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축구를 보노라면 누구나 익숙히 만나게 될 장지현 해설이 피파 온라인 3 챔피언십 해설을 맡게 됐을 때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편으론 10분 남짓하는 짧은 시간 동안 펼쳐지는 가상 축구에서 어떻게 중계를 소화할 지 궁금하기도 했다.

피파 온라인 3를 하다보면 시스템 적으로 실제 축구와 많은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현실에선 얼토당토 않을 4-1-1-4 포메이션이 당연시되고, 포백과 미드필더를 페널티 라인 근처에 똘똘 뭉쳐 놓는 엽기적인 전략도 서슴치 않는다. 게임이기에 가능한 유쾌한 발상이지만, 실제 축구 해설자의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그지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첼지현'은 달랐다. 오랜 기간 축적된 축구 지식은 전체적인 해설의 질을 한층 올렸고, '07 체흐를 연신 찬양하는 모습에 팬들은 즐거워했다. 원래 자신의 자리인 양 자연스레 녹아든 그의 해설은 이제 피파 온라인 3 챔피언십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가 됐다. 첼시를 사랑하고, 게임 속 토레스의 부진에 안타까워하는 장지현 해설. 축구를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는 그와의 인터뷰는 일이 아닌 즐거운 대화의 장이었다.



Q. 만나서 반갑다. 먼저 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린다.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인벤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다. 낯선 게임 중계를 하게 됐는데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란다.


Q. 처음부터 축구 해설 위원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서 해설 위원을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PC 통신에서 축구 동호회를 운영하거나 조그마한 축구 사이트를 운영하던 마니아였다. 온라인 활동 외에도 K리그를 너무 좋아해서 서포터 활동도 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축구 쪽으로 직업을 삼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저 취미였을 뿐이었지. 흔한 축구 팬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

해설 일을 하기 전에는 영화 관련직에 종사했다. 영화 배급도 했고, 두 작품 정도는 제작 부장으로 현장 일도 했다. 그러다 2003년도 쯤에 필름 2.0이라는 영화 주간지 편집장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편집장이 회사측에서 UEFA 중계권을 구입했는데 한국어 페이지와 챔피언스 사이트를 담당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더라.

당시 나는 하나의 작품을 끝내고 다른 작품의 프리 프로덕션 상태였는데, 영화를 준비하는 단계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런 차에 내가 축구 마니아인걸 알고 있던 편집장이 나더러 챔피언스 리그 페이지를 만드는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그것이 축구 관련직에 몸을 담게 된 첫 계기였다.

이후 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중계를 제공했는데, 여러 캐스터들이 있었음에도 챔피언스 조별 리그 하이라이트나 풀 타임 중계를 하기 위한 인력이 부족했다. 그러더니 나보고 목소리도 좋고 하니 한 번 해설을 해보라고 하더라. 그렇게 처음에는 재미로 해설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MBC ESPN 해설 요청을 받고 지금의 해설 위원 자리를 이어오게 됐다.

사실 해설 초창기만 하더라도 영화 관련직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방송에 나오게 되니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다. 부모님이 공무원과 교사라 보수적인 분이셨는데, 내가 밖에서 영화 일을 할 때만 해도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던 분들이다. 이전까지 부모님께 효도도 못 했고,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던지라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자 싶어 해설 위원 직을 계속 하게 됐다.


Q. 이제는 축구 팬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해설 위원이 됐다. 특히 '첼지현'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왜 하필 첼시인가?

첼시는 지금의 강팀이 되기 전부터 좋아했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세리에A 팬들이 많았다. 해외 축구 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AC 밀란 등을 좋아했었고. 그 때 나는 루드 굴리트란 선수를 매우 좋아했는데 95년에 첼시로 이적했다. 그 이전까지 프리미어 리그는 92년에 출범했다는 정도만 알았지 관심사는 아니었다. 경기를 보더라도 북런던 더비라 불리는 아스날과 토트넘 경기를 보는 정도였지.

그 즈음 군대를 갔다 왔는데 입대할 때만 해도 DOS 환경이던 세상이 제대하고 나니 윈도우로 바꼈더라. 인터넷 역시 접하기가 쉬워져 루드 굴리트가 속한 첼시의 자료를 수집하며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따지고 보니 90년대 중반부터 좋아하게 된 셈이다.

예전부터 나는 외국인 용병이 많은 팀을 좋아했는데, 피파 '97 게임을 할 때도 그런 팀만 골라 즐겼었다. 당시 첼시의 스쿼드가 전부 외국인 용병 선수여서 개인적인 기호에도 맞았다. 비알리 등 좋아하던 이탈리아 선수들도 많았고. 그 때의 첼시는 강팀이라기보다는 중상위권의 매력있는 팀이었다.

여담인데 축구 뿐만 아니라 야구도 정말 좋아하고, 프로야구 원년부터 삼미 슈퍼스타즈의 골수 팬이었다. 알다시피 삼미는 늘 꼴찌였는데 현대가 인수하면서 갑자기 강팀이 되더라. 결국 지금은 축구는 첼시, 야구는 현대의 팬이 됐다. 이를 보고 주변에서는 첼시도 그렇고 현대도 그렇고 돈 많은 팀들을 좋아한다고 오해하하는데 절대 아니다.




Q. 피파 온라인 3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축구 해설자로서 바라 본 피파 온라인 3 리그는 어떤 느낌인가?

엔진이나 선수의 세세한 움직임은 많이 현실화 됐는데 전술면에서는 여전히 현대 축구와 다른 것들이 많더라. 그렇다 보니 실제 축구에 부합된 전술이나 운영 형태를 해설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해설할 때 게임성을 가미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을 많이 해보고 알아야 하는데 피파를 다시 시작하는 단계라서 아직은 잘 모른다. 옆에서 많이 가르쳐 주고 학습하는 중이다.

내가 피파 2001까지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제 다시 할려니 집에 노트북만 있어 게임하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돈을주고 키보드를 샀는데 또 막상 게임에 들어가니 키 설정이 달라서 적응이 쉽지 않다. 당장 달리는 키도 바꼈고, 개인기도 익숙치 않다.

Q. 경기에서 선수들이 사용하는 스쿼드나 전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부분의 베스트가 전방에는 드록바나 즐라탄 등 힘 좋은 선수들을 쓰면서 중앙이 텅 비는 포메이션을 쓰더라. 이게 실제 전술적으로는 공·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어 문제가 된다.

그래도 과거 게임에 비해서는 확실히 많이 좋아졌구나란 생각이 절로 든다. 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인공지능 움직임이나 선수들의 컨트롤, 키의 세밀한 조작에 의한 개인기 등이 상당히 민감해졌다.

그리고 예전 피파는 골 넣는 패턴이 정해져있었다. 당장 피파 2001만 해도 '얍삽이'로 골을 넣기가 쉬웠다. 공을 받아 마르세유 턴으로 상대편을 제치고 넣는다던가, 게임 내 버그를 이용한다던가 식으로 말이다. 또, 피파 온라인 1만 해도 얼리 크로스가 골을 넣는 주된 패턴이었다. 반면, 지금은 골 넣는 패턴이 획일화 되어 있진 않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의외성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실제 축구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Q. 피파 온라인 3 리그는 옵저버 화면을 통해 중계한다. 다양한 시점 변화를 주어 흥미를 더하고자 하는데 실제 축구 방송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카메라 워크는 어떻게 평가하나?

예전 게임에도 탑 뷰라던가 선수 시점, 벤치 캠 등 여러가지 캠 설정은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해보면 알겠지만 그런 설정을 바꾸게 되면 게임하기가 힘들어진다. 지금의 피파 온라인 3 리그는 방송 중계 단계에서 이런 부분을 조절하기에 실제 축구 중계에서 보는 느낌의 커팅과 순서가 형성 된다. 보는 재미는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Q. 실제 축구 중계를 할 때는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과 달리 피파 온라인 3 리그는 현장에서 중계한다. 다수의 팬 앞에서 중계하는 느낌은 어떤가?

나를 더욱 업 시켜주는 것 같다. 현장의 분위기를 타다 보니 저절로 목소리도 커지고, 관객들 반응을 보게 된다. 게다가 스포티비 게임즈에서 내 컨셉을 아예 첼지현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경기의 재미를 위해서 그 컨셉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해설할 때에도 이런 컨셉을 전달하려 노력하는데 관객들 표정을 보니 좋아하고, 재밌어하더라. 사실 내가 해설하면서 전문성 있는 얘기를 해봤자 맥만 끊긴다. 그보다는 빠르게 얘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업시키는게 도움이 되더라.


Q. 축구 중계에서는 캐스터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현재 같이 중계하는 성승헌 캐스터나 한승엽 해설과의 호흡은 어떤가?

성승헌 캐스터의 경우 정말 잘하는 캐스터이다. 진짜 게임 중계와 딱 맞는다. 게다가 중간중간 애드리브를 잘 던지는데 이게 또 유치하지 않고 재미있다. 해설 콘트롤도 상당히 능하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데도 불구하고 잘 맞춰주더라. 지금 당장 축구 중계를 해도 잘하겠다 싶었다.

해설이 두 명이면 서로 말이 엉키거나 같이 얘기하려고 하거나, 혹은 한 사람이 너무 욕심을 낼 때 밸런스가 무너진다. 그렇기에 한승엽 해설과는 서로 손짓하며 해설의 리듬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연스레 내가 중계석에서는 PD 역할도 하고 있다. 지금은 너가 할 차례야, 혹은 내가 말 할게 등 손짓으로 조율한다. 몇 번 안한 것 치고는 서로 잘 맞춰주는 편이다. 이게 실제 축구라면 3인 중계는 말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다. 그런데 e스포츠 중계는 어느 정도 말이 많아도 현장 분위기가 있어 괜찮더라.




Q. 게임 내에서 즐라탄, 호날두, 드록바 등의 주류 공격수에 비해 토레스가 외면 받는다. 가끔 나오더라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데 첼지현으로서 아쉬울 법 하다.

무엇보다도 '13 토레스는 바뀔 필요성이 있다. '07 토레스를 쓰는 사람들도 있던데 걔는 확실히 순발력이 빠르더라. '13 토레스는 몸싸움이 좋아졌는데 반영이 안 됐다. 최근 토레스는 파워를 늘리기 위해 피지컬 코치와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충실히 소화했다. 지난 해 봄과 여름 사이에 몸이 무거웠던 것은 그 때문이다.

가을부터는 토레스가 몸이 만들어지면서 파워가 생겼고, 순간 가속력이 다시 좋아졌다. 예전에는 호리호리하면서 빠른 선수였다면, 지금은 힘을 바탕으로 마력이 증가한 토레스가 됐다. 다만 파워 늘리기에만 집중하느라 슈팅 연습을 안 했는지 마무리가 안 되더라. 그래도 이것 역시 지금은 다시 제 기량을 찾고 있다. '13 토레스에게도 이런 능력치를 반영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Q. 피파 온라인 3에서 첼지현만의 스쿼드를 만들어 본다면 어떻게 하고 싶나? 물론 EP와 같은 금액적인 부분에는 상관 없이 말이다. 구단은 역시 첼시가 될 텐데.

딱히 그런 것 보다는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지금 주로 많이 하는 스쿼드를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펠라이니 같은 선수들이 확실히 좋더라. 야야 투레도 넣고 싶다. 내가 루드 골리트를 좋아한 이유가 야수같은 움직임을 선호해서인데 현대 축구에서 야야 투레가 이런 선수이다. 힘도 좋고, 올라운드 플레이어기도 하고. 드록바도 그래서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지금 주로 쓰는 피지컬적인 면을 강조한 스쿼드에 대해 불만은 없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메시를 아무도 안 쓰더라.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데도 불구하고, 몸싸움이 약해 쓰지 않다니 이건 좀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메시도 최근 몸싸움은 많이 좋아졌다.


Q. 메시가 피파 온라인 3에서 저평가 된 것은 동의하는 바이다. 그럼 반대로 피파 온라인 3에서 고평가 된 선수를 꼽는다면 누가 떠오르는가?

글쎄... 마이크 리차즈나 케빈 콘스탄트 등이 있으려나? 실제 클럽 축구에서는 부진하고, 주전에서조차 밀렸는데도 피파 온라인 3에서는 종종 쓰고 있더라.



Q. 올해 e스포츠는 정식 스포츠 종목화를 노리고 있다. 스포츠 종사자로서 이러한 부분에 조언한다면?

우리나라는 온라인 시장이 외국에 비해서 상당히 빨리 형성됐고, 그걸 바탕으로 게임 시장 역시 함께 성장했다. 이제는 게임 산업을 통해 다른 IT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IT 쪽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과거 게임을 많이 즐겼었고, 또 게임에는 구현 가능한 여러 가지 미래 기술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단지 유해한 것으로만 보지 말고, IT 기술이 총집결된 산업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통신, 그래픽, 캐릭터 산업, 엔진 등 지금의 모든 IT 기술을 게임을 통해 만나볼 수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게임은 영화와 같이 하나의 시나리오가 있다.

결론적으로 게임 산업에 지원을 더욱 늘리고, 개방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게임 업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파악하지 못하기에 단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다.


Q.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 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를 즐기면 좋겠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도의 길을 걷지 않았다. 사춘기가 늦게 왔는지 21살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고. 결과적으로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게 된 셈이다.

지금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집에서 걱정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축구를 볼 때마다 구박을 받았는데, 그 때의 경험들이 지금 하는 일의 자산이 됐다. 결국 중요한 건 기본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느냐이다. 본인이 정말 게임을 좋아한다면 있는 그대로 즐겨라. 다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따로 있다면,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영화 일을 할 때가 수입이 더 좋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반면 지금의 일은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축구 중계를 하면서도 마치 집에서 맥주 마시면서 경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임하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굳이 중계하는 리그가 아니라도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리그의 중계를 맡게 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니, 내가 좋아하는 경기를 보는 건데 돈을 벌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