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 생각 간절해지는 도끼 없는 도끼 게임


어린 시절, 사촌 형들과 낡은 PC 앞에 앉아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했던 기억은 지금도 가끔 떠올리곤 하는 잊을 수 없는 추억 중 하나다.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동전을 99개까지 넉넉히 넣어둔 뒤, 두 명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좁은 키보드 자판의 키 배열을 하나씩 세심하게 배분하고,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먼저 선점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었다.

당시 플레이했던 게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캡콤이 1996년에 발표한 아케이드 게임 '던전 앤 드래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였다. 물론, 당시엔 이런 거창한 제목이 달려있는지 알 턱이 없었지만 말이다. 게임 제목은 읽기 어려웠지만, 시선을 확 끄는 개성 넘치는 비주얼의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했고, 어떤 캐릭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모험의 느낌이 달라지는, 참 매력적인 게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시시콜콜한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최근 스팀을 통해 발매된 신작 액션 게임 '배틀 액스(Battle Axe)'가 그 당시에 즐겼던 아케이드 게임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저 평가도 마땅히 참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 '골든 액스'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듯한 타이틀과 스토어 페이지에 걸린 아련한 픽셀 아트 비주얼에 홀려 약 3만 원에 달하는 게임을 덥석 구매하게 됐다.

게임명 : 배틀 액스(Battle Axe)
장르명 : 액션, 아케이드
출시일 : 2021. 4. 29.
개발사 : 비트맵 브루
서비스 : Numskull Games
플랫폼 : PC, Xbox Series X/S, 스위치



올드 유저들의 추억을 자극하기 위해 '명장'의 손길 담았다

'배틀 액스'는 샨테 시리즈로 유명한 베테랑 픽셀 아티스트 헹크 니보르그(Henk Nieborg)의 픽셀 그래픽, 그리고 오리지널 록맨 시리즈의 BGM을 만든 작곡가 마츠메 마나미의 사운드 트랙이 적용된 신작 아케이드 액션 게임이다. 추억을 자극하는 정겨운 비주얼과 사운드를 통해 90년대 초반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게임의 배경에는 얼음으로 뒤덮인 북쪽 불모지에 사는 광폭한 마녀 '에델드레드'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세 명의 영웅이 나섰다는 스토리가 존재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실제 게임 내에서도 스토리 관련 텍스트는 게임 마스터와 마녀의 대사 몇 줄이 전부다. 그 몇줄이나마 한국어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지만 말이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90년대 아케이드 액션 게임들이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조작, 그리고 빠른 템포의 게임 플레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플레이어는 근접 공격, 원거리 공격, 그리고 일정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특수기까지 세 가지 조작을 활용하여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만 한다.

게임 속 4개의 스테이지는 각각의 기술을 상황별로 능숙하게 활용해야만 클리어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어하기' 기능이 제공되지 않으므로 체력 한 칸 한 칸이 소중한 법인데, 필드에는 근접 공격을 하는 적, 투사체를 던지는 적, 원거리 공격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적이 한데 섞여서 등장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이처럼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쉬운 조작을 응용하여, 리드미컬한 '손맛'을 담아낸 것이 '배틀 액스' 게임 플레이의 매력이다.

▲ 전략적으로 기술을 응용하지 않으면 체력은 금방 바닥나고 만다

정리하자면, '배틀 액스'는 90년대 아케이드 액션 게임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픽셀 그래픽과 흥겨운 BGM, 그리고 직관적이며 속도감 있는 전투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게임인 셈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오락실의 추억과 고전 게임에 대한 향수가 있는 올드 게이머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갓겜'처럼 보이겠지만, 배틀 액스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에 가까웠다.



'추억 보정' 다 더해도, 본전 생각나는 아쉬운 게임 볼륨


세가의 아케이드 액션 게임 '골든 액스'에는 금도끼가 등장하지만, 배틀 액스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전투 도끼가 등장하지 않는다. 게임의 제목을 배틀 액스라고 지을 정도면 주인공 캐릭터의 장비, 혹은 최종 보스의 상징으로 도끼가 등장할 법도 한데 말이다. 게임이 도끼 빠진 도끼 게임이 되어버렸듯, 배틀 액스는 개발 단계에서 뭔가 빠트리면 안 되는 중요한 요소를 빠트린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인 게임의 볼륨이다. 배틀 액스에는 총 네 개의 스테이지가 등장하는데, 빠르게 달리면 엔딩을 보기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스테이지 볼륨이 적다보니, 등장하는 몬스터도 '색칠 놀이' 몬스터를 모두 포함하여 20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적은 볼륨을 감추기 위해 배틀 액스 개발자는 가혹한 난이도 시스템을 채택했다. 어려움 모드에서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이어하기 기능도 없으므로, 스테이지 중간에 목숨을 모두 잃는다면 스테이지 1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야만 한다. 맵 구조나 적, 구출해야 하는 시민의 포인트가 바뀌는 등의 '로그라이크' 요소도 일절 없으면서 말이다.

작정하고 어려운 난이도로 유명한 게임인 '돌아온 마계촌'조차도 중간 세이브를 제공하여 플레이어의 스트레스를 줄여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배틀 액스'의 이러한 레벨 디자인은 단순히 적은 볼륨을 무마하고, 어떻게든 플레이 시간을 늘려보기 위한 술수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 "응~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세 종의 캐릭터에도 차별화되는 매력이 부족하다. 세 캐릭터가 각각 다른 특성을 가져 서로 다른 손맛을 준다면, 절망적일 정도로 부족한 볼륨 내에서도 어떻게든 다회차 플레이를 노려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틀 액스의 세 캐릭터는 마법사와 전사, 도적처럼 디자인됐음에도 별다른 직업적 특색을 담아내지 못했다. 캐릭터별 필살기 시스템 같은 것도 딱히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근접 위주인지 원거리 위주인지 정도만 다를 뿐 전체적인 게임 플레이에서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아쉬운 점들을 모두 감수한 채로, 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명장이 직접 작업한 수려한 픽셀 그래픽과 사운드 부분에서만 가치를 찾아볼 수도 있지만, 같은 장르의 비슷한 게임들과 함께 두고 '이게 과연 31,000원을 내고 할 게임인가?'라고 생각해보면 회의감만 남는다.



아케이드 액션 게임의 백미는, 2인용 플레이에 있다


물론 이왕 게임을 구매했다면, 그 속에서도 즐길 거리를 찾아볼 순 있다. 1회 클리어 시 개방되는 '새 게임+'는 하나의 목숨과 더 어려워진 난이도, 맵 좌우 반전으로 부족한 볼륨 내에서 어떻게든 유저들에게 신선함을 제공하려고 노력한 개발자의 고심이 드러나는 모드다.

아케이드 모드와 별개로 존재하는 '무한 모드'는 시민을 구출하는 것이 주목적으로, 본편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 스테이지 구성을 통해 리소스 재활용의 정석을 보여준다. 노이로제를 유발할 정도로 지겹게 이어지는 BGM을 감수할 필요가 있지만 말이다.

가장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스팀의 '리모트 플레이 투게더' 기능을 활용한 2인용 플레이 요소다. 한 명만 게임을 구매하면, 스팀 친구에 등록된 친구를 초대해 둘이서 '배틀 액스'의 2인용 모드를 플레이할 수 있다. 이때 상대방의 PC엔 추가 설치 절차도 요구되지 않으니, 친구를 초대할 때의 부담도 적은 편이다.

친구를 초대하여 함께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꽤 높은 허들이긴 하지만, 그토록 단점이 많이 보였던 배틀 액스도 친구와 함께 플레이하면 나름 즐겁게 웃으며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된다. 비록 팀킬 요소는 없지만, 체력 아이템과 인질을 먼저 싹쓸이하며 인성질 플레이를 할 때는 어렸을 적 형제들과 함께 더블 드래곤을 플레이하던 옛 기억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 똑같은 게임인데, 둘이서 하면 이상하게 배 이상 재밌다





'배틀 액스'는 던전 앤 드래곤 같은 고전 아케이드 액션 게임들을 떠올리고, 그 추억을 다시 느껴보겠다는 마음으로 구매하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고전 아케이드 액션 게임의 향수를 다시 느끼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최신 콘솔로 발매되면서도 배틀 액스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캡콤 벨트 액션 컬렉션', 혹은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 쪽이 더 좋은 대안이 된다. 친구와 함께 즐길 게임을 찾고 있다면, '고티급' 게임으로 주목받고 있는 '잇 테익스 투' 쪽이 더 바람직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수 많은 대안이 존재하지만, 고품질의 픽셀 그래픽과 오리지널 록맨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BGM, 그리고 빠른 템포의 탑다운 액션 게임 플레이는 '배틀 액스'의 분명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직접 그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15%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출시 할인 기간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