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놀공 이승택 대표]

  • 주제: 'DMZ에서 베를린장벽까지' 글로벌 빅게임, 아이디어에서 런칭까지
  • 강연자 : 이승택 - (주)놀공 / NOLGONG
  • 발표분야 : 게임기획
  • 난이도 : 사전지식 불필요 : 튜토리얼이나 개요 수준에서의 설명


  • [강연 주제] 분단과 통일이라는 큰 주제를 게임으로 풀어낸 월페커즈 프로젝트는 2019년 1월 베를린과 서울 두 도시에서 성공적으로 런칭했습니다. 2016년 아무도 관심없던 남북이야기를 어떻게 ‘DMZ에서 베를린 장벽까지’라는 타이틀 하나에서 시작해 펀딩을 이끌어 내고 실제 오프라인 현장에서 펼쳐지는 빅게임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과정의 많은 게임 디자인과 개발 챌린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게임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풀어갑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긴 하나, 때때로 우리는 게임이 가진 다양한 기능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교육적인 측면에서 게임을 활용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게임들이나 활동은 주로 '게이미피케이션', 아니면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한 데 묶이기도 한다.

    하지만, NDC 2019 마지막 날 강연은 맡은 이승택 대표는 게이미피케이션이나 시리어스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게임은 게임 그 자체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을 바꾸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스크린 밖에 존재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다양한 방면에서 노력을 지속해 온 그는 이번 강연을 통해 통일을 재조명하는 프로젝트, '월페커즈(Wallpeckers)'를 개발하게 된 계기와 함께 해당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배운 점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빅 게임(Big Game) - 스크린 밖에 있는 '놀이'를 찾다


    본격적인 강연에 들어가기 앞서 이승택 대표는 자신이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해 어떠한 계기에서 빅 게임(Big Game)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1990년부터 뉴욕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그는 1995년에 뉴미디어 디자이너로서 타임지에 입사해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1999년 게임랩(Gamelab)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이승택대표는 2010년까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게임랩은 2005년 미국 캐주얼게임 시장에서 1위를 석권한 '다이너 대쉬(Diner Dash)'와 같은 캐쥬얼 게임을 출시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뉴욕에 있으면서, 2001년 9.11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무실이 현장에서 10분 거리에 있었어요. 그리고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죠. 그때 뉴욕 사람들은 거의 다 (시위에)참여했는데, '사회에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디자이너로서의 고민을 많이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 밖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는 이승택 대표는 비영리 연구소 Institute of Play를 설립하고 '게임같은 학교'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 게임랩과 맥아더 재단, 뉴욕시 교육청 등이 함께 협업해 만든 학교 'Quest to Learn'은 2009년에 오픈했으며, 이후 2011년에 시카고에서 한 곳이 더 설립됐다.

    아와같은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이승택 대표는 오프라인 일상에서 많은 이들이 모여 즐기는, 이른바 '빅 게임'이라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그 시작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최대의 게임 개발자 행사 GDC에 참가해 참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선보이는 데서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빅 게임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한 장소에 모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2006년 경에는 직접 페스티벌을 만들어 운영해보기도 하며 빅 게임에 대한 꿈을 더욱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빅 게임, 사진은 '개구리' 게임을 하는 장면

    이처럼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와 교육 문화 영역 활동 후, 이승택 대표는 2011년 경 한국으로 돌아와 임애련 공동대표와 함께 (주)놀공을 창업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2년에 걸쳐 '더놀자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빅 게임 행사를 진행했지만, 아직은 해당 분야에 대한 개발이 많이 이뤄지지 않은 터라 어려움 또한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놀자 페스티벌을 진행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이승택 대표이게 우연한 기회로 주한 독일문화원과 인연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독일문화원의 정식 명칭이 괴테 문화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소재로 한 빅게임 '파우스트 되기(Being Faust)'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해당 게임은 이후 15개국 20여개 도시를 투어하며 나름의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 15개국 투어를 진행한 '파우스트 되기(Being Faust)'


    ■ 통일을 주제로 한 빅게임 만들기 - 정치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담다

    ▲ DMZ 투어 도중 이승택 대표가 찍은 사진

    다음으로 이승택 대표는 오늘 강연의 주제인 놀공의 최신 프로젝트, '월페커즈 - DMZ에서 베를린장벽까지'를 개발하게 된 이야기를 공유했다.

    해당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된 계기 또한 주한 독일문화원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이승택 대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독일은 평양에 도서관도 건축했으며, 북한과 함께 국제 영화제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며, "통일을 경험해 본 독일 사람들은 통일이 문화, 혹은 사람들에게서 시작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데서 시작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렇게 분단 당사국도 아닌 독일이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승택 대표는 "이후 DMZ 투어를 신청해서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분단 당사자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의미 있는 경험들이 존재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고 말하며 2015년부터 관련된 아이디어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베를린 장벽도 DMZ도 처음에는 개인의 생각, 이념에서 시작했다고 봐요. 그러한 생각들이 심화되고, 구체화 된 것이 전쟁이고, 장벽이 아닐까요? 결국, 이러한 모든 것의 발단은 마음의 마음의 벽에서 생긴 것은 아닌지, 어쩌면 우리나라만의 이슈가 아니라 전 세계적 갈등과 연관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자'는 추상적인 주제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어려움 또한 많이 따랐다. 우선 통일이라는 주제가 너무 방대했던 것이다. 이승택 대표는 "게임은 개인의 경험이다. 플레이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통일은 개인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며, "때문에 추상적이더라도 보다 개인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주제로 좁히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가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한 2015년 당시 '통일'은 그렇게 좋은 주제가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규모의 빅 게임은 함께 게임을 제작할 파트너사와 프로젝트에 대한 펀딩이 필수적으로 필요한데, 이승택 대표는 국내에서 이러한 펀딩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통일과 관련한 것이 들어가면 어디로든 줄을 타야 한다"는 국내의 현실 또한 지적했다.

    그러한 이유로 이승택 대표는 해외로 눈을 돌려 투자자를 찾기 시작했고, 막연하게 이미 통일을 경험한 독일과 협업하게 된다면 보다 중립적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독일문화원의 도움을 통해 독일의 베를린 장벽 재단과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 월페커즈 제작에 많은 도움이 되어준 두 단체

    그렇게 직접 찾아간 베를린 장벽 재단의 관계자는 이승택 대표에게 "30분 밖에 없으니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게임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30분은 1시간 30분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미팅은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이어 2017년 초반이 되자, 주한 독일문화원은 2018년에 50주년을 맞이함에 따라 기념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됐다. 여러가지 상황들이 긍정적으로 맞아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나서, '개인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승택 대표는 직접 독일에 찾아가 실제 동독에 있었던 사람들, 10살 즈음에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검거되어 6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사람 등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이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는 또한 여러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현재 독일의 젊은이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장벽이 사라진 뒤 세대인 그들에게서는 벌써 베를린 장벽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있었으며, 30년이 체 되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에 역사처럼 제대로 배우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우리는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기에 생긴 이슈를 가지고 있지만, 독일은 이러한 이슈가 잘 공유되지 않으면서 느끼는 여러 니즈가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 베를린 장벽 재단의 큐레이터,
    이승택 대표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그의 도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 마침내 이어진 DMZ와 베를린 장벽 - "게임은 그 자체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승택 대표는 빅 게임을 만들 때는 대부분 새로운 시도를 하기 때문에 처음이 가장 막연하다며, 기존에 작업하던 게임에 한국과 독일의 70년 역사를 집어넣는 방식으로 플레이 테스팅을 했다고 전했다. 완벽하지 않은 게임 구조였지만, 플레이테스트를 접한 베를린장벽 재단의 관계자는 "이러한 게임이 있다면, 사람들이 기념관의 전시물을 봐야 할 이유가 생길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었는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굵직한 사건들이 동일한 시간대에 발생한 것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한 시점에 데이터가 몰려있는 이유 때문에, 전체 타임라인으로 게임을 개발할 경우에는 플레이 자체에 빈 공간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자들은 테이블의 콘텐츠들을 계속 바꿔가며 여러 가지 포멧을 시도했고, 그 결과 '육하원칙'을 게임의 코어 메카닉으로 채택할 수 있었다. 이승택 대표는 "육하원칙은 어떤 정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기본적인 지도 역할을 해 주었다. 어디서, 누구에 대한, 어떤 정보를 찾는지 이해할 수 있으니 보다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게임을 마치고 난 이후에도 경험한 콘텐츠를 다시 깊이있게 확인하는 데에도 육하원칙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UI가 제공되는 일반적인 게임과 다르게,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빅게임은 모든 피드백을 화면으로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지금 제대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 불안해 하는 경우가 많다. 이승택 대표는 '월페커즈' 또한 해당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육하원칙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고민을 안고 탄생한 게임 '월페커즈 - DMZ부터 베를린장벽까지'가 탄생했다. 플레이어는 독일과 한국의 분단 역사를 취재하는 전문 기자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육하원칙을 바탕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많은 기사를 완성할수록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으며, 그렇게 만들어 낸 기사는 게임 플레이 이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특별한 장소와 세팅이 필요한 '월페커즈'는 보통 넓은 공간에서 약 20-30분 정도의 시간 제한을 두고 플레이하게 되는데, 이승택 대표는 이러한 시간 제한에도 나름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그는 "통일에 대해 원래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우리의 목표는 한 시간 안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그 감정 상태를 통해 통일에 대해 보다 긍정저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승택 대표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생각을 꼭 바꾸지 않더라도 행동할 수 있게는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게임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매체가 아닐까. 게임을 안에서만 보지 않고,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면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현재 월페커즈를 개발한 놀공은 2019년 1월 독일과 한국에서의 게임 런칭 이후, 다양한 채널을 통한 학습 프로그램으로의 확산, 프랑크프루트 박물관 전시 등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