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가 블리자드 코리아를 스타크래프트2게임 심의 관련법 위반으로 강남경찰소에 수사 의뢰했다.


게임 이용등급 및 내용정보 표시 의무를 어긴 채 무단으로 스타크래프트2 베타테스트를 진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 이에 따라 강남경찰서는 블리자드와 게임위를 상대로 사실 관계과 법률 위반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게임위가 지적한 위반 여부, 즉 게임법 33조 1항 '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할 목적으로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는 자는 당해 게임물마다 제작 또는 배급하는 자의 상호 등급 및 게임물내용정보를 표시하여야 한다.'를 위반한 것이 확인될 경우에는 게임법 45조 7항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게임위는 인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블리자드 코리아에 시정 권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1주일 동안 시정 권고를 무시한 채 베타테스트를 진행했기에 강남 경찰소에 수사의뢰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게임위가 수사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강남경찰소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의견이다.


한편, 블리자드 코리아는 아직까지는 경찰에서 어떠한 공식적인 사항도 통보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게임위에 먼저 공문을 발송해 등급 표기에 대한 가이드를 질의한 바 있고, 현재는 게임위의 수정 권고를 모두 받아들여 게임 내에 적용했으며, 스타크래프트2 베타 진행에 대해서도 배틀넷 본인 인증 과정을 통해 15세 이상만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게임위와 블리자드 코리아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사건이 일어난 과정은 이러하다.

1.
블리자드 코리아는 스타크래프트2 베타가 시작되기 2주 전인 2월 3일, 게임위에 공문을 보내 등급 표시 방법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2.
의뢰를 접수한 게임위는 그로부터 9일이 지난 2월 12일, 블리자드에 공문을 보내 베타테스트가 온라인 게임에 상응하는 방법으로 등급 표시가 되어야 한다며,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홈페이지는 물론, 게임 내에서도 등급 표시를 볼 수 있도록 게임 내용을 수정하라는 권고 사항을 전달한다.

3.
게임 내용을 직접 수정할 능력이 없는 블리자드 코리아는 이 내용을 본사에 전달했고, 본사도 이를 받아들여 26일 오전 스타크래프트2 베타테스트의 첫 번째 패치를 통해 게임 내 등급 표시가 이뤄졌다.

4.
게임위는 그 일이 있은 후 2주가 지난 3월 11일(어제), 블리자드 코리아가 2월 18일부터 2월 24일까지, 약 1주일 동안 게임위의 권고사항을 수정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베타테스트를 진행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큰 논점은 스타크래프트2를 '일반 패키지 게임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온라인 게임으로 볼 것이냐'에 있다. 스타크래프트2가 어느 쪽이냐에 따라서 등급 표시 방법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래는 게임위 홈페이지에 있는 게임물내용정보 표시제도에 대한 설명이다.





지금까지의 심의 사례를 보면, 게임위에서는 해당 게임이 최종적으로 패키지 형태로 판매될 경우, 게임 내용이 온라인 컨텐츠를 포함하고 있더라도 패키지 게임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스타크래프트2와 유사한 대부분의 PC 기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 그렇게 출시되어 왔기 때문에, 블리자드 코리아는 '스타크래프트2'를 패키지 게임으로 생각하고, 심의 등급 표시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게임위에서는 스타크래프트2 베타테스트가 온라인 컨텐츠만을 다루고 있고, 배포 또한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으로 온라인 게임으로 간주, 홈페이지에서의 등급 표시와 함께 게임 내부에서도 등급 표시가 보일 수 있도록 게임 내용을 수정하도록 블리자드 코리아에 요구했다.



▲ 스타크래프트2의 베타테스트는 패키지 배포가 아닌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임위와 블리자드 코리아의 입장 차이에서부터 발생한 이번 사건은, 결국 게임위가 블리자드 코리아를 게임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사실, 이런 혼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었다. 게임위가 제시하는 심의 제도 가이드 라인이 온라인 게임과 패키지 게임의 경계가 점점 더 없어지는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수많은 패키지 게임들이 온라인 컨텐츠를 주력으로 하는 만큼, 현재 그것이 온라인 게임인지, 패키지 게임인 그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는 PC게임 뿐 아니라 콘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높은 최근 패키지 게임들 중에 온라인 컨텐츠를 담지 않은 게임이 거의 없다. 두 달만에 1조원 매출을 올린 액티비전의 '모던워페어2'만 해도 싱글플레이는 6시간 분량이 채 안 되며, 역시나 주력은 온라인 컨텐츠다. 그런데도, 모던워페어2는 패키지 게임으로 심의를 받았고, 심의 등급도 패키지 게임의 방식으로 표시했다. 그런데, 왜 유독 스타크래프트2만 이럴까?


온라인 게임 강국이라는 국내 게임계 특성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라인 게임과 패키지 게임을 구분하여 심의를 받도록 하고 심의 표시 방법 또한 구분해 놓았지만, 실제로 그런 구분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금번의 스타크래프트2 사건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법률에 의거한 심의 제도의 예측가능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 블리자드 코리아가 게임위의 권고사항을 모두 받아들여 게임 내용을 수정했고, 게임위 또한 이런 이유로 경찰에 의한 실질적인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보아 이번 사건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게임위가 이번 사건을 단지 스타크래프트2만의 특수한 상황으로 취급해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이야 말로, 국내 게임 심의 등급 제도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다시 정비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을 때다.



▲ 패치를 통해 게임 내 등급이 표시된 스타크래프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