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두께가 곧 전투력이자 랭킹인 모바일게임 시대에 '게임' 안에서 공정함을 찾기란 이제 불가능해졌다. 열심히 노력할 순 있다. 그래도 지갑전사에겐 안된다. 불공평한 현실의 탈출구로서 모바일게임은 이미 본질을 실족한 셈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이런 시대가 키운 괴물이다. 이 괴물 덕분에 돈을 쓰고 욕을 하는 기이한 엔터테인먼트로 성장한 게 작금의 게임산업이다. 가망은 없는 것일까?
다행히 아직 길이 있다. 멀티플랫폼을 지원하는 상용화 엔진의 발전과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게임사들도 이제 하나둘씩 모바일게임 올인 전략에서 손을 떼고 온라인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돈 냄새 따라가는 거야 기업의 생리지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타겟 자체가 애초에 글로벌 시장이며 PC 온라인과 콘솔 버전을 동시에 개발한다는 것이다. 사고가 아직 말랑말랑한 모바일게임 시장과 달리 PC와 콘솔은 진성 게이머들이 모인 주류 게임 시장이다. 어설프게 만들어서는 인정받기도 어렵고 통할 리도 없다. 국내 게임사들은 과연 이 시장을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고 있을까. 한번 정리해봤다.
엔씨소프트
아이온 IP의 차세대 콘솔&PC MMORPG 만든다
아이온은 엔씨소프트에게 매우 상징적인 IP다. 리니지2 이후 타뷸라라사가 실패하고 엎친대 덮친 격으로 L3 프로젝트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드랍되었다. 마땅한 트리플 A급 신작이 없었던 엔씨소프트는 작심하고 전사적인 차원에서 아이온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아이온 출시 전인 2008년 10월 27일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사상 최저가인 2만 4,400원을 기록했다. 말하자면 벼랑 끝이었다.
믿을건 아이온 밖에 없었다. 완성도를 높이고자 출시일이 계속 밀렸다. 그리고 2008년 11월 11일 아이온이 출시되었다. 전무후무한 대박이었다. 아이온 출시 이후 엔씨소프트 주가는 30만 원 대까지 진입했다. 아이온 IP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엔씨소프트에서 추진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는 최종 허들을 넘어서기 전까지 어떤 IP를 붙을지 알 수 없다. 아이온으로 개발되다가도 퀄리티에 따라 다른 IP로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해당 프로젝트가 아이온2로 나오리라는 보장은 현재로서는 없다. 다만, 올해 중순 채용 공고를 통해 이미 "AION IP를 기반한 차세대 콘솔&PC MMORPG를 개발 중인 프로젝트다"라고 밝힌 바 있어 현재까지는 순조로운 개발이 예상된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올해 초 제2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PC/콘솔 분야에서 혁신을 위해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아이온 IP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와 봐야 알겠지만, 콘솔 시장에 첫 도전장을 던지는 엔씨소프트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엑스엘게임즈
P3, P4 프로젝트 가동...콘솔&PC MMORPG 개발
엑스엘게임즈의 대표작 '아키에이지'는 여러모로 그해 시대상을 대표하는 게임이었다. 블루홀 '테라',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과 함께 BIG 3의 대열에 올라서며 미디어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모바일게임 일색의 현재 시대 상황과 비교해 돌이켜보건대 그래도 한발이라도 발전하고자 노력했던 한국 온라인게임의 전성기였다. 엑스엘게임즈의 개발 DNA도 그렇게 완성되었다.
모바일 MMORPG '달빛조각사' 개발이 막바지에 오른 지금 엑스엘게임즈에서는 모든 역량을 결집한 신규 프로젝트 2종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젝트명은 현재 P3, P4로 모두 하이엔드 콘솔/PC 기반의 액션 RPG이며, 이를 개발하기 위한 언리얼엔진4 개발자 모집이 한창이다.
P3, P4 모두 현재 개발 초기 단계로 현재 구체적인 윤곽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스타일리쉬한 액션 RPG를 만든다는 것, 해당 프로젝트가 PC/콘솔 시장을 노리고 개발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엑스엘게임즈가 실력 있는 개발자를 뽑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블루홀
차세대 콘솔/PC 플랫폼...실사풍 온라인 액션 게임
개인적으로는 테라2를 기대하고 있지만 실사풍 온라인게임을 개발한다는 채용 공고를 봐서는 아닐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배틀그라운드의 대성공 이후 자금력이 충분해진 블루홀은 현재 모바일 SNG, 캐주얼 경영, 미드코어 전략 대전, 모바일 TPS, 모바일 MMORPG 등 다양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역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콘솔/PC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는 실사풍 온라인 액션 게임 소식이다. 모집 직군은 캐릭터 3D 아티스트, 배경 컨셉 아티스트, TA, 3D 애니메이션, 배경 3D, 몬스터 3D 등 대부분 아티스트 쪽이다. 우대사항으로는 언리얼엔진4 경험자, 고퀄 실사 하이폴 캐릭터 제작 경험자를 원하고 있다. 특히 Marvelous Designer 제작 경험자를 찾고 있어 정교하고 사실적인 의상 디자인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펄어비스
전연령대 캐주얼 MMORPG, 복합 장르 MMO FPS 개발
검은사막, 검은사막 모바일까지 연타석 홈런을 날린 펄어비스는 현재 2종의 신작 게임을 준비 중이다. 복합 장를 표방한 FPS(프로젝트K), 모바일 캐주얼 MMORPG로 제작하고 있는 프로젝트 V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모두 펄어비스, 아니 개발자 김대일의 색깔과는 조금 다른 장르라는 점이다.
릴, R2, C9, 검은사막까지 그동안 김대일 의장의 근성과 집념으로 이끈 게임들이었다면, 이번에는 600명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펄어비스가 핵심 개발자들을 대거 영입하고 회사 차원에서 밀고 있는 신작이다. 이번에도 성공한다면 국내 게임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개발사의 이미지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베스파
3D 액션게임/콘솔 개발 경험자 모집...몬스터헌터, 다크소울 등 액션 게임 플레이 경험자 우대
모바일게임 '킹스레이드' 개발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어쩐지 차기작은 상당한 무게감을 가진 타이틀이 될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로는 차기작은 3D 액션게임(언리얼엔진)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콘솔 개발 경험자를 우대사항으로 뽑고 있다. 또한, 몬스터헌터/다크소울 등의 액션 게임에 대한 분석과 플레이 경험자를 찾고 있어 이와 비슷한 장르이거나 플랫폼으로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네오플
오버킬 스튜디오의 PC 액션 RPG, 신규 PC 게임 프로젝트
"PC 게임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명작 개발에 의욕적으로 참여하실 분들을 구합니다" 신작 PC 온라인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오버킬 스튜디오의 채용 공고다. 오버킬 스튜디오에서는 언리얼엔진4를 사용한 PC 액션 RPG를 개발하고 있으며 네오플 자체적으로도 언리얼엔진4 기반의 PC 온라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후자는 콘솔게임 경험자를 우대하고 있어 PC/콘솔 개발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던파, 사이퍼즈 이후 마땅한 흥행작이 없는 네오플 입장에서는 신규 IP는 물론 기존 IP에 대한 차기작을 하나 정도는 주류 마켓에 올려놔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네오플의 개발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신작 프로젝트의 퀄리티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넷마블
리틀데빌인사이드 개발사에 투자...세븐나이츠 스위치 버전 개발
올해 초 넷마블은 제4회 NTP(4th Netmarble Together with Press)를 통해 "자체 IP 및 개발 스튜디오 투자를 통해 모바일 게임을 넘어 콘솔 게임 및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Steam)’ 게임 개발에도 적극 투자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첫 대상이 세븐나이츠 닌텐도 스위치 버전 개발과 '리틀 데빌 인사이드'로 유명한 니오스트림 인터랙티브의 지분 투자다. 넷마블은 니오스트림 지분 30%를 투자하면서 PC, 콘솔을 함께 개발하는 건실한 개발사와 일찌감치 손을 잡았다.
넷마블의 이런 행보가 흥미로운 부분은 모바일게임 올인 전략으로 급성장을 이루어낸 회사가 다시 PC를 비롯해 콘솔 시장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글로벌 진출에 모든 것을 걸었던 넷마블이 콘솔 시장을 외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만 넷마블이 글로벌 콘솔 시장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해석하는지도 큰 관심사항 중 하나다.
네오위즈 블레스 스튜디오
반다이남코와 손잡고 블레스 언리쉬드 개발...2019년 출시 목표로 개발
네오위즈 블레스 스튜디오 산하 '라운드8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있는 '블레스 언리쉬드'는 언뜻 보면 그냥 블레스 콘솔버전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뜯어보면 블레스 IP만 썼을 뿐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라운드8 스튜디오 박성준 총괄 디렉터는 ICC 2018에 강연자로 나서 '블레스 언리쉬드 : 우리는 왜 모든 것을 재설계했나'라는 주제로 콘솔 MMORPG를 개발하기 어떤 부분을 고민하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직 생소한 콘솔 시장, 그것도 MMORPG 장르로 도전장을 던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듯 콘솔 시장은 한발 한발이 고난이고 역경이다. 판박이 같은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콘솔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모든 기업과 개발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