고민이 줄어들수록 경기력은 좋아진다. 팬들이 느끼는 재미의 질을 위해서라도 판이 계속 커졌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에 해외 대회 나가서 느꼈는데, 스타크래프트2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이삭, 조지현과 함께 다녔는데, 너무 즐거웠다. 집에만 있으면 웃을 일이 많이 없는데, 셋이 함께 다니면서 한 달 치를 다 웃은 것 같다. 팬분들께서도 내가 스타크래프트2를 하면서 행복을 많이 느끼니까 나의 선택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스타크래프트1은 변하지 않는 게임이라서 나중에라도 돌아갈 수 있으니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2를 많이 응원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