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마트폰 시대, 스마트폰의 전성기다. 지난해 카카오톡 플랫폼의 인기몰이 이래 출퇴근 전철에서 심심찮게 나이 지긋한 양복신사부터 젊은 학생들까지 애니팡, 드래곤 플라이트 등 다양한 게임에 열중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만큼 스마트폰 사용 인구도, 모바일게임 유저 수도 많이 늘어났다. 갑자기 등장해 성공한 것 같지만, 모바일게임 역사는 불과 몇 년만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폴더폰, 슬라이드폰, 터치폰 등 스마트폰 전 핸드폰 기기를 '피처폰' 이라고 부른다. 2009년, 스마트기기가 처음 출시되었으니 약 10여년의 모바일 시장을 지배했다는 의미다. 모바일게임도 이에 맞춰 진화해왔다. 2000년부터 본격적인 모바일게임 사업이 진행되었고, 흑백 핸드폰의 '오목' 부터 따진다면 훨씬 오래전이다. 타이쿤, RPG, 퍼즐, 아케이드 등 기본적인 장르의 확립이 이 때 이루어졌기에 지금 스마트폰 시대에 흔히 즐기는 액션RPG, 팜류SNS 등 더 발전한 장르가 마련될 수 있었다.


[ 스마트폰 이전의 모바일 기기, 추억의 '피처폰' ]



그 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구매부터 플레이까지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처럼 Free-to-Play, 무료로 플레이하며 게임 내 유료아이템을 구매하는 형태가 아닌, 3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게임을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그뿐이 아니라 용량에 따라 따로 데이터요금을 내야해서 게임 하나 받으면 약 7000~8000원 정도의 요금을 지불해야했다. 핸드폰 요금을 부모님이 내 주시던, 구매의 자유가 없는 학생이었던 기자는 이 데이터통화료를 메꾸기 위해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마저 아껴가며 게임을 내려받았다.

그뿐이던가. 한 번에 두 개 눌러지는, 좁디 좁은 키패드를 꾹꾹 눌러가며 플레이하다보면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에는 물집이 잡힐 정도였다. 좁디 좁은 화면을 장시간 뚫어지게 보고 있노라니 교과서의 내용이 눈에 들어올리도 만무했다. 키패드가 내려앉아서 수리도 여러번 받았었다. 수업시간에 게임하다 선생님께 핸드폰도 여러번 압수당했고, 크게 혼나기도 했다.

추억의 효과는 실로 상당하다. '추억' 이라는 이름하에 그 힘들었던 게임 라이프는 매우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지금처럼 쉽게 다운받고 지울 수 있는 이 시기에 새삼 그 역경의 시간이 그립기까지 하다. 지난 시간을 한 번 되새겨볼겸, 앞으로 펼쳐질 게임이 얼마나 발전할 것인지 가능성도 예측해볼겸 인벤 기자가 된 지금, 추억을 한 번 정리해보려 한다.





퍼즐부터 무한 달리기까지, 친구들과 모여 점수경쟁을 벌였던 '캐주얼 게임'


■ 미니게임천국

RPG를 몰라도, 타이쿤을 몰라도, 핸드폰 게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 중에 '미니게임천국' 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OK버튼 아니면 5번 버튼만 누르면 되는 간단한 원버튼 게임임에도 한 번 하다보면 시간을 달리는 타임머신과 같은 게임이었다. 하필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시절, 기자는 고3이었다. '게임 한 판 하고 공부해야지' 로 시작한 게임은 2시간을 뛰어넘고, '게임 한 판 하고 다음 게임 한 판 해야지' 로 목적이 변모하게 되는 무서운 게임이 왜 하필 그때 출시되었는지. 아직도 컴투스가 밉다.

당시 캐주얼게임 명가로 정평이 나있던 컴투스였던만큼, 각 게임당 대표 캐릭터 IP가 굉장히 많았다. 이를 미니게임천국에도 등장시켜 다양한 캐릭터들로 플레이할 수 있었고, 미니게임 종류도 꽤 다채로웠고 그 게임에 맞는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들을 골라 플레이할 수 있어 미니게임치고도 선택의 폭도 넓었다. 피처폰의 불편한 키패드로도 편히 즐길 수 있는 원버튼 역시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게임은 또 얼마나 재밌던지. 한 번씩 해봤던 익숙한 미니게임을 다양하게 마련해놓아 쉽게 즐기기도 좋았고, 콤보를 이어가면 점수가 무한대로 상승해 원버튼 미니게임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긴장감이 넘쳐 흘렀다. 쉬는 시간마다, 혹은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 핸드폰 숨겨가며 친구들과 점수경쟁했던 그 때, 나는 재미를 얻고 성적을 잃었다. 그 후 나온 후속작들도 항상 시험 시즌에 출시해서 갈등의 도가니에 빠트려버리기도 했다.

이 후에도 미니게임방식의 모바일게임이 줄을 이어 출시되었지만, 그 어떤 게임도 미니게임천국 시리즈 앞에서는 맥을 못 출 정도였다. 또한, 스마트폰으로 건너온 지금 시대에도 원터치 방식의 간단한 모바일게임이 끊이지않고 출시되는 걸 생각한다면, '미니게임천국' 이 모바일계에 가져다 준 이런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놈

매달 1일(폰요금이 리셋되는 폰게임 다운로드의 날)이면 어떤 게임이든 받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웹페이지를 둘러보던 중 눈에 띄는 특이한 게임이 있었다. 블럭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호리호리한 검은색 실루엣의 남자가 열심히 뛰고 있는 스크린샷... 왠지 끌렸다. 다운로드받은 순간 기자는 '놈' 과 함께 우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점프만 하면 되는 간단한 구조였다. 스테이지가 바뀌면 배경색과 함께 핸드폰을 돌려야 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니 가로/세로를 돌리는 건 간단하지만 키패드가 붙어있던 폴더폰 시절이기에 핸드폰을 돌리면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한번도 돌려본 적이 없었던 휴대폰을 눕혔다가 뒤집었다가 다시 바로 잡았다가 하니 2년 꼬박 쓴 핸드폰이 새록새록 다르게 느껴지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돌리면서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기라도 하면 이상한 눈초리를 받는 것도 다반사였기에 그게 싫다면 혼자 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긴 했다.

'놈' 의 최대 매력은 아마도 복잡할 것 없는 단순함이 아닐까. 이것저것 신경쓸 거리가 많은 여타 게임에 비해 점프만 제때 하면 클리어가 가능한 놈은 별 생각 없이 턱 괴고 앉아서 점프만 하면 되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물론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기는 하지만 국가공인 순발력 제로인 기자도 크게 어렵지 않게 클리어했을 정도니 게임 자체는 쉬운 편이었다.

버전마다 조금씩 달랐고, 나름 스토리도 있었는데 스토리는 정말 우주로 간다(거짓말 아니다). 물론 핸드폰을 빙글빙글 돌려야 했기에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긴 딱 좋았지만 단순하고 심플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었던 게임이었다.



■ 액션퍼즐패밀리와 슈퍼액션히어로


액션퍼즐패밀리
피처폰 시대의 모바일 게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볍고 발랄한 미니게임류가 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게임들. 수많은 모바일게임 전문 기업이 설립되었지만, 예전부터 착실히 캐주얼게임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오던 컴투스의 게임이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액션퍼즐패밀리''슈퍼액션히어로' 도 컴투스의 대표적인 인기게임이었다.

원버튼이 아닌, 키패드의 여러 버튼을 다채롭게 활용해야하는 플레이 방식의 '액션퍼즐패밀리' 는 동종장르 '미니게임천국' 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일단 주인공 '아쿠' 부터 엄마 아빠 할머니 작은형 누나 사촌형 등 온 가족이 출동하는 것도 재밌었고, '누나의 과외수업' 과 같은 미니게임 이름도 웃음을 주었다. 각 게임의 최고점수를 합산해 랭크를 내는 식으로, 랭크가 올라가면 처음에는 바닥에서 자던 가족들을 궁전으로 이사시켜주는 컨셉은 실로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


슈퍼액션히어로
'슈퍼액션히어로' 는 아기자기한 미니게임은 간지럽고, 액션을 향한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못하는 남성들을 위한 캐주얼게임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한때 유행했던 '졸라맨' 컨셉의, 손으로 직직 그린듯한 그림체였지만 액션만큼은 단연 파워풀했다. 콤보 연계기부터 화려한 기술, 벌떼처럼 몰려드는 적들 등 1대 다수의 싸움에서 최강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 스타일리쉬한 게임이었다.

두 게임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미니게임 모음집 같은 컨셉임에도 코스튬을 통해 입맛에 맞는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는 것. 액션퍼즐패밀리는 가발이나 옷, 장신구등으로 능력치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고, 어떤 미니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악세사리와 캐릭터를 바꿔가며 플레이하면 됐었다. 슈퍼액션히어로는 안그래도 비쩍마른 졸라맨이었기에 이렇다 할 코스튬은 딱히 없었지만, 가면을 통해 능력치를 파워업할 수 있었는데, 소소한 부분이었지만 반복적인 플레이를 요하는 캐주얼게임에 걸맞는, 창의력이 샘솟는 멋진 시스템이라고 평가해본다.



■ 틀린그림찾기

커플이 오락실에 함께 갔다하면 꼭 해야 되는 게임이 두 가지 있었다. 지금은 모바일게임으로 나와 있는 '컴온 베이비'와 '틀린그림찾기'. 지금도 영화관 옆 오락실에 가면 커플(...)이 나란히 앉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임 '틀린그림찾기'는 왠지 터치로 하거나 웹으로 해야할 것 같지만 피쳐폰 시절에도 존재했었다. 열심히 방향키를 눌러 적절한 위치에 찍어줘야 했기에 손가락 힘을 강화하는데 대단한 도움이 되었던 그 게임, '틀린그림찾기' 다.

워낙 틀린그림찾기라는 소재 자체가 대중적이고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고, 웹게임으로도 인기를 끌었으며 스마트폰으로도 이식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버전은 엄청나게 많다. 그 중 특히 '틀린그림찾기2009' 는 기자를 사로잡은 매력적인 요소가 있었다. 바로 연예인맵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당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의 스틸컷을 게임하면서 볼 수 있었다는 것.

물론 모바일 화보라는 데이터 사용료를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콘텐츠도 존재했지만 기자는 즐길 수 없었다. 모 아이돌그룹의 모바일화보를 즐겨보다가 데이터 사용료가 통화 기본료만큼 나오는 바람에 부모님께 등짝을 스매싱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반면, 유료긴 했지만 결제 한 번만 하면 데이터 요금 부담 없이 꽃남 스틸컷을 모바일에서 볼 수 있다는 건 꽤나 감사한 일이었다. (걸그룹 맵도 있었던 것 같지만 기자와는 관계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터치가 그렇다면 모를까, 방향키로 움직여야 하는데 은근히 정확도 요구치가 높아서 제대로 찍지 않으면 영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게다가 지금의 반절 정도 되는 액정을 뚫어지게 들여다봐야 했기 때문에 답답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왠지 모를 중독성 때문에 이상하게 계속 하게 되었던 게임, '틀린그림찾기' 를 추억의 게임 중 하나로 꼽는다.




작은 화면 속의 또 다른 나,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 가득했던 'RPG'


■ 에픽크로니클

이 게임을 지나치고 RPG의 역사를 읊을 수 있을까? 모바일 게임이 한층 진보한 지금에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그 이름, '에픽크로니클' 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유저들이 상당히 많이 있을 것이다. 플레이하지 않았던 유저들이라도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

모바일 게임 사업이 2000년부터 시작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2004년에 출시된 '에픽크로니클' 은 모바일 RPG의 시작을 알린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잘 짜여진 20여시간의 메인 및 서브스토리, 독특한 스킬 시스템, 파이널 판타지를 떠올리게 하는 턴제 플레이방식 등 흠잡을 데 없는 높은 완성도는 그 당시 모바일 게임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원래 RPG를 좋아했던 기자였지만, 굉장히 느렸던 피처폰의 성능과 숱한 모바일게임의 미흡한 완성도에 '정녕 핸드폰으로 RPG를 즐길 수 없는 것인가' 라고 여겼다. 그런 생각을 단번에 깰 정도로, 에픽크로니클은 정말, 정말 재밌었다. 감히 명작이라고 칭할만한 게임이다. 스마트폰으로 넘어온 지금 플레이해도 재밌을 것 같냐고? 물론이다.

그 당시 핸드폰의 낮은 성능에 맞춰 게임 버전을 낮춰서 제공했던 만큼 유저서비스 역시 훌륭했다. KT에서 우선 출시되어 타 통신사 유저들이 울상을 짓자 그에 맞춰 구동 버전을 변경하고 더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추가한 '에픽크로니클 PE' 역시 이러한 서비스의 일환이었다.

이후 에픽크로니클 2가 출시되었지만, 원작이 너무 엄청났기에 실망하긴 했었다. 하지만 '에픽크로니클' 시리즈가 이후 모바일 게임의 판도를 바꿔버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 후 출시된 게임들의 퀄리티가 한층 업그레이드되는데 일조했으며, RPG의 스토리구성을 확립했다고 인정받는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개발사 팀 펀터는 현재 4:33이라는 회사로 여전히 모바일 게임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한 번의 엄청난 영광을 이뤄낸 그들이 다시 한 번 모바일게임계의 혁명을 불러올 지 궁금해진다.



■ 영웅서기 시리즈

에픽크로니클로 RPG의 맛에 흠뻑 빠진 기자는 동종 장르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접속시 비싼 통신비가 청구서로 날아올테고, 어머니께 등짝을 심하게 맞을 것이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통신사의 게임 웹페이지로 접속해 틈틈히 해볼만한 게임을 탐색하는 것이 일상이었다(물론 이것도 어머니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다).

게임 다운로드 비용만큼 문자 발송과 통화량을 줄여야했던 슬픈 처지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게임을 내려받을 때는 신중에 신중을 가할 수 밖에 없었다. 온갖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다, 이 게임은 반드시 해봐야 할 수작이라는 평이 가득한 게임을 찾았다. 바로 2005년에 출시된 '영웅서기' 였다.

스토리의 중요성이야 익히 체감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스토리에 모든 걸 맞춘 RPG가 있었을까? 3명의 주인공이 펼치는 사건들이 하나로 귀결되는 스토리텔링으로, 큰 사건 하나를 3가지 시점으로 보는 파격적인 진행방식은 그야말로 밤새워 플레이할 정도로 몰입하게 했다. 악당인 줄 알았던 등장인물이 알고보니 착한 사람이었으며, 세 사람이 얽히고 섥히며 진행되는 이야기에 웃기도 울기도 했다.

패키지게임 못지 않은 방대한 세계관은 기본이었다. 그래픽 역시 다른 게임과 남달랐다. 시리즈 출시마다 선보이는 일러스트는 온갖 커뮤니티에서 이를 만화화해 차 창작까지 펼칠 정도로 탁월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2액션성도 훌륭했으며, 소환수라는 독특한 전투방식도 색달랐다. 또한, 스토리 완료 후 '하드모드' 로 다시 플레이할 수 있던 피처폰 RPG의 방식도 영웅서기부터 시작되었다.

총 5편의 시리즈 중 세 번째 '영웅서기Zero : 진홍의 사도' 까지는 피처폰으로 나왔으며 이후 4, 5편은 스마트폰으로 출시되었다. 그 전 시리즈가 다음 시리즈의 중대한 복선이 되는 등 매 시리즈마다 연관성이 돋보여 영웅서기의 전 시리즈 모두를 충분히 즐길만한 가치가 있었다. 2,4,6,8번 버튼을 방향키 삼아, 5번을 OK버튼 삼아 지문이 마르고 닳도록 플레이했던 영웅서기를 다시 추억해본다.



■ 이노티아 연대기

2007년, 슬라이드라는 획기적인 핸드폰이 유행하고 있던 시기였다. 기자의 핸드폰은 화면밑에 휠로 된 방향키가 있는 형태로, 게임 플레이시 절대로 방향키를 이용할 수 없던 구성이었다. 그때는 아직 핸드폰을 게임기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편리성보다는 외형을 추구했던 탓이다. 한동안은 RPG보다 미니게임 같은 장르만 즐길 수 밖에 없었지만, '이노티아 연대기' 만큼은 그 불편함을 무릅쓰고 열정적으로 플레이했었다.

다운로드 받게된 이유는 컴투스였다. 미니게임천국등으로 이미 이름을 알고있던 컴투스에서 RPG라니, 다른 RPG는 2탄, 3탄을 제작하고 있던 그때 캐주얼게임만 만들던 회사가 과연 어떤 RPG를 만들었을까 상당히 궁금했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재미도 재미지만, 그간 했던 RPG와는 확실히 다른 '이노티아 연대기' 만의 차별화된 특징이 있었다. 한 명의 주인공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세 명의 캐릭터들로 파티를 만들어 훨씬 전략적인 전투가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RPG에 처음 도전한 작품이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그간 굳어진 1 주인공 체제를 벗어나 힐러, 탱커, 딜러 등 취향에 맞는 캐릭터들을 골라 파티를 꾸려 플레이한다는 것은 지금이야 '그게 뭐' 라는 반응일지는 몰라도 2007년 당시의 RPG계에는 커다란 혁신이었다.

오래 플레이되는 RPG는 보통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전투방식이 재밌던가, 스토리가 멋지던가. '이노티아 연대기' 의 스토리는 그닥 잘 짜여진 편은 아니었다. 스토리가 필요없는 단판성 캐주얼게임을 주로 개발해왔으니 그 쪽으로는 조금 부실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색다른 방식의 전투만 있어도 충분했다. 한 달정도 지나면 지루해지는 소위 몬스터학살, 노가다로 불리던 반복 사냥도 재밌다고 생각하게 한 최초의 RPG였다고 생각한다.



■ 제노니아 시리즈

2008년, 기자가 새로운 핸드폰을 손에 넣었을 때다. 디자인으로 정평난 제조사로, 겉은 얌전한데 폴더를 열어보면 은빛이 번쩍번쩍하던 꽤 비싼 핸드폰이었다. 모양은 정말 예뻤는데,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키패드 위에 하나의 큰 판넬이 덧씌워져 버튼을 정확히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약정' 이라는 개념도 처음 생겼을 때라 후의 2년을 그 불편한 핸드폰과 함께 살았고, 그 시기가 내 모바일 게임 인생에서 가장 암흑기였다. 정말 불편했다.

그 당시 출시되었던 '제노니아' 를 추억하자면, 부러진 손톱도 함께 떠오른다. 어찌나 키패드를 누르기 힘들었던지 손톱이 다 깨졌으니까. 점잖은(?) 이미지였던 그 전 RPG와는 다르게, 제노니아가 전면적으로 내세운 액션 가득한 전투도 내 손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킬 공격이 주가 되었던 다른 게임들은 스킬버튼 두셋 눌러주고, 5번버튼으로 평타 세네번만 때려주면 깨끗했는데 제노니아는 평타로 느껴지는 호쾌한 타격감이 탁월한 게임이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MORPG, 액션RPG 등 RPG가 세분화됐지만, 그때는 그냥 뭉뚱그려 'RPG' 였기에 액션성이 탁월하다는 것은 큰 장점 중에 하나였다. '제노니아' 는 그 중 가장 액션이 돋보이는 RPG였다. 화면 구성이 상당히 깔끔했고, 이 때문에 타격시 데미지수치 텍스트도 시원시원하게 크게 출력되어 타격감이 배가 되었고, 크리티컬시 카메라가 줌인되는 연출은 그간 접해보지 못했던 액션의 맛을 톡톡히 체험할 수 있게 해줬다.

컴투스와 마찬가지로, '제노니아' 의 개발사 게임빌 역시 캐주얼게임을 주로 개발했기에 스토리면에 있어서는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의 저성능 기기에서도 강렬한 액션을 맛볼 수 있던 유일한 RPG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뀐 지금도 '제노니아' 시리즈가 줬던 그 액션성을 진득하게 맛볼 수 있는 게임이 몇 개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선명한 추억의 RPG다.





리어카로 시작해 대기업 총수까지,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의 꿈과 희망 '타이쿤'

■ 붕어빵 타이쿤

스마트폰 시대의 대표 게임 장르를 꼽자면 SNG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처폰 시대의 대표 게임 장르는? 바로 타이쿤이다. 핸드폰게임 좀 해본사람 치고 타이쿤 안 한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그 중에서도 '붕어빵 타이쿤' 안 해본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지 않을까. 그만큼 컴투스의 '붕어빵 타이쿤' 은 당시 모바일게임계의 혁명이었다. 선풍적인 인기로 피처폰 시절 3까지, 스마트폰으로는 'Crazy Hotdog'라는 이름으로 붕어빵이 핫도그로 변신해서 등장하기도 했다.

경영 게임 장르인 타이쿤인데 붕어빵이라니, 그것도 키패드가 닳고 닳도록 붕어빵을 뒤집고 익혀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방식이었다. 유치원생부터 아줌마, 할아버지, 뚱보, 외계인까지 다양한 손님들에게 각자의 구미에 맞는 붕어빵을 맞춰 줘야만 했었고 손님이 화를 낼 경우 게이지가 깎이는데, 이 게이지가 전부 소모되면 게임오버였다. 기자는 이 게임의 모든 버전을 플레이해봤음에도 끝까지 외계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콤보를 길게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외계인이 방문하지 않기만을 기다리며 붕어빵을 뒤집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는 손이 붕어빵 익는 타이밍을 외우고 있어서 화면을 보지 않고도 신나게 뒤집으며 손님들의 요구 갯수만 확인하며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키패드는 투명해지다 못해 손때가 타서 핸드폰이 +5년은 더 되어 보이는 효과가 추가되기는 했지만, 모바일게임의 명가 컴투스의 고전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붕어빵 타이쿤'은 지금도 아직 버리지 못한 기자의 피처폰에 고이 잠들어 있다.



■ 초밥의 달인

'초밥의 달인' 역시 시리즈물로, 2009년 4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출시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에는 시대를 풍미했던 명작이었다. 당시로서는 섬세한 그래픽과 아기자기한 요소가 가득한 게임으로 디테일한 밥알과 회, 초밥을 쥐는 요리사의 손놀림에 특유의 효과음까지 웰메이드 게임이었다.

특히 초밥이라는 뭔가 맛있다는 건 알지만 가까이 가기 어려운.... 그런 음식을 핸드폰에서 손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기자에게는 더더욱 그랬고. 김말이나 계란초밥부터 생선회 초밥까지 다양한 종류의 초밥을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었으며, 손님이 오래 기다리게 될 경우 녹차를 제공해 화를 잠시나마 잠재우는 등 '타이쿤' 게임으로서의 면모를 차차 갖추어 갔다.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한 가게의 사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왠지 감동적이었던 기억이다.

3탄부터는 낚시 모드가 추가되어, 초밥에 쓸 생선을 직접 수렵(?)해야 했는데 생선을 방치하면 상해 버리기 때문에 제때 낚아 주거나 아니면 상인에게 생선을 사야 했다. 시리즈를 거치며 게임 요소들이 추가되고 그래픽도 발전해 4탄에는 회전초밥집이 되었다. 김말이라도 제대로 말면 다행인 새내기가 생선까지 다듬어 가며 진정한 달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아...마치 인생이랄까.



■ 짜요짜요타이쿤

아버지 잃고 고아가 되어 유산을 물려받는 줄 알았으나 불모지 목장에 내던져진 불쌍한 소녀의 젖소농장 경영일기, '짜요짜요 타이쿤' 의 가장 큰 매력은 아마도 젖소 젖 짜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은 '쭈압쭈압'하는 소리는 젖소 근처에도 안 가봤던 기자에게도 젖 짜는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는 열두마리의 소를 목장에 배치하고 1부터 0, *, #버튼을 포함한 12개의 키패드를 이용해 열두마리의 젖을 짜서 이를 서울우유, 연세우유, 매일우유 등 우유상인에게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우유를 제때 짜 주지 않으면 젖소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다가 터져 버리는(....) 슬픈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젖소를 잡아먹으러 찾아오는 늑대를 총으로 쏴 죽여야 하는 등 다양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던 일명 '짜짜타'는 최근 국내와 해외에도 스마트폰 어플로 출시되었으며 누적 400만 다운로드라는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모바일 타이쿤류 게임 중에서는 경영 요소가 다분히 들어가 있었던 편인데, 부동산에 투자해 이익을 챙길 수도 있었고 젖소의 등급에 따라 우유 가격도 달라졌으며 우유를 팔지 않으면 상인들에게 신용도가 깎여 게임오버가 되어 버리곤 했다. 게다가 최종목표인 낙농계 거부가 되기까지 10년이나 플레이를 해야 하기에(물론 플레이타임은 과히 길지 않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10년은 한우물을 파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철학적인 게임이었다.



■ 생과일타이쿤

짜요짜요타이쿤이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10년간의 투쟁이었다면, 생과일타이쿤 은 리어카부터 시작하는 진정한 자수성가 일대기였다. 백화점에 입점하는 것이 목표로,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리어카에서 백화점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세심하고 꼼꼼한 경영전략이 필요한 게임이었다. 특히 과일 분류라는 3매칭 게임을 판매와 더불어 해야 하는 점 때문에 '해야할 일'이 참 많은 게임이었는데, 이런 깨알같은 요소들이 많아 기자는 전부 다 클리어하고도 왠지 아련한 기분에 지우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딱히 재료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기존의 타이쿤에 비해서 얼음, 컵, 과일값까지 다양한 요소를 걱정해야 하는 심란한 게임이기도 했는데, 초반에 과일만 필요한 줄 알고 과일을 사재기했다가 냉장고가 없으면 썩어버리는(...) 과일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결국 초기화했던 기억이 있다. 얼음이 녹는건 그렇다 치더라도(아니 사실 그렇게 따지면 여름날 한두시간이면 다 녹아버리는데 냉장고 먼저 주면 안되나?...) 과일이 하루만에 상해버린다는 것도 역시 나름대로 쇼크였다. 무슨 열대기후도 아니고 바나나는 열대과일인데 하루만에 상한다니 현실성이 과도한 거 아니야?...하지만 냉장고를 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쫩쫩 과일을 짜내곤 했었다.

버전을 거듭하면서 스토리나 요소도 강화가 되어, 주인공이 여캐로 바뀌고 라이벌도 등장하기도 했고 과일 분류 대회도 열렸다. 이전 버전에서는 주스를 팔기 위한 부수적인 요소였던 3매칭 과일분류가 대회로 등장하여 세계대회에서 우승하지 않으면 엔딩을 볼 수 없었다. 리어카부터 시작한 것도 서러운데 세계 1위를 찍어야만 엔딩을 볼 수 있다니 뭔가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임이 아니었나 싶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이식되어 인기를 얻기도 했는데, 왠지 보면 받게되는 효과가 있다. 예전의 '생타'를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플레이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피처폰 시절 가장 아쉬웠던 점이 데이터사용료와 저성능 기기에 대한 불만이었으나, 지금은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이곳 저곳 마련된 와이파이나 3G망, LTE망으로 다운로드 받는데 아무런 부담도 없고, 좁은 키패드도 사라진 지금 게임 플레이도 한결 쉬워졌다.

한결 편리해진 지금이지만, 쉬워진만큼 그 때의 열정이 사라진 것 같다.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받은 이상 플레이해야 했기에 한달을 붙잡고 있었던 2000년대에 반해, 다운로드에 아무 제약이 없는 지금은 30초 해 보고 재미없으면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모바일게임이 다양해진 것이야 행복한 일이지만 게임 하나하나의 매력을 곱씹으며 한 달을 꼬박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던 그때의 마음이 아닌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어도 모바일게임의 남다른 매력은 변하지 않았다.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그 어떤 플랫폼보다 훨씬 탁월하다. 이를 강점으로 삼아 1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해왔던 모바일게임은 근래 다수 게임의 성공으로 빛을 발했다. 이게 끝은 아니다. 더욱더 통신망 및 기기는 발전할 것이고, 개발력도 발전할 것이다. 10년동안 이렇게 발전했으니, 향후 10년동안은 더 눈부시지 않을까. 더욱 더 빛나는 모바일게임의 미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