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2 GSL 어워드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FXOpen 이형섭 감독 ]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고난과 역경의 시기가 한 번쯤은 찾아올 것이다. '포기하면 편해' 같은 농담을 들어가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프로게이머든, 감독이든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번에 만나본 이형섭 감독 역시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스타2 초기에는 최고 실력을 가지고 있는 프로토스 선수로서, 지금은 GSTL 2회 우승에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감독으로.

존재감 없는 팀에서, 이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최고의 팀으로 성장한 FXOpen. 과연 이형섭 감독과 FXOpen팀은 지금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을까? 인천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이형섭 감독은 과거 '뭘 해도 안되는' 시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좌충우돌, 쉽지만은 않았던 팀 창단 초기


FXOpen 이형섭 감독은 원래 프로게이머를 지향하던 아마추어 코치였다. 또한, 브루드워 시절 스타1 아마추어 팀을 만들어서 활동했었기에 프로팀 코치들과 어느 정도 안면을 익히고 있었다.

"한 번은 알고 지내던 프로팀 코치님이 당시 프로 데뷔 등용문이었던 커리지 매치를 세 번 안에 통과하면 자기 팀에 데려가 준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어요. 제 부모님도 확실한 진로를 정하길 바라셨고, 저 역시 프로게이머에 대한 꿈이 있었죠, 그렇기에 입단 제의를 받은 후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두 번 만에 커리지 매치를 통과했어요. 2007년의 일이니 벌써 5년 전 이야기네요."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획득하고 약속받은 프로게임단에 입단한 이형섭 감독, 그러나 그의 스타1 프로게이머 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다. 팀에 입단한 지 8개월 즈음 되어 건강 문제로 잠시 숙소를 나왔는데, 소속팀과 이야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복귀가 무산된 것.

이형섭 감독은 입대를 생각했으나 그마저도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나마 주위 지인들의 추천으로 한 고등학교에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고, 몇몇 대학에 e스포츠 관련 출강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0년 7월 27일,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꾼 게임인 스타크래프트2가 정식 출시되었다. 이형섭 감독 역시 스타크래프트2 출시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팀이 FXOpen의 전신인 fOu팀이었다.

"당시 같이 연습하던 지인들에게 스타크래프트2를 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히 승낙하던 친구도 있었고, 계속 브루드워를 연습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중에 꼭 같이 활동해보고 싶은 친구들은 설득하기도 했었어요. 그때 fOu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같이 있어준 선수가 고병재, 최진솔 김찬민, 이대진이고, 다른 팀으로 옮긴 선수 중에는 한이석, 조명환이 있었습니다. 다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이죠."


[ ▲ FXOpen의 전신인 fOu팀 창단 사진 ]



하지만 초반부터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아니 이형섭 감독은 잘 풀리지 않을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했을 만큼 이 시기에 악재가 겹쳤었다. 이형섭 감독은 자신의 기량이 가장 최고였을 때로 오픈시즌 시기를 손꼽았고, 실제로 래더 순위도 항상 최상위권이었다. 그러나 정작 오픈시즌 예선에서 탈락해 버리고 말았다.

자신은 팀 운영에만 전념하기 위해 외부 활동을 해 줄 감독도 영입했었고, 이형섭 감독 본인은 코치로서 팀 운영과 연습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오픈 시즌2 본선에 진출했고, 시즌3, 그리고 2011 GSL Code S 8강까지 가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형섭 감독에게 또다시 악재가 찾아왔다. 바로 '가위바위보' 사건이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2 패치가 되면서 게임 실력을 나타내는 래더 순위도 동시에 초기화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해서 점수를 올려야 했지만, 당시 래더 경기를 져도 이겨서 얻는 점수가 더 큰 시스템상의 오류가 있었다. 그러기에 일부 유저들은 게임 내에서 채팅으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빠르게 승부를 결정했다.

"지금 와서 회상해보면 정말 생각이 짧았다는 후회밖에 안 듭니다. 당일 패치가 되고 경기가 있었는데 그전까지 딱히 할 것도 없어서 래더 게임을 했어요. 그러던 중 한 상대가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유혹에 넘어간 게 실수였습니다. 대회 상대에게 전적기록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날 따라 가위바위보가 너무 잘 되어서 래더 최상위권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가위바위보를 한 것이 들키고 말았죠. 정말 반성하고 있습니다."


[ ▲ 팀 창단 초기의 힘든 시절을 회상하던 이형섭 감독 ]



가위바위보 사건으로 이형섭 감독에게 대회 출전 정지가 내려졌다. 당시 팀의 주축이었던 이형섭 감독이 전력에서 이탈해서였을까? fOu는 첫 GSTL에서 스타테일에게 올킬을 내주며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김승철 선수가 분전하기는 했지만 fOu는 번번이 개인리그도, 팀 리그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이형섭 감독은 개인적인 일마저도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외활동을 맡아주던 감독과도 문제가 생겨 결별했다. 말로만 듣던 '뭘 해도 안되는 시기'. 선수생활도, 팀 운영도 모두 포기하고 싶었다. 이형섭 감독 본인도 방황을 많이 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숙소에는 이형섭 감독 한 명만을 바라보고 프로게이머의 꿈을 꾸고 있는 팀원들이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팀원들이 있으니까 그럴 수 없었죠. 팀원들 얼굴 보고 다시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형섭 감독은 다시 마음을 추슬렀지만 팀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다. 이형섭 감독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자신이 프로게이머로 성공해서 얻은 상금과 자신의 성적으로 스폰서를 구할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자신도, 팀도 주목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다. 팀 상황을 버티다 못 한 몇몇 선수는 팀을 이적하기도 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시기였다.



fOu, 위기의 순간에 FXOpen으로 다시 태어나다


그즈음 GSL 팀 리그인 GSTL이 첫 풀리그 대회를 시작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2 게임단 전체와 해외팀 두 팀이 참가하는 리그였다. 그 중 한 팀이 해외팀으로는 최초로 GSTL 참가를 결정한 FXOpen이었고, 앤드류 안이나 김민균, 그리고 과거 fOu에서 FXOpen로 이적한 김학수 선수가 있었다. 이형섭 감독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과거에 알고 지내던 FXOpen 선수들에게 연락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앤드류 안, 그리고 김민균 형에게 이야기했어요. 팀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해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도움이라도 받고 싶다고 이야기했죠. 그 이야기를 듣자 형들이 당시 FXOpen팀 감독이었던 조쉬에게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줬고, 결국 만나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어요."

이형섭 감독은 한 술집에서 조쉬를 만나게 되었다. 비록 통역을 통해 이야기해야 했지만, 이형섭 감독의 절실함은 조쉬에게 충분히 전달되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결국 조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형섭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호주의 금융 회사인 FXOpen이 fOu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시기에 제 눈빛이 정말 절실해 보였고, 거짓이 없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저도 절실했고, 이번에도 실패했으면 fOu는 더 가기 힘들었을 거에요. 조쉬가 우리 팀을 지원하기로 한 자리에서 저도 한 가지 약속을 했어요. 1년 내로 우승을 해 보이겠다고. 그리고 그 해 이동녕 선수가 MLG 프로비던스에서 우승해서 조쉬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었어요."


[ ▲ 2011년 블리자드 컵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는 FXOpen선수들 ]



2011년 여름, 이형섭 감독이 이끌던 fOu가 FXOpen으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FXOpen의 지원으로 팀 운영은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성적은 못 내고 있었다. 이형섭 감독의 고민이 날로 깊어질 무렵 MLG 프로비던스에 참가한 이동녕 선수가 결승전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이동녕 선수는 지칠 대로 지쳐있던 상태였다. 패자조 4라운드에서 당시 슬레이어스 소속 임요환, 패자 6라운드에서 문성원, 패자 준결승에서 IM 정종현, 패자 결승에서 MVP 박수호를 꺾는,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을 겪고 그랜드 파이널에서 만난 선수는 스웨덴의 요한 루체시였다.

엎친데 격친 격으로 이동녕은 패자 결승을 통해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했기 때문에 3판 2선승제 경기를 두 번 이겨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이동녕은 요한 루체시에게 4대 1로 승리, FXOpen에게 첫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이동녕 선수가 처음부터 저와 같이한 선수는 아니에요. 한 번 팀원을 충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발전을 했는데 그때 이동녕, 원이삭, 김승철 선수가 팀에 들어왔죠. 몇 가지 이유로 원이삭 선수와 김승철 선수는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되었고... 어쨌든 이동녕 선수는 '천재'에요. 어떤 게임을 시켜도 잘하고 심지어 게임이 아닌 공부를 시켜도 순위권 내에 들 정도로 잘 할거라고 생각되거든요. 그 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강한데다가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해요. 저 혼자의 생각이지만 이동녕 선수는 KT의 이영호 선수와 견줄 수 있는 선수라고 자부합니다."


[ ▲ FXOpen의 이동녕 선수, 어린 나이답지 않게 팀의 대들보 역할을 해 왔다 ]



해외에서 첫 우승컵을 안고 한국에 돌아온 이동녕의 기세는 계속 이어졌다. 2011 GSL Nov에서 결승에 오른 것이다. 당시 이동녕의 불운은 GSL 팬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였는데, Code A 첫 라운드에서 강적을 만나는 것은 다반사였고, 경기 내에서도 정찰간 일꾼이나 대군주는 무조건 잡히고 시작하는 등 "불운의 아이콘"이었던 이동녕이 그 모든 불운을 자신의 실력으로 극복하고 2011 GSL Oct.에서 Code S 16강에 진출한 이후 무서운 기세로 바로 다음 시즌 2011 GSL Nov. Code S 결승에 오른 것.

결승전 첫 두 세트는 이동녕의 상대인 NS 호서의 정지훈이 가져갔다. 이형섭 감독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이동녕을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동녕은 다시 두 세트를 연달아 잡아가며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동녕은 정지훈에게 내리 두 세트를 내어주며 결국 세트스코어 2대 4로 자신의 첫 GSL 우승을 눈 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 당시를 회상하던 이형섭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동녕이가 못한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뭐든 안 되는 때' 였던거죠."

2012, FXOpen의 시작은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이동녕에 이어 고병재가 2012 GSL 시즌1 Code S 4강에 진출한 것. 비록 4강에서 시즌1 우승을 차지한 박수호에게 아쉽게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이동녕과 함께 활약할 '고동녕' 듀오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 시기였다.



괄목상대, FXOpen 2연속 팀 리그 우승 차지하다


순풍에 돛을 달고 순항만이 남은 것처럼 보이던 FXOpen. 그러나 이후 별 다른 낭보를 전하지 못하더니 이내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바로 2012 GSTL 시즌2에서는 탈락 위기에 빠지고 만 것. FXOpen에 자주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바로 '뭐든 안되는 때'였다.

"저도, 코치들도, 선수들도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뭐든 안되는 때라고 하기에도 뭔가 이상할 정도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의 시기였으니까요."

경기란 경기는 모두 패배하는, 마냥 선수들을 닦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형섭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두고 중대 발표를 하기 이르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이번 시즌 GSTL은 포기한다. 남은 경기는 다들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하도록."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도 없이, 그냥 밑도 끝도 없는 이형섭 감독의 이야기에 선수들은 다들 어리둥절했다. 이형섭 감독은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팀원들을 뒤로 한 채로 호주에 있는 조쉬와 부모님에게도 연락했다. "이번 팀 리그는 포기할게요."

2012년 7월 7일, FXOpen은 스타테일을 상대로 GSTL 시즌2 패자전 경기에 나섰다. 이번에도 패배하면 FXOpen는 팀리그에서 관전자의 입장이 되어버리는 경기였지만 이형섭 감독도, 코치진들도, 선수들도 홀가분하게 부담을 덜어내고 경기에 준비했다.

선봉으로 출전한 이대진이 김영일에게 패배했다. FXOpen은 곧바로 IPL3 준우승자인 이인수를 출전시켜 김영일을 잡아냈지만, 스타테일에서는 최지성을 내세워 바로 이인수를 덕아웃으로 돌려보냈다. 2대 1. 이동녕이 출전하여 최지성을 잡아 급한 불은 껐지만 다음 주자인 이원표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3대 2. 이원표를 어찌어찌 잡는다고 해도 스타테일에는 박현우와 원이삭이라는 특급 프로토스가 기다리는 중이었다.

FXOpen의 다음 선수는 남기웅이었다. GSTL 시즌1에서 MVP의 황규석을 상대로 한 데뷔전에서 패배했지만, GSTL 시즌2에서 TSL의 고석현과 최성훈을 잡아내며 두각을 드러낸 남기웅이었지만, 팀이 패배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제 실력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 ▲ FXOpen 남기웅 선수, 비교적 늦게 팀에 합류한 선수지만 주축 프로토스 선수 중 한 명이다 ]



"GSL 예선에서 남기웅 선수와 경기해서 이긴 적이 있는데, 그게 첫 만남이었지요. 이후 남기웅 선수를 기억하고 있다가 프로토스 선수를 보강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연습실에 불러 기존 팀원들을 상대로 테스트해 보니 승률이 정말 높은 거에요. 그래서 '왜 여태 다른 팀에 안 가고 있었어?' 라고 물어봤더니 하는 말이 다른 팀에서는 못 한다고 안 받아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팀에 입단시키고 한 달 정도 후 팀 내부 랭킹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하긴 해도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되는 선수가 얼마나 하겠어 싶었는데 제 기억으로 35승 4패를 거둔 거에요. 저도 설마 설마 했는데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죠.

이동녕 선수가 래더 성적도 좋은데 래더에서 이길 수 없는 토스가 있어서 확인해 보면 남기웅 선수라고 이야기 해요. 고병재 선수도 대 프로토스 전에 정말 자신 있어 하는 선수인데 남기웅 선수 상대로 열 판해서 두 판 이기기도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날 경기에서 남기웅은 이원표와 박현우, 그리고 원이삭을 꺾고 팀을 구해냈다. 선수들의 부담감이 경기에서 제 실력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고, 부담감이 사라지자 선수들이 제 실력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NS호서와 벌인 최종전 경기에서는 고병재가 3승을 거두며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이내 마지막 9세트까지 흘러갔다. 9세트를 치를 선수는 정지훈 대 이동녕. 이동녕은 정지훈에게 지난 결승전의 패배를 복수하며 팀을 GSTL 4강에 올렸다.

하지만 FXOpen의 GSTL 4강 상대는 작년 GSTL 시즌1 우승 팀 MVP. 2012 GSL 시즌1 우승자 박수호를 필두로 권태훈, 김원형 선수가 버티고 있는 팀이었다. 경기 전날 밤 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봤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MVP가 너무 강했어요. 이기면 이기는 거고 지면 어쩔 수 없지, 4강까지 온 것만 해도 잘 한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차에 이동녕 선수가 저한테 이야기하더라고요. 자기가 내일 대장으로 나가면 0대 4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역전시킬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이동녕 선수를 믿고 경기 전날 밤 부랴부랴 엔트리를 수정했어요."





역시나 MVP와의 GSTL 4강 경기는 어렵게 흘러갔고, 결국 2대 4로 FXOpen는 한 세트만 더 내준다면 4강에서 탈락할 상황이었다. 예정대로 FXOpen는 마지막 대장 카드로 이동녕이 출전했다. 이동녕의 첫 상대는 과거 하루 만에 임재덕과 정종현을 꺾은 적 있는 '니체 토스' 김원형이었다. 워낙 창의적인 전략을 잘 사용하는 선수라 이형섭 감독은 초긴장 상태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동녕은 침착하게 김원형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상대팀의 다음 선수인 김도경을 꺾은 이동녕 앞에 드디어 MVP의 대장 박수호가 나타났다.

경기는 이동녕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전날 벌어진 개인리그 4강에서 장민철 선수에게 패배한 박수호의 눈에는 절대 패배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형섭 감독도 이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같이 경기를 보고 있던 팀원들에게 '동녕이가 지고 나오더라도 잘했다고 격려해 주자'라고 말했다. 팀원 모두 이형섭 감독의 말에 무언의 동의를 하고 있었다.

당시 경기는 박수호의 다수 감염충이 이동녕의 병력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이동녕은 포기하지 않았다. 개인리그였으면 포기했겠지만, 자신의 뒤에 열 명이 넘는 팀원들이 있었다. 이동녕의 대군주가 상대 감염충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한 후 감염충 세 마리를 잠복시켜 이동시켰다. 박수호는 이동녕의 움직임을 꿈에도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 박수호의 감염충 밑에서 이동녕의 감염충 세 마리가 잠복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후 바로 진균번식을 사용하자 박수호의 감염충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대로 경기는 이동녕에게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박수호는 부스 안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FXOpen가 GSTL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첫 팀 리그 우승을 눈앞에 둔 FXOpen, 이형섭 감독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는 바로 결승전 상대인 슬레이어스를 제외한 모든 팀 감독들에게 전화했다. 그리고서는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했다. "형 쫌 도와줘요!". 4강에서 FXOpen에게 석패를 당한 MVP팀까지 연습을 부탁할 정도로 이형섭 감독은 절박했다. FXOpen는 결승전 장소인 부산에 하루 먼저 내려가 여름의 더위에 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연습 과정에서 선봉으로 예정된 고병재의 경기력이 도무지 올라가지 않는 것이었다.


[ ▲ 최승민 코치와 함께 자신의 리플레이를 확인해 보고 있는 고병재 선수 ]



"고병재 선수는 저하고 정말 오랜 기간 같이 지낸 선수예요. 심지어 제가 스타2 팀을 처음 만들 시기에 이미 몇몇 프로팀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하고 저와 같이 fOu를 만들었으니까요.

개인리그에서는 부담을 느끼는지 제 실력을 못 내지만 팀 리그에서 보이는 경기력이 고병재 선수의 진짜 모습이에요. 전략도 정말 잘 짜고, 자신이 짠 전략에 자신의 피지컬이 못 따라오면 엄청나게 연습해서 자신의 피지컬을 전략에 맞추는 선수예요. 보통 선수라면 게임하면서 손목에 무리가 가는데 고병재 선수는 하도 키보드를 눌러대다 보니 손가락에 무리가 갈 정도죠.

그런 선수인데 결승전 직전에 경기력이 안 올라오니 답답했습니다. 선봉은 교체할 수 없는지라 고병재가 1세트를 패배한 걸 대비한 엔트리를 정했어요. 불행 중 다행인 게 슬레이어스의 선봉이 테란 문성원 선수였다는 점이에요. 고병재 선수가 가장 자신 있어 하던 종족전이 대 테란전이거든요. 결승전 선봉이 프로토스나 저그였으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를 일이었죠."


해운대에서 벌어진 GSTL 결승, 2011 GSL Oct.와 블리자드 컵 우승자인 문성원을 상대로 고병재가 얼마나 버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경기 중반, 경기 분위기가 급속히 문성원에게 기울며 고병재의 기지 앞에 문성원의 세레머니용 지게 로봇이 떨어졌다. 그러나 고병재는 포기하지 않고 침착하게 방어에 성공한 후 결국, 50분이 넘는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2세트에서 저그 황도형을 잡은 고병재는 이미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경기를 진행했고, 이형섭 감독에게 더이상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형섭 감독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 선수를 준비시켰다. 그러나 고병재는 최종환과 김동원에게 초반 전략을 사용하여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김상준 선수와의 마지막 세트를 진행했다. 고병재는 두 시간이 가까운 시간 동안 경기를 치뤘고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김상준에게 위기를 맞은 상황, 김상준은 고병재의 기지를 공격하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주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면 팀이 패배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신중해진 것이고, 고병재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결국, 몇 번의 기회를 놓친 김상준을 상대로 고병재는 승리를 거두었다. 결승전 사상 최초로 상대 팀에 올킬을 기록하며 승리를 거두며 FXOpen가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 ▲ 해운대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권재환 코치와 FXOpen 팀원들 ]



FXOpen의 승전보는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IPL5에서 이동녕이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열린 GSTL 시즌 3에서도 FXOpen가 우승을 차지했다.

"다들 FXOpen를 약팀으로 분류하는데 저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자부합니다. GSTL 시즌3에서도 고병재, 남기웅, 이인수라는 종족별 카드에 이동녕이라는 에이스, 그리고 매 경기 선발로 정해진 선수들의 엄청난 연습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첫 단추를 끼우는 게 힘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FXOpen, 내년에는 GSL 우승을 노린다


팀 리그 2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형섭 감독. 그리고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한 그의 내년 목표는 GSTL에서 한 번 더 우승해서 3회 우승팀이라는 업적을 세우고 싶다며 욕심을 내비쳤다. 그리고 자유의 날개로 치러질 마지막 GSL에서도 FXOpen 선수를 우승시키고, 스타리그도 우승해 보는 것 역시 감독으로서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이형섭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은 목표는 다른 것이었다. 바로 선수로서의 이형섭 감독의 목표.

"선수로서의 욕심이 예전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최근 있는 온라인 경기에서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선수를 이겨서 아직 자신감은 가지고 있죠. 내년에도 GSTL에 선수로서 꼭 출전할 계획입니다. 스폰서를 구하거나 팀을 운영하면서 남는 개인 시간에 틈틈히 연습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팀 리그에서 문성원과 김동원 선수를 잡아낸 적도 있으니까요. 사실 제가 경기에 나가면 팀 선수들보다 팬들이 'FXOpen 또 경기 포기했나?'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더 부담되거든요."


[ ▲ 각종 대회에서 FXOpen선수들이 수상한 트로피들 ]



팀 운영상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팀원들에게 형처럼 다가가는 이형섭 감독. 실제로 기자가 지난 기사 자료 조사를 위해 선수들에게 맵 밸런스를 물어보았을 때 팀원과 이형섭 감독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그런 이형섭 감독을 향해 팀원들은 "그러니까 감독님이 예선을 못 뚫는 거죠!"라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었다.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감독이 의견을 냈을 때 이게 아니라고 싶으면 어떤 팀원이라도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에요. 제 의도대로 그런 분위기가 팀에 정착됐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너무 서슴없어서 문제긴 하지만요.

선수들 하니 생각나는 게, 우리팀이 인기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에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너무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인기가 없다면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유니폼 증정 이벤트나 선수들 장비 선물 이벤트 같은걸 지속해서 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 팀 경기 날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분들의 숫자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응원 치어풀도 많아지고, 어느 정도 효과 가 있는거 같습니다.

솔직히 저희 팀 선수들 어디 내놔도 다 말도 잘하고 잘 생긴 선수들이에요(웃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무엇을 해도 안 되는 팀'에서 '무엇을 하든 되는 팀'으로 FXOpen를 바꾼 이형섭 감독.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항상 아껴주고 응원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드리고, 나이가 어려서 부족한 게 많지만 언제나 믿고 따라주는 선수들과 언제나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FXOpen과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자에게 꼭 당부한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최근 FXOpen 유니폼이 바뀌었는데 최단비라는 친구가 디자인해 준거에요. 번번이 다른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못 하고 지나갔거든요. 여자친구는 아니고 그냥 순수한 친구라는 걸 강조해서 유니폼 디자인 줘서 감사하다고 꼭 적어주세요."


[ ▲ GSTL 2회 연속 우승의 기록을 세운 FXOpen 선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