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 에코 폭스 미드라이너였던 '피닉스' 김재훈이 방출됐다. 팬들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팬들에게만 갑작스러웠던 일이 아니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피닉스'에게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그는 어느 팀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그에게는 단 10분이 더 필요했다. 방출된 날이 하필 섬머 로스터 최종 마감일이었다. 그는 정오부터 팀을 구할 수 있었는데, 북미 로스터 마감 시간이 오후 5시였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5시간뿐이었다. 새 계약을 맺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를 원하는 팀이 있었다. 그러나 10분이 부족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번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피닉스'에게 직접 들었다.



에코 폭스를 갑자기 떠나게 됐다. 어떻게 된 일인가?

원래 팀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이야기를 하자고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방출을 하겠다고 하더라.

정말 웃긴 게 나랑 '알텍'이 같이 미팅을 하러 갔었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하고, '알텍'이 그다음에 미팅을 했다. 미팅하기 전에 '알텍'이 나한테 오늘 연습 열심히 하려고 커피랑 빵을 사 왔다고 했다. 진짜 웃긴 일이다. '알텍'도 나처럼 아무것도 몰랐다는 뜻이다.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갑자기 방출됐다는 건가?

리프트 라이벌즈가 국제 대회라서 진지하게 임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팀에서 로스터를 바꿔보고, 라인도 여기저기 바꿔 보냈다. 그런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1주에서 2주 정도 미드를 중점적으로 혼자 연습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방출이 결정될 즈음에 나는 쉬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방출이 되기 하루 전날에 팀 매니저가 "연습은 잘 되고 있냐. 보고 싶다. 내일 한번 보자"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연습이 잘 되고 있다고, 내일 이야기하러 가겠다고 대답했다.

이야기를 해보니 뜬금없이 방출을 하겠다는 거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 경기력이 본인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카데미 미드 라이너였던 '다몬테'를 쓰겠다고 했다.


그런식으로 아무렇게나 방출할 수 있게 계약이 되어 있나?

경기력이 좋지 못하면 방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지금 보면 어이없는 조항인데, 예전에 골드 코인 유나이티드가 내 계약서를 에코 폭스에 팔아서 그렇다. 예전에 계약할 때는 상황이 열악해서, 당연히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웃긴 게 에코 폭스가 내 계약서를 살 때, 본인들은 다른 팀들과 다르게 선수들을 위하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절대 선수들을 상대로 장난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웃긴 말이다.


방출말고 다른 선택지를 주지는 않았나?

그냥 방출이었다. 아카데미에라도 남기를 바란다거나 그런 얘기는 없었다.



방출 이후에 접촉한 팀이 있었나?

두 팀이 있었다. 5시간 만에 두 팀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너무 상황이 급해서 주전을 바라지 않았고, 식스맨 정도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팀은 의견이 잘 맞지 않았다.

다른 한 팀과는 계약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것도 무산됐다. 당시에 오후 5시가 섬머 로스터 제출 마감이었는데, 그 팀에게서 4시 40분에 연락이 왔다. "우리가 스크림을 하느라, 네가 FA가 됐는지 몰랐다. 일단 너를 우리 로스터에 빨리 포함시키고 계약에 관한 자세한 사항들은 나중에 정리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 메시지를 빨리 확인을 못 했다. 4시 55분에서야 확인했다.

그 전에 다른 한 팀이랑 이야기가 잘되지 않아서, '아 이번 시즌은 끝이구나'라고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만약에 10분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지금 그 팀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을 거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문제 되는 건 방출된 날짜였다. 섬머 스플릿 전체 로스터 마감 당일에 갑작스럽게 방출됐다. 억울했을 것 같은데?

선수 협회에 이야기를 해봤고, 협회는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라이엇에 로스터 마감일을 하루 늦춰달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변한 건 없었다.


'알텍'도 화가 많이 났을 것 같다.

'알텍'도 정말 어이없어했다. '알텍'이 방출될 시 받을 수 있는 위약금이 정말 적은데, 그래서 그냥 방출시킨 것 같다.


본인은 위약금이 컸나?

내 경우에는 아예 없다.



혹시 팀 내 불화는 없었나?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개인적으로 팀에 불만은 있었다. 이번 리프트 라이벌즈는 내 커리어 5년을 통틀어 처음 출전할 수 있는 국제 대회였다. 그러나 팀에서 갑자기 식스맨이었던 '다몬테'를 쓴다고 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프트 라이벌즈를 보면, NA가 무조건 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팀 리퀴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회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EU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는지?

EU에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다른 리그에 가고 싶진 않았다. 내가 이번 섬머 스플릿만 하면 NA 선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 한 경기인가, 두 경기인가를 못 뛰어서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다. 다음 스플릿을 더 뛰어야 NA 선수가 된다.

내 커리어에서 정말 큰일이다. 이번 일만 없었으면, 나는 다음 시즌부터 엄청난 이점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있는 팀은 한국 혹은 유럽 선수를 더 데려올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방출과 관련해서 라이엇에 항의를 해보진 않았나?

라이엇에 물어봤지만, 유감이라는 말뿐이었다. 라이엇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을 거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계약서에 적힌 대로 방출이 된 거니까.


에코 폭스에서 왜 미리 알려주지 않은 걸까? 조금만 더 일찍 말했으면 서로 큰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던 일이었다.

'우리가 이번에 너희를 안 쓸 거니까 다른 팀 가서 뛰지 마라'라는 심보가 아니었을까.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방출 이후에 알게 된 정보가 있다. 물론 이게 진짜 사실인지는 모른다. 에코 폭스에서 방출 일주일 전부터 이번 일에 대해 논의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사실이라면, 방출되기 하루 전날에 연습을 잘 돼가냐고 물어본 게 웃기는 일이다.



에코 폭스에서 방출을 통보할 때, 로스터 마감일에 관해서는 설명을 해줬나?

로스터 마감일에 대해 너무 태연하고 당연하게 이야기를 하길래, 섬머 6주 차 로스터 마감일을 얘기하나 보다 했다.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다른 팀에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해서 딱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방출됐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에 정말 좋아했다. 실제로 웃기도 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쓰레기 같은 계약서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팀 코치가 나에게 연락을 해서 "오후 5시까지 팀 못 찾으면 이번 시즌에 북미에서 못 뛴다"고 말해줬다. 그때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


동기부여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동기부여에는 문제가 없었다. 열심히 하고 있었다.


스프링 스플릿 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는데, 이렇게 떠나게 돼서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진짜 아쉽다. 스프링 때 '다르독'과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이번 스플릿도 중반부터 다시 미드 라인에 집중하면서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기회도 얻지 못하고 방출됐다.


에코 폭스 팀원들은 뭐라고 이야기를 해줬나?

그냥 유감이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알텍'을 제외하고 다른 선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에코 폭스 팀 자체가 너무 싫어서, 그냥 팀에 속한 모두와 이야기하기가 꺼려졌다.



계약서가 너무 게임단 쪽에 힘이 쏠려 있는 느낌이다.

'알텍'은 에이전트를 고용해서 계약서를 작성했는데도 이런 일을 당했다. 내 계약서는 몇 년 전에 써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건데, 바뀐 건 연봉뿐이다.

팀 리퀴드에 있을 때는 계약이 좋지는 않아도, 사장인 스티브가 정말 케어를 잘 해줬다. 스티브는 신망이 있는 사람이었고, 에코 폭스처럼 선수들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계약서에 선수 쪽으로 좋은 조항도 새로 넣어주고, 연봉도 올려주면 화끈하게 올려줬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스티브만큼 좋은 오너가 없었던 것 같다.


에코 폭스 사장인 '제프리'가 이번 방출 건과 관련해서 "씬 뒤에 많은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건 어떤 뜻일까?

솔직히 조금 웃기다. 내가 모르는 그들만 아는 비하인드 씬일 거다.


내년에 NA에서 뛰는 것을 계획하고 있나?

그렇다. 계속 에코 폭스에 트래쉬 토크를 할 거다. '알텍'도 나한테 "다음 시즌에 에코 폭스를 만나면 절대 안 질 거다"라고 말했다. 나도 에코 폭스를 상대로 이기면 진짜 기분이 좋을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나?

북미에 오랜 시간 있었고, 이제 NA 선수가 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열망이 크다.


지금은 어디에 지내고 있나?

LA에서 지내고 있다. 집을 개인적으로 구해 월세로 살고 있는데 금전적인 부담이 크다.


누구에게 가장 위로를 받았나?

여자친구가 도와줬다. 그리고 '피글렛' (채)광진이 형이 매일 술을 사주면서 위로해줬다. 광진이 형은 나보다 더 어이없어했다. 그 형은 워낙 필터링이 없는 사람이라(웃음).


다음 시즌에 들어가고 싶은 팀이 있나?

에코 폭스를 이길 수 있는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