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고민은 보통 두 가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나는 현실에 안주하는 삶, 또 하나는 도전을 통한 현재의 문제 극복이다. 전자는 안전하지만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 후자는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지만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안주하는 삶을 선택하곤 한다.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열광한다. 성공할 지 실패할 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존중하고 목표를 달성하길 응원한다. 그럼 도전하는 사람은 그 속에서 에너지를 얻어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를 항해 정진한다.

'노페' 정노철이 타이거즈 시절부터 EDG까지 이어왔던 감독직을 내려놓고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코치로의 도전에 나섰다. 선수에서 감독이 됐던 '노페' 정노철의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그는 최고의 조건을 약속했던 LPL 최상위 팀들과의 계약 성사 직전에 LCK, 그리고 아프리카 프릭스를 선택했다. '노페' 정노철 코치의 두 번째 도전. 그의 도전에는 어떤 배경과 생각이 깔려 있었을까.


Q. EDG에서 나왔다. 이유가 있을까?

내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운 좋게도 '감독'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그 역할만 수행했다. 내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진행하긴 했는데, EDG 마지막 해에는 '내가 하고 있는 게 정말 맞는건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 EDG에서 나와 변화를 맞이하고 싶었다.


Q. 정든 팀에서 나올 때 아쉽진 않았는지?

EDG는 정말 좋은 추억을 많이 준 팀이다. 솔직히 중국으로 처음 갈 땐 좀 무서웠다. 주변에서 겁을 많이 주더라. EDG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웬만한 한국 팀 보다 더 열정적이고 코치진에 대한 존중도 상당했다. 정말 편하고 쉽게 적응했다. 물론, 언어나 음식, 환경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는 많이 체감했다. 그래도 게임단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정도 많이 들었고, 심지어 선수들 몇 명은 내가 직접 발굴해서 키운 선수들이다. 그럼에도 내가 많이 느꼈던 건, 그렇게 서로 존중해주는 속에서도 언어의 장벽을 너무 많이 느꼈다. 서로가 교감하지 못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선수들과 피드백을 하고 익혀 나가고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한국으로 가서 내가 직접적으로 선수들과 교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을 때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나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고 할까. 내가 과연 지금처럼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 궁금했다.



Q. EDG에서 끝내 정상을 찍지 못했다는 것도 팀을 나온 이유 중 하나인가?

당연히 연결되는 것 같다. 내가 성적을 냈다면, 나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을 거다. 선수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 같다.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건 결과적으로 나에게 부족함이 있었다는 건데 그 부족함이 어디에 기반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팀을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EDG에 나의 의견을 전달했을 때 나중에 다른 곳에서 만족할 만한 성장을 한다면 또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말을 해줬다. 참 고마웠다.


Q. 선수들 중에 누가 가장 아쉬워하던가?

'레이' (전)지원이가 정말 아쉬워했다. '메이코'도 워낙 성격이 밝은 친구고 애교도 많아 나를 잘 따라줬는데 떠난다고 하니 아쉬워하더라. '하로'도 그랬다. '클리어러브'라는 중국 거물 정글러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고 나도 많이 도와줬다. '하로'는 롤드컵 탈락 후에 나에게 장문의 메신저 글을 남기기도 했다. 자신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걸 보고 마음이 찡했다.


Q. 감독에서 코치로 전향했다.

원래 한국 복귀를 떠올렸을 때 감독직을 계속 원하긴 했다. 내가 구상했던 그림들이 있었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펼칠 수만 있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국 팀들 중에 나에게 감독직을 제안한 팀은 없었다.

중국 최상위권 팀들에게는 오퍼가 많이 왔다. 그래서 한 팀과 거의 계약 직전까지 간 상태였다. 그 때 아프리카TV의 채정원 본부장님이 코치직을 제안하셨다.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코치로 가고 최연성 감독님 밑에서 활동할 경우에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거였다. 아내와도 대화를 정말 많이 했다.

아프리카 프릭스 코치직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내 스스로 게을러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방향성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감독을 하다 보니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피드백을 했는데 정작 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최연성 감독님이야 워낙 e스포츠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시고 엄하기로도 유명하시니 나를 다잡아주실 것 같았다. 직접 감독님을 만나보니 내 결정에 후회를 하지 않을 확신이 생겼다.


Q. 감독과 코치를 모두 경험해봤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가 했던 건 소꿉놀이 같은 느낌이더라(웃음). 타이거즈 당시에는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신생팀에서의 감독 생활이었다. 그나마 EDG에 가서 대기업 팀의 느낌을 받긴 했지만, 문화 차이도 있고 내 위치도 관계자들에게 둘러쌓인 상태로 선수들과 게임 내적인 교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게임단에서의 생활은 처음 겪는다. 신기하다.

아프리카 프릭스는 연습 일정이나 선수들을 관리하는 과정, 코치진끼리의 소통을 정말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효율적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을 많이 체감하고 있다.



Q. 타이거즈와 EDG 모두 한 명의 코치가 있었다. 지금처럼 다수의 코치진이 함께 일하는 환경도 처음일텐데?

'쏭' 김상수 코치 때도 그랬고, '헤르메스' 김강환 코치와 함께 할 때도 그랬다. 게임과 관련된 일이나 내가 생각하는 선수들과의 소통을 거의 내가 주도적으로 했다. 내 성격상 워낙 남에게 그런 걸 맡기는 걸 불편해한다. 두 명의 코치는 각각 나를 옆에서 도와주는, 조언자와 같은 역할이었다.

여기서는 난 감독님의 지시에 따라서, 나를 포함한 총 세 명의 코치진과 협업한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가야 한다. 감독님이 알려주시고 잡아주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색다르고 어렵지만 정말 재미있다.

채우철 코치님 같은 경우에는 벌써 8년 째 업계에서 일하고 계시는 베테랑이다. 그에 걸맞는 노하우와 좋은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계셔서 배울 점이 많다. 양광표 코치는 선수 출신이 아님에도 게임 내적으로 정말 똑똑하고 성실한 좋은 코치다. 내가 자극을 많이 받고 있다. 내가 원했던 분위기나 상황에 안착한 것 같아 좋다.


Q. 아프리카 프릭스 팀원들과의 첫 인상은 어땠는지?

'기인' 김기인 선수는 워낙 다들 칭찬을 많이 했다. 기대치가 정말 높은 상태에서 만났는데 그걸 다 충족시켜주더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칼' 손우현 선수 같은 경우는 kt 롤스터에 있을 때부터 내가 느낀 점이 있다. 팀 사정에 따른 것이겠지만, '유칼'이 맡고 있는 역할이 그 선수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 실제로 팀에 와서 '유칼' 선수에 대한 걸 이것저것 지켜보고 있다. 파악이 덜 되긴 했지만, 이전 팀에서 배운 것도 많을거라 점점 기대를 갖게 하는 선수다.

'스피릿' 선수는 딱 보자마자 연습벌레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열심히 한다. 그리고 이 선수를 보면서 세월의 야속함을 느꼈다. '스피릿' 선수는 내가 은퇴할 때 쯤에 초신성처럼 등장했다. 내가 리 신 정글을 할 때 마오카이 정글로 2레벨 타이밍에 나한테 카운터 정글을 들어오기도 했다(웃음). 그랬던 선수가 지금은 한 팀의 맏형이다. 세월이 참 빠르더라.

'트윙클' 이진혁을 비롯해 '에이밍' 김하람, '쏠' 서진솔, '프라우드' 이정재, '젤리' 손호경과 같은 어린 친구들은 딱 어리고 프로게이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귀여운 선수들이다. 아직 첫 만남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추가적인 걸 모두 파악하진 못했다.



Q. '트윙클' 이진혁에 대한 평가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좋다. 직접 겪어보니 어떤가?

잠재력이 풍부한 친구 같다. 난 현재 팀에 합류해서 중국 정글러들의 변수 있는 움직임, 상대를 압박하는 움직임을 주로 가르치고 있다. 그걸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운 걸 응용할 줄도 알더라. 대성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선수다.


Q. 케스파컵이 개막했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프리카 프릭스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가?

LPL에서 활동할 땐 아무래도 타 지역 리그다 보니 LCK를 세세하게 보진 못했다. 첫 상대인 그리핀 같은 경우는 어색한 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핀이 치렀던 경기 VOD를 계속 보고 있다. 워낙 그리핀에 대한 주변 평가가 좋다. 그걸 듣고 있다 보면 주눅들 것 같았다. 그러면 안되지 않나. 난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 중이다.

첫 시작을 좋게 끊어야 어린 친구들이 힘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남은 기간 동안 사력을 다해서 이길 준비를 하겠다. 만약 이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박빙이었고 멋진 경기였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Q. 케스파컵을 통해 데뷔할 서포터 두 명의 선수에게 한 마디씩 해달라.

'젤리' 손호경 선수 같은 경우에는 워낙 밝고 성격 자체가 서포터 답고 책임감 있는 친구다. 경기에 대한 열망에 가득 찬 상태라서 좋은 의미로 사고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을 끝까지 잃지 말고 올 한해 함께 열심히 달려봤으면 한다.

'프라우드' 이정재 선수는 그동안 많은 팀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결과가 그리 좋지 않다 보니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하지만 나 뿐만 아니라 최연성 감독님과 채우철 코치님, 양광표 코치가 보기엔 재능과 자질이 충분히 보이는 선수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만 회복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Q. 케스파컵이 끝나면 LCK가 개막한다. 화끈했던 이적 시즌이 지나갔는데 아프리카 프릭스는 올 한해 어떨 것 같은가?

LCK에 오고 싶었던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롤드컵에서 LCK가 거둔 아쉬운 성적이다. 나도 EDG에서 좋은 성적을 낸 건 아니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지켜봤을 때 많이 아쉽고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e스포츠 하면 한국인데, 우리나라가 이렇게 좋지 않은 성적을 낸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걸 모든 팀 관계자들이 다 느꼈기 때문에 로스터 구성에 있어서 박차를 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모든 팀이 선수 구성을 알차게 했고, 능력 있는 코치진의 이동도 잦았다.

매년 역대급이라곤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이만한 시즌이 없을 것 같다. 다들 치열한 가운데 LCK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팀을 그 자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거다. 그 안에서 나도 함께 경쟁하고 경기를 치러보고 싶었다. 그리고 최후의 승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이번 아프리카 프릭스의 로스터를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느꼈다. 내가 최연성 감독님을 비롯한 두 분의 코치진과 합심하고 그 속에서 시너지를 낸다면, LCK에서 살아남은 뒤에 내년 롤드컵에서 LCK의 위상을 드높일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마지막으로 EDG 팬들과 LCK 팬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한다.

EDG 팬들에겐 사실 많이 미안하다. 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롤드컵 4강 이상의 커리어를 이루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걸 완수하지 못한 채 팀에서 나오게 됐다. 그래도 난 스스로 선수들과 정말 많은 교감을 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선수들과 팀에게 쏟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한 성장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EDG는 지금보다 훨씬 잘할 거라고 믿는다. 지금처럼 EDG를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LCK 팬들과는 오랜만의 재회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타지에서 활동했는데도 아직 나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도 한국인으로써 LCK의 위상을 회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아프리카 프릭스 팀과 선수들에게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