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화려함-교전'은 LPL을 대표하는 단어였다. 많은 중국 팀들이 쉬지 않고 교전을 벌였고, 최근 롤드컵 우승을 일궈냈던 IG-FPX와 같은 팀이 세계 대회 정상에서 이를 입증했기에 확실하게 인식이 잡혀갔다. 올해 역시 드래곤 싸움이 끝나도 틈이 생기면, 아니 틈을 만들어서라도 교전을 이어가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올해 LPL 스프링의 우승팀 징동 게이밍(JDG)가 보여준 면모는 조금 달랐다. LPL에서 드물게 의외의 안정감으로 무장한 팀이었다. 교전은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정말 필요한 교전을 벌이는 팀이었다. 시기적절한 플레이메이킹까지 더 해지면서 균형 잡힌 팀으로 거듭났기에 LPL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누구도 쉽게 예측하기 쉽지 않은 결과였다. 그동안 LPL 슈퍼스타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JDG가 FPX-IG가 4강에 포진한 LPL PO를 넘었다는 것. 그렇지만 JDG가 걸어온 길을 보면, 이유 있는 이변이었다.


LPL서 드문 안정감?
롤드컵 우승의 '방패'보다 더 두터운 방패


LoL 게임에서 안정감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리 팀이 멋지게 싸워서 승리해주면, 안정감이 더 빛난다. 반대로 우리팀이 판을 만들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리면, 안정적인 라이너가 그렇게 무기력해 보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안정감이 빛을 보는 순간이 있다. 실수가 많은 경기는 물론, 양 팀 모두 큰 변수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누가 더 탄탄하게 내실을 다졌는지 따져봐야 하는 순간이 온다. JDG는 그런 순간 빛을 내는 선수들을 잘 키워왔다. 탑 라이너 '줌'과 미드 라이너 '야가오'가 그런 선수다. IG의 '루키-더샤이'처럼 화끈한 상체 캐리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진 못했지만, 이번 결승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내실 있는 플레이를 제대로 보여줬다.

'줌-야가오'의 이런 면모는 4강 FPX전에서 특히 빛났다. 상대는 작년 롤드컵의 대표 '방패'로 불렸던 탑 라이너 '김군' 김한셈과 플레이메이킹 전문가 '도인비' 김태상. 이런 대진 속에서 '줌' 갱플랭크와 같은 픽으로 '김군'의 모데카이저와 성장 격차를 벌렸다. 극단적인 변수가 없었던 경기에서 격차는 의외로 탑 라이너 간 성장에서 나기 시작했다. 킬을 주고받은 것도 아닌데, 착취의 손아귀와 CS 격차로 성장 차이를 벌려놓은 것이다. 갱플랭크의 화약통이 중-후반 한타에서 놀라운 딜을 뿜어내며 FPX를 당황하게 했다. 결승전 역시 '줌'의 갱플랭크가 위기 상황에 등장해 팀이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안정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야가오'는 '도인비'에게 틈을 내주지 않았다. '도인비'의 카사딘은 16레벨 전 단계부터 팀과 함께 틈을 만들어낸다. 킬과 함께 성장하기로 유명했던 '도인비'의 카사딘이 JDG와 1세트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오히려 빈틈 없는 상대에게 억지로 부딪히다가 미끄러진 경기가 많을 정도였다. 경기는 20분 가까이 킬 없이 진행됐고, 이런 양상을 만든 게 '야가오'의 코르키였다. '도인비'에게 틈을 잘 주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성장하기 전까지 먼저 걸어오는 싸움을 끝까지 회피했다. 두 선수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야가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뒷점멸로 '도인비'의 위협을 피했다. 생존기가 있는 코르키 임에도 피지컬을 앞세운 자존심 싸움보단 확실한 선택으로 팀 승리에 기여할 수 있었다.


▲ 안정감있게 JDG서 자리 지켜온 '줌-야가오-리마오'



플레이메이킹 필요한 순간
정글-서포터 '카나비-리마오'가 나선다면?


그렇다고 모두가 안정적으로 게임을 할 수 없는 법. 누군가 나서야할 순간이 왔을 때, JDG에서 내세울 카드 역시 충분히 있었다. 앞서 말한 '야가오'가 르블랑 같은 픽으로 은은한 변수를 만들기도 했고, 주로 정글러 '카나비' 서진혁과 서포터 '리마오'가 이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카나비'는 올해 정규 스플릿에서 충분히 이를 증명해왔다. 분당 대미지 1위, 팀 내 대미지 비중 1위, 분당 골드 획득량 1위, 분당 CS 1위, 킬 관여율 1위, KDA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검증된 선수였다. 분당 CS와 킬 관여율이 모두 1위라는 것은 '카나비'가 얼마나 갱킹과 성장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왔는지 알 수 있다. 게임 전반의 판을 '카나비'가 만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승전에서도 중요한 순간 '카나비'의 활약이 잘 나타났다. 상대 TES '카사'가 매서운 갱킹과 '카나비'를 말리게 할 동선을 철저하게 연구해왔기에 힘든 경기가 예상됐다. 하지만 카운터 정글을 당했을 때, 아군과 과감하게 상대 정글로 들어가 과감하게 승부를 봤다. 간발의 차이로 승리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위기관리 능력까지 뛰어났다. 정규 스플릿 MVP이자 1st 팀에 선발된 정글러인 만큼 이제 자신의 플레이에 자신감과 확신이 드러나는 단계까지 온 듯하다.

▲ 우승할 판을 만드는 '카나비-리마오'(출처 : LPL ENG)

우승자를 결정지을 결승전 마지막 5세트에서도 '카나비'는 빛났다. 앞선 세트에서 뛰어난 캐리력을 보여주고 다시 등장한 '369'의 아트록스를 확실히 말리게 하더니 중요 한타에서 '잭키러브'를 끊어내면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후반가면 힘이 빠지는 렉사이라지만, 후반 딜의 핵심인 원거리 딜러를 확실히 끊어주면 흔히 말하는 '유통 기한'은 사라진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정규 스플릿부터 결승전까지 자신이 해줘야 할 것을 충실히 해줬기에 '카나비'는 LPL 최고의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포터인 '리마오'의 활약 역시 눈부시다. TES는 '잭키러브'를 영입하며 봇 라인이 강한 팀이 됐다. 실제로 4강에서 IG를 상대로 '잭키러브'가 이즈리얼을 비롯한 다양한 챔피언으로 킬을 쓸어담는 장면이 4강 하이라이트에 빠지지 않았을 정도다. 하지만 라인전 단계부터 한타까지 이런 '잭키러브'의 캐리력이 반감된 듯한 모습이었다. '리마오'가 쓰레쉬-바드로 '잭키러브'를 낚아채 '로컨' 이동욱과 함께 킬을 내는 장면이 나왔다. 라인전 단계 킬을 드래곤 지역 장악에 영향을 줬고, 정작 드래곤 한타에서는 더 큰 그림을 만들어냈다. 경기를 지켜본 많은 이들이 4-5세트에서 '리마오' 바드의 궁극기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게 판을 뒤집어 놓았다. 결승전의 MVP다운 플레이였다.


열세를 극복한 신뢰, 자신감
'옴므' 윤성영 감독이 말하는 결승전 상황은?


올해 시작부터 JDG의 LPL 우승을 예견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JDG는 이번 결승까지 꾸준히 자신들만의 자신감을 채워나갔다. 2018년 LPL 섬머 3위로 시작해 2019 스프링 준우승, 그리고 2020 LPL 우승까지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매년 한 계단씩 더 올라섰다. 작년 스프링은 PO '턱걸이'라고 할 수 있는 8위로 시작해 3위까지 올라선 스토리 있는 팀이다.

아래서부터 올라온 경험이 많은 JDG에게 남은 건 우승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뒷심뿐이었다. 그리고 PO 이전부터 JDG는 자신감이 찬 상태였다. '옴므' 윤성영 감독은 디펜딩 챔피언인 FPX와 4강 대결 전후부터 이런 자신감을 보여줬다.

우리 팀이 현재 메타에서 잘하는 편이고, 실력에서도 FPX에게 크게 밀리는 라인이 없어서 밴픽-운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승전까지 갔을 때, 현 메타가 우리 팀에 잘 맞고 팀 호흡도 좋은 편이라 우승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 우승을 못 하면 ‘딱 여기까지’라고 느꼈다.

JDG와 윤성영 감독 모두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막상 LPL 결승전은 3:0으로 승리한 이전 PO 경기, 타 지역의 결승과 또 달랐다. 풀 세트까지 갔다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역전승이었다. JDG가 세트 스코어 1:2로 밀리고 있을 때, TES의 '카사-나이트-잭키러브'는 승리한 세트마다 슈퍼플레이를 쏟아내고 있었다. 2:5 한타마저 승리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기세는 TES쪽으로 기운 듯했다. 게다가, 2017년부터 벌어진 '로컨'과 '잭키러브'의 악몽 같았던 상대 전적 격차가 더 심하게 느껴질 법한 상황이었다. 평범한 팀이라면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JDG는 이를 극복한 팀이 됐다. 극한의 상황에서 JDG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 4세트 믿음의 '쓰레쉬-르블랑-아펠리오스' 가져온 JDG

▲ 결승 MVP '리마오' 바드

결승전 4세트부터 선수들 부담감을 덜고 의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1세트부터 3세트까지 보면서 우리가 4세트에서 아펠리오스를 가져오지 않으면 질 거라고 확신했다. 앞 경기는 “내가 밴픽 단계에서 쓰레쉬를 기용하지 않아서 졌다”고 말했고, 4세트부터 우리가 가져온 아펠리오스-쓰레쉬 조합이 엄청 강하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1세트에서 승리를 경험한 르블랑 역시 가져오자고 했다. 르블랑을 가져가면 이긴다고 선수들에게 “나를 믿어 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의 초반 픽 단계에서 아펠리오스-르블랑-쓰레쉬를 뽑았다.

그리고 4세트에서 상대가 초반에 가져온 조합에 사일러스가 효과적이었는데, TES가 올라프를 밴해줘서 더욱더 사일러스를 기용하기 좋은 상황이 나왔다. 4픽인 갱플랭크는 탑 라이너 '줌'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챔피언 중에 하나다. 2:1로 밀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탑-미드는 가장 잘하는 챔피언을 뽑았을 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탑-미드가 자신감을 찾을테고, 이런 상황일 때 봇-정글도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마지막 5세트는 4세트를 이겨서 일단 우리가 더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상대가 아펠리오스-브라움-아트록스를 뽑을 거라고 어느 정도 예측했다. 미스포츈-오른까진 당연히 가져가야하는 상황이였다.

3픽에서 '카나비' 선수가 리 신을 선택하려고 했지만, 리 신은 이미 결승전에서 모두 패배했기에 못하게 했다. 대신 뛰어난 갱킹을 자랑하는 렉사이를 3픽에 쥐어주고 갱킹 호응이 좋은 오른을 탑에서 선택했다. 결국, 탑-정글에서 3연속 킬을 먼저 가져와서 유리하게 이끌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미 브라움 상대로 바드를 가져오기로 이야기가 된 상황이었다. 서포터 '리마오'의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위해 '바드하면 무조건 이긴다'고 말해 사기를 높여줬다.



JDG 한국 선수 역시 결승전에서 다시 한번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원거리 딜러 '로컨'은 NEST 2017 결승을 시작으로 데마시아 챔피언십 2017 3라운드, 2018 LPL 섬머 플레이오프 4강, 데마시아 컵 2018 윈터 결승, LPL 2019 스프링 플레이오프 4강과 2019 롤드컵 LPL 대표 선발전까지 모두 '잭키러브'에게 패배한 상태였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확실히 긴장했을 텐데, 이번에 4강에서 FPX를 3:0으로 이기고 올라와서 자신감이 있는 상태라 결승전에서 딱히 두렵지는 않았다"고 말하며 '잭키러브'를 상대로 가장 멋진 승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올해 최고의 스프링을 보낸 '카나비'도 스프링 우승과 정규 스플릿 MVP 소감을 전했다. "작년에 안 좋은 일을 겪고 올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결과가 좋게 나와서 매우 만족스러운 시즌을 보낸 거 같다"

두 선수와 함께 해온 윤성영 감독은 두 선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우승의 주역인 두 한국 선수에 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든든한 두 선수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JDG는 자신 있게 우승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일단 '로컨' 선수는 실력보다 많이 저평가 받고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성격이 매우 착해서 조용히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더라. 그래서 다른 부분에 신경 쓰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고 게임에만 집중하게 해주면 분명 잘해줄 것이라 믿었다. 서포터 '리마오' 선수와 호흡도 정말 좋은데, 결국 우리 봇 듀오가 1-5세트 모두 라인전에서 더 잘해준 것 같다. 그래서 우승할 수 있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잭키러브'를 상대로 밀리지 않고 리드해준 '로컨-리마오' 선수에게 정말 고마웠다.

'카나비' 선수는 솔로 랭크를 기준으로 이미 잘하는 선수였다. 정상급 피지컬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플레이에 능한데, 한타 역시 정말 잘하더라. 챔피언 폭도 넓었다. 아마 이런 부분을 그리핀에서 잘 배워 온 것 같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을 말하자면, 솔로 랭크 습관이 강해서 팀 게임에 대한 이해도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부쉬 체크도 안 해서 놀랐다. 하지만 언어적인 부분과 팀 게임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잠재력이 폭발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성장 속도가 정말 빨랐다. 정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이 두 친구가 없었다면 절대 우승은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승한 소감으로 윤성영 감독의 말을 들어볼 수 있었다. 2014년 삼성 화이트-2017년 WE, 그리고 올해 2020년 JDG에서 우승을 거뒀다. 3년 만에 한 번씩 찾아온 값진 승리였다. 나아가, JDG에서 첫 우승을 달성했기에 윤성영 감독은 그 감회가 남달랐다.

JDG에 처음 부임할 당시 시작은 8등이었지만, 2년 간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과 관리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결승전에서 밀리고 있을 때, 나의 도전을 믿어준 선수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 이번 우승은 다른 팀보다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에게도 감사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들 힘들겠지만, 힘내서 잘 견뎌 내길 바란다. 그리고 더 나은 감독 코치가 돼서 좋은 한국 팀에서도 연락이 많이 올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이른 시일 내로 한국에서 봤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라이엇 차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