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참 친숙한 듯 생소한 단어다. 늘상 접하고 들으며 즐기는 일상 콘텐츠지만,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좋게 말하면 품격이지만, 대다수는 이를 거리감으로 여긴다. 특히나 고전, 낭만기의 유럽 클래식이라면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16년, 국내 스타트업 수퍼브는 참 어려운 도전을 감행했다. 리듬게임이라는 다소 마니악한 장르에 피아노 클래식이라는 생소한 카테고리를 덧입혔다. 그들이 선보인 ‘피아니스타’는 일반적인 가요도 아닌,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와 같은 순수 클래식으로 가득찬 게임이었다. 언뜻 성공하기에는 '자극'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피아니스타는 보란 듯이 성공했다.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성도, 그리고 피아노의 테크닉을 십분 구현한 다채로운 패턴, 그리고 풍성한 사운드 덕에 전세계 유저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실제 플레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구독형 BM 역시 작품성을 한층 살렸다는 평이었다.

그리고 지금 수퍼브는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닌텐도 스위치에 맞추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변신했다는 '피아니스타', 퀄리티에 대한 그들의 욕심과 고집을 인벤에서 담아봤다.





▲ (좌) 김영대 사업PM (우) 김민택 사운드 디렉터

Q. 피아니스타, 클래식 리듬게임이라는 게 참 독특하다. 이런 시도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영대 사업PM(이하 김영대) : 이전에도 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활용한 리믹스곡들이 리듬게임에 종종 활용되곤 했다. 이렇게 클래식을 활용한 곡들의 특징은 항상 고난이도라는 점이었는데, 우리는 이걸 주안점으로 삼았다. 이를 활용해서 난이도가 높으면서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Q. 조금 마니악하지 않을까?

김민택 사운드 디렉터(이하 김민택) : 실제로 타겟이 마니아였다. 쉬운 버전을 즐길 유저를 위해 이지, 노멀 모드도 준비했지만, 보다 하드하면서도 다채로운 클래식 악곡의 플레이버전을 제공하는 것이 피아니스타의 가장 큰 개발 목적이었다.

김영대 : 애초에 수퍼브 자체가 음악게임 마니아가 모인 회사다. EZ2DJ, 디제이맥스 등 유명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인원들이다. 이 인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열망이 클래식 음악의 재해석이었다. 다양한 명곡들을 새로 어레인지해서 듣기에도 즐겁고, 패턴 플레이를 하기에도 즐거운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특히 피아노 특유의 테크닉을 패턴으로 살리는 데 집중했다.


Q. 피아노 클래식 악곡들은 아무래도 애초부터 '기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인 만큼, 실제 손가락의 움직임이 설계되어있기 마련이다. 타 리듬게임과는 패턴 개발 과정이 사뭇 달랐을 거 같다.

김민택 : 다른 리듬게임들도 물론 다 훌륭한 패턴을 갖추고 있다. 다만, 피아니스타는 실제 피아노는 아닐지라도 최대한 본인이 '연주'한다는 감각을 담아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클래식 곡을 배우고 연주했던 사람으로서 어떤 패턴을 구성해야 그런 느낌을 유저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참 고민 많이 했다.

종종 유저가 곡에 치이다 보면 떨어지는 노트를 '처리'한다는 느낌을 받고는 하는데, 피아니스타는 아무리 어려워도 '연주'한다는 감각을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번에 출시하는 스위치 버전 역시 그런 부분을 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 실제 피아노 테크닉을 기반으로 제작한 패턴


Q. 정말 어렵게 만든 곡 하나를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

김민택 : 이래저래 테스트를 참 많이 했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패턴이 담긴 곡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다. 실제로 이 곡을 연주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 욕심이 너무 담긴 탓인지 '제작자 진짜 너무했다'라는 평을 들을만한 구간이 나오긴 한다. 그래도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었기에 충분히 연주할 수 있다는 점 알려드리고 싶다(웃음).

이 외에도 닌텐도 스위치 버전에만 담겨있는 동물의 사육제 피날레 역시 실험적인 패턴을 사용했다. 마니아분들이 좋아해 주실 거라 생각한다.


Q. 아르페지오, 트릴 등 피아노에는 다양한 연주 테크닉이 존재한다. 비교적 구현하기 까다로웠던 테크닉은 무엇이었나?

김민택 : 기본적으로 모바일 버전에서는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곡을 제작할 때 '슬라이드 노트'를 활용했다. 스위치는 조이콘으로 조작을 하다 보니 약간 걱정을 했던 부분이 있는데, 조이콘이 타 콘트롤러에 비해 이러한 훑고 지나가는 듯한 터치가 용이한 편이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왕벌의 비행 같은 경우, 그런 테크닉을 자랑할 수 있게끔 설계를 해놨다.

아르페지오 같은 테크닉은 유저가 직접 연주하기에 피로도가 너무 커서 조금 완화를 시킨 부분이 있다. 기존 악곡의 테크닉을 너무 억지스럽게 담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Q. 곡 구성을 보면 대중적 인지도를 잘 반영한 거 같다. 이와 별개로 사운드 디렉터로서 욕심나는 곡이 있는가?

김민택 : 대중적 인지도를 먼저 고려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바일 버전에도 있었던 '삼손과 데릴라'처럼 평소 자주 들을 일은 없지만 연주하기에 즐거운 곡들은 꼭 담아내려고 한다. 스위치 버전에는 오픈 스펙을 기준으로 총 77곡이 담길 예정이며, 정말 엄선해서 퀄리티있는 곡만을 담아냈다.

개인적인 욕심을 담아 만들고 싶은 곡은 쇼펭 스케르초 2번이다. 실제로 연주하기에 난이도가 상당한 곡이라 나 역시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만큼 애정 역시 깊다. 이 곡 패턴은 정말 잘 만들 자신이 있다.

▲ 섬세한 터치와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스케르초 2번(출처: Chopin Institute)


Q. 전체적으로 작곡가가 낭만기와 고전기 위주로 구성되어있다. 혹시 조지 거슈인같은 근현대 작곡가도 추가할 계획이 있는가?

김민택 : 조지 거슈인도 클래식 작곡가로 분류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곡에 재즈 감성이 담겨있기 때문에 유저분들의 반발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기회가 되면 꼭 게임 안에 담고 싶은 작곡가지만, 최대한 정통 클래식의 느낌을 살리고자 현재 버전에서는 제외했다.


Q. 본격적으로 스위치 버전에 대해 얘기해보자. 일단 먼저 모바일 버전의 포팅 버전인지를 묻고싶다.

김민택 :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상 새로 만들었다. 곡은 당연히 다수 겹치지만, 패턴은 전부 새로 제작했다. 사운드 역시 스위치 스펙에 맞추어 새로 녹음했기에 모바일 버전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터치 방식을 지원하지 않고, 4키와 6키 옵션을 가진 조이콘 콘트롤만을 지원한다. 이러한 버튼 플레이에 맞추어 제작했기에 기존 팬분들이라면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Q. 개인적으로 조이콘 콘트롤 방식이 리듬게임과 어울릴지 걱정된다. 몇몇 리듬게임은 조이콘 콘트롤 방식에 대해 아쉬운 평을 받기도 했다.

김민택 : 정말 철저히 연구했다. 조이콘의 성능과 조작감을 면밀히 분석해 최종적으로 결론을 낸 것이 현재의 버전이다. 후면에 위치한 R버튼이나 아날로그 스틱, 그리고 8키 조작까지도 고려해봤지만 상단에 위치한 6키까지만을 활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에 맞추어 채보는 전부 새로 제작했다.

▲ 직관적으로 칠 수 있는 6키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Q. 리듬게임 유저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게 프레임인데, 스위치 휴대모드에서 문제는 없을까?

김영대 :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해상도, 싱크, 프레임드랍 등 중요한 문제는 전부 해결했다. 수퍼브는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높은 회사기 때문에 그런 결점은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회사 구성원 전부 리듬 게임 마니아인 만큼 자발적으로 욕심을 낸 부분도 있다.


Q. 스위치 버전의 가장 특징적인 콘텐츠는 무엇인가?

김영대 : 아무래도 '앙상블'이라 생각한다. 두 명이 싱글 조이콘을 하나씩 나눠잡고 즐기는 협주 모드다. 대전처럼 점수를 경쟁하는 게 아니라, 각자 3개의 라인을 맡아 곡 하나를 완주하는 게 목표다. 둘 중 한 명의 플레이어가 먼저 탈락해도 플레이어는 이어진다.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김민택 : 앙상블 모드는 또 채보가 다르다. 단순히 기존 채보를 반반 나눠 즐기는 게 아니라,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로 나누어 구성했다. 이를 위해 또 한번 처음부터 다시 채보를 제작했다.

▲ 2명이 치다 1명이 죽어도 모르는 '앙상블'


Q. 실제로 플레이해 보니 재밌다는 감상보다도 김민택 디렉터가 그간 퇴근은 제대로 했을지 걱정이 된다.

김민택 : 최대한 빨리 퇴근하려고 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야근을 많이 하진 않는다. 좋아하는 분야고, 애정있는 게임인 만큼 즐겁게 집중해서 제작할 뿐이다.


Q. 닌텐도 라보 중 미니 피아노가 있는데, 혹시 이를 이용해 피아니스타를 즐길 수도 있을까?

김영대 : 라보 지원을 하려고 닌텐도 측에 실제로 문의를 했었다. 개발킷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봤는데, 닌텐도 정책상 불가능했다. 현재 보류한 상태지만, 차후 연동할 가능성은 열려있다.

김민택 : 그런데, 라보의 큰 문제점은 타건감이다. 건반을 눌렀을 때의 반발이 느려서 빠른 연타 패턴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부분은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거 같다.

▲ 라보 연동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Q. 오픈 스펙 기준으로 총 몇 개의 곡이 담겨있고, 가격은 얼마인지 알려줄 수 있을까?

김민택 : 총 77곡이 담겨있고, 패턴은 총 693개가 구현되어있다. 가격은 24.99달러다. 향후 DLC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게 없어 업데이트 방향성은 공개하기 힘들 거 같다. 일단 팬들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Q. 글로벌 출시인가?

김영대 : 10월 25일 전후에 일본, 북미 지역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언어는 어떤 샵에서 다운받아도 한국어를 포함한 8개 국어가 똑같이 지원된다.

이렇게 출시하는 이유는 랭킹 서비스 때문이다. 피아니스타 스위치 버전은 글로벌 랭킹 서비스를 지원하는데 한국 닌텐도는 이를 지원하지 않는다. 똑같은 돈인데 누구는 일부 서비스를 즐길 수 없다면, 게이머 입장에서 좋은 경험이 아닐 거라 판단했다. 여러 가지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한국 다운로드 코드 출시에 대해선 확답을 드리기 힘들다.


Q. 조금 다른 화제로 넘어가 보자면, 최근 또 다른 리듬게임 '유미의 세포들' 출시했는데 현재 지표는 어떤가?

김영대 : 애플 인기순위 1위, 구글 급상승 1위 그리고 구글 1위까지 봤다. 이러한 수치보다도 유저분들이 저희에게 보내주는 반응이 정말 좋아서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유저 한분한분이 저희에겐 정말 소중하다.

최근 최적화 이슈가 있었는데, 새벽까지 계속 대응하고 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모든 유저에게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성심성의껏 대응하고, 좋은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김민택 : 유미의 세포들은 원작 웹툰을 사랑하는 팬분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비교적 쉽고 가벼운 방향을 추구했다. 원작 자체가 밝고 귀엽기 때문에 음악 스타일 역시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편곡했다. 아마 유저분들이 크게 느끼시진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유미의 세포들 음악들은 전부 음 하나하나를 따로 프로세싱해 작업한 결과물이다.


Q. 사실 유미의 세포들을 '리듬게임'으로 만들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김영대 : 수퍼브라는 회사 자체가 아무래도 음악에 특화되어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비단 그 이유뿐만은 아니다. 음악 게임이란 단순히 하강하는 노트를 쳐내는 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을 주제 삼아 다양한 예술을 아우르고,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종합예술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원작 웹툰의 매력과 스토리를 음악을 통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 데 집중한 '유미의 세포들'


Q. 작가분 반응도 궁금하다.

김민택 : 정말 좋아하신다. 세포 하나하나에 붙인 설명, 그리고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한 삽화 등 전체적으로 크게 만족해하셨다. 제작자 입장에서 참 뿌듯했다.


Q. 이제 2년 된 회사인데, 벌써 다양한 성과를 냈다. 앞으로는 어디를 바라볼 생각인가?

김민택 : 어느 날 수퍼브에서 리듬게임이 출시된다 하면 모두가 그 퀄리티를 기대하는 상황이 오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제작 중인 게임에 최적화된 음악을 제공할 줄 아는, 음악적인 감성에 있어서는 어디에도 뒤쳐지지 않은 사운드 디렉터가 되는 것이 개인적인 비전이다.

김영대 : 수퍼브가 전세계 게이머들에게도 인정받는 국내 개발사로 발돋움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해 실력 있는 개발사로 발전해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