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팬레터라고 믿고 싶은 독자 의견 메일을 하나 받았다. 일단은 기분이 좋다. 기사의 조회수와 리플수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메일을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내 글을 읽었다는 것이 말이다.


근래 오픈 베타를 실시한 모 게임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이었는데, 그 기사에 대한 동의와 아울러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 매우 허접한 수준의 오픈 베타라는 것은 회사 관계자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픈 베타를 감행한 것은 다름아닌 해외 진출 전략 때문이다.

오픈 베타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한국에서 엄청 깨지더라도 오픈 베타를 실시함으로써 경험과 부족한 점과 기술을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게임을 수정하여 해외에 판매하면 충분히 투자 수익을 누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 지점은 한국이 아닌 해외이다..."



즉, 한국은 테스트 베드의 역할이며, 실제적인 공략처는 해외 시장이기 때문에 상당한 욕을 먹을 것을 알면서도 이런 수준낮은 오픈 베타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비단, 이 메일뿐만 아니더라도 유사한 내용의 글들이 해당 게임과 관련된 게시판에서 꾸준히 올라오기도 했다.


설득력은 분명히 있다. 독자의견 내용대로, 게임사들이 그런 전략을 취할 가능성은 충분히 높고, 회사의 입장에서야 면밀히 검토하고 시도해 볼 수도 있는 전략이다. 시장이 한국이건 동남아건 어디건간에 궁극적으로 이익을 보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두군데를 버리더라도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게임. 꼬집어 말하자. 그 게임은 라그나로크2다. 라그나로크2는 이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즉 라그나로크2는 한국 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생각한 오픈 베타가 아니라는 판단이고, 그래서 이 기사를 쓰게 되었다. (물론 답신 메일은 바로 보냈다)




[ 에둘러 말하려니 힘들다. 그 팬레터(?!)는 라그나로크2 와 관련된 것이었다! ]



첫째로, 라그나로크2 는 이미 해외 수출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7 년 1월 11일에 그라비티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 지난해 (2006년) 9월 일본 ‘겅호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와 3년, 태국의 ‘아시아소프트’와 2년간의 현지 배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11월에는 대만, 마카오, 홍콩 지역 배급을 위해 ‘감마니아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사와 3년 계약을 맺었다.

해외 서비스 계약 체결로 그라비티는 이들 지역에서 라이센스 비용과 미니멈 개런티를 포함 총 최소 5,450만 달러의 수익을 기대하게 되었고..."



계약금과 미니멈 개런티가 포함된 금액이기 때문에 향후 몇년간(아마도 2010년까지) 500 억원의 해외 매출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500 억원의 금액이라면 아무리 개발비를 많이 산정해도 이미 남는 장사다.


둘째로, 한국 시장에서의 성패가 해외 진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게임을 처음 만들거나 자본 규모가 빈약하거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임이라면 해외를 위해 한국을 버릴 수도 있겠지만, 라그나로크2 는 다르다. 해외에서 라그나로크 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위상 자체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미 5,450 만달러의 수익 확보가 되어 있지만, 전작 라그나로크가 퍼져 있는 국가를 생각하면 더 많은 국가에 팔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라그나로크의 브랜드를 잇는 신작이 개발국이자 종주국인 한국에서 참패를 했다면 ? 해외 진출을 하려 해도 계약금과 개런티의 규모 자체가 매우 낮아진다. 실패한 게임을 사오는데 돈을 더 지를 해외 바이어가 어디 있겠는가!


쉽게 이야기하면, 아직 계약 체결이 되지 않은 국가에 판매를 하려 할 경우, 한국에서 성공하면 1,000 만달러 받을 것이 한국에서 실패할 경우 500 만 달러는 커녕 한참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이다.


셋째로, 이름 좀 있는 게임들 중에서 망하려고 시장에 내어놓는 게임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성공하고 해외에서 성공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을 뿐만 아니라, 그 게임들이 오픈 베타 초기에 쓰는 마케팅 비용을 보면 테스트 차원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6 년의 빅3 (제라, 그라나도 에스파다, 썬) 나 라그나로크2가 오픈 베타 초기 마케팅 비용으로 쏟아붓는 돈은 일이억이 아니다.


속칭 대작, 기대작이라 일컬어지고 이름값 좀 하는 게임들은 오픈 베타 초기의 마케팅 비용만 해도 10억은 기본적으로 넘어간다. 작년의 빅3 나 라그나로크2 가 진행한 오픈 베타 초기 마케팅/광고 비용을 얼추 추산해봐도 20 억은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라면, 수십억의 돈을 오픈 베타 초기 마케팅 비용으로만 집행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브랜드 이름 때문에 게이머들이 다수 몰려들 것은 뻔한 사실이라, 그 마케팅 비용의 몇분의 일만 들여도 원하는 테스트 결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이벤트 비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오픈 베타 초기 마케팅 비용은 상상불허! ]



이와 같은 판단 근거들로 인해, 메일로 도착한 독자 의견이나 게시판의 글들이 한편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라그나로크2 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해외에 대한 의견이 다를지라도, 라그나로크2의 오픈 베타 수준이 기대 이하로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는 것이 확인된 데에는 서글픔을 감출 수 없지만.


그래서 기자는 한국 게이머들이 매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진출을 노리고 한국을 테스트 베드로 삼은 게임이건, 아니면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노린 게임이건간에 한국 게이머들이 매우 가엾다는 생각 말이다.


왜 ? 할만한 게임이 없지 않은가. 나오는 게임들마다 완성도가 낮아 줄줄이 고배를 마시는 상황속에서, 오픈 베타때 접속했다가 좌절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수준 낮은 오픈 베타로 인해 거듭되는 좌절을 겪어야만 하는 한국 게이머들의 스트레스가 오죽 상당했으면, 해외 진출을 위해 한국을 일부러 버린거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으로 다가오겠는가 말이다. 오베족의 범람은 원래 오베족이어서가 아니라, 할만한 게임이 없다는 것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다. (사실, 기자도 나온지 좀 된 게임을 더 많이 플레이하고 있다)


이런 게이머들의 스트레스를, 그래도 경험이 있고 자본도 있고 인력도 있고 이름도 알려져 있는 대기업들이 커버해줘야 하는데, 아직까지 커버해주는 모습을 찾을 수 없으니 더 안타까운 것이다.


중소개발사들의 경우, 자본과 인력, 경험의 부족이라는 설득력있는 핑계거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스포츠 경기에서 팀이 어려울 때 에이스나 고참, 주장이 해결해줘야 하는 것처럼 빈한해진 국내 게임계의 상황을 조건이 빵빵한 대표 기업들이 해결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소개발사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솔직히 대략 난감이다.


☞ 관련 기사 1: 라그2, 4개국에 5,450 만달러 수출 계약 체결 (2007. 01. 11)

☞ 관련 기사 2: 반복되는 실수, 기대만큼 높아진 허탈감.. (2007. 06. 01)

☞ 관련 기사 3: 오픈베타, 입에쓰면 테스터? 입에달면 고객! (2007. 06. 18)


※ 항상 긴 글만 쓰다 보니 어느덧 그게 자리잡혀 버렸습니다. 짧은 글을 쓰려 해도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컨셉을 바꾸었습니다. 머리가 많이 아픈 주제가 아니라, 순간순간 짧게 쓸 수 있는 주제로 가볍게 써보자... 라구요.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긴 글도 종종 쓰겠습니다. ^^;;


Inven LuPin - 서명종 기자
(lupin@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