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는 닦았으나 기둥이 다 안 세워졌다



사람은 모르는 걸 보면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해서 거리를 두기도 한다.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탐험가도 있고, 그런 것과는 관계 없이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한들 가슴 한 켠에는 누구나 호기심은 있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를 한 번 들여다보거나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상상하지 않던가.

아마 그것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생존 시뮬레이션, 혹은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이 등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세계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을 하는 것일 텐데, 일상과는 또 다른 맛이라 재미가 느껴진다. 사무실, 집을 떠나서 이젠 우주까지도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크라이오폴은 먼 미래, 잊힌 행성에 불시착한 생존자들이 식민지를 개척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2D 그래픽으로 간단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그려낸 생존 시뮬레이션 게임이지만, 우주라는 공간을 담아내기엔 아직은 작았다.

게임명 : 크라이오폴(Cryofall)
장르명 : MMO 생존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1. 4. 30.
개발사 : AtomicTorch Studio
서비스 : Daedalic Entertainment
플랫폼 : PC

관련 링크: '크라이오폴' 오픈크리틱 페이지



간단하고 직관적인 생존 시뮬레이션


생존 게임이라는 장르는 사실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는 장르다. 인간이 혼자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니 말이다. 추위와 배고픔, 낙상, 야생동물의 습격 등등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때로는 이런 것에 스릴을 느껴서 오지 탐험을 떠나거나 생존 프로그램을 찍는 사람도 있지만, 아예 쳐다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떠올려보자. 생존 게임에 대한 호불호도 이와 비슷하다. 자칫하면 캐릭터가 아무 것도 못하고 죽어나갈 수 있다는 긴장감이 한 순간에 스트레스로 쌓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크라이오폴은 그렇게 빡빡한 게임은 아니다. 배고픔이나 목마름 외에도 여러 가지 상태 이상은 존재하고 초반에는 자칫 잘못하면 야생동물한테 역으로 당하기 일쑤지만, 생존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를 위해 마련한 튜토리얼 퀘스트 정도만 따라가면 별 문제 없이 생존이 가능하다. 물론 그게 너무 지겨워서 가끔 멧돼지나 늑대를 때렸다가 예상치 못한 데미지에 놀라긴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도망갈 타이밍은 준다. 그러다가 몇 분 정도 지나 돌도끼를 넘어 돌칼까지 만들면 금방 리스크를 감수하고 사냥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된다. 조작법도 간단해서 WASD에 포인트 앤 클릭 조작으로 뭐든지 다 가능하다.

▲ 뭐 잘못 먹어서 현기증나긴 한데, 쉬면 나을 거야 괜찮아

▲ 하지만 저돌맹...아니 멧돼지의 일반 공격은 너무 아프다

우주 개척 시대에 왜 원시인처럼 돌도끼부터 휘둘러야 할지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처음엔 돌도끼부터 시작해서 차츰차츰 구색을 갖춰나가는 그 과정은 간단하면서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주변에 떨어져있는 물건을 채집하고 조합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걸로 생존해나간다는 기본 틀이 직관적으로 잘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돌과 나무를 주워서 돌도끼나 곡괭이를 만들고, 그걸로 나무를 베고 돌을 잘라서 작업대를 만든 뒤 구리와 철을 제조하는 등 기술의 발전이 막힘 없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재료도 상당히 단순한 데다가, 생존 게임을 잘 안 해본 게이머라고 해도 쉽게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조합도 간단해서 한 단계 한 단계씩 생존 과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지나서 방사능 오염 등 고차원적인 어려움이 닥쳐오긴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처음부터 덜컥 오진 않게끔 계단식으로 디자인이 잘 짜여있었다. 그 정도 단계에 올 때면 이미 아이템을 조합해서 바로 대처하는 것이 체화되고도 남은 시기이니 말이다.

▲ 돌도끼로 나무 베고 돌을 캐고

▲ 집 만들고 용광로 만들어서

▲ 금속을 제련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차근차근 논리정연하게 잘 맞춰져있다

더군다나 각종 상태 이상 제거용 재료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서 치료도 못하고 죽는 속터지는 일은 잘 발생하진 않는다. 오히려 어느 정도 장비를 갖춰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야생동물한테 얻어맞고 죽는 일이 많았다.

물자 관리도 음식이 상하고 도구가 내구도가 떨어지는 정도일 뿐, 실패로 소실되거나 도구가 다른 요인으로 상하는 일은 최소화해서 크게 어렵지 않게 현상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명횡사는 잘 당하지 않는 이 묘한 디자인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기엔 충분했다.

▲ 부식되는 건 음식과 토지 점령소뿐이고, 도구는 쓰면 내성도가 깎이지만 방치해도 소멸되진 않는다



우주 식민지 개척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콘텐츠

▲ 누가 식민지 행성이라고 말 안 했으면 그냥 무인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디자인이다

그렇지만 접근성을 높인 생존 시뮬레이션 게임이 으레 그렇듯, 크라이오폴 역시도 초반의 위기를 넘기고 나면 플레이가 루즈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더군다나 스토리라인이 뒷받침되지 않고, 다른 유저와 협동과 경쟁이 주가 되는 멀티플레이 시뮬레이션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식민지를 개척하고 살아남자는 목표를 던졌는데, 이렇게 느슨하게 잡은 목표는 최소한만 달성되도 그만이다. 오두막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남든 고급 테크를 타면서 떵떵거리며 살든, 생존에만 초점을 맞추면 둘 다 목표를 달성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 뒤에 자유를 만끽하면서 온갖 테크를 타는 고인물도 있겠지만, 목표를 달성한 뒤 긴장감이 없어져서 이탈할 유저도 있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 머스킷만 있어도 어지간해서는 다 때려잡는다. 그런데 저 괴생명체 빼면 지구랑 별반 차이가...

더군다나 크라이오폴은 식민지 개척 목표를 달성한 뒤에, 무언가 던져주는 것이 적다. 테크트리를 올리기가 비교적 쉽지만, 가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노동량을 요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성취감을 느끼기도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건설 테크트리와 달리, 스킬 테크트리는 MMORPG의 제작/채집 숙련도처럼 특정 행동을 꾸준히 반복해야만 올라가는 구도다. 노가다는 계속 이어지고,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히면 죽는 일이 없어지니 자극도 없다. 간혹 월드 이벤트가 있긴 하지만, 그 역시도 대부분은 큰 위협이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나마 다른 유저와 이것저것 물물 교환하고 거래하는 시스템은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터라 교류하며 노는 재미도 있고 익숙해지면 좀 더 빠르게 테크 올릴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재화를 모으는 의미가 재산 축적, 업적 달성 정도의 성취감밖에 못 주는 상황이었다. 그마저도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짙었다. 지형지물도 다양하고 종종 우주의 느낌이 드는 괴생명체들이 출몰하긴 하지만, 그게 생존에 크리티컬한 영향을 미치지 않아 감흥이 없다는 것도 컸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우주 개척이라는 말이 빠져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 관련 콘텐츠는 미비하고 의미가 없다. 그냥 지구 어디라고 해도 믿을 만큼 콘텐츠 컨셉이나 디자인이 차별화되어있지 않았다.

▲ 거래도 자유롭고

▲ 테크를 타면 우주 식민지 개척 느낌이 나긴 하지만, 최종 테크 디자인을 봐야 그게 체감된다



진국은 PVP 서버, 그러나 너무 좁고 혼자서는 위험한 무법지대


그런 상황에서 크라이오폴이 선택한 답은 제약이 없는 PVP였다. 처음 서버에 진입했을 때 딱 2시간의 유예만 주어지고, 그 2시간이 끝나면 바로 PVP와 약탈에 노출되어버린다. 심지어 초보자 보호 상태에서도 누군가가 설치해둔 자동포탑이나 함정에 픽픽 쓰러져버리는 일도 꽤 흔하니 안심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시작 지점도 초보를 배려하긴 했어도 랜덤하게 떨어지는 터라, 상황에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을 다 써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누군가에게 들키면? 바로 약탈당한다.

누가 약탈해도 그 약탈한 사람이 어디에 갔나 알려주는 복수 시스템 같은 것도 없고, 제약도 따로 없으니 그냥 초보들을 점찍어두고 계속 약탈 순회공연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상황이 크라이오폴에서는 꽤나 자주 벌어지고는 했다. PVP 서버에 진입하다보면 그렇게 경쟁에서 도태되어서 결국 서버를 떠버린 사람들의 황량한 거처를 쉽게 볼 순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한 번 죽으면, 시체에 있는 모든 아이템들을 탈탈 털린다. 옷쪼가리가 파괴되지 않는 한 그래도 남아있어주는 게 일말의 양심 같다고 할까.

▲ 아니 선생님 전 그저 야생닭을 잡았을 뿐인데 왜 초보자 보호가 안 되나요 ㅜㅠ

다만 어느 정도 테크가 올라가기 전까지는 원상복구하는데 드는 재화가 적다는 점, 테크가 최종까지 가지 않는 한 한두 단계 차이에서는 생각보다 사람 대 사람 전투에선 아예 못 싸울 정도로 격차가 나지 않게 해둔 터라 약자들도 모여있으면 반격할 여지는 있었다. 조작감이 부족한 대신, 세세한 컨트롤로 승패가 갈리는 일은 드물어서 최종 테크까지 가지 않는 한 한 명이 여럿을 때려잡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누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맵에서 사운드 표시가 나고, 그걸 따라서 다른 플레이어도 몰려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장기전을 섣불리 하는 구도는 나오지 않았다. 단 350명이라는 사람이 모여있기에는 월드가 비교적 좁은 편이고, 그래서 소규모 교전은 생각보다 잦은 편이라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유지할 필요는 있었다.

▲ 물론 그렇다고 테크 3단 이상 차이나는 것이 커버되진 않는다

▲ 시체가 싹 다 털리는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혼자라면 별 도리가 없다

정 어렵다 싶으면 다른 서버로 옮기거나, 정식 구매를 했다면 아예 처음부터 새로 서버를 만들어서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했다. 마치 MMORPG에서 신규 서버를 계속 만들어서 그 서버로 옮겨 새로 키우고, 또 다른 서버가 생기면 새로 키우듯이 말이다. 더군다나 모든 서버는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엔 다 초기화해서 고인물과 초보의 격차가 눈덩이처럼 커지지 않도록 했다.

그런 최소한의 안전 설계가 되어있긴 하지만, 가면 갈수록 혼자하기엔 한계가 보이는 게임이었다. 혼자서 유유자적하게 하자니 할 건 없고, PVP 서버로 들어가면 짜릿한 생존의 재미를 느낄 순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다른 플레이어의 침략에 시달린다.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새로 서버를 만드는 수를 써봐도 백지장도 맞드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 다만 하다보면 소매넣기하는 기연도 만나고, 패드립부터 전챗으로 박아대는 사람도 만나는 등 세상 MMO 유저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는 게 나름의 의의라면 의의일까.


▲ 여기서도 소매넣기가?

▲ 아아 이 패드립의 느낌, 외국이라고 별반 다를 거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라이오폴은 호불호가 정말 심하게 갈릴 게임이다. 혼자서 치열하게 생존하고 우주에서 식민지를 개척해나가는 게임을 기대했다면,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라고 말하겠다. 싱글플레이 생존 게임의 요소는 다 갖추긴 했지만, 그 이상 특별한 무언가가 부족하다. 기본기는 잘 갖춘 편이라 초반에 적응은 쉬운데, 그 다음에 어떤 목표가 뚜렷히 없고 노가다가 가면 갈수록 늘어나서 마음이 가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우주라는 테마는 굳이 왜 넣었나 싶을 정도로 체감이 잘 안 된다. 누군가 같이 노가다를 해줘서 어지간히 부스트업해주지 않는 한은 말이다. 거래를 활용하면 좀 더 테크가 빨라지지만, PVP 서버에서는 거래하러 가다가 초보를 노리는 약탈단에게 털리기 일쑤라 체감하기 힘들다.

반면에 다른 사람과 같이 개척 전 식민지에서 무법자처럼 뛰놀고 싶다면, 크라이오폴은 꽤나 괜찮은 대안이다. PVP 서버에 한정되어있긴 하지만 PK나 약탈에 제한도 없다. 이미 기존의 세력들이 자리잡은 공간에서 뒤처진 상태로 발을 들이밀기 싫다면, 서버를 새로 만들어서 모두 다 처음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이라서, 새로 만든 서버에 알음알음 들어오고 또 하다가 뒤쳐지면 다른 곳에서 시작하는, 그런 무한 경쟁의 순환은 생각보다 잘 이어지는 편이었다.


▲ 개발자 서버 외에도 커스텀 및 커뮤니티 서버까지 다양하게 지원한다

어찌 되었건 개발사에서 8시간 무료 체험을 지원하니, 관심이 있다면 일단 무료 체험을 한 뒤에 구매를 결정하는 걸 권한다. 친구들과 같이 커뮤니티 서버를 만들어서 할 거라면 정식 버전을 사야겠지만, 그외 나머지는 체험판에서도 동일하게 즐겨볼 수 있다. 그리고 체험판 진행 중에 패키지 구매를 하면 데모 때 캐릭터를 그대로 플레이할 수 있으니, 찍어 먹어 보고 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