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최고의 자리에서 영원할 수 없다. 올해 LoL e스포츠씬은 그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롤드컵에 오르지 못한 kt 롤스터와 아프리카 프릭스가 이미 롤드컵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로 남은 한자리를 두고 강자들의 치열한 싸움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롤드컵 진출팀인 킹존 드래곤X-젠지-SKT T1에 롤챔스 결승에서 간발의 차이로 그리핀까지 내려왔다. 그리핀이 올라간다면, 작년과 완벽히 다른 세 팀이 롤드컵으로 향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앞두고 롤드컵 선발전은 첫 대진부터 눈에 띈다. 2016-17 롤드컵 결승 주자였던 SKT T1과 젠지의 대결. 어떤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끝내 승리하며 롤드컵 결승이라는 최정상에서 만났던 두 팀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 한 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두 해 롤드컵을 지배했던 두 팀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한 팀만이 살아 이어갈 수 있을지 역시 모르는 상황이다.

두 팀은 이제 롤드컵 선발전에서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게 됐다. SKT T1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롤챔스 우승을 바탕으로 선발전을 거치지 않은 팀이다. 반대로, 젠지는 삼성 갤럭시 시절부터 롤드컵 선발전에서 전승을 거두며 '선발전 패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두 팀에게 선발전 1차전 자리는 굉장히 어색하다. 롤드컵 진출에 성공한다면, 가장 극적으로 역시 최강팀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반대로, 가장 허무하게 기존 타이틀을 뒤로 하고 과거의 강자로 남을 수도 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을 넘어 전 세계 LoL을 대표했던 두 팀. 이제는 우승과 준우승이 아닌 '탈락과 생존'을 두고 절박한 대결을 펼쳐야 한다.


'크라운'-'페이커' 눈물의 의미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던 두 미드 라이너



롤드컵 우승은 LoL 프로게이머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순간일 것이다. 반대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좌절과 아쉬움을 겪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LoL 역사를 돌아봤을 때 떠오르는 장면은 두 팀의 팀원들이 높게 롤드컵 트로피를 들어오는 장면이 있지만, 동시에 '페이커' 이상혁과 '크라운' 이민호가 경기를 패배한 뒤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점에서 '페이커'와 '크라운'의 '눈물'은 무언가 닮기도 했다. 롤드컵 우승이라는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페이커'는 2연속 롤드컵 우승으로 견고하게 지켜왔던 자리를 삼성 갤럭시에게 0:3 패배로 내줘야 했을 때 아쉬움의 눈물을 쏟았다. '크라운' 역시 롤드컵 우승 이후 첫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가장 힘들어했다. 2018 롤챔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기 힘들 것 같은 상황이 나오자 자신의 아쉬운 기량에 흔들리고 말았다. 와일드 카드전에는 올라갔지만, 롤챔스 포스트 시즌에서 SKT T1을 만날 때마다 패배하면서 과거의 우승보단 당시의 탈락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최근 경기에서 두 미드 라이너는 팀 주전의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야 했다. 과거 최고의 미드 라이너를 상징하던 때도 있었지만, 시대가 변한 지금은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팀 역시 예전만큼 최고의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이런 상황이 더욱 아쉬울 법하다.

하지만 '페이커'와 '크라운', SKT T1과 젠지 모두 지금까지 위기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 경험이 있다. 어떤 논란이 있더라도 팀을 위한 플레이, 팀과 함께 살아나면서 롤드컵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뤄냈다. 올해는 그런 저력을 두 팀 중 한 팀만 발휘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그 힘을 발휘할 팀과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

아쉽게도 프로는 모든 걸 결과로 평가받는다. '페이커'와 '크라운'이 흘렸던 눈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다시 재기에 성공한 선수가 있다면 그의 눈물은 '뜨거운 눈물'로 남을 것이다.


더이상 아쉽지 않으려면...
SKT T1 vs 젠지, 1승 그 이상의 의미



롤드컵 준우승과 우승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경험한 SKT T1과 젠지의 대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서로를 만났고, 이번 선발전 역시 그렇다. 젠지의 '트레이스' 여창동 코치 역시 이번 섬머 스플릿에서 가장 아쉬운 경기로 SKT T1과 2R 대결을 뽑았다. 패배한 팀에게 큰 아쉬움이 남는 대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젠지는 매서운 기세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그리핀을 잡은 상황이었다. 안정적으로 자신들보다 순위가 낮은 팀을 상대로만 승리하면 1위도 노려볼 만 했다. 하지만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오는 SKT T1에게 발목이 잡히면서 결과적으로 같은 12승 경쟁 구도에서 4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정규 시즌 단 한 경기로 롤챔스 결승 직행을 놓친 순간이기도 하다.

경기 내용 역시 작은 차이로 흐름이 결정나고 말았다. 미드 라인에서 '플라이' 송용준이 '피레안' 최준식을 상대로 킬을 노렸다.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무기인 아우렐리온 솔과 조이로 말이다. 하지만 '피레안'의 스웨인과 라이즈가 가까스로 살아남아 역습에 성공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젠지 입장에서 아쉬운 장면이 이어지면서 그리핀을 잡고 탄 기세를 바로 잃고 말았다. '플라이'가 조이로 솔로 킬에 성공했지만, 이미 경기의 전반적인 흐름이 '피레안'과 SKT T1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장 아쉬운 패배를 경험하게 된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롤드컵 선발전 역시 패자에게 그 어느 때보다 큰 아쉬움이 남는 경기일 수밖에 없다. 한 해의 마지막 경기를 패배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남지 않는 한 해를 보내기 위해 가장 승리가 절실한 순간이 찾아왔다.




SKT T1과 젠지
'Legends never die', 2018년도 이어질 전설은?


SKT T1과 젠지는 LoL 역사를 써 내려간 팀이다. 1세대 LoL 프로게이머인 '앰비션' 강찬용이 포지션을 바꿔가면서 다시 정상에 섰고, 최하위에 있던 삼성 갤럭시(현 젠지)를 롤드컵 우승이라는 자리에 올려놓았다. 2013년 최강자였던 SKT T1 역시 2015년부터 부활해 3회 롤드컵 우승, 2연속 우승이라는 누구도 넘보기 힘든 업적을 달성했다. 작년 롤드컵 테마곡인 'Legends never die'가 들어맞는 두 팀이었다.

이미 LoL의 전설이라고 평가받는 두 팀이 더 대단한 이유는 롤드컵마다 최고의 성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기량에 대한 의문과 아쉬운 평가 속에서도 다시 올라올 저력이 있었다. 스프링 최하위에 있던 SKT T1이 우승하기까지, 그리고 섬머 포스트 시즌에서 대패했던 삼성 갤럭시가 다시 한번 롤드컵 선발전을 뚫고 올라왔다. 롤드컵에서도 원거리 딜러의 시대라고 불리는 '향로 메타'에서 '우지'가 있는 RNG를 꺾었고, 신흥 강자 롤챔스 최강팀 킹존 드래곤X를 넘어 결승까지 올라온 팀이 바로 SKT T1과 젠지였다.

올해 2018년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번 고비를 넘는다면, 그들의 전설은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도 아직 남아있다. 올해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가장 절박한 순간, 2016-17 최정상의 두 팀이 전설을 이어갈 수 있을까.

■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한국대표 선발전

1차전 젠지 e스포츠 vs SKT T1 - 12일 오후 5시(강남 넥슨 아레나)
-5판 3선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