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6일, 많은 관심을 받았던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의 처녀작인 '데스티니 차일드'가 첫선을 보였다. 이번 발표회에서 특히 청중의 이목을 끌었던 부분은 게임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였다.

공개된 캐릭터는 일러스트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동시에 일러스트에서 볼 수 있는 화질과 세밀한 묘사, 일러스트레이터 개개인의 화풍과 개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러스트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여성 조각상이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조각상이 사람이 되기를 바랐고, 여신은 그의 간절한 소망에 응답해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여신이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듯이, 기술은 정지된 일러스트를 살아 숨 쉬게 했다. 데스티니 차일드를 숨 쉬게 만든 기술의 이름은 'Live2D'였다.

※ 일본 Live2D사에서 인벤의 취재 요청 및 기사 작성을 위한 프로그램 사용에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 Live2D, 일러스트에 생명을 불어넣다

일러스트를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은 이미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셀 애니메이션과 3D 모델링이 주로 사용된다. 셀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학창시절 공책 귀퉁이에 달리는 사람을 만들었던 그 방법이다. 움직임 하나하나를 그린 다음 짧은 시간에 연속해 비춰내 움직임을 준다.

3D 모델링은 움직임의 폭이 자유롭다. 한 번 모델링을 마치면 여러 동작에 활용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이 절약된다. 최근에는 2D 애니메이션에도 3D 모델링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3D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많다.

두 방법의 공통적인 단점은 고품질의 일러스트를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셀 애니메이션에 사용되는 많은 그림을 모두 일러스트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3D 모델링은 일러스트레이터 개개인의 개성을 살리기 어렵고, 폴리곤의 수가 적다면 세부적인 묘사가 어렵다.

▲ 일러스트 재현을 믿은 막내는 또 속았다.

데스티니 차일드의 일러스트는 셀 애니메이션도, 3D 모델링도 사용하지 않았다. 김형태 대표의 선택은 'Live2D'였다. 일본의 '주식회사 Live2D'의 Live2D 기술은 일러스트를 다른 형태를 거치지 않으면서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묘사와 표현을 유지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의 화풍과 개성을 살렸다. 원화 재현을 넘어 '원화 보존'을 실현한 것이다.

▲ 재현할 수 없다면 보존하면 된다!



■ 저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 Live2D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

일러스트를 움직이는 Live2D 작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원화를 Live2D 작업에 알맞게 그린다. 각 부분의 기본 동작을 지정한 뒤, 마지막으로 여러 기본 동작을 조합해 시간에 따른 움직임을 주면 Live2D 애니메이션이 완성된다.

Live2D의 작업은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단, 하나의 일러스트 전체를 한 번에 그리는 것이 아니다. 부위별로 조각조각, 다른 레이어를 사용해 그려야 한다. 얼마나 세분화하여 그리느냐는 얼마나 자세한 움직임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눈을 깜빡거리고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싶다면 하나의 눈도 여러 부분으로 나눠 그려야 한다. 눈의 배경이 되는 흰자, 움직이는 눈동자, 눈을 깜빡일 때 움직이는 눈꺼풀과 속눈썹 등을 나눠 그려야 한다. 자연스러운 깜빡임을 위해서 속눈썹을 상하좌우를 구분하기도 한다.

▲ 하나의 눈도 여러 부위로 나눠야 한다. (출처: Live2D 홈페이지)

정면에서 캐릭터의 귀가 잘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으나,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 귀가 드러나곤 한다. 이렇게 정지 화상에서는 가려져 안 보이지만 움직일 때 보이는 부분도 그려야 한다. 머리카락과 치마도 앞과 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므로 앞뒤를 나눠 그려야 한다.

▲ 하나의 그림이지만 실제로는 조각조각마다 레이어가 나뉘어져 있다.

인체는 근육을 사용해 움직인다. 하지만 근육은 수축과 이완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600개가 넘는 근육을 조합해 무궁무진한 동작을 만들어낸다. Live2D의 애니메이션도 기본 동작을 섞어 다양한 움직임을 구현한다.

여기서부터 Live2D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첫 번째 프로그램인 큐비즘 모델러(Cubism Modeler)에서 부위별로 나눠 그린 일러스트를 불러온 뒤 기본 동작(파라미터)마다 어느 부위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정한다. 상하좌우 이동과 회전, 곡면 변화를 사용하여 다양한 기본 동작을 만들 수 있다.

중간중간 각도마다 모든 움직임을 잡아줄 필요는 없다. 시작점과 끝점의 모양만 잡아주면 중간 단계는 비례한 모양으로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가로와 세로를 지정하면 상하좌우와 대각선까지 적용된다. 일러스트가 잘게 나눠져 있을수록 많은 기본 동작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동작을 만들 수 있다.

▲ 정면과 좌우 모양을 잡으면 중간 각도는 비례해서 조정된다.

매번 기본 동작도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구도에 비슷한 부위로 나뉘어진 일러스트라면 기존의 파일을 템플릿으로 활용해 기본 동작을 불러올 수 있어 작업 시간이 단축된다. 이후 캐릭터의 크기에 맞춰 약간의 보정을 해주면 많은 캐릭터의 기본 동작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

▲ 템플릿을 덮어씌우면 기본 동작 설정이 간략해진다 (출처: Live2D 홈페이지)

이렇게 만든 기본 동작을 조합하면 여러 자세를 만들 수 있다. 이를 GIF나 동영상처럼 시간에 따라 변하게 하려면 두 번째 프로그램인 큐비즘 애니메이터(Cubism Animator)로 시간에 따른 동작 변화를 지정해야 한다. 언제, 어디가, 어떤 속도로, 얼마나 움직이는지를 지정하면 비로소 하나의 애니메이션이 완성된다.


위는 기자가 직접 만들어 본 Live2D 애니메이션이다. 그림을 그리는 재주도,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도 전혀 없는 기자였지만 불과 3시간의 작업 만에 첫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 기자가 로고를 사용한 것처럼 Live2D는 인물 이외에도 사물이나 풍경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늘의 구름이 움직이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도 가능하다.


홈페이지의 라이브러리에서 공개 중인 모델링도 활용해봤다. 그림과 기본 동작은 이미 준비되어 있어 애니메이션만 새로 제작했기 때문에 30분가량 걸렸다.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봤지만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많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얼굴을 돌리면 머리카락이 날리고, 몸을 움직이면 옷자락이 흔들린다. 가속도 때문에 빨라지거나 느려지기도 한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고려해야 자연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 많은 공을 들일수록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가까워진다.



■ 데스티니 차일드, Live2D에 새로운 획을 긋다!

Live2D는 2009년 6월에 정식 발매를 시작한 기술로 이미 6년이 넘은 기술이다. 그래서 이미 Live2D 기술을 사용한 게임들이 시장에 여럿 출시되었다. 지금까지 수십개의 게임들이 출시되었으며 플랫폼도 안드로이드와 아이폰 외에도 PSP, 3DS 등이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 출시된 게임으로는 던전앤파이터, 괴리성 밀리언아서, 아이돌 파라다이스, 포션 메이커 등이 있다.

▲ Live2D가 사용된 던전앤파이터 직업 선택 화면 (출처 : 유튜브)

▲ 괴리성 밀리언아서의 메인 화면에도 Live2D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데스티니 차일드는 지금까지의 게임들과는 획을 달리한다. 게임 전반에 걸쳐 Live2D 기술을 사용했으며 캐릭터도 500여 종으로 폭이 넓다. 캐릭터의 구도도 다양하고 그림의 조각 종류도 다르므로 템플릿을 활용한 빠른 제작도 힘들어 하나하나 공을 들였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Live2D를 최대한 활용해 세밀한 움직임까지 구사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공개된 차일드 '세인트 니콜'을 보면 치마의 솜과 레이스, 머리카락과 손목의 리본까지 움직임을 넣어 물리적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기자가 만든 기본 동작은 고작 7개뿐이지만

▲ 데스티니 차일드의 기본 동작은 수십 개에 달한다.

일러스트의 해상도 역시 돋보인다. 발표회에서는 UHDTV에서 사용되는 4K 해상도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앞으로 있을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성능 향상에도 뒤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래서 일러스트 자체의 묘사도 세밀한 부분까지 구현했고, 많은 조각으로 분할할 수 있어 더욱 정밀한 움직임까지 만들 수 있었다.

Live2D사도 데스티니 차일드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홈페이지에는 꾸엠 작가가 그린 데스티니 차일드의 '시링크스'가 대문을 장식하고 있다. 11월에는 같은 일러스트를 사용한 4K 65인치 터치패널 전시물을 공개하기도 했다. 프로그램도 데스티니 차일드처럼 고해상도 일러스트 편집에도 자연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는 업데이트도 이뤄졌다.

▲ 4K 65인치에서도 굴욕 없는 꾸엠 작가의 일러스트 (출처: Live2D 스태프 블로그)

▲ 터치패널로 제작되어 건드리면 격렬하게 뿌리친다.




■ 앞으로의 Live2D 정점은 누구?

2D의 절정을 보여주겠다는 김형태 대표의 포부처럼 데스티니 차일드는 지금 표현할 수 있는 Live2D의 정점을 표현했다고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Live2D 기술이었지만, 데스티니 차일드 발표회 이후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와 애니메이터들도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 Live2D 홈페이지에서도 데스티니 차일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Live2D는 무료판과 유료판이 있으며, 개인과 소규모 사업자라면 무료판의 상업적 이용도 가능하다. 관심이 있는 개인과 인디 제작자라면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직접 만든 Live2D 애니메이션을 공개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다.

Live2D의 발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로그램에는 새로운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으며 지원하는 플랫폼도 PC와 모바일, Unity를 넘어 콘솔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360도 회전이 되면서 2D 일러스트 본연의 매력을 유지하는 새로운 기술도 개발중이다. 3D 모델링과 조합해 입체 공간에서 구현하는 것을 넘어 VR 대응까지 계획하고 있다.

▲ 2D 일러스트를 3D 입체로 구현하는 Live2D의 유클리드 기술

데스티니 차일드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Live2D에 흥미를 느끼고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데스티니 차일드가 지금은 Live2D의 정점이라도, 이를 뛰어넘는 게임이 앞으로 나타날 수 있다. 데스티니 차일드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나타날 Live2D의 새로운 정점에 대해서 더 큰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